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단지 운과 때가, 또는 방향이.
방송국 입구에 모여있는 기자군단과 팬들.
그들의 열기로부터, 어떤 가수가 가장 인기가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거대한 함성,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원래 이번 앨범 활동은 거의 끝난 상태나 다름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수록곡이 음원 1위를 차지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음악 방송에 행차하게 됐다.
도웅은 입구에서부터 벌써 달궈진 열기를 느끼며 천천히 포토라인 앞으로 걸어갔다.
“도웅 씨! 왼쪽이요!”
“도웅 씨, 여기도 한 번 봐주세요!”
“남도웅 씨!”
기자들이 도웅의 이름을 저마다 크게 외쳤다.
순간적으로 도웅의 눈이 카메라와 마주치면, 제대로 컷을 담아내기 위해서.
인지도 낮은 신인들이 지나갈 때 의무적으로 셔터를 누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뜨거운 경쟁이 느껴지는 포토존 촬영이 끝난 후에도, 기자들은 자꾸 도웅의 이름을 불러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번엔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는 길 쪽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허리춤까지 오는 바리케이드 뒤로 빽빽이 선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남도우웅!! 오늘도 멋있다!”
“나 새벽부터 기다렸어어!!”
“도웅아 여기 봐!”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웅의 팬들덕에, 타팬들은 도웅의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고 있었다.
‘남도웅 팬이 이 정도였나?’
‘모르겠어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정도면 왠만한 남돌들 한테도 안 꿇리겠는데.’
조금씩, 조금씩.
도웅이 걸어온 궤적을 따라 모여든 팬들이 이제는 남 부럽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자신과 음악을 사랑해주는 이 사람들이 도웅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래서 도웅은 잊지 않고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날도 더운데 와줘서 고마워요.”
-꺄아아아!
다시 한번 커다란 비명이 울려 퍼졌다.
**
대기실에 들어서자 세상 모든 소음이 차단됐다.
함성과 셔터 소리로부터 멀어져 한숨 돌린 도웅이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물었다.
“형, 오늘 순서가 어떻게 돼요?”
이제 기자와 팬들 앞에 서는 데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들 앞에선 언제나 긴장을 놓아선 안 됐다.
곧장 순서지를 살피던 심정남이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오늘 도웅 씨가 제일 마지막이지 말입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도 마지막 무대는 못 섰던 거 같은데. 다행히 수록곡으로 서보네요.”
“정말 잘됐습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런 이변이 일어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상위차트에 보이기 시작한 도웅의 자작곡이,
설마 타이틀곡을 제치고 정상에 설 줄이야.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노래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다른 1위 후보는··· 블랙홀의 잭슨입니다.”
“상대가 막강하네요.”
“네. 며칠 전에 나온 거로 알고 있는데 벌써 1위 후보지 말입니다.”
대한민국 3대 기획사라 불리는 2W 소속 남자 그룹 블랙홀.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가 잭슨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낸 솔로 앨범은 음원 차트에서도 도웅의 뒤에 바짝 붙어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는 해 볼 만 하다고 봅니다. 왠지 예감도 좋고요.”
심정남은 아까부터 예감 타령을 했지만, 실은 이렇게 얘기하는 데도 이유는 있었다.
도웅의 다양한 활동들이 쌓이면서, 그만큼 도웅의 팬층도 두텁게 쌓여 있었으니까.
출근길의 커다란 함성이 떠오른 심정남은 괜스레 자신의 어깨가 펴졌다.
그런데 순서지를 살펴보던 심정남이 뭔가를 발견하고 말했다.
“도웅 씨, 그런데 이 뉴보이즈란 그룹···.”
마침 똑똑.
대기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후배들의 인사 행렬이 시작된 것.
“빠져라, 미지의 소녀에게. 안녕하세요. 미지소녀입니다.”
능숙하게 구호를 외치는 이 후배들은 활동한 지 1년은 돼서, 얼굴은 아는 그런 후배들이었다.
보통은 인사를 하고 새로 나온 앨범을 건네는데, 이들의 앨범은 이전에 이미 받았었다.
그런데 인사가 끝나고도 나가지는 않고 어딘가 쭈뼛거리는 모습.
“혹시 뭐 할 말 있어요?”
도웅이 친절하게 묻자 다른 멤버들이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멤버를 툭툭 쳤다.
그러자 그 멤버가 도웅에게 불쑥 뭔가를 내밀었다.
“저, 선배님!”
“···이건?”
도웅이 출연하고 있는 뮤지컬의 프로그램 북이었다.
극단 소개나 캐릭터 소개, 배우들의 인터뷰 따위가 실려 있는.
그녀는 도웅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면을 펼치면서 수줍게 말했다.
“제가 뮤지컬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혹시 여기에 사인 하나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초롱초롱 간절한 눈빛.
도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와! 감사합니다!”
이후에 인사하러 온 다른 후배들도 도웅을 보는 눈빛이 이전 같지 않았다.
‘뭐 때문이지.’
정확히 원인이 뭔지는 몰랐다.
그간 대선배인 조훈기의 곡을 편곡했고, 뮤지컬에도 도전하는 등의 많은 일이 있었으니.
‘역주행으로 1위 후보에 오른 게 신기해서 그런지도 모르지.’
음원 차트에 드는 것 자체가 얼마나 치열한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
도웅의 역주행을 신기하게 여기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후배들의 인사 행렬이 뜸해졌을 즈음.
도웅도 선배 가수들에게 슬슬 인사하러 갈 채비를 했다.
**
심정남이 먼저 복도를 살피더니 앞장서 걸었다.
스태프, 아이돌, 그들의 매니저.
그리고 이곳에서도 여전히 뭔가를 건져보고자 하는 기자 등.
복도는 다양한 사람들이 엉켜 상당히 복잡한 상태였다.
“어, 도웅 씨!”
아니나 다를까, 복도로 나서자마자 금방 기자들이 도웅에게 붙었다.
하지만 한 덩치하는 심정남이 든든하게 그들을 가로막아주었다.
“기자님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저한테 명함을 주십시오.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은 아쉬운 대로 명함을 내밀고는 한 발짝 멀어졌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불쑥 누군가 심정남이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이번엔 기자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뉴보이즈 윤정후입니다. 지난번 졸업식 때도 뵈었죠?”
“아, 예.”
도웅의 동창인 윤정후였다.
그가 심정남을 살짝 지나쳐 도웅에게 인사했다.
“도웅아, 드디어 여기서 보네.”
윤정후는 때아닌 연예인 특례입학 소동으로 곤혹을 치렀지만,
이후 뉴보이즈의 음원이 순항하면서 다행히 그 문제는 잠잠해졌다.
이제 인지도도 생겼고 스케줄도 바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웅을 따라잡고 있다는 생각에 크게 기뻤는데.
“도웅아, 우리 노래 들어봤어? 난 네 노래 들어봤는데. 좋더라.”
그러나 어째서인지 근래 몇 가지의 이슈와 더불어 도웅과 더욱 격차가 벌어진 느낌이었다.
분하긴 했지만, 그가 자신의 앨범을 내밀었다.
도웅은 형식적인 감사를 표했다.
“아, 고마워.”
“참, 얼마 전에 기사 봤는데, 뮤지컬 전석 매진됐다며? 축하해.”
윤정후는 그러면서 슬쩍 도웅의 뒤쪽에 따라붙은 기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잘하면 조금이라도 같이 이슈를 탈 수 있을 테니까.
요즘 도웅의 화제성은 윤정후가 보기에도 꽤 뜨거웠다.
“이 기회에 아예 연기 쪽으로 틀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들이 흥미 있어 할 만한 화두를 던지니 관심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 아무튼 오늘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네.”
“두 분이 친하신가 봐요?”
“아, 저희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드디어 기자들이 다가오자 윤정후가 살짝 기뻐하며 답했다.
하지만 심정남이 기자에게 끼어들지 말라 눈총을 보냈다.
그러자 질문은 멈추고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하는 기자들.
윤정후는 어떻게 남도웅과 기삿거리를 더 엮어볼까 고민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둘 말고도 고등학교 동창인 연예인이 하나 더 있었다.
“참, 그런데 마은율은 잘 지내?”
“···?”
뜬금없는 이름의 출연에 도웅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윤정후는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아니, 사파이어 데뷔 앨범이 조금··· 그랬잖아.”
사파이어도 음원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이제 얼굴이 알려진 아이돌이었다.
그래서 기자들의 펜이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100위 안에도 못 들고. 그게 마음이 안 좋네.”
아마 ‘세 친구’의 기묘한 인연과 그들의 각기 다른 현재 위치 정도가 기삿거리가 될 듯싶었다.
남도웅에게 꿀리는 게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받쳐줄 마은율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도웅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안 좋을 게 뭐 있어. 이제 시작인데.”
“어?”
“걱정하지 마, 정후야. 사파이어는 잘 될 거니까.”
도웅은 언짢은 이야기를 적당히 끊고,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제 갈 길을 걸었다.
**
두 번의 리허설과 1위 후보 인터뷰도 마치고,
발표를 위해 모든 가수들이 우르르 무대 위에 섰다.
“이번 주 1위는 누가 될지, 점수 보여주세요!”
상큼한 MC의 구령에 맞춰 양분된 화면 위로 숫자가 올라갔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각 차트의 숫자를 비교하던 와중, 총합계가 집계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한쪽의 숫자가 멈추고 다른 한쪽의 숫자가 분수대 물처럼 계속 위로 솟아올랐다.
“축하드립니다! 남도웅!”
팡! 천장에서 꽃가루가 터지고 여기저기서 꽃다발이, 그리고 손에 트로피가 쥐어졌다.
동료 가수들이 손뼉을 치며 무대 뒤로 물러났고, 도웅의 앵콜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이 기쁜 날 회사로 돌아가는 내내 심정남이 벅차하는 것이 느껴졌다.
판타스타 식구들도 퇴근하지 않고 도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웅 씨! 축하해요.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강태진 대표님이 쏘신대요!!”
“오, 예쓰!!”
어느새 근처에 와있던 마이클이 공중에 어퍼컷을 날렸다.
다 함께 예약해둔 회사 근처의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두 번째 앨범의 첫 1위.
그것도 자작곡이 스스로의 힘으로 1위까지 역주행 한데에 모두가 축하를, 그리고 경의를 표했다.
“이제 판타스타가 도웅 씨 등에 업혀 가야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그렇게 된 지 꽤 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우리가 더 열심히 합시다! 건배!”
도웅은 이번 일로 이 험난한 연예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가수임을 증명한 셈이었다.
도웅은 여러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술을 한 잔씩 받아마셨다.
그런데 축하해 주는 인파 속, 한구석에 몰려 있는 사파이어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웅은 아무래도 아까 윤정후가 했던 말이 신경 쓰였다.
연습을 하다 왔는지 츄리닝을 입고 있는 네 사람은, 조금 기가 죽어 보였다.
아니, 만성적으로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도웅은 맥주잔을 가지고 사파이어가 있는 테이블에 가 앉았다.
“도웅 선배! 축하드려요.”
“그래, 고마워.”
단번에 축하 멘트가 터져 나왔다.
도웅은 마은율의 잔에 맥주를, 나머지 미성년 멤버들에게는 음료를 따라주었다.
짠. 살짝 잔을 부딪히고 네 명의 얼굴을 살폈다.
이전처럼 웃고 있는데 네 사람의 얼굴에서 약간의 우울감이 느껴졌다.
도웅은 이들이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언뜻 알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는데, 그런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
누구든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들의 탓이 아니었다.
단지 운과 때가, 또는 방향이 맞지 않았을 뿐.
그건 도웅이 각 멤버들의 역량을 알고 있기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
도웅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멤버들에게 물었다.
“다음 앨범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멤버들의 자신 없는 시선이 마은율에게로 모였다.
리더인 은율이 대표로 입을 뗐다.
“저번 앨범에서 뭐가 부족했던 건지 직원분들이 회의를 거쳐서, 이번엔 타이틀곡 공모를 받아보기로 했대요.”
“공모?”
공모라니. 회사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사활을 걸어보자는 그런 소리로 들렸다.
구성원들이 벽에 부딪혔을 때, 답을 외부에서라도 찾아볼 때 쓰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럼 누구든 도전해 볼 수 있는 건가?
도웅은 흥미가 돋아 테이블로 상체를 바짝 끌어왔다.
“조금만 더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은율은 도웅의 눈이 무섭게 반짝이고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