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진짜… 좋다….
마은율은 극구 반대하는 아버지까지 설득해가면서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
음악을 하는 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엄마처럼 꼭 불행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구나.
결정적으로 도웅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게다가 은율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사파이어 멤버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왜 이런 걸까.’
사파이어의 데뷔곡은, 음원 차트 안에도 들지 못했다.
열심히만 한다고 당연히 잘 될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만큼 안 될 줄도 몰랐다.
‘다들 우리를 위해 그만큼 애써줬는데···.’
은율을 포함한 사파이어 멤버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다.
회사에서 노력해주는 것 이상으로.
그래도 자꾸 죄책감 같은 게 어깨를 짓눌렀다.
지난 앨범이 잘 안 된 게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그런 죄책감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웅에게선 항상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우울에 빠져있다가도 도웅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쟤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손대는 것마다 다 끝장을 보고.’
도웅은 학생 때도 그랬다.
음악에 관해서 뭔가 하겠다고 눈빛을 번뜩이고 나면, 그걸 꼭 해내고야 말았다.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든 저만큼 해낼 수 있는 게 아닌데.’
이 바닥에 몸담고 나서 더욱 여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날마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있는 도웅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런데 그런 도웅이 사파이어의 새로운 곡에 관심을 비춘다.
“그러니까 공모 조건이 어떻게 된다고?”
도웅의 물음에 맥주잔을 든 은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희 ‘사파이어’에 어울리는 컨셉이면 된다고 들었어요.”
“음, 그래?”
“왜요, 선배?”
“아니, 그냥.”
도웅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저 가볍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저 눈빛···.’
은율은 도웅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뭔가 해보겠다 마음먹을 때의 그 눈빛이었다.
‘설마···.’
도웅이 이 공모에 도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은율을 스쳤다.
그 순간부터 은율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진짜 내 작업실에 비하면 여긴 오성급 호텔이네.”
도웅의 전용 작업실에 들어온 작곡가 임지문이 푹신한 소파에 누워 종이컵을 입에 물었다.
판타스타와 계약한 후로 줄곧 작업실이 있는 3층에서 지박령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얼마나 커피를 마셨는지 얼굴이 커피 색이 되어있었다.
“형, 집에는 가요? 어디서 조금 냄새나는 것 같은데?”
“아, 미안하다. 그래도 샤워실에서 꼬박꼬박 씻긴 했는데.”
임지문이 허리를 일으키고 앉아 양쪽 팔에 킁킁 코를 갖다 박았다.
그는 꽤 네임드 작곡가가 된 덕택에, 사내 요청은 물론이고 외부 의뢰까지 받느라 통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통근 시간을 아껴 회사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어야죠. 형 맨날 그 병균맨 그려져 있는 똑같은 티셔츠···.”
“이거 똑 같은 거 여러 개 사놓고 매일 갈아입는 거야! 병균맨을 모욕하지 마.”
냄새난다고 할 땐 가만히 있던 임지문이 옷을 가지고 뭐라고 하자 역정을 냈다.
그가 아끼는 캐릭터인 덕분에 병균맨이 참으로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손에 든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도웅에게 말했다.
“근데 너 그거 진짜 해볼라고?”
작곡가 임지문이 의아한 투로 말했다.
도웅의 손에는 사파이어의 타이틀곡 공모 요건이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임지문이 회사로부터 받은 메일을 프린트해다 준 것이었다.
“네, 형은 안 해요?”
“지금은 작업이 밀려있어서 난 때려죽여도 못 할 거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도웅이 더 바쁠 것 같았다.
그걸 깨달은 임지문의 고개가 도웅에게로 돌아갔다.
“근데 너는 왜 갑자기? 지금 스케줄 안 바빠?”
“스케줄이야 바쁜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걸그룹 곡을 만들어 보겠어요. 나중으로 미뤄선 결국 안 하게 된다니까요? 기회 있을 때 해야지.”
“그래, 넌 언제나 맞는 말만 하는구나.”
임지문이 할 말이 없는지 입맛을 쩝 다셨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입에 탈탈 털어 넣더니 미적미적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겠다. 아무튼 그거 완성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들려주는 거다.”
“알겠어요, 형.”
느린 걸음으로 뒤돌아 나가는 임지문을 도웅이 불러세웠다.
“아 참, 형.”
임지문이 고개를 돌리자 도웅이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제가 이거 참가한다는 거는 비밀로 해주세요.”
“···왜?”
“제 이름 빼고 공정하게 심사받아야죠. 그래야 사파이어 애들한테도 좋고.”
“캬···.”
임지문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나한테 여동생이 있었으면 너한테 소개시켜줬다.”
“됐어요, 형.”
도웅이 픽 웃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머리만 긴 임지문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
“흐음···.”
도웅이 고민에 잠겼다.
“사파이어한테는 어떤 컨셉이 어울릴까.”
판타스타는 작곡가 커뮤니티에 공모를 올렸다.
아마 신인, 유명 작곡가 가리지 않고 가장 좋은 곡을 뽑겠다는 취지로 보였다.
도웅은 거기서 정말 좋은 노래가 나와 사파이어가 어서 빛을 봤으면 했지만,
그렇다고 ‘잘 되겠지’하고 앉아서 두고 보고 싶지만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사파이어의 앨범이 망한다면.
“그 비극의 시작점이 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겠지.”
최소 백설과 김이삭은 다른 소속사에 갔으면 성공을 했을 이들이었다.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을 마은율까지 이곳에 모이게 된 원인은 명백히 도웅이었다.
잘하는 이들이 모이면 당연히 결과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난 앨범에선 뭐가 문제였을까.”
멤버 개인의 역량은 당연히 뛰어나다.
멤버 각기 외모 또한 뛰어나 어느 정도 인지도도 생겼다.
데뷔 엘범의 타이틀곡도 트렌드에 맞았고 나쁘지 않았다.
도웅은 사파이어의 무대 영상을 틀어놓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적당히 좋다고 듣고 넘겼었지만, 이제는 동료 가수가 아닌 작곡가로서의 시작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곡가로서 도웅의 시각은 꽤 날카로웠다.
그리고 이미 조훈기와 마이클을, 시장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성공시킨 전력이 있었다.
물론 걸그룹 시장에 그 통찰력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니 얼마 안 가 문제점이 보였다.
“다들 잘하긴 하는데, 개성이 안 보여.”
어쩌면 도웅이 사파이어 멤버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미래에 어떤 노래를 불렀고, 어떻게 성공을 거뒀었는지가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백설은 부드럽고 여린 이미지가 잘 어울렸고,
김이삭은 화려하고 절도 있는 노래와 찰떡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영상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매력도 드러나지 않았다.
심지어 마은율의 강점인 감성도, 로다의 맛깔나는 랩도 없었다.
그저 노래 잘 맞추고, 춤 잘 맞춰서 추는 네 명이 있을 뿐.
“이 정도면 멤버를 바꿔치기해도 누가 바뀌었는지 모를 정도일 것 같은데.”
분명 요즘의 걸그룹 음악 트렌드와는 맞다.
하지만 누가 부르더라도 무난할 만한 그런 노래였다.
꼭 사파이어가 불러야만 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얘기.
걸그룹을 처음 런칭해본 판타스타가,
노래 퀄리티에만 집중한 게 어쩌면 실수였던 것이다.
“이러니까 사람들한테도 매력적이지가 않았던 거야.
냉정하게 말해 이런 노래는 음원 차트에 널려 있었다.
그러니 대중들의 입장에서 꼭 사파이어의 노래를 찾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던 것이었다.
도웅은 거기서 답을 찾았다.
“그래, 각 멤버들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곡을 만들어보자.”
생각이 정리되자 척추 부근에서 어떤 감각이 간질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웅은 서둘러 손끝에 그 영감을 끌어와서 건반 위에 눌러 담았다.
“···이거 괜찮은데?”
단번에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나왔다.
이럴 땐 다른 멜로디를 더 생각해 보는 것보단 그대로 곡 작업을 이어가는 게 좋았다.
도웅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 멜로디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쿵쿵쿵쿵.
정박에 포인트를 주도록 드럼의 베이스 킥을 찍고,
그다음으로는 하이햇으로 기본 리듬을 구성했다.
그렇게 하나씩 효과를 쌓아가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 이 노래에 맞춰 춤추는 사파이어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무대조명,
그 빛을 반사하는 스팽글이 달린 무대 의상.
거기에 몽환적인 무대 배경까지
마치 축제의 화려한 피날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환영이 보였다.
멤버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강렬한 매력을 내뿜는 그런 모습이.
“좋다, 이걸로 가자.”
도웅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 노래를 완성해서 공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으차차, 그 전에 잠깐 물 좀 마시고 올까?”
도웅은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에 거나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니 그 전에 물이라도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텀블러를 챙겼다.
까딱하면 밤까지도 샐 수 있으니.
“그래도 내일 무대에 무리 될 정도로 하면 안 돼.”
도웅은 내일 있을 뮤지컬 무대를 떠올리며 뒤를 돌았다.
그런데 그 순간.
스윽-.
작게 난 작업실의 창문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쓱,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혹시 사파이어 애들인가.”
도웅이 곡 작업을 하면 종종 궁금해하며 문 앞을 얼쩡거리던 녀석들이었기에 도웅은 픽, 웃으며 문을 열었다.
이게 본인들 곡인 건 몰랐으면 좋겠지만.
벌컥.
그런데 바깥으로 나가니, 아무도 없었다.
‘뭐지? 잘못 봤나?’
도웅이 고개를 기울이며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는데, 그쪽에 검은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도웅은 방심하고 있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깜짝이야.’
어딘가 음울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바싹 말라 마치 미라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도웅을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일회용 종이컵에 물을 받고 있는데, 빨갛게 충혈된 눈은 도웅을 향해 있었다.
‘이 사람 그 사람이네.’
도웅은 임지문에게서 저 남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판타스타 소속의 작곡가로 항상 작업실에 처박혀 있다는 남자.
하지만 몇 년간 두드러지는 작업 결과가 없어서 더욱이 존재감이 없다는 그 남자였다.
‘그럼 저 사람은 계속 무슨 곡을 만들고 있는 거지.’
그때 남자가 든 일회용 종이컵에 물이 흘러넘치는 게 보였다.
“어, 저기요! 물이 넘치는데.”
도웅이 반사적으로 소리치니 남자는 스윽 정수기에서 손을 뗐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도웅은 남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나서야 텀블러를 정수기에 갖다 댔다.
졸졸졸.
그렇게 따듯한 물을 따르고 있는데 귓가에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무슨···.”
‘나한테 하는 얘기인가?’
도웅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네?”
“지금 ···무슨 곡··· 작업해요?”
남자의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낸 듯한 느낌이었다.
도웅은 사파이어의 다음 앨범에 들어갈 곡의 공모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공정하게 평가받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으면 했으니까.
“그냥 이것저것이요.”
“···.”
“시간 날 때 많이 만들어 둬야죠, 수고하세요.”
텀블러에 물이 가득 차자마자 도웅은 얼른 목례를 하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외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나쁜 습관이지만, 뭔가 촉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티백을 우려내고는 따듯한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당겨 바로 앉았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마치 건반과 한 몸이 된 듯, 도웅의 모든 집중력이 음악을 향했다.
곤두서는 청각과 손가락 끝에서 건반 위로 토독토독 떨어지는 영감.
그래서 도웅은 알지 못했다.
작업실의 창문에 다시 검은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는 것을.
아까의 그 미라 같은 남자가 창문에 딱 붙어, 도웅의 멜로디를 들으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진짜··· 좋다···.”
그리고 순간 도웅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그의 눈에,
검은 욕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뺏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