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5)
015. 재미있는 구경거리.
진한 선글라스 너머로 강태진의 욕심이 반짝였다.
“은율아, 필요한 거 있으면 또 얘기해.”
“응~ 끝나고 연락할 게.”
‘그때 너무 적극적으로 들이대서 부담을 느낀 건지도 몰라.’
은율을 통해 들어보니 도웅이 다른 기획사에 계약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강태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부담스럽지 않게 묵묵히 서포트 하다 보면 언젠가 도웅이 알아줄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카드를 준 보람이 있네.’
처음 카드를 달라고 했을 땐 은율이 또 무슨 꿍꿍이일지 걱정을 했는데,
부탁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강태진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 앉아봐.”
전자피아노를 교실 한구석에 옮겨 놓자마자 은율이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화장품처럼 보이는 원통을 하나 꺼내 들고 앞에 놓인 의자를 탁탁 쳤다.
“그거 뭔데?”
“왁스. 왜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말이 있잖아. 내 미적 감각을 한번 발휘해 보려고.”
도웅은 손재주가 없어 왁스를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
마은율의 실력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은율은 끈적한 내용물을 손끝에 바르더니 도웅의 머리끝을 톡톡 건드렸다.
그 덕에 은율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도웅은 어색함에 눈을 감아버렸다.
‘이 정도면 됐어.’
한참 동안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던 은율은 도웅의 얼굴도 그의 음악처럼 바탕이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손대도 느낌이 확확 변하는 얼굴이어서 꾸미는 재미가 있었다.
“자 됐다.”
은율은 작품에 만족하는 예술가 같은 모양새로 책상 위에 놓인 둥근 거울을 들어 올렸다.
촌스러운 이 대 팔 가르마나 너무 날티나는 모습은 아니길 바라며 도웅은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어때? 괜찮지.”
도웅은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울 속엔 말끔한 훈남 하나가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신경을 쓴 듯 안 쓴 듯 이마가 살짝 드러나는 머리는 도웅을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시켜주었다.
“역시 남자는 머리빨이라니까. 잘 어울린다.”
마은율은 제 솜씨가 만족스러운지 끈적해진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하지만 도웅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본판은 괜찮다니까?’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
축제의 오전 행사.
신청한 반별로 닭강정, 떡꼬치, 소시지 등을 팔거나,
동아리별로 체험부스를 운영했다.
그 덕에 복도는 설렘 가득한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해져 있었다.
마은율까지 재미를 찾아 떠나고 텅 빈 교실.
도웅은 교실 세팅만 돕고 오겠다는 형식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때 열린 교실 문으로 형식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형식이는 분명 도웅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잠시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누구를 찾는 듯 복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쟤 왜 저래?’
도웅은 성큼 일어나 멀어지고 있는 형식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지형식.”
뒤돌아본 형식이는 움찔하더니 이내 표정이 확 풀렸다.
“어우 씨 못 알아볼 뻔했네. 안경 벗었어?”
“괜찮냐?”
“인물이 다르다 인물이. 너 원래 코주부 안경이라도 쓰고 다녔냐? 왜 이렇게 변화가 드라마틱 해.”
“그 정도야?”
“응. 거의 가면 벗은 수준으로 다른데?”
형식은 자신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던 도웅에게 뿔테안경은 기본 템이었다.
다른 아이템은 다 바꿔도 절대 벗을 수 없는 기본 템.
그렇다 보니 도웅도 어색한 민낯이 형식에겐 더욱 낯설 수밖에 없었다.
형식은 이미 물색해놓은 후보지를 꼽았다.
“야 3반에 떡꼬치가 맛있다던데 그거 먹으러 가볼까?”
“그래. 가보자.”
둘은 환전소에 가서 쿠폰 몇 장을 구매한 뒤 목적지를 향해 복도를 거닐었다.
교실 바깥에는 저마다 알록달록한 색지들로 꾸며져있었다.
“여기다. 들어가자.”
한제네 떡꼬치라고 쓰인 3반에 도착했다.
교실 안에 들어가자 사이드로 정리된 책 걸상과 한쪽에 색지를 붙여 꾸민 가판대가 놓여있었다.
맛이 꽤 좋은지 다른 곳보다 한창 아이들로 붐비는 중이었다.
“와 인기 많네.”
“좀 기다려야겠는데? 뒤에 가서 줄 먼저 서자.”
감탄하는 형식을 데리고 줄을 서있기를 한참.
드디어 각자 떡꼬치 하나씩을 사서 사이드 책상 쪽으로 빠졌다.
그렇게 쫄깃하고 매콤 달콤한 떡을 하나 뜯어 오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기, 목 막히니까 이거 마실래?”
빨간 체크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3반의 여학생이 콜라 캔 하나를 도웅에게 내밀었다.
“이거 돈 내고 사야 하는 거 아니야?”
“아냐, 그냥 마셔. 서비스야.”
‘럭키! 운이 좋군.’
“고마워 잘 마실게.”
뻔히 칠판에 ‘콜라- 쿠폰 한 장’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였지만 도웅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청량하게 캔 뚜껑을 땄다.
‘말 바뀌기 전에 얼른 마셔야지.’
-치익, 탁! 벌컥, 벌컥.
따가운 탄산으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정면을 보니 맘 상한 형식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랑 같이 있는데 왜 서비스를 너만 주냐. 나도 목 막히고 나도 콜라 좋아하는 데.”
“그렇네? 자 반 남았으니까 마셔.”
도웅은 남은 캔을 내밀었고 형식은 콜라 한 모금에 금세 마음이 풀렸다.
**
그 시각 강당.
조한성은 거만하게 시선들을 즐기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동아리 부스별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미리 팬 서비스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조한성의 외형에 점차 아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때 신문부 부스에 앉아있던 여학생 하나가 말했다.
“야, 저기 데이콘 조한성이다.”
“어디 어디.”
동그란 안경을 쓴 신문부 부장 이채경은 얼른 DSLR을 들어 올렸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남자다운 옆선, 처음 보는 스타일링.
오늘따라 조한성이 더 조각 같아 보였다.
-찰칵, 찰칵.
이채경은 더 나은 한 컷을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이런 행사가 있는 날은 마음껏 조한성을 덕질할 수 있는 날이었다.
촬영도, 학교 SNS 업로드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그런 날.
그때 옆에 있던 부원 하나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솔직히 말해. 너 조한성 사진 찍으려고 신문부 들어왔지?”
“조한성을 찍는 게 아니라 제일 이슈 될 만한 걸 찍는 거야. 그래야 애들이 찾아보지.”
“웃기시네. 너 작년에도 SNS에 축제 풍경이랍시고 조한성 얼굴 메인으로 걸었잖아!”
“그래서 조회 수 잘 나왔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래. 또 할 말은 없네. 열심히 찍어.”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중 조한성이 신문부 쪽으로 다가왔다.
“반가워 이채경.”
“아, 응.”
“오늘 공연 때도 잘 부탁한다.”
그는 짧은 말과 진한 미소를 남기고 옆 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껌뻑 죽네.’
몸소 이채경에게 인사를 건넨 것은 채경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채경이 연신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능력껏 잘난 자신의 모습을 잘 담아주기를,
올해도 자신을 메인으로 걸어 남도웅에게 누가 이 축제의 주인공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기를 바랐다.
“어휴 바보···”
이채경은 말 한마디 더 붙이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그녀가 꼭 조한성을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채경의 이상형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사람이었다.
작년 조한성의 무대 영상은 SNS에서 이만 뷰를 찍었었다.
다른 게시물들이 이백 언저리인 것을 생각하면 100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오늘 무대는 얼마나 멋있을까?’
더군다나 오늘 조한성의 무대는 두 곡이 예정되어 있었다.
화제였던 1학년 추가 보컬 오디션을 학원 때문에 보지 못한 게 한이었지만,
조한성이 두 곡 다 부르는 게 이채경의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더 좋았다.
그때 옆 부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야, 1학년에 남도웅이란 애가 그렇게 훈훈하다며.”
“그 가수 지망생? 지금 1학년 장터 복도에 가면 볼 수 있대.”
“야야야, 빨리 가보자.”
“나도 나도.”
그길로 여학생 몇이 우르르 강당 밖으로 달려나갔다.
‘남도웅? 그 데이콘 오디션만 보고 도망갔다는 애?’
이채경은 뽀로통한 표정으로 DSLR을 들어올렸다.
‘그런 애가 잘 생겨 봤자겠지.’
그런데 주의를 잠깐 판 사이에 조한성이 강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채경은 헐레벌떡 카메라를 든 채로 조한성을 찾아 나섰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도웅은 복도에서 마주친 조한성을 보면서 생각했다.
조한성은 낯선 표정으로 도웅의 명찰을 한번 훑더니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게 남도웅이라고?’
어딘가 언짢아 보이던 조한성.
그런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도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안경 벗으니까 멋있네. 오늘 공연 잘 해라.”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뭐를 잘못 먹었나 싶던 때 조한성이 주변의 시선을 흘긋 의식하는 것이 보였다.
슬쩍 뒤돌아보니 커다란 카메라 하나가 그의 얼굴을 겨냥하고 있었다.
‘아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쿨한 남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듯싶었다.
도웅은 일부러 속을 긁어주기 위해 답했다.
“네, 저는 잘할 거니까 선배 공연을 신경 써주세요.”
그리고 인자한 미소.
순간 이성을 잃은 조한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채경은 놓치지 않고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뭐야? 쟤가 그 남도웅인가 뭔가인가 본데?’
호기심이 동한 이채경은 방향을 틀어 남도웅의 얼굴을 담으려고 했다.
그때.
“이채경!”
조한성이 그 낌새를 가로막았다.
“응?”
“저기 솜사탕 먹으러 갈까.”
“어···. 어! 좋아.”
이채경은 아무것도 모르고 헤벌쭉 조한성의 뒤를 쫓았다.
**
유지필은 오늘도 축제 행사는 뒷전으로 동아리방에 콕 박혀있었다.
‘남도웅은 어떤 곡을 준비했으려나.’
음악적 영감, 자극.
이런 것들이 한번 머릿속을 울리면 잔상이 오래갔다.
최근에는 남도웅이 오디션에서 불렀던 그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때 불현듯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도웅 노래를 생각하면 자꾸 인혁이 형이 떠오른단 말이야.’
유지필은 한때 유명 로커였던 제 사촌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형, 집에만 틀어박혀있지 말고 산책 겸 공연 보러 와, 근처니까. 야외라 아무도 형 신경 안 쓸 거야.
유지필은 모든 방송활동을 중단한 채 은둔하고 있는 형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형에게 다시 음악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켜주고 싶었다.
풋내기 같은 고등학생들의 공연이지만 형이 밴드를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상기시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래 시간 되면 갈게.
기대치 않던 답장이 도착했다.
‘형이 남도웅 음악을 듣는다면 나처럼 자극을 받을지도 몰라.’
그 때문에 유지필은 하인혁이 꼭 왔으면 하고 바랐다.
그때 동아리실의 문이 벌컥 열었다.
도웅 때문에 잔뜩 열이 받아온 조한성이었다.
‘외모로 1승, 실력으로 2승 한다.’
조한성이 생각하기에 외모는 이미 남도웅에게 이긴 싸움이었고,
자신의 노련함으로 무대를 휘저어놔서 뒤의 공연이 아예 묻혀버리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두 곡 다 아주 강렬한 곡들로 골랐다.
“이럴 시간 없어. 다들 일어나!”
강한 드럼비트와 천둥번개 같은 전자 기타음이 연습실 안을 가득 채웠다.
**
오후 4시 언저리.
교실과 강당은 이제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후한 인심에 배도 두둑이 채우고 구경도 실컷 마친 도웅은,
쏟아지는 무리와 함께 운동장에 마련된 무대 쪽으로 나왔다.
‘다른 학교 교복들도 조금씩 보이네.’
수능이 코앞이라 단축 수업을 한 3학년들을 제외하고,
언뜻 7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무대 앞쪽부터 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참.
모든 세팅을 마친 듯 전교 회장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올랐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한제 축제의 꽃! 그 무대의 막을 지금부터 올리겠습니다!”
-와아!!!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산발적인 박수 소리가 운동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도웅도 반 아이들과 섞여 힘껏 손뼉을 쳤다.
이제 곧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펼쳐질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