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모든 게 흘러야 할 곳으로.
의심은 가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던 말.
‘표절.’
함부로 지레짐작했다간 괜히 해당 작곡가와의 관계가 곤란해질 수도 있는 데다가 판타스타에서 특별히 심사해달라고 불렀으니 대놓고 얘기하진 못하던 것인데.
‘버드라는 저 사람, 상당히 직설적이네.’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버드는 시적인 가사로 유명한 작사가.
그런데 실제론 직설적이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모습이 상당히 의외였다.
허리춤까지 오는 긴 파마머리나 조금 헐렁해 보이는 의상이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눈치를 보며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던 와중, 강태진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선글라스 여성을 향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선글라스 여인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걸 꼭 얘길 해 줘야 아나?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강태진의 입장을 고려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자신의 친구이기 전에 이 자리에서는 대표니까.
사용한 악기와 박자,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다른 노선을 탄 듯하지만, 두 곡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 상당히 유사하다.
‘전문가라면 그걸 알아채지 못 할 리 없지.’
하지만 그걸 강태진이 모르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주변 작곡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당연히 의심이야 가지만 어떻게 이 자리에서 단언하겠는가.
웬만해선 법정에서도 가리기 어려운 게 표절 시비인 것을.
다들 여자의 눈을 피해 엄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는 그런 모습들이 답답한지 콧김을 한번 내뿜었다.
곧이어 강태진이 이곳에 자신을 부른 이유가 아마도 이것 때문일 거라고 짚어 넘긴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말고 작곡가들을 향해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보아하니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여자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가 표절을 의심하는 이유는 멜로디와 부분적인 코드 진행의 유사성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알겠지만. 교묘히 다르긴 해도 음의 진행이 같아요.”
모든 표절곡이 그렇듯 대놓고 따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단언할 수 있었다.
최소 ‘모방’은 해서 만든 곡이라는 걸.
법원의 판결까지 가기 전에 그게 전문가의 소견이라는 거다.
그때 작곡가 옹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독 안에 든 쥐가 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남은 용기를 목소리와 함께 쥐어짰다.
“그럼 첫 번째 곡···이 표절이라고 단언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둘 중 한 곡이 표절을 했다.
그런데 굳이 첫 번째 곡을 꼬집어 표절이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많은 전문가를 모아놓고 표절 자체가 아니라고 우기기에는 제 발등을 찍는 꼴.
그렇다면 옹석은 최소 표절한 게 자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글라스 여인은 이어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가사가 그걸 증명해요.”
“···?”
“첫 번째 곡이 표절곡이라는 걸.”
“어떻···게.”
선글라스 여인은 콧방귀를 흥 뀌고는 팔짱을 끼었다.
“곡에 대한 이해가 하나도 없잖아요. 답안지 베껴와 놓고 풀이 과정 억지로 적어넣은 꼴이라고요.”
말문이 막힌 옹석이 입을 턱 다물었다.
아니라고, 본인 생각일 뿐이지 않냐고 강경하게 밀어붙이면 될 일이지만, 상대는 현재 업계에서 폼이 최고로 좋다는 평가를 받는 작사가 버드.
옹석은 작사에 대해 오목조목 따질만한 근거도, 깡도 없었다.
정곡을 찔린 옹석의 등허리에서 마른 가지에 수액이 흘러내리듯 땀이 쏟아졌다.
애초에 도웅이 이 공모에 참여할 걸 알았다면 뻔히 들킬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연습···용으로 쓴 멜로디인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작곡가 동료들 앞에 밑바닥이 까발려지는 꼴이라니.
옹석은 자신의 이런 꼴이 비참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자기가 만든 게 아니라 굳이 지어내서 곡을 설명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좋은 멜로디가 그저 그래졌다고 해야 할까.”
“···.”
“아니면 가사랑 멜로디가 따로 논다고 해야 할까.”
선글라스 여인이 다소 주관적인 설명을 이어가는데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되려 미세하게 끄덕이는 고개들.
이런 수긍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사방에서 가시처럼 찌르는 것 같았던 옹석은, 그저 첫 번째 곡의 작곡가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이 평가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반면에 두 번째는 곡이랑 가사가 기가 막히게 달라붙어요. 제대로 된 풀이 과정을 보고 있는 느낌. 당연하죠, 자기가 곡을 떠올린 의도대로 가사를 썼으니까요.”
“···.”
“저는 그래서 두 번째 곡을 쓴 분이 원곡자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선글라스 여인이 옹석 쪽으로 살짝 상체를 숙이며 물었다.
“더 말씀해드릴까요?”
“아···니요.”
“그럼 이상입니다.”
그녀가 할 말을 다 해 개운한 듯 자리에 앉았다.
숙연한 분위기 속 강태진이 피식 웃었다.
‘저 불같은 성미가 한 건 했군.’
어느 쪽이 표절인지 잡아내는 데 작사가인 그녀가 도움이 되리라곤 생각했지만 불같은 성미 때문에 일이 조금 커졌다.
어찌 됐든 당사자인 옹석이 꼬리를 말았다는 데서 이미 게임은 끝났다.
강태진은 되려 박하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부르길 잘했어.’
이후로도 작곡가들이 평가를 이어나갔다.
직접적으로 ‘표절’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은연중에 그 사실을 깔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곡은 사파이어와 아주 완벽히 어울리면서도 기대된다는 평가들이 계속됐다.
모든 작곡가가 평을 마친 후.
강태진이 맨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자리에서 공정히 평가해주신 평가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평가단을 둘러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미 눈치 채신 것 같지만 두 곡의 작곡가는 다릅니다.”
강태진이 공식적으로 얘기하자 작곡가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구나.’
‘그럼 표절 작곡가가 누구지?’
‘여기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인가?’
‘에이 설마.’
옹석은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지지 않기를 원했지만, 이 곳에서 평가를 건너 뛴 작곡가는 단 두 명뿐이었다.
강태진은 일부러 ‘표절’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은 채로 손바닥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저 공모에 올라온 두 곡의 주인을 소개하듯이.
“첫 번째 곡은 저기 계신 판타스타 소속의 옹석 작곡가.”
그리고 반대 손은 도웅에게로 향했다.
“두 번째 곡은 DW의 곡입니다.”
덕분에 두 사람에게 극과 극의 시선이 꽂혔다.
일단 옹석에게는 비수 같은 날카로운 시선들이 날아갔고,
‘저 사람이구나. 표절 한 사람이.’
‘아, 나 저 사람 알아. 원래 좀 이상한 사람인데.’
‘표절을 해서 공모까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리고 ‘DW가 누구지?’하며 두리번거리던 시선들은, 이내 강태진이 가리키는 방향에 앉아있던 도웅에게로 향했다.
‘···어? 도웅 씨?’
동시에 확장되는 눈과 떡 벌어지는 입들.
사파이어 멤버들 역시 놀랐는지 서로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도웅 씨는 일부러 가명으로 참여해서 1차 예선을 공정하게 통과했습니다.”
강태진의 설명에 작곡가들이 작은 소리로 저마다 감탄했다.
‘···와, 여러모로 대단하네.’
‘아까 그게 저 친구가 만든 곡이구나.’
‘작곡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요새 폼 진짜 좋나 보네.’
‘이거 알려지면 난리 나겠는데.’
몸 둘 바를 몰라 초점을 잃어가는 옹석과 의외로 덤덤해 보이는 도웅.
사실 속으로는 아주 기뻤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강태진이 최종 발언을 했다.
“모두 함께 평가를 들으셔서 예상하시겠지만, 저희 판타스타는 DW가 만든 곡을 최종 선정하겠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꺄악!’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사파이어 멤버들이 낸 소리였다.
막내 로다가 뒤늦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작곡가들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여러분의 평가를 종합해볼 때 DW의 곡이 사파이어의 다음 앨범 타이틀곡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입니다.”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중간에 불거져 나온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사파이어와 어울리는 컨셉, 각 멤버들의 개성을 살리는 구성,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와 찰떡 같은 훅의 가사까지.
도웅의 노래가 월등하게 좋았다.
“그리고 옹석 씨는, 이 시간 이후로 저희와 한 약속을 지켜주세요.”
강태진이 단호하게 옹석을 향해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계약 기간까지 파기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늘부로 작업실 방을 빼달라는 얘기였다.
무슨 약속인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 가득한 시선들이 옹석에게로 향했다.
옹석은 그 가시방석 같은 시선들 가운데서 마른 가지 같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여기서 이의를 제기할만한 근거도 배포도 없었다.
쫓겨나는 마당에 표절 작곡가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깔리게 생겼으니.
‘앞으로··· 난···어떻게.’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
평가가 끝난 후, 작곡가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문밖을 나섰다.
옹석도 그들과 거리를 두고 비척비척 기운 없는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회의실에 남아있던 강태진이 도웅의 어깨에 손을 푹 올렸다.
“고생했어요, 도웅 씨. 그리고 축하해요.”
“고생은요. 모든 게 흘러야 할 곳으로 흐른 건데요.”
사파이어 앨범은 공모에서 우승한 가장 좋은 곡으로 차질 없이 진행하게 됐고, 표절 작곡가는 꼼짝없이 쫓겨나게 됐다.
이 곡으로 사파이어만 빛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상 깔끔할 수 없는 해피앤딩이 될 것이었다.
강태진이 감동 어린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좋은 곡을 써줘서 고마워요.”
“다음 앨범이 꼭 잘 됐으면 좋겠어요.”
“곡도 좋고, 사파이어 애들도 잘하니까. 잘 될 거예요.”
꼭 그래야만 했다.
희망적인 미래를 주문 외우듯이 읊조리던 강태진이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도웅 씨가 앨범 나가기 전까지 조금만 더 도와줬으면 해요.”
“어떻게요?”
“곡 컨셉을 도웅 씨가 제일 잘 아니까, 전체적인 무대 기획에 참여해주세요.”
사실상 프로듀싱을 맡아달라는 얘기와도 같았다.
자신의 곡이 제대로 사파이어의 등에 날개가 되어주길 바라는 도웅은,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말했다.
어차피 자신의 다음 앨범 준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데다가, 걸그룹의 프로듀싱을 맡는 것도 흔히 있는 기회는 아니니까.
“그럼 대표님, 저도 부탁드릴 게 하나 있어요.”
“뭐든 말해봐요.”
강태진이 대표 명의라도 옮겨주겠단 마음가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작업실 방음 공사를 보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갈 일 없게.”
“아! 당연하죠. 그건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 줄게요. 처음 공사할 때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애초에 표절이니 뭐니 사단이 난 이유는 방음 시설이 부족한 탓이었다.
강태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선글라스 여인이 불쑥 회의실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강 대표, 왜 안 나와?”
회의 동안 답답했는지 벌써 마스크는 턱 밑으로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아.’ 소리를 내더니 도웅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버드에요. 같이 일해본 적 있죠?”
“네, 안녕하세요.”
도웅이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조훈기 곡을 작사할 때 문자로만 대화를 주고받았던 사이라 약간은 어색함이 있었다.
그런데 하관이 어디서 본 느낌인데···.
도웅이 어딘가 친숙함을 느끼던 순간.
“도웅 씨가 가사도 그렇게 잘 쓰는 줄은 몰랐네요?”
버드가 선글라스를 들어 올렸다.
“···!”
“반가워요, 다시 인사할게요. 신세인이에요.”
도웅은 깜짝 놀라 다리가 굳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지금 도웅이 습득하고 있는 작사법 영상의 주인공,
과거에 반짝 히트곡을 내고 자취를 감췄던 가수 신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