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거지.
당황한 신세인이 숨을 몰아쉬며 손바닥을 허공에 짚었다.
“잠깐, 잠깐만.”
그러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물었다.
“도웅 씨 지금 나 얘기한 거 맞아요? 아니면, 가수 중에 신세인이라는 동명이인이 있던가?”
그녀는 ‘들어본 적 없는데’ 하며 중얼거렸다.
신세인이 진정하기 위해 테이블 위의 차를 들이켜는 동안, 도웅이 찬찬히 입을 뗐다.
“실은 이 곡을 쓸 때 선배님께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푸웁.”
신세인이 입에 머금었던 액체를 뿜었다.
오래간 은둔생활을 하던 자신에게 피처링을 해달란 것도 황당한데 심지어 본인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곡이라니.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자신이 튀긴 잔여물을 닦아댔다.
“아, 미안해요. 여기 휴지. 내가 너무 놀래가지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 그렇지,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어도 이상할 일이지. 아니, 그렇다고 또 이상할 건 없는데. 근데, 내 어디에서 영감을···.”
신세인이 말꼬리를 흐리며 궁금한 듯 물었다.
자신은 근 이십 년을 은둔생활을 한 데다 도웅과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일 뿐인데.
구슬 같은 커다란 눈동자가 빤히 쳐다보자 도웅이 이어서 설명했다.
“강 대표님께 들었어요. 자유롭게 음악을 하기 위해 회사를 박차고 나가셨었다고.”
“어머, 걔가 그래요?”
신세인이 살짝 놀라며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냥 나갔다고 해주지 또 박차고 나갔다고 했냐며 중얼거리면서.
‘걔는 별 얘기를 다 했네.’
사실 도웅은 그녀의 영감 노트에서 힌트를 얻은 거였지만 곧이곧대로 얘기할 순 없었기에 강태진을 팔았다.
“네. 그런 선택을 하신 게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멜로디가 떠오르더라고요.”
“···아아. 그랬구나.”
다행히 신세인은 쉽게 수긍했다.
그래서 도웅은 다시 한번 강력하게 원하는 것을 어필했다.
“그래서 이 노래의 피처링을 선배님께서 해주신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세인은 이 곡의 뮤즈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맨날 가사를 쓰기만 썼지 누군가 자신한테 영감을 받아 곡을 쓴 일은 처음이라.
마치 길에서 처음 본 남자한테 뜬금없이 사랑 고백을 받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하필 그 남자가 거의 이상형에 가까워서 고민이 되는 거다.
좋다. 노래는 좋은데.
직접 노래를 하는 건···.
‘괜찮을까?’
신세인은 오랜 공백을 뚫고 나섰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떠올려보았다.
과거의 이미지에 아직도 메여 변한 신세인의 모습에 실망할지,
아니면 항상 꿈꿔온 것처럼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줄지.
‘어쩌면 예전의 나 같은 건 잊고 모두가 무관심할지도 모르지.’
언젠가는 사람들 앞에 다시 서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신세인에게 도웅이 말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해서 너무 황당하셨죠?”
“아니에요, 뭐, 그럴 수 있죠.”
신세인은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이 정도쯤이야.’
갑자기 이사를 가버리고, 여행을 떠나고, 가수를 관두고.
갑작스럽게 일을 벌이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신세인이었다.
“그런데, 나한테도 조금 생각할 시간을 줘요.”
“물론이죠. 선배님께서 고민해 주신다는 것 자체로 영광입니다.”
“길게는 고민 안 할게요. 어차피 그런 스타일도 아니라서.”
신세인은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충격에 어딘가 도망을 가는 모양새 같기도 했다.
“그럼, 갈게요.”
입가를 당겨 어색한 미소를 남긴 뒤, 신세인이 몇 발자국을 떼었다.
‘이 노래를 불러? 말아. 손을 잡아? 말아. 가사만 써줄까? 그러다 저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게 되면?’
한 발짝을 뗄 때마다 속이 몹시 시끄러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거지. 내가 언제는 이렇게 고민하고 저질렀다고.’
찰나에 결론을 내린 신세인이 급하게 턴을 돌았다.
그녀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뭐 두고 가셨어요?”
기타를 챙겨 들던 도웅이 의아하게 묻자 신세인이 씩 웃었다.
“네.”
하지만 텅 비어있는 테이블.
무언가 떨어진 게 있나 싶어 주변을 살피던 때, 신세인이 테이블에 손을 턱 올리며 말했다.
“저 준다는 파트, 지금 가져가야겠어요.”
그래, 일단 하고 싶으면 저지르고 보는 게 나 답지.
신세인이 도웅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손을 쑥 내밀었다.
도웅은 그 손을 망설임 없이 맞잡으며 말했다.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입가에 동시에 미소가 걸렸다.
**
피처링이 순식간에 해결됐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오늘의 수확물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도웅은 잠시 이 설렘을 즐기기로 했다.
이제 메가플레이 플레이리스트에 오른 영상만 열 네 개.
이런 긴장을 즐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을 품에 안은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샤워까지 마친 뒤 휴대폰 화면 위의 붉은 별과 마주했다.
“새로운 영상일까, 아니면 레벨 업일까.”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까.
도웅의 심장 박동에 맞춰 붉은 별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이내 별이 팡- 터지며 폭죽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 레벨업 자격을 검토합니다. ] [ Lv.4 프로 > Lv.5 마스터 ] [ 사용자의 수준 검토 중···.. ] [ 이 작업은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우왁!”
도웅은 몹시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예상한 선물이었다 한들, 막상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은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 레벨은 마스터구나.”
프로는 전문가의 느낌.
그리고 마스터는 분야를 통달한 장인의 느낌이었다.
가요계에서 마스터라고 불릴만한 인물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서는 상상을 하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스쳤다.
‘그런데, 과연 내가 레벨업 할 자격이 될까?’
일단 자신을 프로라고 부를 수는 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격이 되기도 전에 붉은 별을 너무 빨리 모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니 걱정 말고 내가 할 일을 하자.”
마침 그때 신세인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방금 막 떠올라서 쓴 가사인데 어때요?
이어서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의견 보내놓으면 답장은 조금 있다가 할게요. 나 이제 운전할 거라서.
“그럼 그동안 집에도 안 가고 있었다는 건가?”
도웅이 집에 와서 씻고 메가플레이를 확인하는 동안 못해도 두 시간은 흘렀을 거다.
그동안 신세인은 판타스타 앞에 주차된 차량에 앉아 가사를 막 적어 보낸 모양이었다.
곡에 대한 그녀의 열의가 느껴지는 것 같아 도웅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
그렇게 며칠간, 신세인이 가사를 적어 보내면 도웅이 그에 대한 코멘트를 주는 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활발하게 오갔다.
-세 번째 줄에 ‘그런 자유’랑 넷째 줄이랑 모음을 맞춰서 단어를 바꿔보면 어떨까요.
-오! 완전 좋은 생각. 땡큐!
신세인의 문자를 보면서 도웅이 픽 웃었다.
‘이거 뭔가 거꾸로 된 거 같은데.’
십여 년 만에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각오를 하니 너무 생각할 게 많았는지, 그녀가 놓친 부분을 도웅이 잡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노래의 주인이 도웅이기 때문에 중심을 잡는 것도 도웅의 몫이었다.
도웅은 그동안 다른 곡에 대해서도 슬슬 구상하고 있었다.
멜로디가 떠오르면 무작정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음···. 이건 너무 분위기가 뜨는데?”
당장 쓸 수 없을 것 같은 곡은 늘 그랬듯 음악 공유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다.
그러다 지금까지 만들어둔 곡이 얼마나 되는지 보기 위해 사이트 위에 마우스 휠을 도르륵 내렸다.
“와···. 많네.”
순식간에 마우스 휠을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
도웅이 곡을 뚝딱 써내는 것 같아도 제법 쌓인 습작을 보니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맞아. 내가 이런 것도 만들었었지.”
그중에 작곡 초기에 만들었던 힙합 비트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한번 들어나 볼까? 하는 생각으로 도웅은 음원을 클릭했다.
그리고 드물게 달아놓은 댓글 같은 것을 확인하다가,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안녕하세요, 래퍼로 활동하는 엠파이렛이라고 합니다. 이 비트가 마음에 무척 들어서 그런데 ‘잇츠 힙합’의 예선 용도로 이 비트를 사용해도 될까요?
“엠파이렛이 이 비트를? 진짜 그 엠파이렛?”
잇츠힙합은 대한민국에 힙합 붐을 일으켰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엠파이렛은 그 프로그램의 준결승자였다.
아이디를 클릭해보니 진짜 엠파이렛의 사운드 페이지가 연결됐다.
“나 인 걸 알고 보낸 건가?”
하지만 아이디가 DW로 되어있어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DW라는 닉네임이 작곡가들 사이에는 퍼졌을지 몰라도 가수들이나 래퍼들까지 알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으니까.
정말 비트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며 도웅은 서둘러 메시지가 온 날짜를 확인했다.
“며칠 안 됐네.”
그래서 곧장 써도 상관이 없다는 답장을 보냈다.
습작으로 잠들어있던 곡을 무려 엠파이렛이 써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어서 앨범에 쓸 곡 작업을 하다가 며칠 후에는 사파이어의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동행했다.
“이 부분에서 웨이스트 샷 말고 니 샷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턴을 돌 때 의상 흩날리는 게 더 잘 보이면 좋을 것 같아서.”
“음, 그게 낫겠네요. 그럼 다시 한번 가볼게요.”
이미 도웅의 머릿속에는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연출에도 긴밀히 관여하며 장면을 완성해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편집된 완성본이 판타스타 쪽으로 넘어왔다.
“엇! 왔어요, 뮤비 편집본!”
그 소리를 들은 직원들이 제작팀 이나래 과장의 자리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빨리 틀어봐.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 죽겠다.”
“저도 너무 기대돼요.”
직원들의 기대 속에 화면 가득 고화질 영상이 떠올랐다.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한 정적 속에 사파이어 멤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몽환적이고 화려한 연출에 직원들의 혼이 쏙 빠졌다.
노래가 끝나고 다들 넋을 잃은 가운데, 어느새 다가와 있던 강태진이 소리쳤다.
“지금부터 홍보 팍팍 들어갑시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고요.”
“넵!”
뜨거운 대답들과 함께, 잘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사무실을 온통 휘감았다.
**
사파이어의 컴백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오는 동안, 도웅은 녹음실에서 신세인과 재회했다.
“고마워, 녹음 스케줄도 밤으로 잡아줘서.”
“아니에요. 어차피 녹음실엔 낮과 밤이 없으니까요.”
“흐흥. 그럼 누구부터···.”
신세인이 살짝 쌀쌀해진 날씨 덕에 입고 온 펑퍼짐한 카디건을 소파에 걸쳐두었다.
그때 녹음실 문이 열리며 강태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신세인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얘기 등을 건네다가 살짝 멈칫하며 말했다.
“그래서 진짜··· 노래를 한다고?”
“응, 까먹었나 본데. 나 원래 가수였어.”
“알지, 알지. 나도 기다리던 일이라 감개가 무량해서 그런 거지.”
사실 도웅이 녹음할 때 강태진이 매번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세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놓칠 수 없던 강태진은 아예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너 다른 일 없어? 대표가 되게 한가해 보인다.”
“이것도 내 일이야. 녹음현황 체크. 도웅 씨가 잘 돼야 우리 판타스타도 잘 되는 거거든.”
능구렁이 같은 대처에 할 말이 없어진 신세인이 ‘후우’하고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 악보를 보며 엔지니어와 뭔가 얘기를 나누던 도웅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녹음 시작할게요.”
도웅의 네 번째 앨범.
본격적으로 그 찬란한 항해를 위한 닻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