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세 번째 기회를 만나.
“진짜 부를 건가 보네. 신세인이가.”
이게 몇 년 만이던가. 신세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강태진이 종이컵을 든 자세 그대로 멈춰 녹음 부스 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도웅은 신세인이 오기 전에 이미 녹음을 끝내 놓은 상태라, 신세인의 파트만 녹음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신세인은 살짝 어색한 듯 녹음실 안을 둘러보다가 헤드셋을 머리에 끼웠다.
“음, 흠.”
그러고는 스스로 그 어색함을 깨보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하고 싶은 음악 아니면 안 하겠다며 사무실 문을 부서질 듯 닫고 나갔었던 여자.
이쯤 됐으면 양지로 나와라, 다시 노래해라 아무리 설득해도 아직 때가 아니라던 고집쟁이.
그런데 순순히 헤드셋을 끼고 마이크 앞에 선 신세인은, 마치 스스로 창가로 날아와 앉은 새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희귀종인.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는 그런 새.
‘저 고집에 내 얼굴을 봐서 도웅씨 피처링을 해주기로 마음먹었을 리는 없고.’
강태진의 고개가 자연스레 도웅에게로 돌아갔다.
‘도웅 씨는 전부터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걸까?’
마은율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오래 알고 지낸 강태진의 설득은 듣지도 않던 그들이,
도웅만 만나고 오면 거짓말처럼 생각을 바꿨다.
도웅은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도웅이 하고 있는 음악이 좋지 않았으면 신세인이 이 자리에 제 발로 걸어왔을 리가 없었다.
‘천하의 신세인을 움직인 노래가 어떻게 완성이 될지 궁금하네.’
그리고 신세인이 긴 공백을 깨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그렇게 강태진이 커피를 홀짝홀짝 음미하며 신세인의 노래를 기다리는 사이, 그녀는 답지 않게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아휴, 긴장돼 죽겠네. 왜 이렇게 떨려.’
당연한 얘기지만 신세인은 노래를 놓지 않고 있었다.
작사하면서도 꾸준히 기타를 들고 노래 연습을 해왔다.
마음 가는 대로, 되는대로 기타 현을 연주해가면서.
외국에 여행을 갔을 땐 필 받으면 길거리에서 연주할 정도로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찾아왔다.
가끔 오해하고 지폐를 던져주는 사람들 덕에 소소한 용돈 벌이를 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에피소드였다.
‘녹음은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실은 그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지금 그녀가 떨리는 이유는 강태진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자신의 옛날 모습을 알고, 그때의 신세인을 떠올리며 기대하는 사람들.
물망초같이 여리고 청초한 그때의 음악을 은연중에 떠올리고 있을, 그런 사람들.
그런 이들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섰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때처럼 자신의 음악을 즐겨주고 받아들여 줄지.
“후우.”
그녀는 생각하다가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아서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강태진한테 집중 좀 하게 나가 달라고 하면 어떨까. 그럼 좀 덜 떨리려나?’
하지만 당장 오늘만 그렇게 넘어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막상 무대에 서면 강태진 같은 인물만 수백, 수천일 텐데.
신세인은 앞으로 마주할 관객들을 강태진에 대입해서 오늘을 이겨내 보기로 했다.
‘그래, 몇 마디 되지도 않는 거! 도웅 씨한테 누가 되면 안 되지.’
“그럼 처음부터 쭉 들어보고 2절 B 파트에 들어갈게요.”
도웅이 신호를 주자 헤드셋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미리 녹음된 도웅의 목소리까지 함께.
‘음, 역시 좋네.’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고민.
그 고민이 마치 잘 우려낸 차처럼 은은하게 풍겨나왔다.
마시기 좋게 살짝 식힌 듯한 도웅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술술 넘어왔다.
부담 없이 듣기 좋으면서도 향기로운 진솔함이 담겨있는 좋은 음악이었다.
신세인은 깜빡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드디어 자신의 파트가 다가오고 있음을 자각했다.
‘오래도록 좋아하는 걸 찾아왔지만, 걸어보니 그 여정 자체가 내 음악이었더라.’ 하고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신세인의 파트.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이미 겪어본 자신의 얘기가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쓴 가사였다.
진짜 자신의 얘기를, 진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
신세인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다.
드디어 신세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뱉었다.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지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
이전에 노래할 때처럼 청아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더욱 깊이감이 생긴 소리였다.
그래서 담백한 노래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신세인 선배한테 피처링을 받기로 한 건 역시 최고의 선택이었어.’
도웅은 성숙해진 그녀의 목소리에 아주 만족했다.
게다가 그 목소리엔 ‘진짜’가 담겨있었으니까.
‘아니, 담겨 있나?’
순간 이상함을 느낀 도웅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잘나가던 신세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가 주변을 의식하며 노래하고 있었다.
불안하게 강태진, 도웅, 그리고 엔지니어에게 한 번씩 돌아가는 눈.
신세인의 노래에 너무 집중하느라 다들 무표정으로 있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변화한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 실망한 건가 싶은 것이었다.
평소 성격이 시원털털한 신세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남들의 평가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자신감이 떨어지는 때.
그래서 도웅은 특약을 처방하기로 했다.
‘불안이 문제라면, 그 불안을 제거해야지.’
도웅이 본 신세인은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직선적인 사람이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뭐든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하는 일 없는 사람이니, 여기 있는 이들의 표정에도 단순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리라.
방금 신세인의 파트가 끝났다.
그런데 도웅이 아무 말도 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이자 자신감이 더욱 떨어졌다.
“다시 한번 해볼까?”
담담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하겠다고 도웅의 손을 맞잡았던 게 너무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는지, 지금 도웅은 피처링을 해달래 놓고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역시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건지. 또 답지 않게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 이건 뭔가 아닌데.’
신세인이 복잡한 심경으로 뽀글뽀글한 머리를 배배 꼬던 그 순간.
“역시 선배님께 부탁하길 잘한 것 같아요.”
도웅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평소 같았으면 냉철하게 부족한 부분을 꼬집었겠지만, 신세인에게 부족한 건 자신감과 확신. 그뿐이었으니까.
“저, 정말?”
“그쵸, 강 대표님?”
도웅의 고개가 강태진에게로 돌아갔다.
강태진이 들었을 때, 처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신세인의 노랫말이 듣기 좋았다.
그런데 중간부터 미묘하게 목소리가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평소 같지 않게 칭찬을 하는 도웅 덕에 대충 그 의도를 알 것 같았던 강태진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신세인 진짜 안 죽었네. 예전보다 더 듣기 좋다, 지금 네 목소리.”
평소 강태진과 신세인은 서로 빈말하지 않는 사이였다.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때론 남들보다 더 직설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 사이.
그런 강태진이 ‘예전보다 더 좋다’고 말해준 덕에 신세인의 자신감이 다시 찰랑찰랑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누군데. 나 신세인이야.”
신세인이 너스레를 떨면서 이어 말했다.
“나 더 잘할 수 있는데. 녹음 계속 이어가 봐요.”
“네, 그럼 바로 다시 가볼게요.”
도웅이 부드럽게 웃으며 신호를 줬다.
재개된 녹음.
도웅과 강태진은 계속해서 칭찬과 긍정적인 반응을 아끼지 않았다.
그제야 빛나는 자신감을 되찾은 신세인은 전보다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이제야 제 날개를 마음껏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
녹음이 끝나고, 세 사람은 소파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경청했다.
담백하게 고민을 담아내는 도웅 뒤에, 독보적인 신세인의 목소리가 노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서로 다른 향이 섞였는데 더 독특하고 좋은 향이 나는 향초 같은 노래.
진짜배기 천연재료로 만들어서 끝없이 깊은 향이 나는, 그런 노래.
노래가 끝나고도 코끝에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이건 정말 명곡이에요.”
신세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강태진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느낌에 이 노래는 오래 남을 것 같다.”
한순간이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는 모두 대단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걸 뛰어넘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 같았다.
“도웅 씨 고마워요. 이런 좋은 노래를 만들어줘서.”
만약 이 노래를 만나지 못했다면.
신세인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람들 앞에 노래할 날이 과연 찾아왔을까?
그냥 숨어서 작사를 하는 대로 만족스러워서, 또는 이제 나서기엔 점점 두려워져서 젊은 날에 패기로웠던 꿈은 그저 꿈으로 간직하며 살았을지도 몰랐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살면서 세 번은 주어진다던데.
가수가 되었을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 그리고 도웅을 만난 지금.
신세인은 세 번째 기회를 만난 것 같았다.
“그런데 물론 노래가 좋은 건 내가 피처링한 덕분도 있어.”
“당연하죠. 선배님 아니었으면 이 노래가 완벽할 수 없었을 거예요.”
도웅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답하자 신세인이 픽 웃었다.
“그 대표에 그 가수네. 아, 참.”
그때 갑자기 신세인이 뭔가 생각이 난 듯 무릎을 쳤다.
“그러고 보니 이 노래에 도웅 씨 시그니처 사운드 같은 건 안 넣을 거예요?”
“시그니처 사운드요?”
“네, 도웅 씨가 만들었다! 도장 콱 찍어야죠.”
신세인이 테이블 위에 도장 찍는 시늉을 했다.
시그니처 사운드. 노래의 도입에 작곡가의 이니셜이나 그룹명을 집어넣는 것을 말했다.
“아직 그 생각은 안 해봤어요.”
“왜 안 해, 왜. 도웅 씨 나이대에 이만큼 독보적으로 음악 하는 사람 없어요. 브랜드값 알려야지.”
도웅은 잠시 생각했다.
노래에 표식을 남기는 건 생각만으로 뿌듯한데 이 노래에는 넣고 싶지 않았다.
“음, 근데 이 노래는 시그니처가 들어가면 분위기를 깰 거 같아요.”
브랜드값을 알리는 건 좋지만 노래의 완성도가 우선이니까.
그때 옆에 있던 강태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사파이어 노래에는요?”
“그 노래에는 괜찮을 것 같아요.”
“와, 그럼 됐다, 됐다. 거기에 넣으면 되겠네.”
상상만으로 신나는지 되려 신세인이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시그니처는 뭐로 할 거예요? 도!웅! 이렇게?”
“···그건 조금 이상한데요.”
너무 일차원적인 신세인의 아이디어 때문에 도웅이 난감해하자 강태진이 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차라리 공모에 냈던 대로 DW를 활용하는 건 어때요.”
“음···.”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그게 낫겠다 싶었다.
도웅은 거기에 자기의 생각을 보탰다.
“저만의 노래라기보단 가수와 함께 하는 거니까, 간단하게 ‘DW&’이 좋겠어요.”
“오! 어감 좋다 디더블유앤!”
그렇게 결정된 도웅의 시그니처가, 사파이어의 음원에 콕 하고 박혔다.
**
며칠에 걸쳐 사파이어의 티저가 공개됐고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드디어 사파이어의 포텐이 터질 것 같다면서.
그래도 얼굴은 알려져 있던 터라 일파만파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관심이 증폭되었고, 판타스타 측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홍보를 한 덕에 기대감이 최고치였다.
그 덕에 수많은 기자의 관심 속에 쇼케이스를 무사히 마친 멤버들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으, 제발. 차트인만 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제발요.”
아직 화려한 무대 화장을 한 채로 막내 로다와 마은율이 두 손을 모았다.
그때 문득 마은율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근데 우리 누구한테 비는 거야? 하나님?”
“아니. 나 무교야, 언니.”
“뭐야, 그럼.”
마은율이 맥이 빠지는 듯 로다의 손 위에 포갰던 두 손을 내렸다가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럼 아무 신이나 우리 소원을 들어주는 신을 앞으로 믿으면 되지.”
“에잇, 그래. 아무나 들어주세요, 제바알!”
로다가 이전보다 더 간절하게 소리쳤고 백설과 이설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눈만 깜빡였다.
매니저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와 대중들의 반응을 체크하면서도 초긴장 상태였다.
“공개된 음원 반응은 되게 좋아. 이대로만 쭉 가면···.”
“매니저 오빠, 정각이에요! 정각!”
로다의 외침에 매니저가 반사적으로 음원 사이트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다.
딸깍.
그리고 수많은 세계의 신들 중 하나는.
“우아아!”
“소원이 이뤄졌다! 소원이 이뤄졌어!!”
그녀들의 간절한 소원을 이뤄주었다.
그리고 차트의 끄트머리에 피어났던 그들의 희망은,
“어, 어!?”
“왜 그래, 로다야?”
“우리 순위가 이상해 언니들!”
그날 저녁 쭉쭉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16. Fantastic -사파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