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
016. 잘 봐둬라. 가장 중요한 게 뭔지.
-Yo- 한제! What’s up! We are the Black C!
해가 고개를 넘어 어수룩해질 즈음.
흑인음악 동아리의 강렬한 비트를 시작으로 2부의 막이 올랐다.
1부때는 조용하던 아이들이 그제야 양껏 환호성을 질러댔다.
“꺅~!! 꺄아악~!”
‘후훗.’
음악 선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1부는 사물놀이, 연극부 등의 무대로 구성됐고,
2부는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댄스나 노래로 구성됐다.
인기가 좋은 데이콘 같은 동아리는 2부에 끼워져 있었다
‘1부는 기본을 보여줬다면, 2부는 놀 줄 아는 한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1부는 학생들이 얼마나 동아리 활동을 착실히 해왔는지 교장선생님께 검증을 받는 시간.
2부는 학교에 음악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선보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날의 무대들은 곧 자신에 대한 고평가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한제고에는 정말 인재들이 많구나.’
‘왕 선생, 역시 그 선생에 그 제자야.’
무대 앞쪽에 앉아있는 교장선생님,
게다가 다른 학교 아이들까지 보눈눈이 많으니 어쩌면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행사.
음악선생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스케줄 표를 다시한번 검토했다.
“그런데 피날레 무대··· 괜찮으려나?”
무리해서 처음으로 준비한 야외무대.
그렇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음향 문제가 발생해 리허설을 하지 못했다.
다른 팀들의 실력은 대강 알고 있었지만, 마은율과 남도웅의 조화가 어떨는지 걱정이 됐다.
“은율이 노래 실력만 봤을 땐 피날레 무대로 확실한데···”
마은율의 노래로 축제를 퀄리티 있게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자신 있어 하는 도웅의 모습에 덜컥 듀엣 무대를 허락해 준 것이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수업 때 본 도웅의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었지만
도웅이 아무리 잘해도 마은율과는 클라스에 차이가 있었다.
그때 사회자가 소리쳤다.
“다음 무대는~! 한제고의 댄스부 ‘미라클’입니다!”
-워후!! 꺄악!! 휘익, 휘익.
휘파람 소리와 함께 다양한 리액션들이 터져 나왔다.
캡 모자와 흰색 와이셔츠를 멋지게 맞춰 입은 남학생들이 무대에 올라와 절도 있는 춤을 선보였다.
날도 점점 어둑해지기 시작해 무대조명이 제 효과를 발휘했다.
곧이어 다른 학교 댄스부의 축하 공연으로 은근한 경쟁구도가 잡히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합세해 공연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와 멋있네.’
비록 그들은 아직 고등학생들이었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프로 못지않았다.
도웅은 그들이 오늘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지를 생각했다.
그때 양쪽 뺨에 간지러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반별로 앉아있다보니 마은율과 도웅은 붙어 앉아있었고,
은율의 주변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평소 수다스럽던 그들은 공연에 따라 크게 리액션 하면서도,
한 번씩 어색하게 도웅을 흘끗거렸다.
‘남도웅 본판이 이렇게 괜찮았나?’
‘안경 하나 벗었을 뿐인데 왠지 말 걸기가 어려워졌어.’
처음에 마은율이 남도웅과 듀엣 무대를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솔직히 무슨 조합인가 싶었다.
노래 실력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둘의 카테고리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
탈 일반인 마은율과 찐따미를 풍기던 남도웅.
하지만 이렇게 보니 은근히 조합이 괜찮았다.
그때 활달한 성격의 여자애 하나가 용기 내 말을 걸었다.
“안경 안 쓴 게 훨씬 잘 어울린다 도웅아.”
그를 시작으로 주변 여자애들도 속에 담고 있던 말들을 꺼냈다.
“맞아”
“머리도 잘 어울려”
“고마워.”
노래를 잘 불렀을 때 보였던 반응들과는 또 다른 느낌.
뭔가 도웅을 어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야말로 어색했던 도웅은 괜히 뒷덜미를 긁적였다.
“잠깐 나 좀 봐봐.”
마은율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도웅의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를 확인했다.
한참 악기를 세팅하던 무대 위, 드디어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다음은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 학교의 자랑! 자존심! 데이콘을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남다른 함성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무대 위에는 데이콘 멤버들이 하나 둘 올라오고 있었다.
외모에 한껏 힘을 준 조한성이 등장부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터졌다.
그 모습을 본 은율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도웅은 그런 은율에게 얘기했다.
“우리도 슬슬 나가서 준비하자.”
이제 이 둘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단 두 곡이 남아있었다.
**
조한성은 여유롭게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섰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수백 개의 눈동자들.
조한성은 내적으로 흥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스탠드 마이크를 쥐고 테스트를 했다.
“아, 아.”
그러자 저 멀리서 터져 나오는 높은 데시벨의 함성.
‘그래, 이거지.’
일 년에 한 번 서는 무대.
축제 무대는 이들이 밴드 활동을 하는 이유이자 자존심이었다.
오늘만큼은 명실공히 한제고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조한성은 준비가 됐다는 표시로 드럼을 보고 고갯짓을 했다.
-탁, 탁, 탁, 탁.
드럼 스틱이 경쾌하게 맞부딪히고 비트 위에 하나둘 합쳐지는 멜로디들.
그 순간 조한성이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Woo Hoo-!
그와 함께 거세게 몰아치는 드럼비트와 전자 기타 소리.
조한성은 그야말로 무대 위에서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날뛰었다.
정신없이 깜빡이는 조명 아래 광적인 느낌으로 날뛰는 조한성과 세션들의 화려한 쇼맨십.
1학년들의 부족한 연주를 채우기 위해 조한성이 생각해낸 묘책이었다.
-I bought a jumbo jet. (나는 점보 제트기를 샀어).
다소 엉뚱한 내용의 가사로 시작된 노래.
영국 미소년 밴드의 브릿팝으로 사춘기의 반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래였다.
조한성은 약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노래했다.
조한성이 가지고 있는 반항적인 목소리가 노래와 썩 잘 어울렸다.
“우-후!”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처음 공연해보는 1학년들을 단 이 주만에 이끌고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였다.
사실 연주는 빈틈이 많았지만 조한성은 관객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끌어당겨 그 엉성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조한성이 괜히 밴드의 리더 자리를 맡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와 역시 데이콘. 조한성 컨셉 찰떡이다.”
“겁나 신나게 잘 부르네. 솔직히 좀 멋있다.”
“오늘 공연 중에 최고야.”
들뜬 아이들이 너도나도 조한성에 대해서 얘기했다.
세션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앞의 공연들을 잊는 건 순간이었다.
무대 가까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있던 이채경은 DSLR으로 줌을 당겼다.
액정 화면에 잡히는 반항적인 조한성의 눈빛.
노래와 스타일링까지. 무대 위의 그 모든 것이 삼위일체였다.
‘역시 무대 위에서가 제일 멋있다니까.’
이채경은 그 모든 순간을 고화질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된 두 번째 노래.
이번엔 2학년 세션들과 함께하는 노래였다.
전의 노래가 반항기의 소년과 같았다면 지금은 거친 풍파를 겪은 남자의 느낌을 풍기는 노래였다.
조한성은 방금 켜놓은 중불로 은근히 달아오른 시선들을 느끼며,
강불을 놓을 준비를 마쳤다.
진짜 무대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I’m gonna take on the world.(나는 세상에 맞설 거야.)
세상을 뒤흔들겠다는 남자의 패기가 담긴 노래 가사.
목을 긁는 듯 두껍고 남자다운 음색이 조한성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정제되지 않은 야성적인 고음이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쿵쿵탁, 쿵쿵탁.
정박에 떨어지는 드럼 비트가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세션들의 수준은 앞선 1학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악기들이 조화롭게 맞물리면서 생기는 팽팽하고 쫀득한 긴장감.
첫 번째 곡에서는 과장된 쇼맨십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면,
지금은 노골적인 실력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쇼맨십과 세션들의 실력.
각각의 곡으로 두 가지 매력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워우우우우!”
마지막에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듯한 조한성의 샤우팅.
그와 함께 유지필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지지징, 지지지징.
환상적인 기타리프가 고조된 긴장을 파고들었다.
관객들은 그저 입을 떡 벌리고 혼을 빼놓는 연주 사이로 스며들었다.
조한성의 노래 두 곡이 끝나고 커다란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데이콘 최고다아악!!”
“조한성 멋있다!”
‘잘 하고 있네.’
푹 눌러쓴 모자에 커다란 마스크.
한 남자가 멀찌감치 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을 휩쓸었던 로커 하인혁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예계에서 떠나 은둔 생활을 하는 중인 하인혁.
그는 유지필의 사촌 형이었다.
이 근처에 살고 있던 그는 주변을 쾅쾅 울리는 음악 소리에 끌려 슬슬 걸어 나와 본 것이었다.
하인혁의 눈엔 아마추어 티가 팍팍 나는 데이콘의 무대.
하지만 패기와 활력 넘치는 그 모습들이 예전 길바닥에서 노래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하인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그만 가볼까.”
유지필이 속한 밴드의 연주가 끝나자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데이콘! 데이콘! 데이콘! 데이콘!”
후끈 달아오른 관중들은 이미 다음 공연은 안중에도 없었다.
데이콘이 무대를 내려가는 와중에도 관중들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도웅은 무대 옆에 서서 마른침을 삼켰다.
‘쇼맨십이 뛰어나네. 외적인데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어.’
조한성은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한 스타일링부터 노련한 무대매너.
관객들이 자신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조한성의 강점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일부러 하드한 곡으로만 골랐고.’
게다가 마지막의 강렬한 연주로 공연의 피날레에나 어울릴 법한 장면을 연출했다.
뒤에 올 도웅과 은율의 발라드 무대가 처참히 묻히도록,
여기서 오늘 축제의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조한성의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는 선곡이었다.
‘하지만 조한성이라면 이럴 줄 알았지.’
2학년 세션들의 무대는 훌륭했지만, 묘하게 겉치장에 치중한 선곡.
그렇기에 도웅은 일부러 그 허점을 파고들 수 있도록 한국적인 정서의 발라드곡을 골랐던 것이었다.
그 편이 가사와 감정을 전달하기에도 유리할 터였다.
“데이콘! 데이콘!”
아직도 관객들은 한창 조한성의 공연에 홀려있었다.
진솔한 음악 본연의 힘.
도웅은 그 본연의 실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돌릴 계획이었다.
그렇게 무대의 계단을 오르려던 때,
툭.
내려오던 조한성이 도웅의 어깨를 고의적으로 밀쳤다.
“괜한 짓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뒤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라. 우리한테 그랬던 것처럼.”
“말은 똑바로 해야죠. 도망간 게 아니라 안간 거니까.”
도웅의 반격에 조한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너희 공연 아무도 기억 못할 거야.”
“아뇨, 선배의 공연이 저 때문에 깨끗이 잊힐 거예요.”
“뭐? 너 이색···.!”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도웅에 조한성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마침 그 타이밍, 사회자가 도웅과 은율을 불렀다.
“남도웅, 마은율씨 다음 무대 준비해 주세요.”
‘잘 봐둬라. 무대 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도웅은 조한성이 뼈아프게 깨닫기를 바라며,
자신만만한 발걸음을 무대 위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