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남은 것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엘리와의 통화를 마친 도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거 배달 일을 하며 짬 내서 즐겨보던 프로그램.
래퍼들의 속사포 같은 래핑과 가끔가다 터져 나오는 신랄한 디스는 답답한 일상 속에 사이다가 되어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프로그램 결승전의 피처링을 요청받다니.
그때와는 자신의 상황이 몹시 달라졌음을 새삼 체감했다.
게다가.
“이거 잘만 하면···.”
‘잇츠 힙합’은 현존 프로그램 중 화제성이 최고치인 프로그램이었다.
사파이어가 타이틀곡에 마지막 예능 버프를 받으면서도, 도웅의 다음 앨범도 홍보할 수 있는 절묘한 시기에 결승 날짜가 잡혀있었다.
도웅은 서둘러 매니지먼트 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내용을 전달받은 매니지먼트 팀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는 걸로 해야죠, 무조건.”
그들의 동의를 받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던 마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잇츠 힙합’이요?”
“응, 요즘 화제인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알지? 거기서 피처링 섭외가 들어왔어.”
“우와!!!”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로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은율이 앉은 의자 머리 받침대 사이로 로다의 작은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그거 요즘 내 최애 프로그램인데!! 은율 언니 대박이다.”
흥분했는지 목소리 톤은 잔뜩 올라가 있는 채였다.
아무래도 로다의 팀 내 포지션이 랩이었기 때문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요? 누구 피처링 하는 거예요?”
“음, 미들이라는 래퍼라는데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르겠다.”
매니저 역시 방금 연락을 받았다.
애들을 숙소로 내려다 주는 대로 정보를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로다는 출연진을 꿰고 있는지 ‘우와아!’하는 소리를 한 번 더 냈다.
“그분 형광색 머리 신기해서 실제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머리가 형광색이야?”
“응응. 테니스공 같은 색.”
로다가 무의식중에 하나로 묶어 올린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작대며 샌드위치를 오물거렸다.
“그런데 오빠, 우리 아직 컴백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잖아요. 근데 어떻게 섭외가 들어온 거래요?”
”그분이 은율 언니 팬이지 않을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삭이 추측했다.
‘잇츠 힙합’의 피처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경쟁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얼마나 검증된 가창력을 가진 가수를 섭외하느냐가 프로듀서의 능력으로 비치기도 했다.
마은율 역시 가창력 면에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보컬이지만, 사파이어의 음원에 반응이 오기 시작한 건 단 일주일 전.
그러니 아직 ‘검증’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녀를 섭외한 게 조금 의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핸들을 부드럽게 꺾던 매니저가 차선변경에 성공하고는 말했다.
“나도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그 프로에 도웅 씨도 같이 나간다네.”
“오와! 저희 회사에서만 두 명이 나가는 거네요? 오빠, 우리도 방청이라도 갈 순 없어요? 네? 제에발.”
흥분한 로다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마은율은 혼자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잇츠 힙합’에 출연할 기회는 분명 도웅이 만든 것이라고.
‘고맙다, 남도웅. 내가 잘해볼게.’
친구 사이에 쑥스러워서 사사건건 직접 전하지는 못했지만, 은율은 샌드위치와 함께 도웅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삼켰다.
**
며칠 후 도웅에게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메일에는 엠파이렛과 미들의 결승 곡이 첨부되어 있었다.
도웅은 즉시 순서대로 두 곡을 틀어보았다.
느낌 있게 흘러나오는 비트를 쭉 들어보며 고개를 까딱거리던 도웅이 후렴 부분에서 멈칫했다.
“약간 달라졌네.”
과거와 피처링 대상이 달라져서일까.
두 곡 다 미묘하게 보컬 부분이 도웅이 알던 것과는 달라져 있었다.
아마도 도웅과 은율의 피처링이 확정되고선 각 보컬에 맞게 살짝 수정을 본 것 같았다.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더 많아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곡을 만들고, 래퍼들이 가사를 쓰고 연습하는 동안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일정이 꽤 타이트했다.
그래서 대충 가사를 숙지하고 다음 날 녹음실로 향했다.
“연습은 좀 했어?”
“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함께 이동하는 차 안.
심정남이 끼어있어서인지 마은율은 도웅에게 존댓말을 고수했다.
그녀는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는지 딱 봐도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가사를 출력해온 악보에는 메모가 빼곡했다.
‘시간 없었을 텐데 언제 저렇게 열심히 했대.’
그때 은율이 하품을 쩌억 하더니 쏟아지는 잠을 이기기 위해 볼을 챱챱 때렸다.
그러다 도웅과 눈이 마주치니 멋쩍은 듯 웃었다.
“흐흐, 어제가 음방 날이었어가지고.”
“그러지 말고 피곤하면 가는 동안만이라도 눈 좀 붙이는 게 어때?”
“아니에요, 열심히 해야죠. 이게 다 얼마나 복에 겨운 일인데.”
들어오는 일이 없어서 막막하던 때를 생각하면 몸은 힘들어도 지금이 훨씬 마음은 편했다.
그 시기를 겪었기에 무대에 설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알았고.
‘바쁜 네가 항상 부러웠었는데 그동안 이런 고단함을 견디고 있었구나.’
매번 도웅에 대한 마은율의 경외감은 새로이 경신되는 중이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저 뒤를 따르려면 난 더 열심히 해야겠지. 하며 은율이 도웅을 보고 씩 웃고 다시 악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두 눈을 부릅떴다.
입으로는 가사를 웅얼대면서.
잠시 후 세 사람이 타고 있는 차가 세련된 시멘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엘리와 사이믹이 소속된 힙합 레이블의 건물이었다.
2층의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니 프로듀서와 래퍼들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도웅 씨, 은율 씨.”
사이믹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럼 이쪽으로···.”
녹음에 들어가기 전 잠깐 얘기를 나누기 위해 소파에 둘러앉았다.
녹음을 먼저 하고, 경연 다음 날에 음원을 푸는 식으로 순서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손님의 등장으로 밝아졌던 분위기가 자리에 앉자마자 무거워졌다.
도웅도 겪어봐서 알았지만, 결승전을 앞둔 긴장의 무게였다.
그런데 단 한 사람.
형광 머리의 미들이라는 래퍼는 천성적으로 걱정이 없는 타입인지, 그저 마은율이 등장한 직후부터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 저 잇츠 힙합 지원하길 진짜 잘한 것 같아요.”
“저 자식 우리 팀에 들어왔을 땐 저런 말 안 하더니.”
사이믹이 장난스럽게 쏘아붙였다.
살짝 퇴폐적인 외모의 엠파이렛은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과 달리 도웅을 쳐다보는 눈에 광채가 돌고 있었다.
“노래는 들어보셔서 알겠지만, 미들의 결승 곡은 좀 엉뚱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고, 엠파이렛은 랩 하나로 밑바닥에서 올라온 뒷골목 사나이의 느낌을-.”
사이믹에게 곡에 대한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도웅이 그간 연습하며 느낀 몇 가지 의견을 냈다.
“제가 부르는 후렴 이 부분 피치를 더 쨍하게 높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시청자들 인상에도 노래가 더 세게 남을 것 같은데.”
도웅이 해당 부분을 직접 음을 높여 불러보았다.
그러자 휘둥그레지는 엠파이렛의 눈.
엘리와 사이믹도 ‘오’하는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형광 머리를 한 미들은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게임 끝 났네.”
**
이틀 후에 생방송 날이 다가왔다.
음악방송 스케줄에 익숙한 도웅과 은율은 래퍼들과 함께 일찍이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래퍼들은 꾸며놓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색한지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잘 어울려요, 미들 씨.”
“헤헤, 고맙습니다. 은율 씨는 여신 같아요.”
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한 멘트를 날렸다.
결승에 남은 프로듀서는 단 두 팀이었다.
결승 곡이 뭔지, 피처링을 누가 하는지는 서로 예민한 부분이었기에 리허설도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게 은밀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상대 팀에 정보가 새어 들어갔다.
“그거 들었어요? 저쪽 팀에 피처링 남도웅이라던데?”
“···오, 좀 쎈데?”
팔과 목에 문신이 가득한 프로듀서 디오가 살짝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한텐 바이플이 있으니까 걱정 안 해.”
“맞아요, 바이플 형이면 누가 덤벼도 솔직히 압살이죠.”
래퍼 TAZO가 거들자, 바이플이 피어싱 달린 입으로 씩 웃었다.
그는 힙합 씬에서 매우 주목받는 보컬이었다.
**
그렇게 서로의 노래에 대해서는 베일에 싸인 채로 생방송이 시작됐다.
엘리와 사이믹 팀은 대기실 모니터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이 감도는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모서리에 달린 무인 카메라가 위잉위잉 열심히 돌아갔다.
-‘잇츠 힙합’의 영광의 얼굴. 최종 후보들 나와주세요!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불꽃 효과가 피어오르고, 네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러자 무대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관객들.
-엠파이렛!!!!
-TAZO 잘해라!!!
저마다 응원하는 래퍼의 이름을 외치는데, 이것만 봐도 오늘 결승이 엠파이렛과 TAZO의 접전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은율과 도웅은 대기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은율의 표정에 긴장이 역력했다.
오디션 프로 특유의 공격적인 열기에 살짝 압박을 느낀 듯이.
“미들 씨부터 무대 뒤에 대기해주세요.”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두들겼다.
곧바로 미들이 출격 준비를 하고 마은율도 따라 일어났다.
사이믹이 미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꼴등 하면 진짜 죽는다. 이기고 와라.”
“이미 저는 이긴 거나 다름없어요. 진정한 승자!”
미들이 주먹을 불끈 허공에 들어 올렸다.
“은율 씨랑 무대에 서니까요. 크크.”
사이믹은 경연을 앞둔 미들에게 잔소리는 그만두기로 하고 마은율을 향해 부탁하듯 말했다.
“은율 씨 저놈 좀 잘 부탁해요.”
도웅은 그런 은율에게 생수병 하나를 건넸다.
“잘하고 와. 저 무대도 다른 무대랑 똑같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선공은 상대 팀부터 시작됐다.
관객들은 기다란 수건을 들고 흔들고 있었는데, 흰색 면은 디오 팀을 상징했고, 다른 한쪽의 파란색 면은 엘리 & 사이믹 팀을 상징했다.
두 팀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 마음에 드는 팀에게 투표한 후, 그 팀에 해당하는 수건 색을 앞쪽으로 들고 흔드는 게 관객들의 역할이었다.
신나는 노래와 흥분을 깨우는 래핑.
상대 팀의 순서가 끝나고 다음으로 미들이 무대로 나갔다.
특유의 독특한 래핑과 몸짓이 톡톡 튀면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던 차에,
쉬이익- 전광판 가운데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마은율이 걸어 나왔다.
“누구야, 누구?”
보컬을 궁금해하는 고개들이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무대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사파이어의 노래에 비해 각 멤버의 인지도가 높은 수준은 아니었기에, 은율을 알아보는 이는 소수였다.
그런데 인지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 판단을 할 새도 없이 은율이 음색만으로 관객들의 정신을 홀딱 빼앗았기 때문에.
“뭐야, 누구야? 노래 진짜 잘해.”
“걔잖아, 사파이어 메보.”
“아아! 어쩐지 본 것 같았어. 요즘 인기 장난 아니잖아.”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한 관객들이 푹 빠져 홀린 듯이 기다란 수건을 흔드는 사이, 관객석에 있던 사파이어 멤버들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잔뜩 흥분해 수건을 흔드는 로다와함께 뭉쳐있는 멤버들의 비주얼이 퍽 인상적이었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났다.
무대에 만족한 관객들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대기실의 화면으로 보기에 엘리 & 사이믹 팀을 상징하는 파란 수건이 조금 더 많아 보였다.
“됐어, 스타트 잘 끊었으.”
사이믹이 퍽 기뻐하며 다음 주자인 엠파이렛을 향해 말했다.
“믿는다.”
그리고는 도웅에게 손을 뻗었다.
“잘 부탁해요.”
무대로 향하는 길. 복도에서 마주친 미들과 마은율이 기를 나눠주겠다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두 사람 다 무대를 잘 끝낸 덕분에 홀가분해 보였다.
“본때를 보여줘요, 도웅 선배.”
마은율은 여유까지 부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도웅이 뒤에서 대기하는 동안, 먼저 엠파이렛과 TAZO가 무대로 나가 사회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TAZO 씨는 두 분 중에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아주 빤한 질문이었지만 오디션 프로에서 이만큼 흥미진진한 질문도 없었다.
관객들이 흥분하여 귀를 쫑긋 세우니, TAZO가 마이크를 들고 답했다.
“노래도 좋지만, 저희는 정말 엄청난 보컬이 준비되어있거든요.”
-오오오.
관객들이 기대에 찬 리액션을 했다.
그러자 TAZO가 다시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니까 제 것까지만 듣고 가셔도 됩니다.”
-우와아악!!!
TAZO의 도발에 관객석에서 난리가 났다.
이런 경쟁 구도가 힙합 오디션의 묘미이기도 했다.
사회자도 흥분하며 멘트에 불을 붙였다.
“방금 이 발언에 대해 엠파이렛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엠파이렛은 잠시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가 말했다.
“그쪽 팀 보컬로 누가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그리고 그의 과묵한 입에서 누구보다 자신감에 찬 발언이 튀어나왔다.
“죄송한데 저희가 바를 것 같은데요.”
-우워어어어!!!!
화끈한 엠파이렛의 발언에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장내 분위기가 폭발적으로 달아올랐다.
남은 것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빅매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