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이거 저분들 아니에요?
견제 후 두 래퍼의 찌릿한 시선이 맞닿는 모습이 방송을 탔고,
“자, 두 분 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인데요.”
사회자의 고조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과연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그럼 지금 바로 이어질 무대 준비해 주세요.”
한참 불씨를 당겨놓은 두 래퍼가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 덕에 관객석에서는 남은 열기가 넘실거렸다.
“들었어? 발라버린대!”
“크으-. 패기 지렸다. 이게 힙합이지.”
관객들의 기대감이 한껏 고조된 가운데, 전광판에 TAZO가 곡을 준비하는 과정이 담긴 VCR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무대 뒤에서는 PD가 다음 순서인 TAZO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리허설하셨던 대로 TAZO 씨는 마킹된 자리에서부터 시작할 거고-, 만약 실수하더라도 저희가 최대한 앵글로 커버칠 테니까 최대한 멈추지 말고 쭉-.”
그와 바이플이 인이어를 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옆쪽에 대기하고 있던 엠파이렛과 TAZO팀 사이에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두 사람 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실력은 검증된 래퍼.
하지만 우승과 준우승은 체감상 차이가 몹시 컸다.
앞두고 있는 단 한 번의 무대로 그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TAZO가 우승, 엠파이렛이 준우승이지.’
도웅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그 결과가 정해진 대로 흘러가도록 놔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피처링도, 노래의 디테일도 달라졌으니 분명 바뀔 여지는 있다.’
도웅과 엠파이렛의 합, 그 결과로 결정될 노래의 퀄리티.
TAZO 팀은 분명 완벽한 무대를 선보일 테지만, 그것보다 더 잘해낸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VCR에 녹음된 소리가 먹먹하게 울려 퍼지고 무대 뒤에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은 묵묵히 고조되는 긴장을 삼켰다.
송출 영상이 끝나기 직전 PD는 제자리로 돌아갔고, 래퍼 TAZO가 긴장을 풀기 위해 엠파이렛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건넸다.
“엠파 형, 내가 진짜 집에 가고 싶게 만들어줄게.”
아마 언더 씬에서 활동하면서 농담 정도는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이인 듯했다.
그의 옆에 있던 바이플도 합장을 하며 거들었다.
“도웅 씨 노래 제가 즐겨듣는데. 오늘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따지자면 TAZO의 상대는 엠파이렛,
그리고 입에 피어싱을 달고 있는 바이플이 도웅의 상대였다.
장난처럼 건네고는 있지만, 이 모든 게 일종의 기선제압이란 것을 알았기에, 도웅은 지지 않고 여유로운 투로 말했다.
“죄송하실 일은 아마 없을 테니 좋은 무대 보여주세요.”
거친 힙합씬에서 살아남은 래퍼들에 비하면 도웅은 온실 속 화초일 줄 알았는데.
기죽지 않고 맞받아치는 도웅에게 두 사람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TAZO 씨, 지금 나가주세요.”
더 반응할 새 없이 스태프의 신호를 받은 TAZO가 무대 위로 올랐고, VCR이 꺼진 직후 그의 결승 곡이 흘러나왔다. 엠파이렛은 상대의 결승 곡을 처음 듣는 입장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부모님의 속을 썩여가며 긴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당당한 아들이라며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곡이었다.
목까지 뻗어있는 문신에 옷 스타일링까지.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한 TAZO였기에 관객들은 그의 새로운 모습에 처음엔 의외성을 느끼다가 점점 그의 감성에 빠져들었다.
경연 프로에선 치트키라 할 수 있는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감성이 장내를 휘감던 때, 보컬 바이플이 안개를 헤치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누구지?’
‘헐, 바이플!’
‘나 바이플 노래 요즘 제일 좋아하는데!’
역시 힙합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보컬답게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독특한 음색이 신성하게 울려 퍼지며 관객들의 고막을 정화했다.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TAZO의 래핑.
좌중을 사로잡는 음색의 바이플.
그 덕에 무대 뒤에 선 엠파이렛은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생각하며,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무덤덤하고 강해 보이는 엠파이렛이었지만 일생일대의 경연을 앞둔 상태에서 의연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노래가 끝나고 TAZO의 감정에 동화된 관객들이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이 마치 적진에서 사기충전하여 공격해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무대에서 내려온 TAZO와 바이플이 서로 어깨를 맞부딪히며 잘 끝내고 내려온 기쁨을 격하게 표현했다.
“봤죠? 집에 가고 싶죠?”
엠파이렛에게 마지막으로 도발하는 것까지 잊지 않으면서.
곧바로 엠파이렛의 곡 준비과정 VCR이 전광판에 흘러나왔고, 엠파이렛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누군가 엠파이렛의 이름을 불렀다.
“엠파이렛 씨.”
그의 지원군 도웅이었다.
“아까 나가서 한 말 진심이죠? 우리 발라버려요.”
장난스러운 도웅의 미소에 엠파이렛은 긴장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었지.’
긴장이 싹 날아간 엠파이렛이 말없이 도웅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짝. 두 남자가 하이파이브한 그 순간 스태프가 엠파이렛을 향해 소리쳤다.
“엠파이렛 씨, 지금 무대 위로 올라가 주세요!”
**
엠파이렛이 복서를 연상시키는 어두운색의 가운을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힙합 씬의 밑바닥에서부터 도장 깨기 하듯 다 부수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복서 컨셉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그의 강한 딕션이 다다닥 내리꽂듯이 튀어나왔다.
그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에 관객들의 심장이 요동쳤다.
‘와, 개간지다.’
‘너무 좋아, 엠파이렛 저런 퇴폐미.’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한 엠파이렛이 브레이크 없이 랩으로 잽을 날렸다.
덕분에 마치 진짜 링 위의 전투를 보고 있는 것 마냥 관객들의 흥분이 서서히 끓어올랐다.
엠파이렛을 비추던 조명이 꺼진 것은 그때쯤이었다.
탁.
무대 옆쪽에 연결된 2층에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자연스레 빛을 쫓아 돌아가는 관객들의 고개.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가운데 선 또 한 명의 복서.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봤다.
‘뭐야뭐야?’
‘이번엔 누구지?’
가운 깊숙이 얼굴을 감춘 남자가 순간 모자를 제꼈다.
“···!”
얼굴을 알아본 관객들이 놀라 숨을 훅 삼켰다가 뱉었다.
거기에 트레이드마크인 도웅의 음색까지 울려 퍼지자, 완전히 도웅을 알아챈 관객들이 떠나가라 소리를 내질렀다.
“꺄아!!!”
“남도웅이다!”
“우와!! 남도웅이 왜 여기서 나와?!”
놀라움은 도웅의 등장으로 그치지 않았다.
원체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는 도웅이었지만, 하이에나 같은 이곳의 래퍼들에 비하면 평소의 도웅은 순한 리트리버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 도웅의 눈빛, 목소리, 제스쳐는 마치 오래간 야생에서 살아온 늑대를 연상시켰다.
날 것 같은, 그래서 본능을 자극하는 도웅의 거친 고음이 쨍하게 관객들의 고막을 찔렀다.
‘남도웅 이런 스타일도 잘하는구나.’
‘라이브로 들어본 중 역대급인데?’
‘귀 호강이다, 귀 호강.’
‘바이플도 노래 엄청 잘하긴 했는데 몰입도 클라스가 다르긴 해.’
사실 도웅이 살아온 이전의 삶은 거칠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밑바닥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알았기에 그 생생한 감정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었다.
1절에 강렬한 인상을 줬던 도웅의 스포트라이트가 걷히고, 다시 조명이 엠파이렛을 향했다.
그리고 도웅이 자욱이 깔아놓은 분위기를 이어받아 엠파이렛이 조금 더 고조된 감정의 랩을 쏟아냈다.
이미 최고치로 달아오른 분위기 속, 2절 후렴에 다시 도웅이 등장했다.
이번엔 무대 가운데서 엠파이렛과 등을 맞대고 섰다가, 두 남자가 각각 양쪽으로 이동해 무대를 휘저었다.
관객들이 그들에게 손을 뻗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런 동작들이 풀 샷 앵글로 봤을 때, 마치 교주를 향한 광신도들의 손짓처럼 느껴졌다.
두 남자가 가운을 관객석으로 벗어던지며 노래가 끝이 났다.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분출한 관객들이 식지 않는 열기 속 기다란 수건을 흔들며 두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강렬한 엠파이렛의 무대가 끝났습니다. 이제 곧 투표를 마감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멘트로 시선을 끄는 동안 프로듀서 디오와 엘리팀이 각각 무대로 올라왔다.
엘리가 엄지를 치켜올리며 무대를 내려가는 도웅과 바통 터치를 했다.
“고마워, 오늘 진짜 멋있었어.”
사이믹도 옆에서 고개를 꾸벅하고는 엘리의 뒤를 쫓아 무대 가운데로 갔다.
언뜻 보기에는 관객석에 엘리 & 사이믹팀을 상징하는 파란 수건이 많이 흩날리는 것 같았지만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가장 먼저 4등을 발표한 후, 카메라가 긴장한 세 후보들의 얼굴을 하나씩 비추었다.
“과연, 오늘 ‘잇츠 힙합’ 우승을 거머쥘 래퍼는 누가 될지, 우승상금 2억과 슈퍼카, 그리고 다음 앨범 제작 지원까지-.”
간절하게 두 손을 꼭 쥐고 또다시 이름 모를 신에게 중얼중얼 기도하는 로다, 그리고 입술을 꾹꾹 깨물고 있는 백설과 이삭.
멘트가 지나가는 동안 카메라가 관객석의 사파이어 멤버들을 비췄다.
그러다 다시 카메라가 세 명의 후보를 번갈아 비추다 마침내.
“축하드립니다. 엠파이렛!”
엠파이렛의 얼굴이 커다란 전광판을 가득 채우며 무대 양쪽에서 꽃가루가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프로듀서들이 엠파이렛을 얼싸안았고 엠파이렛은 본 중 가장 밝은 웃음을 띠며 소감을 읊었다.
“제게 기적을 선물해준 우리 프로듀서 엘리, 사이믹 형님 정말 감사드리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도웅 씨! 다음 주에 도웅 씨 새 앨범이 나온다고 하니까 여러분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도웅과 은율은 시끌벅적한 회식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자유분방한 래퍼들이 모여서 그런지 광란의 현장 그 자체였다.
사파이어 멤버들까지 얼굴을 비췄을 땐 남정네들의 환호성에 건물이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프로그램의 파급력 덕에 실시간 검색어는 이미 이곳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그곳엔 단연 도웅과 마은율, 심지어 잠깐 카메라에 비춘 사파이어의 이름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잠깐 종방의 기쁨을 즐기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도웅은 엠파이렛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우승 정말 축하해요, 엠파이렛 씨.”
“감사합니다. 도웅 씨 아니었으면 절대 우승은 못 했을 거에요.”
칭찬에 인색한 엠파이렛이었지만 도웅에게만큼은 이런 말들이 술술 나왔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인 도웅과 함께 무대에 선 것만으로 소원 하나는 이룬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대 이상이었지만.
근처에 있던 래퍼들도 술잔을 들어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샤라웃 도웅!”
“아까 노래할 때 개간지였어요.”
“감사합니다.”
상대 팀이었던 TAZO와 바이플도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손뼉을 쳐주었다.
그렇게 짧고 진하게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려던 때였다.
“잠까안!”
형광 머리의 미들이 저 끝에서부터 달려왔다.
언뜻 보면 테니스공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그의 형광 머리가 실제로 보고 싶다던 로다는 ‘우와, 진짜 형광색이네.’하며 그의 머리를 관찰했다.
“은율 씨, 저랑 같이 무대에 서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 지금부터 사파이어 노래 스트리밍 존나 할게요. 야, 빨리 사파이어 노래 스트리밍해, 새끼들아!”
미들이 래퍼들에게 허세를 부리며 소리치자마자 옆에서 사이믹의 꿀밤이 날아왔다.
“악!”
“숙녀를 앞에 두고 존나가 뭐냐, 존나가.”
도웅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따라온 엘리가 옆에서 큭큭거렸다.
그때 스트리밍이란 소리에 궁금해서 음원 차트를 훑던 래퍼 하나가 큰 소리로 얘기했다.
“뭐야? 근데 우리 노래 왜 음원차트에는 하나도 없지? 우리 이것밖에 안 돼?”
“야, 이 멍청아. 결승 곡 내일 점심에 공개잖아.”
“아아.”
조금 아둔해 보이는 덩치의 래퍼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갑자기 ‘어?’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두꺼운 손가락으로 사파이어를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본 사이믹이 미간을 찌푸렸다.
“넌 또 왜 여성분들한테 손가락질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덩치 큰 래퍼가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휴대폰 화면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 저분들 아니에요?”
‘뭔데 그래?’ 하며 화면에 시선을 옮긴 사이믹이 이내 ‘응?’하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주변 사람들의 궁금증이 그에게 모인 가운데, 사이믹이 말없이 휴대폰을 맨 앞에 서 있던 도웅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음원차트의 상단.
맨 꼭대기에 사파이어의 앨범 자켓 사진과 더불어, 도웅이 만든 노래 제목이 떡하니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