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일이 생각대로만 흘러가면.
놀란 도웅이 순간 굳어있자, 참을성 없는 래퍼 미들이 형광색 머리를 먼저 들이밀었다.
화면을 확인한 그는 ‘어?’ 하고 움찔하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다.
“뭐야아아아! 1위?!”
그의 놀란 손가락이 역시 사파이어를 향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래퍼들은 그 소리를 듣고 상체를 돌렸고,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사파이어 멤버들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쏠린 관심에 당황해 눈만 끔뻑거렸다.
도웅이 보고 있는 게 음원 차트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백설이 작은 소리로 ‘실검?’ 하고 중얼댔다.
“혹시 생방에서 우리 뭐 잘못했나?”
“그냥 열심히 응원한 것밖에 없는데···.”
생글생글 99번 웃다가도 1번 정색한 장면이 방송을 타면 욕을 먹는 게 연예인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 다 제치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할 정도라면 큰 사건이 분명했다.
그래서 멤버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걱정하고 있던 때였다.
도웅이 말없이 휴대폰을 그들 앞에 내밀었다.
그의 입에 옅은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보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살짝 안심한 여덟 개의 눈동자가 또렷하게 화면 앞에 맺혔다.
그 순간 헬륨을 주입하는 풍선처럼 점점 개방되는 눈코입.
이윽고 바람이 최대치로 들어간 풍선이 빵 터지듯, 로다가 가장 먼저 비명을 질렀다.
“으…으아악!”
“이거 우리 맞지??”
마은율이 백설과 이삭을 돌아보니 두 사람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했다.
“우와아!!”
마은율이 제 멤버들에게 점프하며 그들을 얼싸안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가운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으윽.”
“울지 마요, 좋은 날 왜 울어요.”
엘리가 나서서 멤버들을 위로해주니 마은율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드는데 그간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짠했다.
엠파이렛이 어느새 다가와 우승할 때 받았던 꽃다발 중 하나를 가장 심하게 울고 있는 로다에게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로다는 울음을 뚝 그치는 듯하더니 ‘분위기 망쳐서 죄송합니다.’ 하면서 또 눈물을 도륵 흘렸다.
래퍼들은 당황해서 두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1위 축하해요!”
**
형광 머리 미들이 위로해준답시고 마은율을 포옹하려다 사이믹에게 제지당하고, 사파이어는 연신 구십도 인사를 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휴대폰을 없앤 멤버들은 공용으로 보급받은 태블릿 PC에 머리를 모으고 음원차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은율 언니, 화면 캡처 했지?”
“응, 혹시 몰라서 10장도 넘게 했어.”
로다는 활짝 웃었다가 이내 다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변화무쌍한 표정이 꼭 롤러코스터 같았다.
“그런데 지금 몇 분이야?”
“53분.”
“···.”
멤버들 사이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이 기분을 오래 만끽하고 싶었지만 한 시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실시간 차트에서 순위가 곧 밀려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막내 로다가 급하게 옆에 두었던 꽃다발을 앞 좌석에 앉은 마은율에게 들이밀었다.
“언니! 이거 앞으로 전달해줘. 1위 일 때 빨리!”
“응? 아!”
뒤에서 쑥덕쑥덕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도웅의 얼굴 옆으로 꽃다발이 쑤욱 튀어나왔다.
“···?”
방심하고 있던 도웅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돌리자, 사파이어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축하는 너희가 받아야지?”
“선배님이 만드신 곡이 1위 한 거기도 하니까. 저희도 축하드리고 싶어요!”
그때 마은율이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선배님 아니었으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맞아요, 지금 1위일 때 빨리 받아 주세요오.”
뒤에서 멤버들이 성화를 보내는 통에 도웅이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오늘은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과거엔 준우승을 했던 엠파이렛이 우승을 했고,
이전엔 인연이 아니었던 사파이어 멤버들이 한데 모여 음원 1위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미래를 바꾼 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도웅의 음원이 1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자신의 운명이 바뀌는 것을 떠나 다른 사람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끼친 이 선명한 느낌.
도웅은 꽃다발을 코에 대고 힘껏 들이마시며, 뇌까지 찌르는 진한 향기로 말미암아 이 순간이 꿈이 아님을 확인했다.
걷잡을 수 없이 행복한 밤이었다.
**
반면 로다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한 시간마다 음원 차트 새로 고침을 하느라고.
매시간 1위에 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캡처 하느라고.
“제발 1시간만. 1시간만 더어···.”
마음 같아선 지금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꼬박 12시간은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스케줄을 나가 샐러드로 주린 배를 채우던 로다가 차분하게 숟가락을 내려놨다.
마치 해탈한 듯 줄곧 차지하고 있던 태블릿까지.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했어.”
“···왜 그래?”
한 몸처럼 지니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는 걸 의아하게 여긴 매니저가 화면을 바라보니 사파이어의 노래가 2위로 밀려나 있었다.
입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1위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 1. 다 부셔 _ 엠파이렛 (Feat. 남도웅)
‘잇츠 힙합’의 음원이 풀림과 동시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온 것.
“하하, 여러모로 레전드네.”
1위는 도웅이 피처링한 노래, 2위는 도웅이 프로듀싱한 노래라니.
보고 있으면서도 기가 막힌 지 매니저가 웃음을 흘렸다.
도웅 역시 난감하긴 했지만, 애초에 ‘잇츠 힙합’의 화제성 덕을 볼 생각을 했을 때, 예상 범위에 있던 일이었다.
어차피 이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아니었다면 사파이어의 1위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며칠 후.
“사파이어 음방 순위는 어떻게 됐대요?”
“오늘 1위 후보라던데, 사무실 가서 보시겠습니까?”
심정남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음악 방송마다 순위를 집계하는 방식이 상이했다.
그런데 운 좋게 어찌어찌 사파이어가 1위 후보까지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사파이어가 음악 방송 1위 후보로 설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
도웅은 한창 안무 연습을 하다 그를 따라 사무실로 올라갔다.
퇴근 시간이 지나 한적한 사무실엔 야근하고 있던 몇몇 직원들이 이미 TV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어, 도웅 씨 왔어요?”
“네, 저도 순위 좀 보고 싶어서요.”
몇 안 되는 직원들이었지만 그들이 홍해처럼 가운데 자리를 도웅에게 갈라주었다.
운 좋게 야근하던 이나래 과장은 그 틈에 도웅의 옆으로 이동했다.
‘횡재했다!’
오늘따라 피곤해서 일찍 퇴근하고 싶었는데.
도웅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피곤함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화면에는 마침 사파이어의 무대가 막 펼쳐지고 있었다.
멤버들은 도웅이 만든 음악에 맞춰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고 있었다.
1위 후보이기에 들어찬 자신감과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
그 사이에서 멤버들의 옷자락이 나풀나풀 환상을 그렸다.
“정말 봐도 봐도 이쁘다.”
“이번 타이틀 진짜 걸작이에요.”
옆에 프로듀싱 당사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도 100%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의 소리였다.
불꽃이 아름답게 퍼져 여운을 남기듯, 도웅이 만든 동작으로 무대가 끝났다.
엔딩 컷에 걸린 것은 팀의 비주얼인 백설이었다.
그녀가 아련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숨이 차는지 어깨를 조금씩 들썩였다.
옆에 있는 직원 중에 누군가 ‘이야.’하는 탄성을 내뱉었고 곧바로 다른 1위 후보인 여성 듀오의 무대가 이어졌다.
막강한 가창력과 뛰어난 외모로 2주째 1위를 하고 있는 스테이였다.
마지막 무대까지 끝난 뒤, 순위 발표를 위해 가수들이 MC들의 뒤에 나란히 서는 동안 직원들이 소곤거렸다.
“···될까?”
“이 방송은 집계 방식이 특이해서 끝까지 봐야 알아.”
“스테이가 3주 연속 1위 후보라서 이제 내려갈 때 됐을걸?”
사실 사파이어가 1위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경이로운 일이었기만, 직원들은 최대한 긍정 회로를 돌렸다.
게다가 진짜 상황이 노려볼 만도 했으니까.
“아휴, 생방송이라 더 간 떨려 죽겠네.”
직원 하나가 팔뚝을 쓸어내리는 동안, 화면에 후보별로 분할된 점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상을 쓰고 점수판을 노려보던 직원들은, 점수 계산에 실패하고 총합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결과는.
-축하드립니다! 10월 첫째 주 1위는 사파이어입니다!
화면 안에 폭죽이 터지는 동안 정신을 차린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방방 뛰었다.
사파이어는 그간 열심히 해도 뜨지 않는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화면 속 멤버들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있었다.
그때 강태진이 있는 대표실에서 커다랗게 ‘예스!!!’ 소리가 울려 퍼져 몇몇은 기쁘게 웃음을 흘렸다.
화면 안의 사파이어는 꽃다발과 트로피를 전달받으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얼떨떨해하다가, 로다를 선두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눈물을 꾹 참은 마은율이 간신히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우선 저희 노래를 들어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리고, 저희 판타스타 강 대표님, 그리고 저희를 1위까지 이끌어주신 DW& 프로듀서님께 감사드리고, 매일 고생하는 우리 매니저 오빠, 그리고-.”
그래도 1위 후보란 얘길 듣고 연습은 했는지, 울먹이면서도 꿋꿋이 감사 인사는 다 했더랬다.
방송이 끝나자 개운하게 TV를 끄고 돌아서던 때 직원 중 누군가 말했다.
“여기서 릴레이로 도웅 씨가 1등 하면 딱이겠네!”
“그럼 올해 연말은 완전 우리 거 되는거지이!”
다음 주면 도웅의 컴백이었다.
이제 도웅이 1위 하는 건 직원들 사이엔 당연한 기대라고 할까?
하지만.
항상 일이 생각대로만 흘러가면 참 좋을 텐데.
하필 이 시점에 참으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알게 됐다.
**
컴백 5일 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카운트 다운만 남은 시점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채아 선배에게서 톡이 왔다.
-오늘 ‘한 짝해’ 모이는데 시간 돼요? 임현백 선생님이 도웅 씨 꼭 보고 싶으시대요.
도웅은 컴백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얼굴이라도 비출 요량으로 가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술에는 영향을 안 받는 타입에다 그간 쌓인 긴장을 풀어줄 필요도 있었으니까.
“이야아! 남 배우. 그동안 나 안 보고 싶었냐?”
“하하, 보고 싶었죠.”
전에 만났던 그 고깃집의 독방에 들어가니 임현백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미 한 잔씩 걸쳤는지 멤버들의 얼굴이 불콰했다.
얼마나 도웅이 뮤지컬을 잘했는지 임현백이 한참 자랑을 늘어놓다가, 살짝 술기운이 오른 채아가 기분 좋게 입을 뗐다.
“흐흣, 선배님들 그거 아세요?”
“···뭘?”
“제가 가장 공들이던 프로젝트가 며칠 있다가 런칭돼요.”
그녀가 술잔을 든 채로 공중에 콕콕 손가락을 찍었다.
“이름하여 M.A.X 프로젝트.”
“···!”
다른 이들은 ‘무슨 소리야?’하고 알아듣지 못했지만 도웅은 바로 알았다.
2년 전 스페셜K스타 방종 직후 채아가 도웅에게 제안했던 바로 그 프로젝트.
데뷔와 동시에 초 히트를 치게 되는 미앤 앤터의 야심작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런칭이 조금 늦었네?’
도웅이 알던 것보다 데뷔 시기가 늦춰졌긴 한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 런칭이에요?”
도웅이 조용히 묻자 채아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거 극비사항인데. 아니지, 내일부터 티저 나갈 거니까.”
그녀가 손바닥을 쫙 펴서 도웅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5일 후.”
“···.”
이런, 하필···.
사람을 심란하게 만든 지도 모르고 태연히 고기를 집어먹던 채아가 머리를 쓸어올리더니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참, 그러고 보니 도웅 씨도 컴백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잇츠 힙합’ 우승 소감에서 도웅 씨 이번 주에 컴백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눈을 동그랗게 뜬 채아에게 도웅은 덤덤한투로 말했다.
“정확히는, 5일 후에요.”
“큽.”
순간 사레가 들렀는지, 채아가 가슴팍을 치다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도웅을 천천히 응시했다.
“왜 하필···.”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그거야말로 도웅이 하고 싶은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