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잠을 깨우는 커다란 함성(수정)
“우와아, 해외 공연이다! 해외 공연!”
해외 콘서트는 현재 활동시기가 걸쳐있는 가수 중, 대중적인 인기가 두드러지는 이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총 일곱 팀이 동행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포함된 사파이어 멤버들이 한껏 들뜬 상태로 짐을 쌌다.
방금 스케줄을 다녀온 상태라 녹초가 되었을 법도 한데, 아직도 눈빛이 초롱초롱한 로다가 거의 제 몸집만 한 트렁크에 짐을 욱여넣으며 말했다.
“언니, 나 베트남 여행 처음 가봐.”
“…여행이 아니고 콘서트야.”
“거기 가면 시장도 가보고 싶고, 쌀국수 맛집도 가고 싶어.”
“아마 자유시간은 없을 텐데···. 그리고 로다야, 짐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누가 보면 이민 가는 줄로 착각할 법한 크기의 캐리어 덕에 이삭이 조심스레 얘기했지만 로다는 너무 들떠서 그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참, 언니. 나랑 꼭 반미도 먹어보자.”
“그게 뭔데?”
“바게트 사이에 고기랑 채소를 넣은 베트남식 샌드위치래! 맛있겠지? 그치?”
로다가 생각만으로 군침을 흘리는데 잠시 나갔다 들어온 매니저가 로다의 짐을 보고는 기겁했다.
“로다야, 짐이 너무 많은 것 아냐? 기내용으로 싸, 기내용으로.”
“드라이기도 챙겨야 하고, 이불도 챙겨야 하고···.”
“드라이기는 스타일리스트들이 챙길 거고, 이불은 왜 챙겨?”
“이 이불이 편해서 잠이 잘 온단 말이에요.”
로다가 누더기 같은 핑크 이불을 손에 꼭 쥐었다.
매니저가 단호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러면 공항에서 짐 찾느라 너무 오래 걸려서 안 돼.”
매니저가 로다에게 기내용 사이즈의 캐리어를 들이밀었다.
로다는 ‘칫’하고 들리지 않게 불평한 뒤 심사숙고해서 선별한 물건만 캐리어에 담기 시작했다.
“내일 스케줄 끝나고 오후 비행기로 출발할 거고, 다음 날은 콘서트. 그리고 콘서트 마친 그날 밤 비행기 타고 돌아올 거니까 알아 둬.”
“헤에엑.”
“그리고 돌아와서 바로 음방 스케줄 가야 하니까 그것도 알아두고.”
“진짜 쌀국수 먹을 시간도 없겠네.”
쌀국수는커녕 현지 가게 의자에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어 보였다.
때문에 로다가 급격하게 시무룩해졌다.
**
다음날, 도웅이 검정 승합차에서 내리자마자 셔터 세례가 쏟아졌다.
기자들 외에도 개인 카메라나 휴대폰을 들고 있는 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단골 기삿거리로 등장하는 공항 직찍.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연예인들의 화젯거리를 양산하는 창구 중 하나였다.
도웅은 스타일리스트가 골라준 살짝 도톰한 카디건을 걸치고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뒤이어 따라 나온 신세인이 히피를 떠올리는 평소의 복장대로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팔목에서 여러 개의 팔찌가 부딪히며 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좋네, 이렇게 배웅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신세인이 간만의 나들이에 상쾌한 바람을 들이마시던 때, 반대편 무리에 있던 기자 하나가 불쑥 소리쳤다.
“남도웅 씨, 사파이어의 프로듀서 DW&에 대해 아십니까? 아니면 본인과 관련이 있습니까?”
인터넷상에 한창 불타오르고 있는 떡밥이라 뭔가 얻어볼까 하고 혈안인 것이었다.
하지만 도웅은 그저 아무 말없이 미소 지을 뿐이었고, 매니저 심정남의 제지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인천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미리 도착한 연예인과 스태프들이 모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도웅의 옆에 신세인이 함께여서 그런지, 다들 깍듯이 인사했다.
체크인 라인 안쪽으론 다른 이들이 접근할 수 없어서 팬과 기자들이 최대한 줌을 당겨 본진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특히 기자들은 교묘하게 M.A.X와 도웅을 한 앵글에 담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라도 잘만 엮어서 기사를 내면 조회 수를 보장할 수 있을 테니.
뒤이어 사파이어와, 윤정후가 속한 뉴보이즈까지 도착했다.
가수들이 보안검색대 안쪽으로 들어가자 팬들이 아쉬움에 거의 비명을 내질렀다.
-M.A.X!!! 잘 갔다와아!!!
-도웅아! 아프지 마!!
도웅의 팬도 상당했지만, M.A.X는 갓 데뷔한 신인 축에 속했는데 웬만한 선배들보다 팬이 많은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살짝 느껴지는 부러움의 시선들. M.A.X 멤버들은 손을 흔들며 미소짓고 있었지만, 신인 특유의 경직된 몸짓이 느껴졌다.
게이트를 통과해 보안 검색대에 이르러서야 조금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든 일행이 검색대를 통과한 뒤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게이트 앞에서 보딩 타임 10분 전까지 모이겠습니다. 그때까진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돼요.”
인솔 스태프의 멘트를 끝으로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사파이어 멤버들은 뭉쳐서 가게들을 구경했고, 도웅은 따로 면세점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도웅의 어깨를 툭 치려고 해서 반사적으로 심정남이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잡힌 쪽이 작은 비명을 토했다.
“아, 아아.”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그만.”
심정남이 상대를 확인하고 팔목을 놓자 그가 손목을 탈탈 털었다.
노란 머리의 그는 도웅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뉴보이즈의 멤버인 윤정후였다.
“매니저분은 어디 가시고 혼자 계십니까.”
“아, 저는 혼자 다녀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 삼촌이 대표라.”
‘아, 그랬지.’
도웅은 학생 때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
그 시각 윤정후의 삼촌이자 핫스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윤태상은 인사과 직원과 내선전화로 얘기하는 중이었다.
“뭐? 판타스타 소속이었던 작곡가가 직접 찾아왔다고?”
-네. 이력만 보면 꽤 화려합니다. 이건 저희가 검증을 한 다음에···.
“아냐, 아냐. 일단 올려보내.”
윤태상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툭 끊었다.
윤태상의 회사는 시스템 없이 그의 즉흥적인 선택과 판단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편이었다.
“판타스타라···.”
소싯적 강태진이 잘나가던 아이돌 B.E.A.T일 때, 언제나 강제로 비교되는 T.E.N이라는 보이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윤태진은 T.E.N의 메인 댄서였다.
언제나 B.E.A.T를 돋보여줄 도구처럼 쓰였던 T.E.N.
하필 아이돌 활동 이후 엔터테인먼트를 차린 것까지 강태진과 행보가 비슷해, 윤태진은 언제나 업계에서 그와 비교를 당해왔다.
사파이어가 핫 스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뉴보이즈보다 뒤떨어지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얼마전에 뒤집혀버렸으니···. 윤 대표의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어쩌면 쓸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잠시 후 빼빼 마르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인상의 남자가 쭈뼛대며 대표실로 들어왔다.
윤태상은 그의 이력이 적힌 서류를 읽어보며 입을 뗐다.
“판타스타에서의 이력이 꽤 화려하네요?”
그의 앞에 선 남자는 판타스타에서 얼마 전 쫓겨난 작곡가 옹석이었다.
옹석은 이력서를 허위로 작성해 여러 곳에 뿌렸는데 이곳 한 곳이 걸려든 것이었다.
그는 들킬까 봐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변태처럼 웃음을 삐죽 참았다.
윤태상은 사실 그의 이력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업계에서 언뜻 들었던 소스를 가지고 조심히 옹석을 떠보았다.
“얼마 전에 판타스타에서 표절 시비가 있었다던데. 혹시 아는 거 있나?”
옹석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대표가 제대로 알지 못함을 캐치하고 말을 꾸몄다. 벼랑 끝에 몰리니 못할 게 없었다.
“사실··· 제가··· 그··· 당사자···입니다.”
“뭐?”
윤 대표가 순간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옹석은 사지가 벌벌 떨리는 것 같았지만 극한의 힘을 발휘해 말을 쥐어짰다.
“사파이어 타이틀···을 두고 공모까지 올라간 곡이··· 억울하게 표절로···몰려서 계약 해지···당했으니까요.”
“그럼 사파이어 이번 타이틀곡이 표절이란 얘기야?”
“네···. 회사 입장에선 저보다··· 남도웅···씨가 중요했을 테니 이해···합니다.”
이게 웬일인가. 사파이어에게 1위를 선사한 그 곡.
자신을 배아프게 했던 곡이 표절 시비가 있었다니.
예상치 못한 기밀에 윤 대표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이게 사실일까, 아닐까.’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걸 잘만 이용하면 판타스타가 휘청이도록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사파이어를 표절돌로 못 박아서 핫스톤의 걸그룹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않을까하는 계산만이 머릿속에서 팽팽 돌아갔다.
모든 판단이 끝난 그가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믿을만한 기자 하나를 연결해줄 테니까. 이 얘기좀 자세히 해줄 수 있을까?”
“···예?”
옹석이 당황했고, 옆에서 그 얘기를 듣던 인사과 직원도 당황했다.
“억울함은 풀고 가야하지 않겠어? 이게 소명이 안 되면 우리도 표절 작곡가를 들였단 오해를 살수도 있을텐데.”
회사에 들어오고 싶으면 행동을 보이라는 은근한 압박이었다.
‘어차피 기사는 익명…으로 나갈테고, 난··· 더이상 잃을게··· 없어.’
옹석이 침을 꿀떡 삼키며 인터뷰를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표가 호탕하게 웃으며 당장 기자를 불러들였고 옹석은 인터뷰를 하기위에 자리를 비웠다.
그제야 인사과 직원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대표님, 저 작곡가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인지 일단 확인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면 논란이 꽤 커질텐데···.”
“논란이 커질 일이니까 사실확인을 안 하는거야.”
“그러다 나중에 저희한테 불똥이라도 튀면 수습이 힘들겁니다.”
직원이 말꼬리를 흐리자 윤 대표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한테 불통이 왜 튀나? 저 작자가 다 알아서 한 일인데. 우린 모르는 일이야.”
“그러면 채용 건은···.”
직원이 말꼬리를 흐리자 윤 대표가 손뼉까지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하하하, 참 웃기는구만. 내가 언제 저자를 고용하겠다고 한 적이 있나?”
**
윤정후가 도웅에게 바짝 붙어 시시콜콜한 주제로 말을 걸기 시작하자 심정남은 눈치껏 몇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쫓았다.
“어떻게 해외 콘서트를 우리 셋 다 가게 됐네. 우리 수학여행도 같이 못 갔었는데.”
“···셋?”
“너랑 나, 그리고 마은율도 있잖아.”
도웅이 적당히 상대해주는 동안 그가 저 멀리 정신이 팔려있는 사파이어 방향으로 턱짓했다.
윤정후는 문득 속으로 쓴맛을 삼켰다. 그나마 마은율보다는 잘나가고 있단 사실이 위안이었는데 얼마 전 그것마저도 사파이어가 1위를 하면서 뒤집혀버렸으니까.
‘도대체 판타스타는 뭔데 이렇게 잘 풀리는 거야.’
생각해보니 배가 아팠던 윤정후는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면서 심정남과 거리가 벌어진 것을 살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넌 하필 운 나쁘게 M.A.X랑 같이 컴백을 했냐.”
두 사람은 서로의 운을 걱정해 줄 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윤정후가 이런 얘길 꺼낸 의도는 그의 다음 말에서 명확해졌다.
“솔직히 아무리 너라도 대형 남돌은 이기기 힘들잖아. 지금은 박빙이긴 한데 아무래도 조금 있으면 밀릴텐데.”
‘걱정하는 척 속을 긁겠다 이거지.’
도웅이 보기에 윤정후는 고등학생 때와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유치하기는.
도웅이 그저 픽 웃음 짓자 윤정후가 열이 받는지 눈썹을 움찔했다. 이렇게라도 아픈 배를 좀 달래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래서 더 강수를 놓으려는데 옆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의문문이 들려왔다.
“도웅이가 뭐가 힘들어?”
한 손에 유기농 빵을 들고 우물거리고 있는 신세인이었다.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기세에 눌린 윤정후가 움찔 하더니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웬만해서 누구한테 쪼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범상치 않은 기가.
“아, 아니 그게···.”
“연예계 생활이 아주 많이 힘들지?”
신세인이 다짜고짜 윤정후의 어깨에 한쪽 팔을 둘렀다.
그리고 다정한 듯 날이 선 음성으로 그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 힘든 연예계 생활 우리 도웅이가 얼마나 잘 해내고 있니. 네가 봤을 땐 어때, 대단하지?”
“아, 예···.”
윤정후가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윤정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걷다 보니 금방 탑승구 앞에 도착했다.
윤정후는 멤버들을 향해 ‘얘들아, 와있었네.’ 하며 어색하게 그쪽으로 도망쳤다.
스피커를 통해 비즈니스 클래스의 탑승 준비를 도와주겠다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온통 모여있던 사람 중에 소수만이 탑승구 쪽으로 향했다.
가수 중에는 단 세 그룹만 탑승구 앞에 줄을 섰는데 그중에 도웅이 끼어있었다.
윤정후는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가다 자신의 매니저 팔에 가로막혔다.
“정후야, 우린 아직 순서가 아니야.”
“응?”
가만보니 자신의 티켓에 찍혀 있는 자리는 이코노미석이었다.
‘이씨.’
도웅은 그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여유롭게 씩 웃어주고는 비즈니스 석에 자리 잡았다.
푹신한 쿠션에 널찍한 의자.
굳이 상대하지 않아도 이게 바로 윤정후과 도웅의 차이였다.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하고, 대부분의 가수들은 좌석이 어떻든 금방 곯아떨어졌다.
이동하는 틈틈이 잠을 자 두는 게 활동기 가수들의 중요한 생존법이었으니까.
**
우우우우웅-.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했고 아래 조그맣게 보이던 불빛과 건물들이 점점 커다래졌다.
베트남 땅에 도착한 것이다.
비행기를 탈 때보다 살짝 올라간 기온에 열이 많은 이들은 겉옷을 벗어 던졌다.
가수들이 비몽사몽한 채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드디어 입국장 문을 나섰을 때였다.
-꺄아아아아악!!!
잠을 깨우는 커다란 함성에 도웅은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여러 소음이 섞여 귀가 윙윙 울렸는데, 잘 들어보니 많은 이들이 M.A.X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갓 데뷔했는데 어떻게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아?’
가수들이 역시 대형돌의 위엄을 체감하던 때, 귓가에 다른 소리도 점차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남도웅’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웅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인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이름을 어색한 발음으로 외치는 베트남 현지 팬들, 그리고 정성을 담아 써넣은 한국어 플래카드까지.
그제야 도웅을 환영하는 이들의 외침이 M.A.X를 향한 비명을 뚫고 정확히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