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절대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장벽을.
“이동하겠습니다.”
비명을 내지르는 베트남 팬들 사이를, 현지 경호원들이 홍해 가르듯 뚫어 길을 만들었다.
비즈니스석에 동승했던 비교적 연차가 있는 아이돌과 솔로 가수는 여유 있게 양옆으로 손을 흔들며 그들을 따라 나갔다.
도웅과 신세인도 그다음 순서를 쫓았다.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현지 경호원들이 서로의 팔을 잡고 띠처럼 만들어 가수들을 보호했다.
중간쯤까지 걸었을 때 가까이 다가오는 팬들의 힘에 밀려 경호원들이 휘청대는 것이 보였다.
그 정도로 많은 인파였다.
‘와, 신기하다.’
도웅은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타지의 팬들이 신기했다.
그래서 얼떨떨하게 그 혼돈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M.A.X가 나오는 동안 흥분한 팬들의 힘에 밀려 경호원들이 전체적으로 휘청거린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차 안에 탑승했다.
스르륵, 탁.
도웅과 신세인이 탄 승합차에 심정남이 무게를 실어서 문을 닫았다.
차가 출발하자 이국적인 가로수와 표지판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우, 차 문 부서지겠어. 그나저나 도웅이 여기서도 인기가 대단하네?”
“하하, ‘비밀스러운 사랑’이 여기서 대박 나면서 도웅 씨 OST가 엄청 인기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네요.”
심정남이 답하고는 허허 웃으며 로밍 설정을 켰다.
그와 동시에 그의 전화가 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음? 잠시만요. 아 예, 무슨 일이십니까. 저희는 방금 잘 도착해서-.”
회사 직원에게 보고하듯 말하던 심정남의 얼굴은 잠시 후 못 볼 것을 본 마냥 대번에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전화기를 귀에서 뗀 심정남이 서둘러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실시간 검색어와 기사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도웅의 이름.
「[단독]사파이어의 ‘Fantastic’ 표절 시비 있었다. 업계 관계자 인터뷰.」
「[단독]베일에 싸인 프로듀서 DW&. 남도웅이 맞았다.」
「[단독]가수 N군의 수상한 표절 의혹.」
심정남이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확하진 않은데 내용 봐선 작곡가 옹석이 퍼트린 것 같아요. 이 사람 이제 무서울 게 없나 봐요. 자기가 표절한 걸 도웅 씨한테 다 뒤집어씌웠어요.
“참 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확실한 증거는 다 준비해 놨으니까요. 이거 정리되는 대로 뜨거운 맛 좀 보여줘야겠네요.
“알겠습니다. 고생 좀 해주십쇼.”
증거만 확실하다면야 정리는 문제없었다.
심정남이 여론을 살피기 위해 기사 댓글을 쭉 읽었다.
도웅에게 실망이라느니, 어쩐지 너무 잘나가는 게 수상했느니 하는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흠···.”
심정남은 못지않게 중요한 팬들의 여론을 체크하고자 팬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다행히 갑론을박하는 와중에도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자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었다.
심정남이 현 상황을 도웅에게 간략히 설명하고 나서 신세인이 분개했고, 도웅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반응했다.
심정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네요. 다들 너무 자극을 좋아하지 말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글을···.”
“이 바닥이 그렇지 뭐.”
신세인이 혀를 차며 기사를 훑는 동안, 도웅은 오늘 내내 음원차트 2위에 머물러있는 자신의 곡을 보며 생각했다.
‘실검 1위란 건 많은 사람이 나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는 뜻일 텐데. 이거 어쩌면···.’
“형, 반박 기사는 언제쯤 올라가요?”
“아마 한두 시간 내로 올라갈 겁니다.”
도웅은 잠시 생각하다가 모험을 해볼 생각으로 입을 뗐다.
“그럼 혹시 반박 기사 내일 아침으로 미룰 수 있을까요?”
“예?”
“기왕 이 상황을 조금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요.”
**
다음날 새벽 동이 틀쯤 가수들은 경기장에 세팅된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겪을 수 있는 베트남은, 이 차창 밖으로 보는 게 전부였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이국적인 건물들.
가끔씩 보이는 시장 골목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콘서트장에 도착했다.
베트남 현지 스태프들과 마주치면 베트남 말로 인사하면서 도웅은 칸막이로 나뉘어있는 대기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심정남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확인하다 갑자기 ‘헉’소리를 냈다.
“왜요, 또 무슨 일 있어요?”
도웅이 천천히 다가가니 그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다행히 도웅 씨 음원이 다시 1위로 올라갔지 말입니다. 게다가 사파이어 노래까지 다시 역주행 중이고요.”
어제는 2위에서 꿈쩍하지 않아서 노심초사하고 있던 차인데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도웅은 그의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곤 씩 웃었다.
“그래요?”
반박 기사를 반나절 미룬 건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그만큼 커다란 수확이 있던 것이다.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1위의 탈환.
상황은 다시 역전됐다.
“이제 반박 기사만 나면 되겠네요.”
곧바로 판타스타에서 준비한 확실한 증거들이 인터넷상에 퍼져나갔다.
도웅의 공모 지원 시간이 옹석보다 빨랐다는 데이터 기록.
그리고 옹석이 도웅의 작업실 문 가까이 귀를 대고 있는 CCTV 영상까지.
그저 분탕질을 더 즐기고 싶어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더 이상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자료 덕에 큰 여론이 부침개 뒤집듯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덕분에 도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한 번 더 불타올랐다.
**
– 그것 봐라. 중립 기어 박으랬지? 니넨 기레기한테 또 놀아난 거. ^오^
– CCTV 봤음? ㅋㅋㅋㅋㅋ 작곡가 옹석인가 뭔가 문에 귀대고 훔쳐 듣는 거 봐랔ㅋㅋㅋㅋㅋ
ㄴ 추하다 옹석아
ㄴ 옹하다 추석아
– ㅅㅂ 열 받네. 옹석 저 새끼 뭐냐?
ㄴ 누가 신상 좀.
ㄴ ㅁㅊ 바로 타겟 바꾸는 거 봐라 ㅋㅋㅋㅋㅋㅋㅋ
ㄴ 안 그럼 남도웅이 억울하자나 ㅋㅋㅋㅋㅋㅋ 저런 애들 다신 작곡 못 하게 해야 됨
ㄴ 어차피 판타스타에서 고소한다니까 팝콘이나 사놔야짘ㅋㅋ
– 이번 일로 남은 것 : 남도웅은 진짜 사기캐가 맞았다.
자극을 쫓는 이들의 타깃이 옹석에게로 화풀이하듯 무섭게 불어났다.
옹석은 방구석에 처박혀 불도 켜지 않은 채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연락을 주겠다던 핫스톤의 대표는 기사가 나간 이후로 줄창 바쁘다는 핑계뿐이었다.
탁.
옹석이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뉴스까지 탄 데다 인터넷에 신상이 다 까발려졌다.
이제 전 국민이 옹석을 알게 됐으니 작곡은 고사하고 인생이 종치게 생긴 상황이었다.
그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될 것 같아서, 윤 대표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빠져 옹석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 새끼··· 처음···부터 날 이용···할 생각이었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윤 대표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옹석의 눈이 기괴하게 빙글빙글 돌다가 어느 순간 딱 멈췄다.
“나 혼자···죽을 수는··· 없지.”
어차피 옹석은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분노로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면서 SNS에 글을 하나 올렸다.
물론 늘 그랬듯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짓을 섞어서.
-제가 남도웅 씨의 곡을 표절한 옹석입니다. 판타스타에서 쫓겨난 이후 저는 조용히 제 삶을 살고자 했고요. 그러나 핫스톤의 윤태상 대표가 제게 거짓 인터뷰를 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러면 채용을 고려해보겠다고요···. (중략)
이유가 어찌 됐든 남도웅 씨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말은 더듬어도 글은 유려하게 쓰는 옹석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또 시끄럽게 달라붙어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이 커지니 여러 커뮤니티에 퍼지고 기사가 뜨기 시작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옹석 표절 인정. 모두 핫스톤 윤태상이 시킨 일이었다.」
「윤태상의 일그러진 욕망. 모두 강태진과의 라이벌 의식 때문?」
옹석과의 대화는 증거 없이 말로만 이뤄진 일들이라 증명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
사실 무근이라는 기사는 냈지만 사람들은 그저 자극만을 쫓았다.
핫스톤의 대표 윤태상은 분노하며 책상 위의 서류들을 집어 던졌다.
그가 간과한 게 있다면 인생의 밑바닥에 있는 이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아 삼촌, 도대체 뭔데?! 우리까지 욕먹고 있잖아! 빨리 해결하라고!”
삼촌과 전화 통화를 마친 윤정후가 씩씩대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른 가수들이 도웅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이젠 윤정후의 눈치를 살폈다.
“아, 해외 콘서트 한번 순탄치 않네.”
“아무튼 저는 도웅 씨가 그런 거 아닌 줄 알았어요.”
선배 가수들은 대기실 밖에서 불평을 쏟아놓다가 도웅에게 살갑게 얘기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이윽고 본무대에 올랐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만 개의 좌석을 채운 베트남 팬들의 함성이 후덥지근한 공기보다 더 뜨거웠다.
가수별로 지금까지의 히트곡 위주로 무대를 선보였는데, 도웅의 차례가 되자 함성이 남달랐다.
특히 현지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다는 OST를 노래할 땐, 팬들이 떼창까지 했더랬다.
언어는 다르지만, 음악으로 통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묘한 느낌.
수천 개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는 그 순간에 도웅은 소름까지 돋았다.
노래가 끝난 뒤 준비해온 베트남어로 감사 인사를 하자 팬들이 더욱 열광했다.
타지에서의 무대는 아주 신선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화려한 폭죽이 터지며 무대가 끝난 직후, 모든 가수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 함께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도웅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휴대폰을 뒤적였다.
음원차트에는 이상 없이 도웅의 노래가 1위에 알박기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 도웅의 사운드 클라우드까지 찾아내면서, DW&까지 연결된 그의 커리어를 찬양하는 글들이 늘어났다.
-이거 봤음? 이번에 우승한 엠파이렛 3차 예선 비트도 남도웅이 만든 거 ㄷㄷㄷㄷ
-엠파이렛 본인도 몰랐다고 피셜 올라옴. 대박 아니냐?
-이 정도면 남도웅 익명을 거의 즐기는 수준인데?ㅋㅋㅋㅋㅋㅋ
-나 같으면 벌써 동네방네 자랑했을 건데.
-명성보단 음악이라는 거겠지.
ㄴ 그럴 듯 ㄷㄷ. 자신감 개간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성공적인 노이즈 마케팅이었다.
**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비몽사몽한 채로 입국한 일행들은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지만, 두 시간 뒤의 음악 방송 스케줄 때문에 다시 타 방송국에서 마주칠 예정이었다.
“그럼 조금 이따가 봬요~.”
간단히 씻고, 샵에 들르고 꾸벅 졸다가 도착한 방송국.
두 번의 리허설과 본무대를 프로답게 끝내고 나서 운명의 순위 발표 식이 다가왔다.
M.A.X와 남도웅.
여기서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래도 대형돌인 M.A.X가 이기지 않을까?’
‘아냐, 어제부터 도웅 선배 노래가 음원 순위는 계속 1위인데.’
‘진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정말 누가 이길지 모를, 막상막하의 대결이었다.
저마다 우승자를 점치던 중, 음악 방송의 1위 후보로 처음 오른 M.A.X는 아닌 척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후 MC의 긴장감 있는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10월 셋째 주 영광의 1위는···!”
도웅보다도 사파이어 멤버들이 긴장해 침을 꿀떡 삼켰다.
전광판에 집계가 멈추기가 무섭게 튀어나온 우승자의 이름.
“남도웅 씨! 축하드립니다!”
파앙.
가수들의 머리 위로 꽃가루가 터졌다.
순식간에 도웅의 품속으로 쏟아지는 꽃다발과 트로피.
M.A.X는 도웅에게 꾸벅 인사하며 그를 축하해주었고, 무대 앞에 서 있던 채아도 씁쓸하지만 손뼉을 쳐주었다.
신세인은 도웅에게 고생했단 의미로 살짝 포옹해주었고.
결국 대형 남돌을 이기고 1위를 거머쥔 이 순간, 그를 인정하지 않을 이는 없었다.
절대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장벽을 넘은, 대단한 가수.
앞으로 누구든 남도웅을 이기기는 쉽지 않겠다며, 가수들이 경의의 눈빛들을 보냈다.
잠시 후, 도웅은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앵콜곡을 불렀다.
그리고 행복한 그 순간, 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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