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역시, 천재들이야.
음악 방송에 각종 예능, 거기다 화보 촬영 그리고 CF까지.
도웅은 현재 연예계에서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판타스타는 돈독이 올라 아티스트를 노예처럼 굴리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는 것.
정말 필요한 스케줄 위주로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어쨌든 바쁜 건 매한가지였지만.
이젠 음악 방송 3주 차가 지나가서 계획한 방송 활동이 거의 끝나가는 중이라 앞으로는 행사나 CF 위주로 조금은 여유 있게 활동할 예정이었다.
도웅은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대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탁 트인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거기엔 심정남의 편안한 운전실력도 한몫했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가서 그냥 쉬시지 말입니다. 회의엔 제가 참여하고 내용은 알려드리면 될 텐데 말이죠.”
“그래도 전해 듣는 거랑 제가 직접 참여해서 듣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도웅은 웬만하면 회의에 꼭 참여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모처럼 스케줄이 일찍 끝난 오늘도 판타스타로 향하는 길이었다.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럼 가는 동안 눈 좀 붙이십시오.”
“네, 고마워요.”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도웅의 노래.
-이 노래 참 명곡이죠. 요즘 저도 가장 즐겨 듣는 노래인데···.
포근한 DJ의 목소리가 심정남이 볼륨을 줄이는 템포에 맞춰 스르르 잦아들었다.
**
그새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판타스타에 도착했다.
도웅은 회의 전까지 작업실에 가 있을 요량으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띵.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을 때, 정면에 한 남자가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고 있었다.
긴 옷소매로 눈을 비비며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작곡가 임지문이었다.
“지문 형.”
“어?”
그간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도웅이 눈앞에 있자, 그는 신기루를 만난 듯 한 번 더 눈을 비볐다.
“꿈인가?”
“저 맞아요.”
“뭐야, 네가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기에 있어!”
또 며칠 밤을 새웠는지 비몽사몽 하던 임지문이 그제야 펄쩍 뛰었다.
“오늘 스케줄 일찍 끝났거든요. 그나저나 형 나가던 길 아니었어요?”
도웅이 문이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자 임지문이 대뜸 도웅을 잡아끌었다.
“그럼 도웅아, 잠깐 시간 좀 되냐.”
“네, 회의 전 까지는요.”
“사람이 꼭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그럼 나 좀 살려줘.”
도웅은 절박해 보이는 임지문을 순순히 따라 그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커피잔과 컵라면으로 너저분한 가운데 피규어만 반짝반짝 광이 나고 있었다.
“형, 피규어가 형보다 깨끗하네요.”
“이것만 끝나고 씻으러 갈 테니까 한 번만 들어봐 줘.”
그가 도웅을 의식하고는 며칠 감지 않은 머리를 감추려 후드를 뒤집어썼다.
임지문의 작곡 수준은 과거 도웅이 알던 것보다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의 기준치도 높아졌기 때문에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형, 멜로디 좋은데 여기다 효과음을 같이 넣어보는 건 어때요? 예를 들면-.”
도웅이 몇 가지를 집어주자, 조언대로 프로그램을 만지작대던 임지문이 다시 노래를 들어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거.”
그는 흥분한 반응을 보이며 도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역시 넌 프로야.”
먹고 싶은 건 뭐든 말하라며 성화를 부리는 임지문에게 자판기 음료나 뽑아 달랬더니 그가 싱겁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책상 위에 흩뿌려져 있던 동전을 챙겼다.
그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1층에 새로 들어온 자판기로 향하는 동안,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던 사파이어 멤버들과 마주쳤다.
“남도웅 선배니임-!”
로다가 달려 나가다가 끼익 멈추고는 방방 뛰었다.
사파이어는 후속곡을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아 여전히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스케줄이 많아서 힘들지?”
“전혀요!! 이대로 열심히 해서 이번 골든뮤직 어워드에 가는 게 저희 소원이에요!”
“선배님이랑 같이요!”
“그거 올해부터 생중계도 한대요.”
사파이어 멤버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얘기했다.
한 해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대중음악을 선정하는 골든뮤직 어워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이 깊은 시상식이었다.
한동안 여러 잡음으로 중단되었다가 대대적으로 부활을 홍보하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밟을 레드카펫을 잠시 상상하던 와중 매니저가 큰소리로 사파이어를 불렀다.
“얘들아, 빨리 와. 지금 출발해야 해.”
“네, 가요! 선배님 안녕히 계세요!”
사파이어 멤버들이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정도로 격하게 인사하고는 쌩하고 사라졌다.
임지문에게 음료수를 얻어먹고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는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어, 도웅 씨! 여기 있었네요. 지금 회의하려는데 같이 가실까요?”
가을이 물씬 느껴지는 복장의 이나래 과장을 따라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니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모두 도웅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도웅의 이번 앨범 성적, 해외 반응 등을 브리핑하고 새로 들어온 예능이나 광고 같은 것을 논의했는데, 오늘의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안건은 그거였다.
‘연말 콘서트.’
도웅은 콘서트 준비 진행 상황을 들으면서 속으론 잠시 딴생각을 했다.
‘콘서트엔 내 노래가 듣고 싶은 사람들이 모일 테니까, 어쩌면 100%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이내 ‘그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하면서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
며칠 후 서울의 한 대학교 축제.
도웅은 광활한 캠퍼스의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대학생들의 열띤 응원을 받았다.
“우와아아악!!”
“남도웅!”
확실히 에너지가 넘치는 대학생들이라 그런지 반응도 상당히 격한 편이었다.
대학을 안 가기로 선택한 건 전혀 후회하지 않았지만 이런 자유와 열정이 넘치는 분위기를 잠시 즐기는 것은 좋았다.
무대가 끝난 후,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동안 따라붙은 극성팬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정남이 사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참, 방송국 PD 한 분이 여기로 오시기로 했습니다.”
“PD님이요?”
“네. 새로 준비하는 예능 프로 얘길 하던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다음 주쯤 뵙자고 하니 자기가 당장 도웅 씨 있는 데로 오겠다고···.”
순간 심정남이 주차장 앞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세련된 커트 머리의 인상 좋은 여성이 한 손엔 음료 선물세트 같은 것을 든 채로 뚜벅뚜벅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방금 먼발치서 도웅의 라이브를 들어보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웅을 캐스팅하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굳힌 구은정 PD였다.
“도웅 씨!”
다짜고짜 도웅의 이름을 부르며 직진해오는 그녀를 심정남이 잠시 경계했지만, 그녀는 자기가 JBET의 구은정 PD라고 소개했다.
간단한 통성명을 한 뒤, 세 사람이 도웅의 승합차에 탑승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성급히 말했다.
“도웅 씨 뭐 좋아하세요. 소고기? 돼지고기?”
“···네?”
“뭐든 식사하시면서 얘기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 저녁 드셨나?”
구은정 PD가 따발총처럼 얘기하며 운전석의 심정남을 돌아보았다.
PD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구는 건 처음이라 심정남도 당황한 눈치였다.
“···도웅 씨, 식사하시겠습니까?”
“아아-. 여기 옆 학교가 마침 제 전 남친 모교라 근처 맛집 많이 알아요.”
“···.”
“어머, 너무 과도한 정보에요? 괜찮아요, 이렇게 서로 알아가는 거죠.”
그녀는 도웅이 답하기도 전에 질문과 답을 동시에 하며 칸막이가 있는 돼지고깃집 주소를 불러주었다.
잠시 후 도착한 고깃집에서 심정남이 고기를 구울 자세를 잡자, 구은정 PD가 얼른 집게를 뺏었다.
“제가 할게요, 제가 고기를 기가 막히게 잘 굽거든요. 맛이 달라진다니까요?”
실제로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그게 원래 이 집이 맛있는 집인지, 구은정 PD가 잘 구워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맛있는 고기를 몇 젓가락 집어 먹고 마음이 조금 풍요로워졌을 때, 구은정 PD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온 서류를 내밀었다.
“제가 준비하고 있는 ‘씽 썸웨어’라는 프로그램인데, 한번 읽어보세요.”
‘아, 그 프로그램이구나.’
해외를 여행하면서 거리공연도 하는, 그런 프로그램.
타지에서 새로이 도전하는 가수들을 보며 시청하는 도웅도 가슴 벅참을 느꼈던 프로그램이었다.
도웅이 조용히 서류를 훑자 구은정 PD가 재빠르게 고기를 뒤집으면서 말했다.
“내용이 그렇다 보니 출연진을 가장 신경 써서 모시고 있거든요.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도 그거 때문이에요, 도웅 씨 모셔가려고.”
구은정이 도웅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아무리 성미 급한 그녀라도 오늘 뚝딱 계약을 성사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도웅이 마음을 돌릴 때까지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녀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오비탁을 설득하기 위해, 낚시와 등산까지 몇 주간 따라다닌 전적이 있었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도웅 씨한테만 살짝 말씀드리면, 출연진 중에 오비탁 씨랑 한이경 씨가···.”
구은정이 속삭이듯 말하며 초반부터 강수를 두는데, 얘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도웅이 입을 열었다.
“저는 꼭 해보고 싶어요.”
“나머지 한 명은··· 네?!”
구은정이 말을 하다 말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는 너무 좋아하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도웅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케줄이 가능한지만 검토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네. 편하실 때 아무 때나 연락 주세요. 주말도 괜찮고 새벽도 상관없어요.”
구은정이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며 얼른 적극적으로 답했다.
도웅은 음악계에서 마스터라 불릴만한 사람은 단순 노래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독보적인 음악적 색깔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씽 썸웨어’의 출연진은 그런 사람들이었으니.
그들과 함께 음악을 해 볼 기회.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
서울 어딘가에 첫 미팅 장소로 섭외한 지하 합주실에는, 카메라와 조명 세팅이 한창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한국에서 대체 불가한 여성 보컬로 평가받는 한이경이었다.
등장만으로 품위가 느껴지는 그녀가 스태프들과 살갑게 인사하는 동안 다른 출연진들이 속속 등장했다.
“우와! 선배님, 안녕하세요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제 몸집만 한 기타를 메고 온 아인이 방향마다 허리를 꺾으며 제작진에게도 깍듯이 인사했다.
그녀는 밴드 컨셉의 아이돌 멤버로, 음악계에서 천재 기타리스트라고 평가받는 이였다.
“안녕.”
다음으로 매우 심플한 인사가 들려왔다.
인사만큼 몹시 편안한 복장의 오비탁은 각종 악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서로 간단히 인사를 끝낸 출연진들이 구은정 PD에게 물었다.
“나머지 한 명은 누구예요?”
그러나 구은정은 살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한이경 씨부터 인터뷰 갈게요.”
“우리 이제 잡힌 물고기다, 이거죠?”
오비탁이 장난스럽게 얘기하자 구은정이 웃으며 한이경을 인터뷰 장소로 안내했다.
이후 순서대로 모든 출연진이 인터뷰를 했고, 딱 때맞춰 일부러 조금 늦게 부른 도웅이 계단을 내려왔다.
“아~!”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한이경이 놀란 음성을 냈다.
“남도웅 씨네~!”
“우앙! 남도웅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이돌인 아인을 빼고는 실제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다들 도웅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 그래도 관심 있게 보던 선후배가 한데 모이니 분위기가 살짝 묘해진 것은 덤이었다.
도웅의 인터뷰까지 끝난 후.
“그럼 해 볼까요?”
네 명의 뮤지션이 다짜고짜 음악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시에 쏟아졌던 소리가 몇 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맞아들어갔다.
덕분에 이들을 한데 모은 쾌감이 찌르르하게 구은정 PD의 등줄기에 흘렀다.
‘크, 역시 천재들이야.’
덕분에 이들을 모으느라 고생했던 기억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따로 준비해온 곡들을 맞춰보았는데 조율 자체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각 출연진도 서로의 실력에 놀라며 대체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준비한 곡의 수가 많다 보니 마지막 곡의 연습까지 끝났을 때는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출연진들이 뺨이 붉어진 채로 목을 축이는 동안 스태프들이 능숙하게 장비를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출연진들에게 아무 말이 없어서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들 대기하고 있었는데, 대충 정리가 끝나자마자 구은정 PD가 활기차게 소리쳤다.
“자, 이제 갑시다.”
“···어딜요?”
한이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구은정 PD의 입에서 뜻밖의 단어가 나왔다.
“광화문이요.”
“광화문은 갑자기 왜요? 아, 회식하러요?”
다들 이후 스케줄은 없던 터라 그러려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아직 VJ가 촬영 중인 게 수상했다.
그런데 역시나.
“버스킹 하러요.”
“네에?!”
출연진들이 화들짝 놀라자 한 컷이라도 놓칠세라 그 표정을 담아내는 캠코더들.
“떠나기 전에 실전 연습은 해봐야죠.”
역시 예능이란 호락호락한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