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7)
017. 나보다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야.
‘곧 시작이네.’
무대 위에 선 도웅은 크게 숨을 내쉬며 관중을 바라봤다.
이렇게 수많은 관중이 있는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와닿기보다는 오히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눈부신 조명 덕에 앞은 뿌옇게 보였고, 관중들은 실루엣으로만 느껴졌다.
도웅은 어스름 속에 짙은 푸른색의 하늘을 바라봤다.
‘연습 한 대로만 잘 하면 돼.’
속으로 후렴구의 멜로디를 되새겼다.
한창 떠들고 있는 관객들의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마은율 옆에 저 남자애 누구야?”
무대 가까이에 앉은 누군가 도웅을 발견하고 물었다.
“스케줄표에 남도웅이라고 쓰여있는데?”
“아, 맞아 윤정후랑 노래 대결에서 이겼다는 그 가수 지망생!”
“···. 걔가 저렇게 잘생겼다는 말은 못 들었었는데?”
아주 눈에 띄게 잘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흰 피부에 큰 키.
투박하던 안경이 걷히자 외적으로 반은 먹고 들어갔다.
훈내를 기가 막히게 맡은 여학생들,
그리고 잘생김이란 단어에 호기심이 동한 아이들이 하나 둘 무대 위로 시선을 모으기 시작했다.
“앗, 이제 메모리가 다 차버렸네.”
신문부 이채경은 카메라의 남은 용량을 확인했다.
종일 조한성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대고,
고화질로 공연 영상을 녹화한 덕에 메모리가 가득 찬 것이었다.
“괜찮아 이제 찍을 만한 건 다 찍었으니까.”
어차피 데이콘의 무대는 끝이 났고, 축제의 이모저모는 사진으로 충분히 남겨뒀던 터였다.
이채경은 축제 무대가 끝나자마자 학교 SNS에 올릴 조한성의 영상을 다시 한번 틀어보기로 했다.
그때 ‘훈훈함’, ’잘생김’이라는 단어들이 귀에 박혔다.
이채경은 소란스러운 관중들의 반응에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뭔데 다들 난리야?”
무대에 멀대같이 서있는 남자를 발견한 이채경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데이콘 오디션 봐놓고 거절했다는 걔?”
남도웅이란 이름을 들은 이채경은 단번에 그가 누군지를 알아챘다.
조한성이 노래 두 곡을 부른 것이 자신에게는 행운이었지만
저 애 때문에 한성이 마음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그래,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보자.”
시력이 나쁜 이채경은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 당겼다.
도웅의 낯짝을 한번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최대한 확대된 액정 화면 안에 도웅의 하관이 겨우 잡혔다.
그렇게 아래서부터 화면을 타고 올라가는 높은 콧대, 시원한 눈.
이내 불만이 한가득 담겨있던 이채경의 입안에 꿀꺽 침이 넘어갔다.
“···.”
잠시간 넋을 놓고 있던 이채경은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뭐 하는 거야. 데이콘 영상부터 확인해야지.”
이채경은 애써 도웅을 못 본체 하고 조한성의 두 번째 영상을 검토하기 위해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음악 선생은 데이콘의 훌륭한 무대 덕에 마음이 흡족한 상태였다.
이미 교장선생님이 ‘허허,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끼가 넘쳐요.’라며 주변 선생들에게 칭찬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마지막 무대만 잘하면 되는데···.”
왕사포 선생은 무대 위의 도웅을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발 남도웅이 은율의 노래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괜찮을 거야. 은율이가 있으니까.”
그때 누군가 음악 선생의 어깨를 두들겼다.
야밤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였다.
“누구···.”
외부인 출입이 허용된 날이라 당최 누구인지 감히 잡히지 않았다.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그 잘생김이 다 가려지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시죠?”
“무대 담당 선생님이시라던데 저기 좀 잠깐···”
남자는 인적이 드문 무대 뒤로 선생을 불러내 커다란 선글라스를 벗었다.
“아니 강태진 씨가 왜 여기···!”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이것 좀 마지막 무대에 써도 될까요?”
강태진은 옆에 놓인 대형 캐리어만 한 기계를 탕탕 쳤다.
급속도로 스모그를 만들어내는 최신형 드라이아이스 머신이었다.
예산 안에서 여러 효과를 쓰지 못한 것이 아쉬웠었는데 굴러들어온 효과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강태진이라니. 얼굴이 새빨개진 음악 선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
“괜찮을까요?”
한때 그룹 B.E.A.T의 팬이었던 음악선생님은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강태진이 무해한 미소를 날리며 다시 양해를 구했다.
음악 선생이 용기를 냈다.
“이걸 왜···. 혹시 마은율이 판타스타 연습생인가요?”
“아니요, 남도웅군을 서포트하고 싶어서요.”
“네에?!”
마은율도 아니고 남도웅이라니.
음악 선생은 강태진을 발견했을 때 보다 더욱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 여러분! 이제 마지막 공연만 남았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모두가 이분을 아실 거예요. 한제고의 보석! 빛나는 뮤즈! 마은율!”
-와아아아 아악! 예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자꾸 이분의 이름이 들려오더라고요. 한제고에 혜성처럼 떠오른 남자 남도웅! 이 둘이 듀엣 무대를 선보인다고 하는데요! 다들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커다란 박수소리가 운동장을 울렸다.
사회자의 텐션 높은 소개 덕에 관객들이 무대 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남도웅이란 인물에 대한 호기심 들이었다.
이제 은율이 전자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면 그대로 공연이 시작되는 상황.
그 순간 옆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솨—아악.
그와 동시에 잔잔하게 바닥에 깔리는 희뿌연 스모그.
‘피날레 무대라 따로 특수효과가 있나?’
도웅은 다시 한번 뮤즈의 클라스를 느끼며 마은율을 바라봤다.
정작 마은율의 시선은 스모그가 나오고 있는 방향을 향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때 스모그 기계 옆에 서있던 강태진이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더니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풋.”
그걸 발견한 마은율은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은율은 공연 준비를 위해 목을 두어 번 가다듬더니 표정이 돌변했다.
‘무대 위에서도 몰입력이 다르네.’
아이들이 낮게 떠드는 소리,
스모그 같은 변수와 주변의 소음.
그 안에서도 마은율은 순간적으로 제 본연의 감정을 끌어올렸다.
그때 마은율이 한번 눈짓하더니 키보드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렸다.
-♩♪♬
순수하면서 아련한 90년대 감성의 멜로디가 건반에 담겨 나왔다.
도웅이 생각하기에 마은율은 이런 한국적인 감성에 특화되어있었다.
이번 선곡은 다시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었다.
-♩한참 동안 널 기다려왔어, 나의 슬픔을 속여가면서.
연인을 눈물 속에 떠나보내고 후회하는 가삿말.
거기에 마은율의 청초한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마은율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그런 힘이 있었다.
듣는 이의 주의를 끌어당기는 힘.
앞선 공연으로 넘실대던 관객들의 파도가 완연히 잠잠해졌다.
순식간에 끝난 은율의 파트.
그녀는 잘 빚어 놓은 바통을 도웅에게 넘겨주었다.
-♩ 슬픈 눈동자 속의 내 모습,
그 감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도웅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져나갔다.
그러자 관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웅에게 옮겨붙었다.
도웅은 집중하기 위해 눈을 슬쩍 감았다.
곧바로 키를 오르는 높은 목소리.
이 곡은 남녀가 함께 부르는 듀엣곡이다 보니 키가 조금 높은 편이었다.
-♩ 언제까지—-, 여기있어—–.
하지만 도웅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트레이닝해온 두성을 이용해 능숙히 음을 끌어올렸다.
그 안에서도 넘실대는 아련한 감정은 은율과 연습하면서 습득한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도웅의 흡입력 있는 목소리가 관객들의 잡생각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잔잔한 키보드 멜로디와 도웅의 목소리.
가만히 앉아 노래할 뿐인데도 그 존재감은 거대했고 무대를 넘어 운동장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와··· 좋다.’
‘대단한 인물이 나타났다더니 그게 다 헛소문이 아니었네.’
‘노래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
도웅의 목소리에서 뿜어 나오는 밝은 빛이,
조한성이 흩뿌려놓은 어두운 광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순수한 감정의 결정체가 관객들의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음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소리가 날카롭게 뻗어나가갔다.
끊임없이 두 가지 발성법을 섞어 연습한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막 교문 밖을 나서던 로커 하인혁이 놀라 뒤를 돌았다.
“···..?”
선 굵은 두성 창법은 하인혁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데 방금 들었던 소리 어딘가 초창기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하인혁은 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두성을 저렇게 쓰는 사람이 또 있네.”
-♪나 그날을 기억해.
다시 치고 올라가는 도웅의 소리.
속은 날카롭지만 겉은 부드러운,
트레이닝한 발성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만든 정제된 날카로움이었다.
하인혁은 듣다 보니 확연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감정이나 끝음처리가 미숙해. 하지만···.’
그는 도웅의 소리를 분석하기 위해 더욱 예민하게 집중했다.
‘고음 발성만큼은 나보다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야.’
하인혁은 트레이닝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성대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를 몰랐다.
그렇기에 거친 두성이 인기를 끌며 성대를 혹사시키는 나날들이 지속됐다.
그 결과 성대 결절이란 사형 선고를 받았고,
더 이상 자신만의 느낌을 내지 못하게 된 하인혁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방황을 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느낌은 살리면서 저런 식으로 노래할 수 있다니···.’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감싸 쥔 도웅의 소리에서 하인혁은 희망을 발견했다.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더 이상 성대를 혹사시키지 않는 방법.
저런 방식이라면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방법이 있다면 나도!’
재활에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노래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웅의 목소리에서 퍼져 나온 희망의 불씨는 곧 하인혁의 의지를 뜨겁게 달구었다.
-♩ 이제 너를 볼 수 없지만, 나 너의 모든 걸 기억할게.
이윽고 도웅의 파트가 끝나고,
도웅의 목소리 위에 은율의 멜로디가 올라갔다.
연인을 떠나보냈지만 잊지 않겠다는 절절한 감정.
안타깝게 서로를 그리워하는 남녀의 고백이 아름답게 엮여들어갔다.
‘어머, 뭐야?’
도웅의 무대까지 넋 놓고 보고 있던 음악 선생은 화음이 시작되고 깜짝 놀랐다.
‘은율이가 메인이 아니야?’
당연히 메인 화음을 마은율이 맡고, 남도웅이 서브를 담당할 줄 알았는데,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그런데도 듣기에 너무 좋아.’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노래의 완성도가 훌륭하다는 것.
마은율과 남도웅의 실력 차이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음정, 감정.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는 이미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남도웅이 메인이라고 해도 어느 하나 빈틈없이 꽉 들어찬 그런 음악이었다.
두 사람의 조화가 합쳐서 1 정도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
2의 결과로 돌아왔다.
괜히 강태진이 남도웅을 서포트하러 학교 축제에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노래의 정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감정이 만나 순수하게 소용돌이쳤다.
관객들은 그 완벽한 조화에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완벽해···.”
두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신문부 이채경은 저도 모르게 읊조렸다.
액정에 떠있는 데이콘 영상은 일시 중지된 지 오래였다.
잔잔하게 깔린 하얀 스모그와 그 위에 은은히 비치는 조명.
아름다운 두 사람의 화음,
선남선녀의 비주얼,
이채경은 마치 천사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신성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인데도,
도웅의 머리 뒤에서 정말 후광이라도 비치는 듯싶었다.
어느새 줌을 당겨 도웅을 바라보고 있던 이채경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 이건, 이건 찍어야 해.”
그리고 이 장면을 놓칠까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더 이상 찍히지 않는 사진.
“맞다 용량!”
이채경은 이 순간을 놓칠까 두려워 재빠른 손놀림으로 바로 앞의 조한성 영상을 삭제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사람.
음악에 동화된 도웅은 지금껏 봐온 그 누구보다도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금사빠 채경의 이상형이 도웅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뷰 파인더의 줌을 끌어당겼다.
용량이 넉넉해진 카메라에 도웅의 고화질 영상이 2절부터 담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노래가 끝나고,
도웅은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마지막 키보드 반주가 은율의 손끝을 타고 아련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여운을 느끼며 도웅은 관객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아직 조명이 눈부셔 관객들의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도웅은 열심히 연습했던 만큼, 방금의 공연에 만족했다.
음악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기분이었다.
마지만 반주음과 함께 서서히 꺼지는 스포트라이트.
그때 관중 속에 누군가 커다랗게 외쳤다.
“앵콜! 앵콜! 앵콜!”
그러자 너 나 할 것 없이 앵콜을 외쳐대는 관객들.
도웅은 감정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이제 승부를 떠나 자신의 음악을 갈망하는 외침들은 도웅이 전율하게 만들었다.
-뾰옹, 뿅, 뾰롱
어두운 밤 운동장에 관객들의 머리 위로 별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별무리들이 어둠을 충분히 밝힐 만큼 잔뜩 모였을 때,
도웅은 마치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이 붕 뜬 감정을 느꼈다.
-챠라라라라랑!
그리고 그 별들은 곧 은하수를 이루며 도웅에게로 쏟아져내렸다.
정말 우주에서 볼 법한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이었다.
뿅!
그때 어디선가 빨간 색의 별 하나가 도웅에게 튀어올랐다.
그 순간 도웅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여기에 하인혁이?!’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벤드 보컬,
하지만 그 재능이 아깝도록 급작스레 자취를 감춘 남자.
도웅은 하인혁이 자신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