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그녀의 권리.
사장의 아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한 곡을 먼저 들어본다니, 이 사람이 한국에서 얼마나 유명한 가수인데!”
“진, 아무리 당신이 저 가수를 좋아해도 난 사장으로서 손님들을 생각해야 해. 무조건 무대를 내어줄 수는 없다고.”
배불뚝이 사장이 단호하게 대응했다.
가게의 경영은 온전히 남편이 담당하고 있었고, 아내는 근처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꽃집이 끝나고 이곳에 와서 가끔 서빙을 도울 뿐.
“그리고 한국의 가수들이 만약 당신처럼 노래한다면 내가 정말 곤란해져.”
“···.”
“당신이 한국에서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진’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황급히 남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박자와 음을 맞추지 못하는 엄청난 음치였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한국에선 노래를 잘하는 축이라며 남편에게 박박 우겨왔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한국인이라면 다 자기처럼 노래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이 사람은 아니야, 이 사람은 정말 잘한다고.”
“그러니까 노래는 내가 들어보고 결정할게.”
진이 완강한 남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어차피 한번 들어보면 당신도 반할걸?”
**
창문에서 언뜻 볼 때는 몰랐는데, 안쪽으로 긴 형태로 생각보다 가게가 넓었다.
약간 어두운 조도에 분위기를 더해주는 벽 등.
벽면에 오래된 액자와 포스터 따위가 멋스럽게 붙어있었다.
특히 꽃집 사장인 진의 솜씨인지 테이블마다 싱그러운 생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꽃내음이 더욱더 은은하게 풍겼다.
진이 창가 쪽 무대와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마실 거 한 잔 드릴까요?”
“아니에요, 저희가 사서 마셔야죠. 메뉴판 주세요.”
구은정 PD가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근처에 서 있던 백발의 매니저가 그들에게 눈치껏 코팅된 메뉴판을 건넸다.
그녀가 메뉴판을 뒤적거리자 VJ 하나가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오비탁 씨랑 한이경 씨 재료 손질하면서 기다리실 텐데 차라리 이쪽으로 부를까요?’
‘아니, 결정 나고 부르자. 딱 한 곡. 5분이면 될 텐데.’
구은정 PD는 조용히 속삭이고는 얼굴에 영업용 미소를 띄웠다.
“사모님, 이렇게 촬영까지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런데 한이경 씨랑 오비탁 씨는 어디 갔어요?”
“지금 숙소에 있어요.”
“어머, 같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진이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방금의 결정과 다르게 구은정 PD의 입이 곧장 근질근질해졌는데 옆에 있던 도웅이 입을 열었다.
“실은 여기서 같이 노래해도 될지 양해를 구하려던 거거든요.”
“으잉,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늘 촬영을 다 못했어요.”
아인이 우는 소리를 내며 말을 덧붙였다.
진은 ‘어머나!’ 하며 양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흥분했다.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럼 제가 다시 남편한테 얘기를 잘···.”
“아니에요.”
도웅이 흥분해서 남편에게 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이미 한번 얘기가 오간 딜을 번복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괜히 한이경과 오비탁을 불렀다가 한 곡만 하고 쫓겨나는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본인이 확실한 무대를 마련해 놓고 부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제가 무대를 잘해서, 마음에 들어 하시면 그때 말씀드리려고요.”
진은 잠깐 망설이다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두 분도 금방 볼 수 있겠네요.”
**
누가 들어오거나 말거나, 손님들은 웃고 떠들며 잔을 부딪치기 바빴다.
사장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그들은 이 가게의 단골이었다.
백발의 매니저가 무대 위의 마이크를 톡톡 쳐서 에코가 퍼지는 걸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아, 아. 오늘은 먼 곳에서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분이 노래를 한 곡 선물하겠다고 하니 즐겁게 들어주세요.”
곧바로 검은 머리의 훤칠한 청년이 무대의 단상 위로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남도웅이라고 합니다.”
도웅은 짧은 인사를 하고는 전자 피아노에 앉아 마이크 높이를 조정했다.
방금 맥주 한 잔을 추가로 시킨 코가 빨간 사내가 사장에게 물었다.
“진의 손님이야?”
“아니, 한국의 유명한 가수래.”
“푸하하하하.”
단골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재미있다는 듯 테이블을 탁탁 두들겼다.
“한국의 가수가 왜 여기까지 와?”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피아노 멜로디에 웃음을 멈췄다.
“···?”
음악에 문외한인 자가 듣더라도 심상치 않은 느낌의 선율.
그 위에 촉촉한 도웅의 목소리가 돌바닥에 내리는 비처럼 스며들었다.
오늘 같은 날에 잘 어울리는 쓸쓸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곡이었다.
비 오는 날의 감성을 돋아주는 그의 노래를 음미하며, 코가 빨간 사내가 천천히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장 역시 도웅의 노래에 천천히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정말 잘하는군.’
기념으로 그의 모습을 액자로 남겨두고 싶을 만큼 훌륭한 실력이었다.
이런 라이브 바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된 때는, 스쳐 지나가던 인연의 저런 오금 저리는 재능과 마주할 때였다.
진은 남편의 그런 표정을 읽어내고 옆에 와서 살짝 거들먹거렸다.
“봤지? 한국의 가수가 이정도야.”
“···놀랍네.”
이곳에 왔던 아마추어 가수들, 그리고 어렵게 초대했던 그 어떤 가수보다도 인상 깊은 노래 실력이었다.
감탄하던 그가 아내의 거들먹거림에 약간 심술이 났는지 말을 보탰다.
“하지만 저 사람 덕분에 당신이 한국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어.”
“···.”
진은 볼록 튀어나온 그의 배를 팔꿈치로 쿡 찍었다.
사장이 가격당한 부위를 문지르며 가게를 둘러봤다.
“이 좋은 노래를 들을 사람이 적은 게 조금 안타깝네.”
비가 오는 날은 장사가 잘 안됐다.
이런 날은 돌아다니지 않고 술을 마시더라도 집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마저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가게의 단골들이었다.
창밖에 우산을 들고 지나가는 한 무리의 행인들이 보였지만,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그저 가게를 지나쳐 갈 뿐이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도웅의 노래를 다시 깊게 감상하려던 때, 기적이 일어났다.
방금 가게를 지나쳤던 무리에 속해 있던 한 사람이 뒷걸음질 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무대로 향하는 걸 보니 도웅의 노래에 끌린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 일행들도 그녀를 데리러 걸음을 뒤로하더니, 잠시 넋을 잊고 도웅의 노래를 감상했다.
백발의 매니저가 노련하게 다가가 그들을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안으로 들어오시면, 이 멋진 노래를 더 가까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일행들은 잠시 눈짓을 주고받더니 우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후로도 이런 요행은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이런 날씨에 말도 안 되게 사람이 줄줄 들어오고, 그의 노래를 즐기기를 잠깐.
창가에 번지는 불빛같이 아련한 마지막 멜로디가 바 안에 울려 퍼졌다.
도웅은 집중하느라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어두컴컴한 실내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감사 인사를 건네던 때였다.
-챠라라랑.
아직 먹먹한 눈앞에 노란색 별들이 튀어 올랐다.
그래서 도웅은 노래를 부르기 전보다 손님이 많아졌음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어? 이 정도면···.’
가만 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별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사람 수 자체가 적어서 퍼센트 집계는 안 됐지만, 그것대로 기분이 좋아서 얼떨떨해 있는데 손님들이 저마다 우렁찬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고, 술에 취한 손님은 “최고!”를 외치며 맥주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술기운과 이곳 특유의 분위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더 솔직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그때 멀리 있던 사장의 뚱뚱한 그림자가 뒤뚱뒤뚱 다가왔다.
그가 두꺼운 손으로 악수를 청한 뒤, 도웅을 따듯하게 포옹했다.
그는 짙게 쌍꺼풀진 눈으로 도웅을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이 무대는 당신의 것입니다.”
앞에 있던 구은정 PD가, 그걸 알아듣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일행이 있다는 말에 사장은 흔쾌히 오케이 했다.
“당신의 동료라면 믿을 만한 실력이겠죠.”
“감사합니다.”
“우리 가게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요.”
그의 아내 진은 타국에서 영상으로만 바라봤던 도웅이 계속해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돼서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는 노래를 보여준 도웅과 같은 한국인인 이 순간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사장 내외가 감사를 표하는 동안, 구은정 PD는 당장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영기야. 빨리 사람들 다 데리고 이리로 와.”
-네? 어딜요. 지금 마트 가신 거 아니에요?
“맞아, 그 근처에 있는 라이브 바! 도웅 씨가 한 건 했다!”
구은정 PD가 흥분해서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통에 조연출이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뭐라고 하시는 거지?
“촬영 장비랑 오비탁 씨 악기도 챙겨서 오분 내로 와.”
-알겠어요, 일단 나갈게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상황의 급박함을 느낀 조연출이 주방에 몰려있던 모든 이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구 PD님이 지금 장비 다 챙겨서 내려오라는데요?”
“응?”
삐뚤빼뚤 칼질하던 한이경이 주방에 난 장은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아직 이렇게 비가 오는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도웅 씨가 한 건을 했대요.”
“도웅이가?”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한이경이 서둘러 앞치마를 벗었다.
오비탁도 후다닥 손을 씻고 악기를 챙겼고.
“이거 느낌이 범상치가 않은데. 빨리 가보자.”
**
나머지 썸띵밴드 멤버들이 도착할 때까지, 도웅과 아인이 무대에 올라 두 곡을 더 선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한이경은 심부름을 나갔다가 현지 가게에서 떡하니 노래 부르고 있는 둘을 보고 너무 놀라서 계속 어머를 연발했다.
두 사람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무대로 올라갔고, 오비탁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고했다는 뜻으로 조용히 도웅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마침 뒤에 예정된 팀이 폭우로 조금 늦는다고 하여, 썸띵밴드는 그곳에서 마음껏 노래할 수 있었다.
낡은 바와 장소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훌륭한 음악.
올드 팝, 라틴 팝, 한국 노래에 상관없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두가 그들의 음악에 푹 빠졌다.
이 시간대에 말도 안 되게 북적북적해진 가게에서 사장은 아내와 함께 서빙하느라 바빴다.
가게를 가득 채우는 힘찬 박수 속에서 썸띵밴드는 성황리에 셋째 날의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아까 그 남자 가수 이름이 뭐라고 했지?”
“남도웅. 한국에서 유명하대.”
“어쩐지 노래를 아주 잘하더라.”
웅성이는 손님들 사이를 뚫고 사장이 다가와 서비스를 한가득 도웅이 앉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어, 저희 이건 안 시켰는데요?”
“노래하느라 수고했으니 드리는 선물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마음껏 시키세요.”
“와아!”
마침 배가 고팠던 스태프들이 소리를 질렀다.
오픈 마이크라 따로 페이는 주지 않지만, 좋은 노래를 들려준 아티스트에게 사장이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가게를 떠날 즈음 사장 내외가 바깥으로 나와 멤버들을 배웅해주었다.
진이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저한텐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행복했던 하루 중 하나였어요.”
“바르셀로나에 오면 언제든 다시 들러주세요.”
배불뚝이 사장도 인자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아까 손질해놓은 식재료들을 가지고 2차전을 벌였다.
풍미 깊은 감바스에 바삭한 타파스까지.
오비탁의 요리실력은 아주 훌륭했다.
며칠 전 사둔 와인을 나눠 마시면서, 구은정 PD가 불그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웅 씨 덕분에 오늘 진짜 살았어요. 우리 남도웅을 위하여 한 번만 하면 안 돼요?”
“아이, 구 PD도 은근히 옛날 사람이야.”
“자, 다 같이-! 남도웅을 위하여!”
그녀는 누가 뭐라든 잔을 높이 치켜올렸고, 뒤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후창을 했다.
“남도웅을 위하여!”
**
‘물빛’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네르하 바다를 배경으로,
또 건물이 온통 하얀 작은 마을에서 노래하며 며칠이 흘렀다.
근 일주일을 함께 붙어있다 보니, 썸띵밴드 멤버들뿐 아니라 제작진들까지 부쩍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렇게 한창 여정을 이어가던 중 대망의 첫 방송 날이 다가왔다.
한국은 밤, 스페인은 점심 무렵일 때.
그러니까 첫 방송 시간 무렵에 제작진들 사이에 묘한 긴장이 돌았다.
그러나 다들 촬영하면서 인터넷 서치를 하거나 첫 방송을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혹여라도 시청률이 기대 이하라면 촬영 분위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남은 여정이 삼 분의 일이었다.
하루를 무사히 끝내고 따로 마련된 스태프 숙소로 돌아온 늦은 밤.
구은정 PD가 스태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프로그램에 관한 건 다들 찾아보지 마. 결과가 어떻든 끝날 때까지 이 분위기 그대로 촬영하려면 어쩔 수 없어.”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새끼손가락을 들쳐 올렸다.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다름 아닌 구은정 PD였다.
그녀는 다들 잠든 걸 확인한 후 이불 속에서 노트북 불빛을 반짝였다.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고! 그래도 난 PD니까 알 권리가 있어!’
그녀는 죄책감을 지우려고 필사적으로 중얼거리며 첫 방송의 시청률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끄!-읍”
그녀는 비명이 터져 나오려던 자신의 입을 셀프로 틀어막았다.
시청률 7.7%.
그녀가 JEBT에 입사한 이래 최고로 달성한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