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19)
019. 야, 터졌다.
직사각의 빨간 쿠폰.
어디에 사용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처음 보는 쿠폰이 화면에 반짝이고 있었다.
“뭘 업그레이드한다는 거지?”
쿠폰 아래 설명이 떠올랐다.
[ 다음 추천 동영상의 레벨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우왁씨! 진짜로?!!!”
도웅은 기대치 못한 행운에 몸서리치며 침대를 팡팡 두들겼다.
이 쿠폰을 사용하면 트레이닝할 수 있는 재능의 급이 올라간다는 얘기였다.
“진짜 최고다. 업그레이드 쿠폰 최고!!”
도웅은 어서 빨리 새로운 동영상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
이 쿠폰으로 어떤 재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번졌다.
“그럼 빨리 두성 창법부터 끝내 볼까?”
도웅은 오늘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나만의 연습실로 입장했다.
축제 무대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발성법을 섞어 수도없이 연습했던 터라,
두성 창법에도 자신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
그 뒤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축제가 끝난 이후로 학교는 후유증이 상당해 보였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아직 들뜬 모습을 보였고,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집중시키느라 애먹었다.
도웅은 학교 안에서 이제 모르는 이가 없는 듯했다.
복도를 지나가면 서로 툭툭 치며 도웅을 두고 수군거렸다.
“쟤잖아, 쟤. 남도웅.”
“누구?”
“축제 마지막 무대에서 마은율이랑 노래 불렀던 남자애.”
“아! 대박, 근데 영상이랑 실물이 많이 다른데?”
“안경 벗으면 똑같을걸?”
‘쓰읍··· 평소에도 렌즈를 끼고 다녀야 되나.’
어딘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기분이 든 도웅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한동안 도웅에 대해 얘기했다.
갑자기 날씨도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 꽤 쌀쌀해졌다.
오늘따라 등교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어딘가 더 무거워 보였다.
도웅도 동복 재킷을 여미고 느지막이 교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낯선 상자들이 도웅의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게 뭐지?”
도웅은 직사각의 빨간 상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기다란 막대과자에 초코가 묻어있는 페페로 상자였다.
“오늘 페페로 데이잖아. 인기 좋네 남도웅.”
다가온 마은율이 도웅의 과자 탑 위에 페페로 한 상자를 더 쌓아 올렸다.
페페로 데이라니.
피차일반 형식이랑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기 바빴던 그날.
그것은 한낱 과자 회사의 상술에 지나지 않는 날일 뿐이었는데!
“잘못 놓은 거 아니야?”
도웅은 남의 것이 잘못 놓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상자 뒤편의 메시지 란을 확인했다.
-To. 남도웅. 축제 때 최고로 멋있었어!
-노래 잘 들었어 나중에 노래방 같이 가.
-나중에 시간 될 때 인터뷰 해줘 ^^ From. 신문부 이채경.
같은 학년들뿐만 아니라 선배들한테서 온 다양한 응원 메시지들.
정말 도웅에게 온 과자들이 맞았다.
‘축제 나갈만하네!’
도웅은 뿌듯함을 느끼며 과자들을 가방과 서랍 속으로 집어넣었다.
정리를 끝내고 손을 탁탁 터는데,
“남도웅, 여기! 이번 축제 때 노래 잘 들었어.”
얼굴을 모르는 여자애 하나가 또 페페로를 수줍게 건네고 갔다.
그 덕에 주변을 둘러본 도웅은 비로소 다른 남자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자각했다.
‘내가 이런 인기를 누리다니.’
비록 이성적 매력보다는 이번 축제 무대로 인한 호사이겠지만,
도웅은 어쨌든 노래를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오늘 받은 페페로의 양이 곧 학교 내 인기의 지표.
아무 존재감이 없던 도웅이 계절이 채 바뀌기도 전에 이토록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쾅.
방금 뒷문으로 커다란 하트 모양의 페페로를 겨드랑이에 끼고 들어온 윤정후.
그는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자리에 착석했다.
윤정후의 책상에도 많은 페페로가 쌓여있었지만, 거들먹거리거나 비아냥대지 않았다.
윤정후는 이번 공연 이후로 줄곧 저런 상태였다.
‘내가 너무 자만하고 있었어.’
그도 그럴 것이 도웅이 축제에서 보여준 모습은,
자신과 대결했을 때의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
치사하게 이기기 위해서 빽빽 고음만 내질렀던 그때와 달리,
깊이, 고민, 감정.
마은율과의 듀엣에서도 뒤지기는커녕 메인으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저 자식이 날 가지고 놀았다 이 말이지.’
윤정후는 도웅이 자신을 봐준 거라는 생각에 더욱 치욕스러워졌다.
덕분에 윤정후는 3대 기획사에 대한 꿈을 깔끔히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자만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죽을힘을 다할 각오로 삼촌네 기획사와 계약했다.
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먼저 유명해질 거야.’
이제 윤정후가 도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유명세.
어서 하루빨리 데뷔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여러 매체에 얼굴을 비출 수만 있다면.
지난날의 치욕은 잊고 지금과는 상대도 안 될 만큼의 인기를 누릴 수가 있었다.
윤정후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다.
**
도웅은 형식과 함께 품에 과자를 한 아름씩 안고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형식에게 봉지 가득 페페로를 담아 쥐여주었다.
받은 것 없다고 놀리기엔 처지가 달라져 너무 재수없어 보일 것 같아 아량을 베풀었다.
“형식아, 이건 너 먹어.”
“지··· 진짜? 딴 말 하기 없기다?”
봉지를 받아든 형식은 도웅의 노래를 들을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을 뿜어냈다.
그날 저녁,
“아이고, 이게 다 뭐야?”
엄마는 신발을 벗어놓자마자 소파에 쌓인 페페로 상자를 발견했다.
“오늘 학교에서 받은 건데 좀 드시라고.”
“이걸 다 학교에서 받은 거라고? 어머! 우리 아들 학교에서 인기 많구나?”
“아니 뭐, 그냥.”
도웅은 목덜미를 긁적이며 멋쩍게 답했다.
“엄마는 네가 항상 형식이랑만 붙어 다녀서 친구도 인기도 없구나 걱정했는데.”
원래는 엄마가 생각한 그게 맞았다.
“하긴 그래, 우리 아들이 자세히 보면 또 잘 생겼지.”
엄마는 한시름 놓겠다는 만족의 표정을 지었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야? 축제 때 잘 봤어?”
엄마가 페페로 하나를 집어 들어 뒷면의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아차. 메시지가 적힌 곽 하나를 미쳐 솎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이이잉, 지—잉.
마침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 아들, 그래도 아직 연애는-.”
“형식이, 엄마. 형식이.”
도웅은 손사래를 치며 기회를 틈타 방 안으로 들어갔다.
“휴··· 어, 왜?”
-야 대박 났어 남도웅!
상기된 형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페페로가 그렇게 맛있냐?”
-아니 새꺄 그게 아니고 네 영상 대박 터졌다고!
“내 영상?”
도웅은 잠시 사고가 정지됐다.
도웅의 기억 속에 자의로 영상을 올리거나 한 적은 없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형식이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아, 이거.”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한제고 공식 SNS 페이지가 떴다.
축제의 메인 영상에 안경을 벗은 어색한 자신의 얼굴이 걸려있었다.
며칠 전에도 형식이 이걸 가지고 호들갑을 떨어 알고는 있었다.
“근데 이게 뭐 어쨌다는 거야.”
도웅은 별다른 특이점을 느끼지 못하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그런데.
“뭐야!”
-조회 수 32만 회. 댓글 568개
자신의 얼굴이 걸려있는 영상만 조회 수와 댓글이 치솟아 있었다.
한제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댓글들도 많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 스위치온 엔터테인먼트입니다. 해당 영상의 주인공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연락 주세요. [email protected]
ㄴ 헐 스위치온 진짜임?
ㄴ 야 대박! 위로 올려올려.
– 센터 빅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영상 보고 메일 주소 남깁니다. [email protected] 편하게 연락 주세요.
ㄴ 헐 센터빅까지. 이거 찐이야?
ㄴ ㅇㅇ 저거 공식 메일 주소 맞음.
ㄴ 바로 가수 데뷔 각이고요? 오지고요?
두 군데의 기획사에서 댓글을 남겨놓았다.
지난번 오디션을 봤던 곳들보다 중상급인 엔터테인먼트들.
일반사람들도 이름을 들었을 때 대충 아는 곳들이었다.
“우왁! 이제 제 발로 캐스팅이 굴러들어오는구나!”
중소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닌 것이 불과 몇 주 전이었는데,
벌써 선택할 수 있는 기획사의 급이 이만큼 높아졌다.
도웅은 제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사실이 확 와닿았다.
“역시 그때 섣불리 계약하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었어.”
제 발로 캐스팅이 들어온 중급 기획사들.
이 정도면 자신을 꽤 주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먼저 영입을 원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번처럼 어중이떠중이 연습생 신세가 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그런데 마은율은 어떠려나?”
듀엣 무대로 주목을 받은 것이었으니,
기획사에 연락하기 전에 서로 의견을 모아봐야 했다.
**
쉬는 시간.
어제 영상에 달린 댓글들 덕에 한창 아이들이 소란스러웠다.
“도웅아, 너는 어느 기획사로 갈 거야?”
“센터빅에 위아 오빠들 있잖아!! 대박 거기 가면 나 싸인 좀.”
“신기하다. 우리 반에서 스타가 나오게 생겼어!”
어쩐지 당사자들 보다 더 흥분한 아이들은 저마다의 반응을 쏟아냈다.
그건 은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은율이랑 도웅이가 같이 혼성그룹으로 나오려나?”
“에이 따로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거겠지.”
“아무튼 대단하다. 둘 다.”
그런 반응들 속에서도 은율은 덤덤히 미소 지을뿐이었다.
아이들의 파도에 휩쓸려 따로 얘기를 나눌 시간을 갖지 못한 둘은 방과 후가 되어서야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운을 뗀 것은 도웅이었다.
“마은율, 어제 영상에 댓글들 봤어?”
“어, 응.”
은율은 이 상황이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듀엣으로 부른 노래에 달린 댓글이라 같이 연락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반응이 어딘가 뜨뜻 미지근했다.
“축하해, 남도웅. 너 금방 가수되겠다~. 꿈이라더니.”
은율은 금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웅은 거기에 말리지 않고 핵심을 찔러 말했다.
“너는?”
“에이,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 거야.”
마은율은 도웅의 눈을 피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딘가 자신의 의지 같지 않은 말투였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되면 도웅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난 연락을 한 번 해보려고.”
“그래, 잘 생각했어. 어차피 그 무대는 뭐로 보나 네가 메인이라 아마 너한테 연락하라고 남긴 걸거야.”
사실 그것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워낙에 뛰어난 마은율의 외모,
영상에서는 도웅이 메인이었지만 은율과의 실력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고,
관계자들이 원하는 것이 은율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지.’
그때 은율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참! 다 꼼꼼히 따져보고 별로 마음에 안 들면, 판타스타도 한 번 생각해 줘.”
“판타스타?”
“응. 그 아저씨 능력 좋아. 그리고 사람 좋거든. 그건 내가 보증해.”
도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도웅은 메일 주소를 남긴 기획사들을 두고 고민했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연락을 줘야 할 성싶었다.
“스위치 온··· 생각해보니 이 회사는 여자 아이돌 하나가 멱살 잡고 캐리 했지.”
그리고 기억나는 미래 정보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여기서 몇 년 후에 데뷔하는 남자 아이돌은 귀여운 연하남 콘셉트였고.”
도웅은 자신이 그 그룹으로 들어가 파스텔 톤의 옷을 입고 윙크를 날리는 상상을 하니 어딘가 속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기획사에 대해서 생각했다.
“센터픽 남자 아이돌은 그래도 짐승돌로 유명했으니까···”
그나마 콘셉트나 인지도를 생각하면 여기가 나을 듯싶었다.
“근데 멤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 치지 않았나?”
하지만 꺼내다 보니 미래 정보들이 썩 긍정적인 것들은 아니었다.
“하···. 이거 고민이네.”
먼저 제안이 오더라도 반드시 좋은 기회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웅이라는 변수 때문에 미래가 바뀐다 하더라도 큰 틀까지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회사 규모가 크다고 무작정 들어갔다가 맞지 않는 콘셉트를 억지로 소화하거나,
멤버들과 같이 구설수에 휘말리는 식으로 이 천금 같은 기회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쩝···. 이럴 거면 차라리 판타스타가 낫지.”
스위치온이나 센터빅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현재는 레전드 급 가수 여명이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실력파를 양성하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미래에 판타스타에서 데뷔한 남자 아이돌은 콘셉트도, 인기도 중박은 쳤던 것 같았다.
“차라리 거기가 내가 가서 뭘 해볼 여지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뭐가 가장 최선일지 짱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도웅은 새로 달린 댓글을 확인하려 영상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다.
그런데 맨 끝자락.
-안녕하세요. NMET 스페셜K스타의 작가 김미진입니다. 오디션 참가 관련 말씀 나눠보고 싶습니다. 연락 주세요. [email protected]
도웅은 장차 커다란 화젯거리가 될 씨앗 하나를 발견했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붐을 일으켰던 스페셜K스타.
그 중에서도 전설이라 불리는 시즌 2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래, 이게 있었지. 확실한 데뷔 방법.”
도웅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