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24)
024. 그래, 한 번 해보자.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정면에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
그곳에 스페셜K스타 시즌 2의 슬로건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당신의 특별한 꿈을 찾아서! 스페셜K스타! 시즌2
꿈을 찾아온 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문구.
그 문구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도웅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했다.
“그래, 내 특별한 꿈. 반드시 찾고야 말겠어.”
도웅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꿈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이번 생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꿈을 반드시 찾고 이뤄야만 했다.
스페셜K스타.
시즌 2에 쏠릴 전 국민적인 관심을 알았고,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도웅이 그 기량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최적의 무대였다.
도웅은 들뜨는 마음을 다잡으며 경기장을 향해 걸었다.
한 시간가량 일찍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장 주변엔 벌써부터 인파가 가득했다.
도웅은 경기장을 한 바퀴 빙 돌아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끝자락에 가서 섰다.
그 인파를 지나치는 동안 도웅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때에 맞는 전략이 필요했다.
다행히 스페셜K스타 애청자였던 도웅은 프로그램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2차 예선은 참가자의 기본 자질을 판단하는 자리야.’
지원자의 기본기와 성실성을 판단하는.
2차 예선은 비유하자면 면접과도 같은 것이었다.
‘촬영 중간에 포기해버리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니까.’
도웅은 그것이 2차 예선의 방송 분량이 적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2차 예선의 분량은 고작해야 오프닝 컷.
지원자 개인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씬은 연예인 심사위원단이 참가하는 3차 예선부터였다.
즉,
‘진짜 실력은 거기서부터 골라낸다는 소리지.’
그렇다면 여기서는 얼마나 노래가 하고 싶고 경연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지,
그 기본을 잘 보여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절실함과 기본기에 자신이 있던 도웅은,
기타 가방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긴 시간을 거쳐 도웅은 드디어 경기장 내부로 입성했다.
E-077.
기나긴 기다림 끝에 배부 받은 번호였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많긴 많구나.”
넓은 관중석이 알파벳별로 26개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거의 모든 자리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도웅은 알파벳 E가 적힌 구역으로 가 앉았다.
그 순간.
“와-아!!”
경기장 안 커다란 전광판에 스페셜K스타의 로고가 떠올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원자들이 흥분에 겨운 탄성을 내질렀다.
슬로건 외치기, 손 흔들기, 파도타기 등등.
예상대로 제작진은 오프닝 촬영을 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수많은 지원자들은 다 같이 10초 남짓한 장면을 위해 손을 모았다.
“휴우.”
오프닝 촬영을 공들여 끝내고 나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청소년기의 혈기왕성한 몸은 생각보다 많은 열량을 필요로 했다.
도웅은 1층에 연결된 상가 쪽으로 나가 간단히 요기라도 때울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바깥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나와 있었다.
-♪워우워우예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들,
이미 둥그렇게 공연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엄마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초등학생들과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
“완전히 그냥 음악 축제구나.”
이 모두가 함께 음악이란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막상 현장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보니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있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 특이한 지원자 무리가 눈에 띄었다.
사극에서나 볼 법한 한복을 걸치고 있는 무리들이었다.
그중 왕의 복장을 한 사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낄낄, 야. 여기서 우리밖에 안 보여.”
“맞어. 그건 그런데.”
“뭐 이 새끼야.”
“아 솔직히 좀 쪽팔림.”
퍽!
그는 환관의 관복을 입고 있는 제 친구의 뒤통수를,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세게 내리쳤다.
“멍청한 놈아, 이정도는 해야 카메라에 잡힌다니까!”
그러나 얻어맞은 남자는 일상적인 일인 듯, 그냥 뒤통수를 몇 번 쓰다듬을 뿐이었다.
“초장부터 PD 눈에 띄어야 우승까지 가는 거라고. 여기서 묻히면 답도 없어.”
“위로 올라가려면 노래를 잘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 이 답답한 새끼. 여기 노래 못하는 놈이 누가 있겠냐? 1차 통과했으면 다 거기서 거기지.”
곤룡포를 입은 남자가 주변에 손가락을 휘저었다.
“캐릭터가 있어야 방송국에서 써먹는다고.”
“캐릭터?”
“시청률! 시청률! 아무리 노래 잘 해도 시청률 안 나올 것 같으면 아무 소용 없다고!”
인내심이 얕아 보이는 남자는,
친구가 제 말뜻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자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니까 걍 닥치고 여기서부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PD 눈에 띌 생각만 해.”
그제야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캐릭터 싸움은 2차 예선을 통과한 이후부터일 텐데.’
도웅은 사내가 포인트를 한참 잘못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시점에서 저렇게 기운을 빼는 것은 1초 컷 외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때 사내가 미간에 힘을 주고 진지하게 말했다.
“하 씨발···. 일등 하면 3억 갖고 뭐부터 하지.”
‘쟤 진심이구나.’
도웅은 방송에서 본 기억도 없던 남자의 설레발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
도웅은 삼각김밥 몇 개로 요기를 때우고,
음료수 한 병을 사서 자리로 돌아왔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편의점에 남은 음식도 별로 없었다.
부스럭부스럭.
그때 옆에 앉은 아이가 뭔가를 부스럭대는 통에 도웅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꼬마애네.’
12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는 연신 가방 속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도웅은 남은 초코바 하나를 건네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어? 얘 어디서 많이 봤는데?’
찹쌀떡 같은 흰 얼굴에 차분한 생김새.
귀엽고 또랑또랑한 이목구비.
도웅은 그제야 이 애가 누군지 기억이 났다.
‘아, 그 애늙은이!’
3차 예선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합격을 받았던 아이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사이에서 전혀 떨지 않고,
놀라운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
그래서 3차 예선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인물 중 하나.
도웅의 기억 속에도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가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고 했었나.’
도웅의 기억을 증명이라도 하듯,
꼬마는 가방에서 길쭉한 양갱을 하나 꺼냈다.
쩝쩝.
먹음직스럽게 양갱을 우물거리는 걸 보니 확실히 어린애답지 않은 입맛이었다.
도웅은 만지작거리던 초코바에서 손을 도로 뗐다.
툭.
그때 그 애의 발치에 노란 쪽지 같은 게 떨어졌다.
‘부적···.?’
도웅은 순간적으로 그게 무엇인지를 캐치했다.
꼬마는 아무렇지 않게 그 쪽지를 다시 주워 쓱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때 꼬마와 도웅의 시선이 마주쳤다.
“안녕.”
도웅이 당황해 인사를 건네자 빤히 그를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
‘···? 뭐지?’
뭔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 순수한 눈빛에 도웅은 살짝 당황했다.
그때 어깨에 카메라를 멘 VJ 하나가 도웅과 꼬마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두 분 조합이 특이하네요. 형제이신가요?”
“아니요?”
“하하, 그럼 여기 카메라 보고 시즌 투! 하면서 브이 자 좀 그려주세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대화 순서였지만,
도웅은 두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VJ는 돌아다니며 인서트 컷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옆의 꼬마도 짧은 손가락을 꿈지럭대고 있었다.
그 순간.
“어허!”
카메라 앞에 곤룡포를 입은 예의 그 남자가 끼어들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들락거리는 게냐!”
그는 카메라에 대고 대뜸 호통을 쳤다.
“하하하, 그거 다시 한번만 해주세요.”
다행히 VJ한테는 그 장면이 재미있었는지 카메라가 남자 쪽으로 돌아갔다.
도웅과 꼬마는 들어 올렸던 손가락을 어색하게 정위치 시켰다.
왕의 옷을 입은 사내와 내시 옷을 입은 친구들은 그렇게 혼신의 드립을 주고받으며,
일 분간 카메라 앵글을 차지했다.
‘쩝, 어차피 찍었어도 일초 컷이었을 텐데 뭐.’
도웅은 처음으로 TV에 얼굴을 비칠 기회가 날아갔음에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신경 쓰지 않는 척해도 카메라 앞에 기대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옆의 꼬마의 얼굴에도 실망한 기색이 비쳤다.
아무리 애늙은이여도 TV에 나올 자신의 모습은 기대가 됐던 모양이었다.
카메라가 지나가고서야 사내들이 만족스러운 듯 낄낄댔다.
“야, 봤지? 이러니까 한 번이라도 카메라에 잡히잖아.”
“와씨. 진짜네.”
“이제 SNS에 우리 반응 난리 난다니까. 그럼 PD가 우리 계속 안 붙여주고 못 배긴다고.”
“오 우리 그럼 우승 각?”
“그렇지, 그렇지.”
남자는 배를 잡고 끅끅거리더니 도웅과 꼬마 쪽을 손가락질했다.
“저런 특색 없는 놈들은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그냥 헛걸음하는 거야.”
‘저놈들이 선 넘네.’
저들이 어떻게 꾸미고 오건 그것은 도웅이 알 바 아니었다.
카메라를 인터셉트한 것도 이런 곳에서 으레 벌어질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원자들을 낮잡아 얘기하는 데서 도웅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특히 꼬마가 상처받지 않았을지 신경이 쓰였다.
“저런 사람들 신경 쓰지 마. 노래가 제일 중요한 거니까.”
“네, 형.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꼬마는 예의 그 차분한 표정으로 덤덤히 답했다.
‘맞다. 얘 애늙은이였지.’
아이답지 않은 멘탈 회복력을 보니 생각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전광판에 대기자 명단이 뜨고, 관계자 하나가 소리쳤다.
“E-080번까지 1차 대기장소로 내려오세요!”
도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옆의 꼬마에게 말했다.
“먼저 갈게 시험 잘 봐.”
“네, 나중에 봐요.”
꼬마는 진짜 곧 볼 사람처럼 무던하게 말했다.
실내 통로에 주욱 늘어선 서른 개의 부스.
‘저기 있다.’
도웅은 인파를 헤치고 알파벳 E가 적힌 부스를 찾았다.
-♪난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걸겠어~~!
부스 안에서는 다른 참가자의 비장한 노랫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도웅은 머릿 속에 기본을 되새기며 기타를 다잡았다.
‘그래, 한 번 해보자.’
도웅은 학교를 벗어나 넓은 세상 앞에 한 발자국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 한 발자국에 세상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