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25)
025. 주목해서 봐주세요.
지원자들이 줄지어있는 실내 통로의 부스.
한 부스당 열 댓명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도웅이 줄 서 있는 부스에서 다 큰 청년 하나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나왔다.
“하···. 망했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껏 긴장한 모습으로 뻣뻣이 부스에 들어갔던 지원자들은,
대부분 3분 이내로 어깨가 축 처진 채 걸어 나왔다.
가끔 부스에서 나오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한 만큼 보여주는 게 쉽지 않지.’
아무리 기본적인 실력을 보는 자리라고 해도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발생하는 지점.
그 커트라인도 얼마나 높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노래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됐다.
그때 어디선가 번쩍이는 빛무리가 느껴졌다.
‘뭐지···?’
“뒤로 좀 가주세요. 제가 앞 순서라.”
도웅이 서 있는 줄 앞쪽으로 아까의 그 왕 복장을 한 사내가 끼어들었다.
내시 복장의 친구와 함께.
“우하하, 하이브리드 킹덤 행차하신다.”
“낄낄낄”
번쩍이는 빛의 정체는 그가 쓰고 있는 발광 선글라스였다.
‘얘네는 대체 컨셉이 뭐야?’
도웅은 근본 없는 차림새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콘셉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는데 그마저도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뭐, 겉보기엔 저래도 노래 잘하면 되겠지. 내 알 바 아냐.’
도웅은 더 이상 그들에게 신경을 끄기로 했다.
“크크크, 야, 이거 쓰니까 진짜 나밖에 안 보이지 않냐?”
“어, 사람들 다 너만 쳐다봐.”
“하 씨, 다음 예선 때도 이렇게 가야겠어. 좀 괜찮은 것 같아.”
아무래도 저들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녀석들의 황당한 몰골에 주변의 시선이 더욱 이쪽으로 모였다.
그는 이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운지,
앞이 보일까 싶은 발광 안경 틈새로 주위를 둘러봤다.
“야야, 앞뒤로 일반인들이 깔아줘서 걱정 없겠다.”
“킥킥.”
사내가 도웅을 쳐다보고는 쿡쿡거렸다.
‘아무래도 네가 나를 깔아줄 것 같은데.’
도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
그 시각 부스 안.
치열한 오디션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해 온 것들을 짧은 시간 안에 꺼내 보였다.
E번 부스의 안쪽에는 임명이 메인작가와 김미진 막내작가가 심사를 보는 중이었다.
임 작가가 진행요원에게 말했다.
“후··· 우리 십 분만 쉴게요.”
아침부터 반나절 동안 자리에서 엉덩이 한 번을 못 떼 온몸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임명이 작가는 몸을 좌우로 틀었다.
“와··· 이번에 지원자 수만 보면 진짜 대박 났다.”
두 명의 작가 앞에는 꼬깃꼬깃한 지원서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오늘 임 작가와 김 작가의 임무는 본선에 올릴 만한 지원자들을 솎아내는 것.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임하는 자세와 적당한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이곳에서의 경쟁률만 해도 125:1을 넘어갔다.
즉, 125명 중의 한 명만이 3차 예선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
“그러네요.”
긴 머리에 시크한 표정의 막내작가는 지원서에 연신 뭔가를 적고 있었다.
방금 나간 지원자 특이사항을 한 줄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쭉 들이켠 임 작가가 진저리쳤다.
“아우, 야 좀 쉬어.”
“이렇게 해놔야 연예인 심사위원들이 참고를 하죠.”
“그건 나도 아는데···. 지금은 좀 쉬라는 거지.”
이들의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한 지원서는 발치에 넘치도록 쌓여있었다.
합격자에 한해서 카테고리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노래 실력이 좋습니다.
-사연이 절절합니다.
-외모가 특출납니다.
-캐릭터가 독특합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연예인 심사위원들이 방송의 포인트를 잡아 3차 예선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하··· 근데 미진아, 허수가 좀 많아서 그런지 쓸 만한 인물이 없어 보인다.”
“저도 그래요. 저희 부스만 그런지 몰라도 독특함으로 승부 보시려는 분들이 유독 많네요.”
“에이 씨, 이게 다 이석규 PD 때문이잖아!”
고상한 외모와 달리 입담이 센 임명이 작가가 역정을 냈다.
“아, 임 작가님, 목소리 작게. 밖에 다 들려요.”
오히려 막내작가가 차분히 메인 작가를 달래는 이상한 모양새였다.
“어휴. 일단 노래 실력이 된 다음에 독특한 게 먹히든 말든 하는 거지. 아니면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도 있던가.”
임 작가는 욱하는 마음을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모금으로 달랬다.
기본도 안된 이상한 콘셉트의 참가자들 때문에 인내심에 염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인터뷰에 동문서답으로 대답하거나,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참가자들도 수두룩했다.
“시즌1때 시청자 관심 끈다고 죄 예선에서 이상한 애들 섞어 가지고 방송을 내보냈으니 다~ 이러면 붙는 줄 아는 거야.”
“대신 그래서 시청률 잘 나왔잖아요. 악마의 편집이랑 같이해서.”
“쩝. 그건 맞아. 그 덕에 우리가 지금 이만큼 투자받은 거니까.”
인정할 건 또 쿨하게 인정하는 임 작가였다.
“그런데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억지스러운 관종 캐릭터는 오늘 그만 보고 싶다.“
“저도 그래요. 그래도 또 모르죠, 다음 참가자는 대단한 사람이 올지.”
“하··· 그래. 다시 힘내보자.”
그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지원자 들여보내 주세요.”
임명이 작가가 진행요원에게 요청했다.
그와 동시에.
“이리오너라아!!!”
빨간 곤룡포를 입은 남자 하나가 과격하게 천막을 젖히고 들어왔다.
‘아휴, 또야.’
임명이 작가는 두통이 오는지,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임명이 작가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왕의 복장을 한 남자는 실력 면에서 형편이 없었다.
그리고 저 정도 콘셉트 가지고는 방송에 써먹기도 애매했다.
발광 선글라스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는 남자는,
예감이 좋지 않았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그럼 다음 노래-.”
“아니에요. 고생하셨습니다.”
이 참가자에게만 박한 게 아니라 2차 예선에서는 한 소절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났다.
그래야 일정 안에 전국 200만 명의 심사를 소화할 수 있었다.
냉정하지만 아닌 참가자는 빨리 끊어내야 했다.
임명이 작가가 칼같이 잘라내자 사내가 안경을 벗었다.
그는 계획에 없던 상황에 심히 당황한 듯했다.
‘이럴 리가 없어. 캐릭터를 한 번 더 세게 보여줘야겠어.’
판단 오류를 일으킨 남자는 배에 힘을 줬다.
“어허, 무엄하도다. 짐이···.”
“저희 대기줄이 밀려서, 이만 나가주세요.”
임명이 작가는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러자 절박함을 느낀 남자가 초강수 무리수를 뒀다.
“네 이년! 감히 네가 누구에게 그따위···.”
“야!”
임명이 작가는 참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나가.”
그녀는 손끝으로 출구 천막을 가리켰다.
그제야 남자는 아차 싶었는지 조용히 부스 밖으로 걸어 나갔다.
탈락을 예상한 뒷모습은 한껏 풀이 죽어있는 상태였다.
“저런 애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아. 지원자라고 봐주면 안 돼.”
임명이 작가는 분노로 혀를 쯧쯧 찼다.
옆에 있던 김미진 작가가 말했다.
“저런 분들은 그냥 티브이에 나가고 싶은 거 아닐까요? 개그맨 지망생이라던가.”
“그러면 아주 확 튀던가. 저런 엉성한 소품 몇 개로 시청자들 관심 발톱만큼도 못 끌어. 차라리 아까 물구나무 서서 노래 부른 사람이 낫지.”
임명이 작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먼저 오디션 제안했던 사람들은 좀 왔나?”
“네. 근데 생각만큼 괜찮은 사람은 없었어요.”
왕년에 잘나갔던 연예인, 연습생, 화제의 일반인 등.
이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화제성이 있을 법한 인물들에게 오디션 제안을 해놓았다.
“영상보다 라이브가 너무 별로더라고요.”
“그 SNS 인천 핵미남이라고 했던 참가자는?”
“아까 보셨잖아요.”
“왔었어?”
“네. 그거 다 필터 빨이었나 봐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요.”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떻게 보면 캐릭터 싸움이었다.
2차는 커트라인만 통과하면 된다지만 대략적인 그림은 여기서부터 구상해야 했다.
미리 섭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참가자가 이토록 없다니.
임 작가는 시름에 잠겼다.
“이번 시즌에 다 갈아 넣어서 진짜 잘 돼야 하는데.”
NMET은 꽤 규모가 있는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그러나 타 케이블 채널들의 성장으로 그 위세가 휘청여 작년부터 돌파구를 꾀하고 있었다.
그렇게 야심 차게 만든 것이 스페셜K스타 시즌1.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아 올해 시즌 2에 사활을 걸고 인력과 자본을 갈아 넣은 상태였다.
“일할 맛 나게 제발 제대로 된 지원자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
임명이 작가는 기도하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말했다.
그때 훤칠한 키에 도수 높은 뿔테안경.
어수룩하게 통기타를 든 고등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학생은 작성해온 지원서를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남도웅 씨?”
김미진 작가는 특이한 이름을 기억하고 지원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 SNS 축제 듀엣 영상으로 화제 됐던 남자분. 그런데 얼굴이 화면이랑 많이 다르네. 역시 그 여자분이 왔었어야···..’
김미진 작가는 기대와는 다른 외형에 1차적으로 실망감이 들었다.
이 참가자 같은 경우엔 외모와 실력 둘 다 갖춘 몇 안 되는 기대주였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스페셜k스타의 최대 변수가 되고 싶은 남도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만히 있던 임명이 작가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최대 변수가 되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이죠?”
“음악은 제 인생의 가장 특별한 것입니다. 제 인생을 바꿔놓은 음악으로 스페셜K스타의 판도도 뒤집어 놓겠습니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당당한 패기에, 꽤 괜찮은 스토리텔링.
안경 너머의 눈빛에서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임명이 작가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웅을 살폈다.
“도웅 씨, 영상에서는 안경 벗었던데. 한 번만 안경 벗어봐 줄 수 있어요?”
“네.”
도웅은 어려울 것 없으니 두터운 뿔테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두 심사위원의 눈빛에 생기가 스쳤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이 지원자, 노래만 잘 하면 일내겠어.’
그녀는 지원자 체크란에 볼펜을 톡톡 두들겼다.
“그럼 하이라이트 부분만 짧게 부탁드릴게요.”
“네.”
도웅의 손은 기타 현 위에 올라갔고, 이윽고 듣기 좋은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도웅이 그토록 바라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
자신의 손끝이 연주하는 기타 반주 위에 그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30초 남짓.
하이라이트 가창이 순식간에 끝나고.
‘더 듣고 싶어.’
임명이 작가가 심사가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한 것은 오늘 중 처음이었다.
그녀는 도웅의 지원서 아래 다음과 같이 적어내려갔다.
-노래는 기본에 외모는 옵션. 이 참가자는 주목해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