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27)
027. 뭔가 또 바뀌었네.
도웅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지원자들을 관찰했다.
‘저 사람은 팀 미션에서 가사 절었던 사람이네. 그 일로 팀 전원이 영향받아 탈락했었지.’
도웅은 드문드문 보이는 아는 얼굴들을 통해 스페셜K스타에 대한 기억을 복기했다.
그편이 앞길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서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덜컥.
그때 대기실 안에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누구나 아는 히트곡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가수 제히였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남자친구의 급작스러운 폭로로,
최정상을 걷고 있던 인기가 수직 하락했던 그런 가수.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시선들을 의식하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길을 안내해 준 작가에게 물었다.
“휴, 작가님. 대기실이 여기 하나 있는 거죠?”
“네, 뭐 때문에 그러세요?”
“아니에요. 그냥 일반분들이랑 같이 있는 게 조금 불편해서.”
“아, 순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그녀는 속닥이듯 말했지만 문 근처에 있던 도웅은 모든 내용을 다 들었다.
‘본인이 벌여놓은 일이 있으니 불편하겠지.’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건지, 절박하지가 않은 건지.
이처럼 오자마자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유명인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고, 깜짝이야.’
소복한 솜털에 토끼같이 생긴 외모.
어느새 옆자리에 앉아있는, 정말 이 자리가 간절해 보이는 유명인의 얼굴도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유명해질 얼굴이지.’
백설.
하얗고 정갈한 외모와 그를 받쳐주는 실력으로,
후에 아이돌로 적당히 이름을 알리고 연기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
도웅은 CF에서나 보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기분이 영 이상했다.
아직 앳된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스페셜k스타에서는 별 조명을 못 받았던 것 같은데.’
아직은 관리받지 않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살짝 촌스러운 옷.
게다가 오동통 젖살이 올라있어 그런지 외적으로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웅이 하나둘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스태프 하나가 대기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제히님 사전 인터뷰하러 가실게요.”
그에 제히가 또각또각 당당한 발걸음을 옮겼다.
‘사전 인터뷰라.’
아마 방송에 내보낼만한 인물들에 한해 따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도웅은 본 방송에서 봤던 제히의 모습을 기억해보려 애썼다.
**
옆방에 마련된 사전 인터뷰실.
제히는 단독으로 원샷을 받으며 한창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제가 오랜만에 방송에 얼굴을···., 흡···.,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기 휴지, 휴지.”
다급하게 휴지를 건네는 따듯한 말투의 남자.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지적인 외모의 이석규 메인 PD였다.
오랜만에 받은 카메라 세례와 PD의 따듯한 온정에 제히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렸다.
아니, 실은 그런 척했다. 다시 방송을 복귀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중.
제히는 프로그램의 메인 PD라는 사람이 자신을 직접 인터뷰하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내가 확실히 아직은 쓸만하다는 얘기니까.’
좀 전에 일반인 참가자들과 자신을 뒤섞어 놓은 게 조금 이해가 안 갔었지만,
이제야 중요 인물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풀렸다.
“2년 동안 사람들도 못 만나고···”
“그쵸, 그 루머 때문에.”
“네···. 그 양다리···.., 흡···., 저 정말 아니에요.”
“그럼요, 그럼요.”
제히는 한결같이 따듯한 상대의 태도에 방송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케이블이라 시청률이 지상파에 비해 미미하지만 그래도 작년에 꽤 선방했다는 프로그램.
노래로 일어서겠다는 그림을 적당히 시청자들에게 어필,
그리고 화제가 될 즈음 다른 프로그램에도 복귀하는 것이 제히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우승까지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던 이가 있었으니,
‘확실히 방송 오래 쉬어서 감 떨어졌네.’
임명이 작가는 혀를 끌끌 찼다.
‘저런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임 작가가 봤을 때 저 여가수는 최소 모니터링도 해보지 않고 덜컥 출연 제안을 승낙한 모양새였다.
그렇지 않고선 저 악마 같은 이석규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작가의 감으로 저건 100% 방송 복귀를 위한 악어의 눈물이야.’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석규 PD는 몇 수 더 악랄한 인간이었다.
임명이 작가는 이 장면이 어떤 그림으로 나갈지가 그려져 제히에게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진짜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노래에 진심이 있다면.’
제히는 과거에 가창력으로 꽤 인정받았던 가수.
임 작가는 아쉬움에 고개를 흔들며, 주요인물 자료를 넘겨봤다.
그런데.
‘어? 이 브이 자 표시.’
일전에 이석규 PD가 따로 체크해둔 브이 자 표시가 제히의 사진 위에 걸려있었다.
임명이 작가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히의 사전 인터뷰가 끝난 뒤,
“설마 이 PD가 우승후보로 찍은 게 제히야? 그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임 작가는 이석규 PD 앞에 종이를 흔들거렸다.
“그럴 리가, 그냥 감성팔이에 루머 떡밥으로 시청자 선동용.”
이 PD는 종이를 받아들더니 계속된 인터뷰로 목이 타는 듯 생수병 하나를 까 입에 털어 넣었다.
임명이 작가는 촬영이 잠깐 쉬어가는 틈을 타 둘만 있는 것을 확인하고 편히 말했다.
“너도 진짜 독하다. 공감해 주는 척. 다독여주는 척. 최대한 뽑아내서 짜깁기 할 생각으로.”
“아무도 안 쓰는 거 잘 갖다 쓰는 내가 능력 있는 거지. 쟤도 어차피 우리 프로그램 이용하려고 나온 건데 내가 이용하는 건 뭐 어때?”
“그래도 넌 너무 밑바닥까지 사람을···.!”
그때 김미진 작가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 임명이 작가가 곧장 말투를 바꿨다.
“그럼 이 PD님, 지금까지 너무 고생하셨으니까, 다음 지원자 인터뷰는 제가 진행할게요.”
“그러세요. 임 작가님.”
이 PD는 심드렁하게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물을 닦았다.
‘아무래도 이 지원자는 내가 맡는 게 좋겠어.’
임 작가는 나름 머리를 써 제가 점찍어둔 참가자들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후, 방 문이 열리고 지원자 남도웅이 어색한 듯 걸어들어왔다.
‘오늘은 안경 안 쓰고 왔네. 머리를 만져서 그런지 지난번 보다 인물이 더 살았어. 느낌에 잘만 하면 높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임명이 작가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 PD님, 바쁘실 텐데 여기는 저한테 맡기고 볼일 보세요.”
“아 예, 그러죠.”
빨리 밖으로 몰아내려는 임 작가의 말에 이 PD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눈에 들어온 지원자의 얼굴.
이석규 PD는 남도웅을 보자마자 어떤 촉이 왔다.
‘잠깐.’
그리고 아까 넘겨받은 주요인물 리스트를 확확 넘겼다.
‘여기 있다.’
화제의 일반인 카테고리에 있는 남도웅이란 이름의 지원자.
그리고 그 아래 박힌 별 표시.
이석규 PD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얘구나, 임 작가의 감.’
**
“으이차.”
강태진은 일찍부터 진행된 심사에 뻐근해진 몸을 풀었다.
캡 모자 아래 날카로운 눈을 감춘 심사위원 양승혁이 말했다.
“확실히 작년보다는 애들이 치열해.”
그는 대한민국 3대 기획사 TSP의 대표이자 과거 이름을 떨쳤던 래퍼였다.
이번에 확정된 심사위원은,
미앤의 채아, TSP의 양승혁, 판타스타의 강태진.
이 세 사람.
양승혁은 손에 깍지를 끼웠다.
“채아는 부산에서 잘 하고 있으려나?”
그러면서 천장을 향하는 시선.
아마도 장면을 부산으로 넘길 때 사용하라고 노련하게 편집점을 잡는 듯했다.
그에 오늘 객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가수 지카가 아쉬운 듯 말했다.
“저 채아 누님 팬인데.”
“그럼 새끼야 지금 짐 싸서 부산으로 가.”
독설가로 유명한 양승혁은 그런 지카를 손날로 치는 시늉을 했다.
지카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진짜 잘하는 참가자들 많네요.”
“맞아요, 기대 이상이에요.”
강태진도 그에 동의했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었던 심사위원 자리.
비록 남도웅이란 이름 때문에 최종적으로 수락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 원석들도 많고 그런 이들의 재능을 발굴하는 재미가 있었다.
두 대형 기획사는 아무래도 스타성이나 개성을 중시한다면,
강태진은 아티스트적 성향을 선호했다.
각 기획사가 생각하는 인재상이 달라서 인재 풀이 다양해졌고, 결과적으로 강태진이 참여한 의미가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도웅 씨도 올 텐데.’
강태진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남도웅에게로 넘어갔다.
현재로서는 그가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참가자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심사는 공정하게 할 거야. 이 자리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되어야 하니까.’
어차피 오디션을 진행하다 보면 특정 참가자가 눈에 들어오기 마련,
강태진의 눈에 도웅이 조금 일찍 띄었을 뿐, 프로답게 심사는 객관적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알아서 잘 할 테지만.’
그러면서도 강태진은,
내심 오늘 3차 예선에서 도웅이 얼마큼의 실력을 내보일지 기대가 되었다.
**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나를 사전 인터뷰한 거지?”
도웅은 사전 인터뷰장을 나오면서 그 점이 어리둥절했다.
2차 예선에서 자신이 가진 절실함과 기본을 최대한 보여준 게 다였고,
그게 따로 사전 인터뷰를 할 만큼 남들에 비해 특출나 보였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증거로 2차 예선에서 두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괜찮았지만 누구에게도 별이 나오지는 않았었다.
방송계 종사자들일 테니 듣는 귀가 높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사연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닌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각 인물들의 매력이 중요했다.
캐릭터들이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어필이 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냐가 프로그램의 성공을 좌우했다.
그렇기에 관계자들은 원래부터 스토리가 있거나 캐릭터가 있는 사람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3차 예선 방송분에서 참가자들의 절절한 개인사가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도웅은 그런 부수적인 요소보다는 노래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어 개인사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하네···..’
도웅은 원래대로라면 이 촬영장 자체에 없었을 인물.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자신이 이곳에서 누군가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 때문에 자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부터 미래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 같은 그런 기분.
‘이건 내가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더 하겠지.’
도웅의 가슴속에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흥분이 일렁였다.
도웅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예의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도웅의 이름이 호명됐다.
“남도웅씨, 대기 장소로 나와주세요.”
“형, 다음에 또 봐요.”
“그래, 너도 잘 보고.”
도웅은 의자에 기대두었던 기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꼬마 유정우와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마치 진짜 다음에 볼 사람에게 얘기하듯 하는 덤덤한 꼬마의 말투에 도웅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남도웅 잘 보고 와!!”
“잘 할 거야! 파이팅!!”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뒤로하고 도웅은 세트장 뒤편으로 들어섰다.
“노래가 상당히 촌스러워요. 아직도 옛날 제히에 머물러있는 것 같아요.”
세트 벽 너머로 TSP 대표 양승혁의 심사평이 들려왔다.
다른 참가자들이라면 여기서 독한 심사평을 들으며 동요할 법했지만,
시즌 7까지 섭렵한 도웅은 이미 그의 스타일에 면역이 되어있었다.
그제야 도웅은 가수 제히가 얼마나 처참히 악마의 편집에 찢어발겨졌는지가 기억났다.
루머를 노래로 극복하겠다면서 감성은 팔아놓고 과거에 머물러있던 실력.
분명히 안일했던 본인의 잘못도 있었겠지만, 그를 부각하는 잔인한 편집에 재점화된 양다리 루머로 제히는 더 이상 티브이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여기 메인 PD를 조심해야 해.’
도웅은 잘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때 다른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노래가 하고 싶으시다면, 중요한 게 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도웅이 예상했던 심사위원과는 다른 목소리.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 강태진?’
판타스타의 대표이자 발성법 영상의 주인공 강태진의 목소리였다.
도웅의 기억에 강태진이 스페셜K스타의 심사위원이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발성법을 죽도록 연습했던 도웅의 입장에서 그의 목소리가 헷갈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뭔가 또 바뀌었네.’
자신이 뭔가 강태진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변화가 생길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