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34)
034. 바라던 게 바로 이런 거였어.
영상 속의 남자는 반들반들한 피부에,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신인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
당연히 미래에서 온 도웅은 그를 더 잘 알고 있었다.
“리엘.”
외모, 노래, 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뛰어난 게 아무것도 없어,
처음엔 있는지도 몰랐던 어느 그룹의 멤버.
그룹 이름을 대면 누구든 ‘아 걔네~’
정도는 나와도, 리엘 그의 이름을 물으면
‘누구?’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그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멤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리엘이 화면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새벽 스케줄을 소화하고도 고독하게 갈고닦은 기타 커버 때문.
그렇게 ‘기타 커버 잘하는 애 있잖아,’ 하고 물으면 바로 ‘리엘?’이 나올 정도로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 성공했었다.
“그런 리엘의 기타 편곡 법을 배울 수 있다니.”
도웅은 맥박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팀원들이 깨지 않도록 주섬주섬 이어폰을 찾아다 연결했다.
-♩디리링.
영상 속의 리엘은 너저분한 책상 앞에 앉아 집요하게 기타 코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가끔 뭔가 궁금하고 풀리지 않을 때면, 음악이론 서적을 뒤적여가면서.
코드를 잡은 대로 플렛을 올려보고,
손가락 하나를 현에서 떼어도 보고, 뮤트도 넣어보고.
그는 음의 조합과 연주법을 바꿔가며 미세한 변화들을 노트 위에 기록해 나갔다.
-띠잉.
가끔 듣기 괴로운 불협화음이 나올 때면,
인상을 찌푸리고는 노트 위에 엑스 표시를 그렸다.
그렇게 리엘은 곡의 흐름에 어울리도록 절묘한 지점을 계속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로 이어지는 기타 반주.
‘···.!’
도웅이 알고 있는 곡이었지만,
세밀한 변화들, 그리고 독특한 포인트들이 합쳐져 듣는 귀를 매력적으로 사로잡았다.
같은 곡이지만 그 만의 한방이 담긴.
“내가 바라던 게 바로 이런 거였어.”
멤버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한방을 만드는 것.
하지만 방법을 몰라 머리를 싸매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바로 영상 속 재능을 스트리밍 해보세요.] [필요한 ★ 10개]도웅은 당장에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 나만의 연습실에 ‘스터디 세트’ 옵션이 추가되었습니다. ]새하얀 책상 위에 너저분한 종이.
화성학, 음악이론 같은 제목이 박힌 두툼한 책들.
도웅은 빨리 이 먹음직스러운 재능을 삼키고 싶어서,
두 눈을 희번득거렸다.
그렇기에 오늘 밤은 더 이상 잠들 생각이 없었다.
**
“아이고 뻐근하다.”
이번 트레이닝은 다른 때와는 조금 달랐다.
스트리밍 하며 몸으로 느낀 감각을 떠올려 익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도웅은 스트리밍으로 편곡한 곡을 연주하며 깨달았던 것들을,
사각사각.
스트리밍이 끝나는 순간 재빨리 노트 위에 기록하는 식으로 터득하는 속도를 높였다.
‘음, 이런 원리로···..’
그리고 책상에 놓인 책들을 통해 이론을 스스로 보충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작업도 스트리밍과 병행하였기에 깨닫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흐아암! 밤을 꼴딱 새 버렸네.”
연습실 안에서의 대미지가 현실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깨어있는 동안 신진대사는 그대로 활성화되기 때문에 피로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아침식사 중인 식당.
“형 어제 잘 잤나 보네요.”
“얼굴 좋아 보여 도웅.”
“그래? 좋은 꿈을 꿔서 그런가 봐.”
정작 코를 골며 숙면한 사람들이 봤을 때도 그의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에 마이클이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 도웅, 좋은 꿈이면 오늘 우리 대박 나는 거야?”
“네. 그럴 거예요.”
“우와우! 슈퍼 리더, 나는 럭키 멤버. 하이파이브!”
짝!
그렇게 아침부터 업텐션인 도웅의 팀원들은,
아침을 먹은 직후 다시 대강당으로 모였다.
도웅은 떨리는 마음으로 기타를 잡아들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만진 곡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제가 살짝 반주를 손봤는데, 한번 여기에 맞춰서 연습해 볼까요?”
“좋아, 렛츠 게릿!”
도웅의 손끝이 기타를 건드렸다.
예전보다 음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손끝이었다.
도웅은 팀원들의 개성과 호흡에 따라 더 세밀하게 변주를 시도했다.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네가 하는 말들이 다 낯설고 아파.
팀원들도 그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원곡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연주에 맞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본래 실력들이 탄탄하여 조금만 잡아줘도 포인트를 빨리 캐치했다.
“정우야, 여기서는 네 감정을 감추지 말고 좀 더 드러내도 돼.”
“알겠어요, 형.”
그리고 중간에 한 번씩 들어가는,
단순하지만 세련된 포인트 음.
“마이클, 여기 음이 튀는 부분에서 마이클도 느낌대로 한번 질러주세요.”
“그래도 돼?”
“네, 저를 믿고 해보세요.”
-♪Yeh, I don’t know~
그렇게 디테일을 조정해나가자,
점차 노래를 부르고 있는 팀원들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길었던 밤의 끝에 맺힌 결실과도 같은 노래를 마치고.
“우와, 형. 지금 느낌 너무 좋은데요?”
“이대로 음원 나오면 다운로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오빠.”
“저도요. 대체 어젯밤에 뭐 한 거예요.”
만족과 흥분이 가득 담긴 유정우와 백설의 목소리.
그 옆에서 놀란 마이클이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도웅, 진짜 꿈에서 연습했어?”
“네, 조금요.”
“와우, 도웅. 너는 천재야 맨.”
그는 리스펙의 의미를 담아 다시 한번 도웅에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
그날 오후.
대강당 한구석에서 이뤄진 작곡가 엄형진과 관련 스태프들의 중간 평가.
그의 전자 피아노 앞에 도웅의 팀원들이 긴장되는 듯 손에 든 악보를 만지작거렸다.
방금 끝낸 노래에 대한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
스태프들이 주목하고 있는 고요함 속에,
작곡가 엄형진이 입을 뗐다.
“하루 만에 진짜 한방을 만들어왔네요?”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아직 편곡이 단순한 수준이긴 해도, 내가 해준 한 마디에 이 정도로 포인트를 잡아내다니.’
그의 시선은 이 순간의 주역, 기타를 들고 있는 도웅을 향해있었다.
엄형진의 호평에 팀원들의 얼굴이 일순간 밝아졌다.
동시에 스태프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수군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서있던 임명이 작가는 눈에서 기쁨의 하트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역시, 내가 잘 찍었다니까?’
그 옆에서 안일하게 도웅의 팀을 지켜보던 심보라는,
시종일관 득의양양하던 기분이 땅바닥으로 처박힌 것 같았다.
‘망할, 이러다가는 내가 탈락할 수도 있겠어···!’
비로소 위기의식을 느낀 심보라는,
그 순간부터 이를 갈며 연습에 뛰어들었다.
“아, 오빠. 여기 후렴에 센 거 없어?”
“언니. 화음 똑바로 들리게 넣으시라고요.”
그녀가 건드리지 않던 변태환을 비롯해 다른 팀원들을 다그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날 밤.
심보라는 사전 인터뷰하는 자리에 앉았다.
내일 아침 팀 미션이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빨간 티를 입은 조연출이 시트를 보면서 질문을 건넸다.
“남도웅 군네 조랑 같은 곡을 연습하고 계신데, 솔직히 두 조 중에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사실 의도가 뻔한 질문.
하지만 심보라는 초조함을 내보이고 싶지 않아 오히려 더 강하게 밀고 나갔다.
“저희가 밟아버려야죠.”
“밟아요?”
“네. 남들 이기고 짓밟고. 그래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프로잖아요.”
조연출은 예상보다 센 심보라의 반응에 놀라면서도,
대결 구도를 점화시킬 분량을 확보했음에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는 상대편 조장, 도웅의 사전 인터뷰 차례였다.
조연출은 심보라에게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 장면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도웅 군. 심보라 양이 도웅 군 조를 밟고 올라가겠다고 했는데, 같은 곡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발 물어라.’
조연출은 그가 미끼를 물기를 바랐지만, 도웅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심보라 씨 조 없이도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
다음날 아침.
심사위원들은 일찍부터 공연장 정면에 마련된 데스크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심사가 시작되기 전, 팀 구성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긴 머리를 쓸어넘기던 채아가 양승혁에게 물었다.
“오늘 어느 팀이 가장 기대되세요?”
“당연히 문도겸이랑 제임스가 같이 있는 에이스 팀이 제일 기대되지.”
양승혁은 볼펜 끝으로 그들의 사진이 붙어있는 서류를 탁탁 두들겼다.
그때 채아가 눈앞의 종이 두 장을 집어 들었다.
“저는 이 두 조가 기대돼요.”
아직 외모에서는 이십 대 중반의 싱그러운 분위기가 풍겼지만,
채아도 방송 경력으로 치면 십 년이 훌쩍 넘은 베테랑이었다.
그녀는 방송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두 조가 같은 곡을 불러서 확실히 대결구도가 될 것 같아요. 그림상으로는 실력이 비등한 것보다는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게 좋을 텐데.”
채아가 턱을 괴고 사진을 바라보자,
양승혁이 데스크 쪽으로 상체를 끌어왔다.
“매치를 한다기엔 이쪽이 너무 불리하지 않나?”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남도웅 조의 사진이었다.
“어떻게 모여도 이렇게 모였냐? 이 조합을 고등학생이 혼자 끌고 뭘 하기에는 힘들 건데.”
양승혁은 3차 예선에서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지만,
다소 잔잔했던 도웅의 스타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뒷장의 심보라 사진을 끄집어내며 말했다.
“이야··· 심보라. 여긴 딱 봐도 얘가 휘두르게 생겼어. 차라리 이 조가 딱 보일 사람들만 잘 보여서 경연에서는 유리할지도 모르겠네.”
옆에 있던 강태진은 그런 도웅과 심보라의 사진을 보면서 잠자코 생각했다.
‘아마도 질 일은 없을 거야.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기대가 될 뿐이지.’
그때 채아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아까 대기실에서 슬쩍 들었는데, 요 며칠 만에 기대 이상으로 치고 나온 팀이 있다던데요?”
“그게 누군데.”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곧바로 강태진의 머릿속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졌다.
**
혹독한 심사평과 단비 같은 칭찬.
그렇게 채찍과 당근이 오가며 반나절 동안 심사가 계속됐다.
그리고 드디어 남도웅이 이끄는 조가 공연장 위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팀들은 뒤편의 관객석에 앉아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중.
생각지도 못한 도웅의 조가 중간 평가를 기점으로 두각을 드러내 보이면서,
다들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사위원 채아가 맑은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여기는 특히나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있네요. 팀 미션 준비하면서 트러블 같은 거는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대표로 맨 왼쪽 끝에 서있던 도웅이 답했다.
팀원들도 그를 보며 진실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아는 이미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인지 기대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때 장난기가 든 양승혁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진짜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다 있네 이 팀에.”
“워··· 저 노인 아닙니다.”
그 말을 알아듣고 마이클이 발끈했다.
“어, 그래 미안 미안. 마이클 아직 젊지.”
“푸하핫.”
“하하하하.”
그에 뒤에 앉은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덕에 도웅의 조원들도 긴장이 한결 풀렸다.
“조합만 봐도 어떤 무대가 나올지 기대가 되네요. 준비되면 무대 시작해 주세요.”
도웅은 기타를 바로잡고 팀원들과 눈을 맞췄다.
그의 목표는 이들 모두를 합격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팀 미션을 가장 잘 해내는 길이었다.
‘형이랑 같이하자. 형이 합격시켜줄게.’
원래라면 팀 미션에서 탈락했을 유정우.
도웅은 마지막으로 유정우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그와 눈을 맞췄다.
이윽고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 줄 세련된 기타 반주가 도웅의 기타에서 흘러나왔다.
도웅이 이틀 밤을 새워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