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35)
035. 생각보다 능력치가 높네.
투아이즈원의 Alone.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담담하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
애써 무게감을 뺀 멜로디가 무대 위에 맑게 울려 퍼졌다.
유정우의 미성이 가장 먼저 도웅의 기타 반주에 올라탔다.
-♪네가 하는 말들이 다 낯설고 아파.
나이답지 않은 깊은 감정이 꾹꾹 담겨 나오는 가삿말.
동시에 앳된 그의 목소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랑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도웅은 늘 해왔던 대로, 그리고 마이클은 한껏 자신의 소울을 담아.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백설의 안정적인 톤.
맑고 깨끗한 그녀의 목소리가 듣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너무 나쁜 네가, 난 그대로 여기에.
네 가지의 목소리가 빈틈없이 호흡을 주고받으며,
한 가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완전하게 섞였다고 해서 본래의 색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
-♬♪♩디링.
‘···.! 파트가 전환되는 부분에 저런 변주를.’
이처럼 한 번씩 귀를 사로잡는 포인트음이 기타 리프 속에 튀어나오면서,
팀원들 또한 기습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내보였다.
마치 마이클의 소울풀한 추임새처럼.
-♪ Yeh, you don’t know~oh.
‘기타 편곡을 아주 영리하게 했네.’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예상을 깨는 변칙들이,
더욱 노래에 몰입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만의 매력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도웅이 준비한 확실한 한방이자,
비장의 무기였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네 사람이 모여,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 baby I’m sorry. 아마 사랑이란 게 부족했을까.
그를 위해 서로 눈을 맞추는 모습들,
아주 예민하게 음악에 자신을 녹이는 모습들.
그 모습들이 하나의 훌륭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이들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무대는 결과인 동시에 과정 그 자체네.’
심사위원들, 그리고 이곳의 관중이자 경쟁자인 참가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잊을 만큼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윽고.
마지막 기타 반주가 호흡하듯 이들을 하나의 흐름 속으로 감싸 안았다.
“······..”
네 사람이 만든 하나의 음악이 훑고 지나간 자리.
그곳에 남은 이들이 침묵 속에 전율했다.
그 고요함을 깬 것은 채아의 맑은 목소리였다.
“잠시 회의를 하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가운데 앉은 채아 쪽으로 상체를 모았다.
그들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참가자들이 알지 못하도록 뭔가를 속닥이기 시작했다.
연신 그들이 쥐고 있는 펜이 바쁘게 서류 위를 오갔다.
“얘가 생각보다 능력치가 높네. 잔잔한 쪽으로만 특화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기타 편곡까지 하는 정도면 제법 음악적으로 깊이가 있는 친구인 것 같아요.”
“근데 얘가 딴 데 갔으면 또 묻혔을지도 몰라. 이번에 자기가 잘하는 거 보여줄 수 있는 미션 곡을 딱 잘 골랐어.”
도웅의 사진을 가리키는 양승혁, 그리고 채아의 펜 끝을 바라보며,
강태진은 애써 흥분을 감췄다.
‘훌륭한 리더십에 편곡까지. 분명 편곡 수준도 저게 다가 아닐 거야. 아마 오늘 경연에 필요한 만큼만 보여준 거겠지.’
강태진은 방금 도웅의 무대를 본 것이 무색하게 어서 도웅의 다음 무대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연신 심사위원들 사이에 도웅에 대한 평가가 오가던 중, 채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기대 이상으로 치고 나온 팀이 이 팀을 두고 하는 말이었네요.”
이견이 없는지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양승혁이 펜 끝을 네 개의 사진 위에 빙글 돌렸다.
“근데 넷 다 붙일 거야?”
동시에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맞닿았다.
**
무대 위에 올라있는 네 사람은,
방금 경기를 마친 운동선수처럼 속에서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만족한 무대였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만족과는 별개로,
심사위원들의 평가 앞에 긴장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지금껏 애써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들은 누군가는 탈락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을,
치열한 경연 프로그램 위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채아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렇게 각자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기승전결을 만든 흐름이 좋았습니다. 팀으로 노래하는 게 무엇인지 미션을 가장 잘 이해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총평에 팀원들의 얼굴에 희망이 반짝였다.
다음은 양승혁의 차례였다.
“편곡 누가 한 거예요?”
“제가 했습니다.”
도웅이 당당히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양승혁의 날카로운 눈빛이 도웅에게 향했다.
“팀원들의 강점을 살려주려는 마음이 담긴 영특한 편곡이었어요. 아직 미숙한 티는 나는데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 냈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칭찬을 해드리고 싶네요.”
‘됐어!’
가장 깐깐한 심사위원인 양승혁의 칭찬.
본인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먹혀들었다는 생각에,
도웅은 희열이 발끝에서부터 저릿하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팀원들도 기쁨에 떠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기세를 이어 강태진이 바통을 받았다.
“일관성 있게 흐름을 잡아주면서 각자의 개성을 잘 보여준 세련된 편곡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무대도 기대하겠습니다.”
방금 들은 ‘앞으로의 무대’라는 단어와 연속된 극찬.
팀원들은 당장에라도 환호를 지를 것처럼 전원 합격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그때 채아가 무겁게 입을 뗐다.
“하지만 아무리 팀 미션이라고 해도, 부족한 모습이 보였던 참가자까지 합격을 시켜드릴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아무리 좋은 팀워크와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한들,
이들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있는 이 자리가, 누군가 탈락을 했기에 서 있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그 룰을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금 함께 무대를 마친 이들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말이었다.
팀원들의 긴장이 움찔대는 손끝에 여실히 드러났다.
그 순간.
“남도웅 군, 백설 양. 앞으로 한 발자국 나와주세요.”
채아의 무게 실린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이클도 앞으로 나와주세요.”
마이클은 좌우로 눈치를 살피며 무거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럼 정우는?’
도웅은 호명된 이들의 합격을 예상하면서도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다.
“이 세 분은 합격입니다.”
예상대로 합격이란 단어가 무대 위에 울려 펴졌다.
네 명 중 세 명.
분명 기뻐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도웅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미래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건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정우를 끌어들인 데 대한 자책이 올라오려던 즈음,
“그리고 유정우 군.”
채아가 유정우의 이름을 불렀다.
팀원들은 그대로 바닥에 고개를 떨궜다.
“형, 누나들 사이에서···..”
그 순간 굳어있던 채아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걸렸다.
“제 역할을 톡톡히 했어요. 이 무대에서 누구 하나를 떼어놓는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전원 합격입니다.”
“와아!!!”
심장 쫄깃한 반전에 모두의 긴장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조그마한 유정우의 위로 달려들었다.
“꺄악, 감사합니다!!!”
“워후! 땡큐 쏘 머취!”
“아, 삼촌 무거워요.”
유정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께 얼싸안은 그들.
그들에게 다른 팀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이것이 도웅도, 그리고 팀원들도 가장 간절히 바라던 그림이었다.
도웅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모두가 함께 열심히 노 저어 얻은 대가였다.
그들은 보는 이들이 흐뭇하도록 그 달콤한 기쁨을 함께했다.
앞쪽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이 PD의 입꼬리 역시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 끝에 걸린 것은 남들과는 다른 종류의 만족감이었다.
“역시 채아가 방송을 알아.”
그리고 그의 시선은 어느새.
“임명이 감이 생각보다 쓸만하네.”
모든 팀원들이 업히고 매달려있는 남도웅에게로 향해있었다.
**
늦은 밤 아직도 불이 훤한 편집실.
오늘도 두 남자는 모니터에 영혼을 갈아 넣고 있었다.
가진 게 빨간 티셔츠밖에 없는지, 오늘도 똑같은 티를 입은 조연출이 구부정하게 키보드 위에 손을 놀렸다.
화면에는 심보라의 팀이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듣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있었다.
‘심보라 양, 경연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욕심이 너무 과했어요. 이 자리에 욕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채아의 정중하지만 단호한 말투.
그에 심보라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양승혁은 여느 때처럼 직설적으로 말했다.
‘변태환은 예선 때보다 더 못하는데?’
그에 클로즈업되는 웃음기 빠진 변태환의 표정.
‘기타도 그렇도 노래도 그렇고. 열심히 한 것 맞아?’
곧바로 변태환이 강당에서 빈둥대며 여자 팀원들과 깔깔대는 장면이 삽입된다.
조연출은 제 선배를 언제나 악마라 칭해왔지만,
그의 밑에서 자신도 악마 꿈나무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방금 전 기가 막히게 교차 편집된 변태환의 얼굴을 보면서 깨달았다.
‘팀원들이 양보 한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온 것 같아요. 정말 아쉬운 무대였습니다.’
강태진의 심사를 끝으로 우거지는 팀원들의 표정들.
그 침울한 얼굴들을 카메라가 훑는 와중 옆에서 감탄사가 들려왔다.
“크-. 얘 봐라. 이런 애들이 우리 프로그램 먹여 살리는 거야.”
그는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심보라를 가리켰다.
“일등 공신이다, 일등 공신이야.”
“이거 나가면 욕 엄청 먹을 텐데, 괜찮을까요?”
“네가 다 편집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아직 일말의 양심이라는 게 제 가슴속에 남아있나 봅니다.”
그가 불툭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야, 네 양심은 뱃속에 들어가 있냐? 그리고, 우리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이만큼 던져줬으면 알아서 잘 주워 먹는 게 도리지.”
후배가 멍청한 소리를 해대는 게 열이 받는 듯 이 PD가 미간을 찌푸렸다.
조연출도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용케 안 떨어졌네요.”
“휴-, 그러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심사위원들이 역시 방송을 잘 알아. 딱 변태환, 심보라. 이 둘만 살았으니 얼마나 더 욕을 먹겠어.”
이 PD는 싱글벙글한 낯으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하필이면 같은 노래를 고른 남도웅 팀은 전원 합격을 했는데.”
조연출이 자신도 한텀 쉬려는 듯, 테이블 위의 종이컵을 들어 올렸다.
“남도웅이 확실히 남다르긴 해요. 고등학생이 그 조합을 가지고 전원 합격을 이끌어내다니. 솔직히 여기서 떨어질 줄 알았거든요.”
“맞아, 생각한 것보다는 높이 올라가겠어.”
이 PD도 의외로 활약하고 있는 도웅을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때 조연출이 뭔가 생각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 참, 이것도 한번 봐주세요.”
딸칵 딸칵.
조연출이 편집 프로그램의 빽빽한 타임라인에 커서를 옮겼다.
화면에 떠오르는 유달리 새하얀 남도웅의 얼굴.
블라인드 곡 선택을 하기 전에 찍은 사전 인터뷰 장면이었다.
스피커에서 공통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웅 씨는 같이 팀을 이루고 싶은 사람 있나요?’
‘유정우요.’
조연출은 타임라인 위의 커서를 조금 더 오른쪽으로 옮겼다.
‘그럼 이 사람만은 꼭 피하고 싶다.’
‘···변태환 형이요.’
‘도웅 씨 캐릭터가 겹치는 것 같구나?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기타도 잘 치고.’
거기에 질겁하며 손사래를 치는 도웅의 모습.
‘아니요. 그건 정말 아니에요.’
탁.
조연출이 화면을 멈췄다.
이 PD가 황당한 눈을 했다.
“이게 뭐 어쨌다고?”
“아니, 이다음 것까지 봐보세요.”
딸깍.
다시 커서가 제 위치를 잡았다.
그러자 이번엔 까무잡잡한 변태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공통 질문에 대한 사전 인터뷰 장면.
‘태환 씨가 절대 같이 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비스듬히 앉아있는 화면 속의 변태환은 시선을 살짝 위쪽으로 올렸다.
‘남도웅?’
‘이유는요?’
‘걔한테 같이 팀 하자고 했다가 까였거든요. 여기 와서 차인 거 처음이에요.’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 떠올리는 능글맞은 웃음.
‘정말요? 왜요?’
‘그건 저도 모르죠.’
탁.
그 지점에서 다시 화면이 멈췄다.
그제야 이석규 PD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큭, 이 그림도 재미있겠네.”
다음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뼈대가,
벌써 이 PD의 머릿속에 잡히는 듯했다.
“얘네 둘이 편집 붙일만한 자료 있으면 더 찾아서 나한테 넘겨.”
“네.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다음이 라이벌 미션이었지?”
그러려면 지금부터 밑밥을 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