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36)
036. 다음 미션의 상대는 누구?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버스 안.
도웅은 주황색 불빛 아래 굳은살이 배긴 두 손바닥을 펼쳤다.
‘결국 내가 바꿨어…!’
미래를 원하는 대로 조형해나가는 듯한 느낌.
잠깐이지만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 같은 전율이 솟았다.
도웅은 전원 합격에 기뻐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도웅 슈퍼 리더! 네가 최고야 맨!’
‘이게 다 오빠 덕분이야. 고마워어엉.’
오디션장을 나오던 백설은 결국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고,
그 장면을 본 마이클도 감격에 겨웠는지 몇 번 눈가를 찍어냈다.
그중 가장 어른스러웠던 유정우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밝게 웃었다.
‘형, 덕분에 살았어요. 아니었으면 저는 여기까지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직도 도웅의 눈가에 그런 유정우의 표정이 선했다.
그 웃음을 만들어 낸 것은 실제로 도웅이었다.
그렇게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도웅은 집에 도착했다.
아직도 불 켜진 거실.
“아들! 고생 많았어.”
엄마가 도웅을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
다시 돌아온 일상.
툭.
도웅이 교실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마은율이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잘 했어?”
그에 다른 아이들까지 눈을 반짝이며 슬금슬금 몸을 틀었다.
“뭐 그럭저럭?”
“자세히 좀 얘기해봐. 붙은 거야?”
“···매주 금요일 밤 11시 NNET 채널”
“오오~. 그런 소리 하는 거 보니까 합격했나 본데?”
은율의 눈에 장난기가 번득였다.
하지만 도웅은 그에 넘어가지 않고 말했다.
“아무리 네가 그래도 얘기해 줄 수 없다. 이번 방송분부터 비밀 유지 계약을 했거든.”
그러자 이번엔 마은율이 전략을 바꿨다.
“···우리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소용없어.”
“아~ 요고 안 통하네.”
그녀는 익살맞은 표정을 짓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됐다~. 태진 아저씨한테 물어보면 되지.”
그렇게 문자를 두들기는가 싶더니 잠시 후 답장을 확인한 은율의 표정에서 도웅은 실망을 읽었다.
아마 강태진도 도웅과 같은 답을 했으리라.
그때 도웅의 책상 위에 A4용지 하나가 스윽 올라왔다.
종이를 밀어 넣고 있는 두툼한 손의 주인은 어느새 옆에 와있던 형식이었다.
“흠흠, 남도웅. 그래서 말인데.”
“뭘 그랬는데.”
“사인 한 장만 해주라.”
헛기침을 하는 모양새가 수상하더라니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도웅은 A4용지를 확 팔락였다.
“이제 방송 한번 나간 것 갖고 무슨 사인이야! 오글거리게.”
“아, 그냥 대충 아무거나라도 좀 그어봐.”
“혹시 네 눈에 내가 걸그룹으로 보이냐?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지금까지 멋쩍은 얼굴을 하던 형식이 심하게 정색해 보였다.
도웅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볼펜을 하나 꺼내들었다.
“딱 봐도 지도 내키지도 않는구만, 왜 해달래?”
“아, 우리 누나가 너 더 유명해지기 전에 미리 하나 받아오라고 그랬다고!”
형식이는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쳤다.
“누나면 인정이지. 두 개 해줌.”
하긴 제일 친한 친구에게 사인해 달라는 형식이의 기분은 오죽했을까?
도웅은 심혈을 기울여서 삐뚤빼뚤한 이름 석 자를 종이 위에 적어 내려갔다.
들어보니 형식의 누나가 근래 스페셜K스타의 재미에 푹 빠져,
도웅을 알아보고는 무지 흥분했다고 한다.
“그래서 너 오면 당장 받아오라고 성화였다니까.”
“그렇다고 네가 이렇게 순순히 누나 말을 듣는다고?”
“···여기에 용돈이 걸려있거든.”
“용돈은 인정이지.”
형식이가 대뜸 아침부터 종이부터 내민 이유가 납득이 됐다.
“자, 여기.”
“꼭 우승해라. 이거 비싸게 팔게.”
“그래, 나중에 그거 팔아서 치즈 돈가스는 사 먹게 해준다.”
도웅이 자신 만만하게 종이를 내밀자,
그제야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하이에나 같이 달려들었다.
“도웅아 나도 사인 좀.”
“나도나도.”
“아 왜들 그래.”
도웅은 말로는 아닌 척 손사래를 쳤지만,
진실의 광대가 솟아오르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편곡 덕에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졌어.’
도웅은 기타 편곡 법을 열심히 익히면서,
음악적인 능력을 차근히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가진 재능이 늘어날수록, 음악이 더욱 즐거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만큼 커다란 축복은 없는 것 같았다.
“엄마, 갔다 올게.”
“그래,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고.”
금세 미션의 주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늦은 저녁 방송국에 모여들었다.
팀원들이 도웅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또웅! 그동안 잘 지냈어? 이리 줘 캐리어 내가 들어줄게.”
마이클이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도웅의 캐리어를 가로챘다.
그의 곁에 가려져있던 팀원들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형, 왔네요.”
“오빠, 학교 가니까 난리 났지.”
아직 학생인 이들의 상황도 도웅과 다르지는 않았는지,
백설은 사인을 연습했다며 공중에 뭔가 그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오빠는 첫 방송에 많이 나와서 더 했겠네? 나는 아직 방송에 별로 안 나와서 이번 주가 어떨지 너무 기대돼.”
“워, 나도 저번 주에 2초 그리고 끝.”
아직 스페셜K스타는 예선을 몇 주에 나눠 방송하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 이들은 짐 정리 후 곧장 로비로 모였다.
팀원들을 앞에 둔 도웅이 말했다.
“제작진이 일단 저녁부터 먹으라던데 식당으로 가죠.”
마이클은 어릴 때부터 종종 한식을 먹어 다행히 음식이 입맛에 맞는 듯했다.
하지만 묘하게 초딩 같은 입맛이 애늙은이 같은 유정우의 입맛과는 대비됐다.
“워! 맨! 오늘 메뉴 짜장밥에 소시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두 개!”
“쩝··· 오늘은 얼큰한 국이 없네요.”
‘이제 한 사십 명 정도···..’
도웅은 입안의 소시지를 톡톡 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대충 남은 참가자의 머릿수를 세어보니 그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순식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대기실에서 데면데면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 팀 미션으로 친해진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물론 팀 미션으로 더 사이가 나빠진 심보라와 변태환 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때 어두움을 발산하며 밥을 먹고 있는 깡마른 남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변이 없다면 이번 시즌 2의 우승자가 될 문도겸이었다.
‘문도겸이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방송에서는 좀 더 밝은 모습이었는데.’
도웅은 지난주 그의 삶이 고단했겠거니 추측하고 다시 식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지나가던 건장한 청년 하나가 도웅에게 말을 걸었다.
“저번 팀 미션 무대 괜찮게 봤어.”
말투에서부터 거만함이 뚝뚝 묻어 나오는 해외파 엘리트, 금수저.
노래 실력까지 다 가진 남자 제임스였다.
그의 양손에는 남들에게는 없는 생과일주스가 들려있었다.
“뭐야 제임스, 그거 어디서 났어.”
자신이 미처 못 받은 게 있을까 마이클이 선글라스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아, 이거 내가 미리 특별 주문해 놓은 거. 매일 먹는 거라. 그럼 이만.”
제임스가 어깨를 들썩하더니 제 자리로 향했다.
“저 놈 여기가 뉴욕 할렘이었으면 총 맞았어. 왜 자기만 좋은 거 들고 다녀.”
“저 오빠도 미국 뉴욕 출신이라던데요?”
“조큼 재수 없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어퍼이스트 출신이야.”
마이클은 도웅에게는 순한 양 같지만, 가끔은 저런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제임스의 묘하게 거만한 말투나 여기까지 와서 특식을 챙겨 먹는 모양새가 거슬릴 만도 했다.
‘그래서 나는 문도겸을 응원했었지.’
원래 모든 걸 가지고 있는 금수저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법이었다.
제임스와 문도겸.
끈끈한 동료이지만 서로를 넘어서야 하는 두 사람의 가슴 아픈 대결구도가,
스페셜K스타가 많은 사랑을 받는 데 한몫을 했었다.
자리로 돌아간 제임스가 문도겸에게 주스 한 잔을 건넸다.
‘고마워’
탁.
입으로 고맙다던 문도겸은 그런 주스를 묘하게 신경질적으로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 뭐지?’
감이 둔한 제임스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도웅은 뒷골이 싸한 느낌이 들었다.
**
식사 후 모두가 공연장으로 모였다.
“다음 미션을 알려주려나?”
“시즌 1 때는 이맘때쯤 라이벌 미션을 하던데.”
지원자들은 저마다 추측을 하며 쑥덕였다.
그때 마이클이 불쑥 말했다.
“도웅이랑은 라이벌 미션 하고 싶지 않아.”
“나도, 오빠. 그래야 좀 더 오래 살지.”
“그래, 살려줘 또웅! 제발 우리를 죽이지 마.”
마이클이 당장 탈락을 눈앞에 둔 듯 감정을 이입했다.
“누가 들으면 제가 살인자인 줄 알겠어요.”
“살인자 맞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이고 위로 올라갈 거잖아.”
“마이클 한국어 누구한테 배웠어요?”
“우리를 어저께 살려놓고 오늘 죽이면 진짜 나쁜 놈이야.”
마이클은 도웅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불쌍한 눈을 했다.
어차피 백설과 마이클은 도웅이 알고 있는 미래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 미션에서는 무사히 올라간다.
정우는··· 여기서부터는 모든 게 저 하기에 달렸겠지만.
‘그나저나 내 라이벌이 누구일지 가늠이 안되네.’
미래에서 온 도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무대 위의 화면에 스페셜K스타 로고가 떴다.
-와아!!
참가자들이 반사적으로 함성을 질렀다.
그렇게 미션을 발표하는 줄 알았으나, 곧바로 떠오르는 방송 화면.
본 방송을 이곳에서 함께 시청하는 듯했다.
“우와, 어떻게 해. 이거 못 볼 줄 알았는데.”
백설이 설레는 듯 도웅의 팔뚝을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두들겼다.
이어 화면 위에 뜨는 팀 미션 발표 장면.
참가자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출발해 주십시오!’
벽 너머로 곡을 선택하러 떠나는 장면, 팀을 나누는 장면 등.
짤막하게 도웅의 팀원들도 화면에 얼굴을 비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팀들의 무대와 심사 장면.
‘이제 반절은 지난 것 같은데 우리 팀은 이번 주에 안 나오려나.’
그렇게 생각할 즈음 도웅의 얼굴이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대강당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남도웅 군을 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은데요.」
악보를 든 채 팀원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 장면.
바로 그 뒤에 도웅을 흘끔거리는 여학생들의 표정이 삽입됐다.
그와 함께 도웅의 머리 뒤에 들어가는 후광 효과.
‘아오, 편집 뭐야.’
도웅은 오글거리는 편집에 팔뚝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조금 다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어진 화면에서는 심보라가 독살스럽게 올라간 두 눈으로 도웅을 견제하고 있었다.
심보라네 조의 경연은 도웅이 알고 있던 것보다 엉망이었다.
안 그래도 독식하고 있는 파트를 일관되게 오버해서 부르는 장면에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마 나 때문에 더 초조했을 거야.’
이전에는 상대 조를 가뿐히 이겨버리고,
인성과 실력 어느 것이 중요하냐 갑론을박을 벌이게 했던 참가자였던 심보라.
하지만 도웅이라는 변수 때문에 이번엔 그 실력조차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다음으로 화면을 이어받은 팀은 당연하게도 도웅의 팀이었다.
화기애애한 연습 장면, 편곡으로 기뻐하는 팀원들의 모습 등.
무대를 보자 그때의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이제 방송 거의 끝날 시간이네.’
도웅은 이제 곧 예고편이 나오겠거니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화면이 관객석을 비췄다.
그리고 클로즈업되는 투 샷.
화면에 떠오른 것은 유난히 하얀 남도웅과 더욱 까무잡잡 해보이는 변태환의 얼굴이었다.
‘뭐야, 지금 찍고 있는 건가?’
도웅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도웅 곁에는 팀원들뿐이었다.
‘팀 미션 이후 관객석에 앉아있던 장면이구나.’
도웅은 그제야 알아채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근데 갑자기 이건 왜.’
그렇게 의문을 가지던 때, 화면에서 내래이션이 흘러나왔다.
「경연 이후로 유난히 대비되는 표정의 이 두 사람.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겹치는 구석도 많습니다.
첫 번째. 잘생긴 얼굴.
두 번째. 수준급인 기타와 노래.
그리고···.
‘태환 씨가 절대 같이 팀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남도웅?’
‘그럼 이 사람만은 꼭 피하고 싶다.’
‘···변태환 형이요.’
서로를 싫어하는 것까지.
꼭 닮은 두 사람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다음 주!」
‘이걸 이렇게 끝낸다고?’
도웅은 당황스러움에 두 눈을 깜빡였다.
동시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변태환과 도웅을 번갈아 오갔다.
그때.
‘풋.’
변태환이 도웅을 돌아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라이벌 미션의 상대가 누구인지는 잘 알겠네.’
도웅은 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방법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