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37)
037.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마이클이 변태환의 뒤통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웅, 아무래도 네 미션 상대는 저 변태···.”
“아아, 여러분 공지가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 별도의 미션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숙소로 돌아가 일찍 잠자리에 드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제작진의 공지에 마이클의 말이 절묘한 데서 잘렸다.
“별도의 미션?”
“라이벌 미션 얘기하는 거겠지.”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라이벌 미션을 아침에 발표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내일 아침에 기상 미션이 있을 예정이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도웅뿐이었다.
참가자들은 누구도 제작진의 말에 개의치 않으며 느릿느릿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남녀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일 백퍼 라이벌 미션이라니까, 누나?”
“까르르르. 아니면 어떻게 할래?”
“아니면 나랑 누나랑 사귀는 거지 뭐.”
“어머, 얘는?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깔깔깔”
도웅은 이 와중에도 끊임없이 작업을 걸고 있는 변태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방송국에서는 저런 카사노바의 이미지를 재미로 소비했지만,
저게 웃어넘길 콘셉트가 아니라는 것을 도웅은 잘 알고 있었다.
“남도웅?”
그때 변태환이 우뚝 멈춰 서더니 뜬금없이 도웅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래도 너랑 내가 붙을 것 같은데?”
변태환이 얼굴에 조소를 띄웠다.
“저도 그럴 것 같네요.”
“난 남자는 안 봐준다.”
그의 안면에는 어린 도웅에 대한 만만함이 만연하게 깔려있었다.
팀 미션에서 혹평을 들은 것이 전부 심보라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태도였다.
“저도 형이라고 안 봐줘요.”
도웅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덕에 둘 사이에 몇 초간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먼저 눈을 피한 것은 변태환이었다.
“풋. 팀 미션으로 너무 기가 살았네. 그럴 때지.”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치며 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웅이 실제 서른에 가까운 나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저렇게 나이로 부심을 부리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마이클의 측은함 가득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변태환의 뒤통수에 박혀있는 채였다.
“저 눈 밑에 다크서클 심한 애 불쌍하다.”
그가 눈가 아래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왜요?”
“쟤는 아무리 센척해도 여기서 도웅한테 죽는 거잖아.”
그리고 마이클은 탄탄한 근육이 붙어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만 아니면 괜찮어.”
**
숙소에 마련된 휴게실 한편에 남녀 한 쌍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노트북에 꽂혀있는 채였다.
화면 위에는 스페셜K스타2의 오늘 자 시청률이 떠 있었다.
“좋았어! 7.4%!”
숫자를 확인한 이석규 PD가 공중에 주먹을 휘둘렀다.
임명이 작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하고 벌렸다.
“이야··· 이 정도면 우리 채널 최고 신기록 아니야?”
“이대로만 가면 초대박이야. 초대박!”
“와! 우리 고생한 보람 있다 야.”
임명이 작가는 그동안의 고단함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시즌 1 때의 평균 시청률은 3%.
순간 최고 시청률이 6.1%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대개 시청률은 떨어지기보다 올라가는 편이니 잘만 하면 꿈의 10% 대도 노려볼 수 있는 것이었다.
임명이 작가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번에 잘 안될까 봐 얼마나 가슴 졸이고 있었는데.”
“망할 수가 없지. 이석규랑 임명이가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두 사람은 그동안 전쟁 같은 시간을 같이 견뎌온 입장으로서,
모처럼의 끈끈한 전우애를 느꼈다.
그때 휴대폰으로 뭔가를 확인하던 임명이 작가가 비명을 꺅 질렀다.
“야! 실시간 검색어에도 떴어!”
“어디 봐봐.”
이석규 PD는 재빠르게 검색창을 띄웠다.
8. ······.
9. 스페셜K스타 시즌2
정말 실시간 검색어의 말단에 스페셜K스타의 이름이 걸려있었다.
그는 링크를 타고 클립 동영상 사이트로 들어갔다.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방송분의 조회 수를 슥 훑은 이석규 PD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남도웅 VS 심보라 영상 조회 수가 제일 높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흡족한 반응.
그의 손가락이 마우스의 휠을 당겨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다.
-심보라 인성 실화? 쟤 안떨어트리고 뭐 하냐.
-무대에서 지만 튀겠다고 발악ㅋ 추하다.
-남도웅도 비슷한 나이인데 솔직히 보는 내내 너무 비교됐음.
ㄴ 맞아. 남도웅 팀 전원 합격했을 때는 눈물 날 뻔.
-진심으로 이끌어주니까 팀원들이 의지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
댓글들은 크게 심보라를 욕하거나 남도웅을 칭찬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이석규 PD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역시 심보라가 우리 프로그램 숨은 공신이라니까.”
“남도웅이 확 비교되게 잘 했으니까 더 그림이 나왔지.”
옆에서 임명이 작가가 말을 거들었다.
이석규 PD는 다시 마우스에 놓인 손가락을 굴렸다.
다음으로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뭔가를 발견한 이석규 PD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건 한번 던져봤던 건데, 반응 좋네.”
-[스페셜K스타2] ”나도 네가 싫다” 두 남자의 공통점 모음집. (남도웅, 변태환)
그가 보고 있는 화면에는 방송 말미에 나갔던 남도웅과 변태환의 비교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자꾸 입가를 움찔거리는 이 PD의 반응을 보고 임명이 작가가 말했다.
“혹시 이 PD가 찍었다는 게 변태환이야?”
“아니?”
“근데 왜 그런 표정이야.”
“이걸 보니까 다음 미션 시청률도 기대가 돼서.”
임명이 작가는 아까 자판기에서 뽑아둔 음료수 캔을 내밀며 슬쩍 물었다.
“그럼 이 PD가 찍었다는 건 누군데?”
하지만 이석규 PD는 그냥 씨익 웃을 뿐이었다.
탁.
임명이는 이 PD가 곧 잡을뻔한 음료수를 빼앗았다.
“비겁하네. 자기는 내가 찍은 거 누구인지 알고 있으면서.”
“그야 내가 알려주면 네가 술수를 쓸까 봐 그러지.”
“내가 무슨 술수를 써?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임명이 작가는 대학생 때 과탑을 두고 이석규 PD와 치열하게 경쟁했던 때가 떠올랐다.
“아무튼,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두고 보자고. 편집으로 장난치지 말고.”
“난 정정당당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아이고 그러시겠지. “
“PD라는 게 원래 시청률만 잘 나오면 정정당당해지는 거야.”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성적만 잘 나오면 장땡이라고 그렇게 리포트를 돈 주고 사서 내셨대?”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그 리포트 내가 팔았으니까.”
목적이 달랐을 뿐 양심에 털 난 것은 어차피 둘 다 마찬가지였지만,
이석규 PD가 당황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임명이 작가는 그런 이 PD를 슬쩍 흘기고 마우스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려 남도웅과 변태환의 영상 아래 댓글을 확인했다.
-서로 싫댘ㅋㅋㅋㅋㅋㅋ
-흑 VS 백.
-카사노바랑 모범생 서로 딱 싫어하게 생기긴 했다.
-이 둘이 붙여놓으니까 다른 매력이 있어서 좋긴 함. 착하게 잘생김 VS 나쁘게 잘생김.
-팀전에선 남도웅이 선방했는데… 아마 라이벌 미션에서 둘이 붙이려고 떡밥을 뿌린 거겠지?
-예선만 봤을 때는 변태환 승리 예상함. 팀 미션에서는 심보라한테 휘둘리느라 실력 발휘 못했으니까.
ㄴ 똑같은 팀 미션에서 한 사람은 리드하고 한 사람은 휘둘리고 그게 역량차이 아님?
ㄴ 여기선 변태환이 형인데 휘둘리겠어?
ㄴ 심보라는 누나라서 휘둘렸음?
ㄴ 응 노래만 잘하면돼.
ㄴ 응 아니야.
댓글을 훑은 임명이 작가가 중얼거렸다.
“그래 이 투 샷이 딱 흥미 불러일으키기 좋긴 해. 외모나 실력이나 둘 다 출중하니까.”
“그치?”
어느새 근처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대고 있던 이석규 PD.
임명이 작가가 소름 끼친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옆으로 비켜섰다.
“이것 봐. 난 땔감만 던졌는데 알아서 잘 타오르잖아. 이 맛에 PD 한다니까.”
그는 아래의 엉겨 붙고 다투고 있는 댓글들을 확인하면서 즐겁다는 듯 낄낄거렸다.
임명이 작가는 그 모습을 보자 없던 정마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일이 적성에는 참 맞아 보이네.”
그녀는 그런 이 PD를 두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거운 장작을 지필 다음 불쏘시개를 발견한 이 PD의 안경에는,
노트북 화면이 기괴하게 비치고 있었다.
**
푸-하, 퉷퉷.
도웅은 팀원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욕실에서 이를 닦고 있었다.
‘일단 라이벌이 누군지 알았으니 생각할 시간은 벌었네.’
남들보다는 먼저 상대에 대해 알았으니,
미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도웅은 지금부터 전략을 짤 수 있었다
‘변태환이랑은 진짜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승리만 취한다.’
라이벌 미션에서 승리하려면 심사위원 세 명 중 두 명 이상에게 캐스팅 카드를 받아야 했다.
캐스팅 카드를 건넨 회사 중 한 군데를 선택하여 이후 그곳에서 생방송을 위한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두 개 이상의 카드를 받지 못하면 둘 다 자동 탈락이지만.
‘내가 여기서 변태환을 떨어트리면 미래가 바뀔지도 몰라.’
변태환은 라이벌 미션을 기점으로 큰 인기를 얻어 이후로 승승장구를 했다.
만약 여기서 변태환을 떨어트린다면,
‘아직 주목받을 지원자들은 많고, 패자는 곧 잊혀지는 법.’
늘 그렇듯 지금까지 반짝하고 사라진 일회성 참가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변태환은 여기서 화제성을 끌어올 만한 역량이 되니까···.’
도웅은 변태환을 이용해 그 화제성을 제 것으로 만들 요량이었다.
변태환은 기타를 노는 듯 다루는 참가자. 그래서 언제나 설렁설렁 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전에서는 항상 최대치를 발휘했다.
그것이 상대를 방심하게 하고 허를 찌르는 그만의 전략인지도 몰랐다.
‘거기에 말리지 않으려면 애초부터 우위를 점해야 해.’
변태환에게 최적으로 맞서기 위해서 도웅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실력, 몇 가지의 미래 정보, 그리고 행운.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던 때 누군가 욕실 문을 쿵쿵 두들겼다.
“도웅, 똥 싸?”
“아뇨, 이 닦아요.”
“나 급해 도웅, 쏘리.”
도웅은 대충 얼굴의 물기를 닦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후다닥. 마이클은 종종걸음으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고,
유정우는 이층 침대 사이의 간이 테이블 위에 낡은 책 하나를 펼쳐보고 있었다.
“정우야, 그거 뭐야?”
슬쩍 보니 빛바랜 종이 안에 종종 한문도 보였다.
유정우는 도웅의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형, 형도 내일의 운세 봐 드릴까요?”
“운세?”
“네. 저희 할머니한테 배웠거든요.”
도웅은 이전에 유정우가 부적을 가지고 다니던 것을 기억하고 호기심에 그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생년월일 같은 몇 가지 정보를 주자 유정우가 낡은 책을 이따끔 펄럭였다.
그리고 어느 페이지를 훑어내려 가는 작은 손가락.
그곳에서 유정우가 뭔가를 찾은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형, 내일 형한테 행운의 여신이 따른대요.”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
드르렁- 쿨.
마이클과 유정우가 아직 코를 골고 있는 이른 시간.
[완료율을 집계합니다.]-빰빠바밤!
[Great! 완료율 97% 달성!]도웅은 오늘도 새벽같이 기타 편곡법 트레이닝을 하고 나왔다.
“3% 남은 게 아깝긴 한데,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도웅은 서둘러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양말을 신으면서 마이클과 유정우를 흔들어 깨웠다.
“마이클! 빨리 일어나요.”
“아, 왜 그래. 도웅, 나 조금 피곤해.”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그때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끼긱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이내 제작진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퍼져 나왔다.
딩동댕동-!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선착순으로 미션 곡 선택권을 드릴 예정이니 서둘러 나와주세요.
도착해야 할 장소는 대강당입니다.
“···.음?”
“아우···.”
– 기상 미션 바로 시작합니다!
마이클과 유정우는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지, 침대에서 몸통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도웅은 애벌레 같은 이들을 포기하고 먼저 밖으로 튀어나갔다.
“빨리들 일어나서 뛰어와! 미션곡 꼴등으로 고르고 싶지 않으면!”
팟-!
도웅은 바람을 가르며 날쌔게 복도를 달려나갔다.
-끼익, 탁.
도웅이 지나가고 나서야 다른 방의 현관문들이 다급히 열리기 시작했다.
“···방금 뭐가 지나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