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39)
039. 튄다, 불꽃!
돌돌 만 종이 뭉치 하나를 들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이석규 PD.
그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참가자들이 한창 연습을 시작하고 있는 대강당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싸우는 팀 없나~.’
갈등은 참가자들이 합을 맞추기 시작하는 시점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법.
낌새가 보이면 바로바로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아내야 했기에 이 PD의 감각이 곤두서있었다.
‘싸움이 커질수록 나는 땡큐고~.’
이제 생방송 무대에 올라간 탑 10 정도 되면,
웬만해선 갈등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꽃이 여기서 튀어야 해. 남은 방송에 불이 옮겨붙도록.’
라이벌 미션.
제목부터 시청자들 구미를 당기기 좋은 이 구간을 최대한 이용해서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확 끌어올려 놓아야 했다.
경험상 주로 여기서 참가자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팬덤이 형성됐고,
그것이 후반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좌우했다.
여기서 최대한 불씨를 당겨놓아야 했다.
그를 위해서 이 PD가 심어놓은 비장의 무기는 두 팀이었다.
‘어디 보자 문도겸이랑 제임스는···.’
뛰어난 실력,
그러나 태생이 극과 극인 금수저와 흙수저.
너무 다른 두 사람의 배경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이 둘은 서로의 의견을 잘 수용하며 순탄하게 미션을 진행 중이었다.
‘그래, 너희는 그대로만 해라.’
팀 미션 때 음악으로 이어진 둘의 우정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 PD는 그 점을 이용해서 두사람이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동료이지만 서로를 넘어서야 하는 그런 가슴 아픈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그래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이고 생방송 무대까지 그 관심을 끌어오기 위해서.
‘어차피 누가 탈락하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릴 거니까.’
이 PD는 현재 화제성이 가장 높은 이 둘은 어떻게든 TOP10까지 끌고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심어놓은 비장의 무기는···.
‘변태환과 남도웅.’
서로 싫어하는 두 남자 사이에 벌어질 불꽃 튀는 경쟁과 갈등.
그것이 이 PD가 그 둘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었다.
둘의 비주얼도 괜찮고, 무엇보다 실력이 비등한 편이라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남도웅이 생각보다 보통내기가 아니던데. 변태환한테 제대로 덤벼주기만 한다면···.’
이석규 PD는 그렇게 바라며 그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형, 어디 가요?’
‘스태프 누나랑 아까 하던 얘기 좀 마저 하고 오게.’
연습은 대충 하고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 변태환.
상황이 생각처럼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 고등학생인 남도웅이 변태환에게 말리는 모양새였다.
‘쯧, 이러면 재미없는데. 내가 고등학생한테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이 PD는 이 장면이라도 살려볼 요량으로 카메라맨에게 손짓했다.
그때였다.
‘형, 제 기타 편곡도 들어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남도웅이 태연하게 기타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달라지는 변태환의 표정.
당황, 견제, 욕심, 위기감.
이 PD는 그 표정에서 여러 감정들을 읽었다.
‘아까 코러스로 넘어갈 때 친 부분만 다시 보여줘 봐.’
변태환은 그대로 다시 자리에 눌러앉았고,
남도웅의 편곡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 9플렛으로 슬라이드 시켜서 2번 줄을 이렇게 바꾸면···.’
-♪디링.
남도웅이 먼저 보여주면, 변태환이 따라 연주해 보는 모양새.
한순간에 주도권이 남도웅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좀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열기가 두 사람 사이에 감돌기 시작했다.
‘튄다, 불꽃! 그래 좀 더 치열하게 싸우란 말이지.’
이석규 PD는 안광을 번뜩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
도웅과 변태환은 새로 연습한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같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세련되게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
‘어린 게 제법인데? 생각보다 감이 있어.’
변태환은 도웅의 편곡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변태환은 약간의 위기의식,
그리고 욕심을 느꼈다.
‘어차피 편곡을 누가 했냐보다는 그 자리에서 잘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래서 변태환은 도웅의 편곡대로 경연에 서기로 했다.
그는 도웅의 반주를 따서 곧잘 따라 했다.
적당히 연습하고, 적당히 익혔을 때쯤,
날카로워졌던 변태환의 눈이 다시 게슴츠레하게 풀렸다.
변태환은 캐치가 빨랐고,
재능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태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네.
그는 쉽게 만족하더니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너도 무대에서 이 정도만 해줘라.’
도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소지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노래와 기타 반주에 귀 기울여 더욱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나갈 생각이었다.
그럴수록 이 곡은 더욱 도웅에게 맞는 옷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도웅은 숙소에서 마이클, 유정우와 다시 모였다.
이제 내일이면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갈릴지 알 수 없었다.
도웅은 그간 정이 들어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유정우가 물었다.
“형, 연습 많이 했어요?”
“응, 그럭저럭.”
“아까 보니까 변태환 형 여기저기 돌아다니던데. 그 형 좀 꼴불견이에요.”
꼬마 유정우의 눈에도 그리 보였을 정도면 말 다 한 것이었다.
“그 형은 분명 그러다 큰코다칠 거예요.”
정우가 애늙은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는 미래에 들어맞는 말이라 도웅은 약간의 웃음이 삐져나왔다.
“아 맞다, 정우야. 어제 네가 봐준 오늘의 운세 좀 잘 맞았던 것 같아.”
“행운의 여신이 따를 거라고 했던 거요?”
“응, 오늘 결국 내가 원하는 곡을 골랐거든.”
“에이, 이런 거 다 재미로 하는 거죠. 형이 일찍부터 준비했으니 기회를 잡은 것뿐이에요.”
유정우는 어른스럽게 얘기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때 마이클이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근데 동생, 이거 진짜 잘 맞는 거 같애.”
“남의 충고를 듣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이거요?”
“그래, 나 도웅 말 안 듣고 늦장 부려서 동생이랑 거의 꼴등으로 노래 골랐잖아.”
마이클이 심각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나 내일의 운세도 봐줘 봐. 내 라이벌이랑 해서 누가 이기나.”
“그렇게까진 안 나와요. 잠시만요.”
유정우는 낡은 종이를 몇 번 펄럭이더니 한 구절을 찾아 읊었다.
“경거망동하지 않으면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다.”
“경고 망고 뭐야? Mango?”
마이클이 두 손으로 망고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듣는 마이클에게도 경거망동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노력 끝에 예상보다 많은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도웅은 유정우가 봐준 내일의 운세를 되새기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후,
휴대폰을 켜 나만의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빰빠바밤! 빰빠바밤! 빠 빰!
[Congratulation!] [‘신인 아이돌 L의 기타 편곡법(C)’ 완료율을 100% 달성했어요!]재능을 하나 더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네.”
실력으로 변태환을 박살 내는 것.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고 그가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도웅의 계획이었다.
유명세를 미끼로 질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 못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의 검은 날개를 한번 부러트려 볼 생각이었다.
**
“이제는 진짜 치열하긴 하네.”
“네, 수준 낮은 참가자들은 이제 어느 정도 다 걸러진 것 같아요.”
거의 절반의 라이벌 미션 심사를 끝낸 양승혁과 채아가 잠깐 한숨을 돌렸다.
양승혁은 다음 참가자들이 적힌 서류를 들어 올렸다.
“여기도 꽤 빅 매치야.”
남도웅과 변태환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방금 생수병으로 목을 축인 채아가 말했다.
“둘 중 하나를 벌써 떨어트리는 건 좀 아깝지 않아요? 둘이 약간 이번 시즌의 비주얼인데.”
양승혁은 찡그린 얼굴로 미간을 긁적였다.
“내가 봤을 때 얘네가 이번 미션 불쏘시개야.”
“그런 것 같아요. 어제 이 둘이 연습하는 영상이 벌써 인터넷에 올라가 있더라고요. 화력이 괜찮아요.”
“그걸 미리 보면 어떻게 해? 오늘 심사하는 사람이.”
“에이, 선배님. 이석규 PD 모르세요? 둘이 부딪히는 장면만 나오고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둘이 부딪혔어?”
“네. 변태환 참가자한테 남도웅 군이 휘둘리는 것 같더라고요.”
“쯧쯧.”
갑자기 무대에 대한 기대가 확 떨어지는 것 같아,
양승혁이 혀를 끌끌 찼다.
옆에 있던 강태진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역시 대진표가 안 좋았어.’
하지만 도웅이 여기서 떨어지더라도,
강태진은 다시 한번 판타스타와의 계약을 제안 해볼 요량이었다.
그는 애꿎은 스페셜 캐스팅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다음 참가자 들어와 주세요.”
채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나갔다.
곧이어 훤칠한 키의 두 남자가 스탠딩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았다.
각자 기타를 메고 있는 채였다.
채아가 질문을 던졌다.
“두 분 연습은 많이 하셨어요?”
“네, 저 여기 다크서클 좀 보세요.”
변태환이 자신의 눈 밑을 가리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채아는 어제 도웅과 변태환의 연습 영상을 본 상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편집에 써먹기 좋도록 유도 질문을 한 것뿐이었다.
채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열심히 하셨는지는 결과가 말해주겠죠? 준비되면 무대 시작해 주세요.”
곧바로 두 사람의 리드미컬한 기타 반주가 공연장을 울렸다.
예상치 못한 멜로디 전개에 심사위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남자의 후회가 담긴 곡.
노래의 첫마디는 도웅의 목소리로 장식되었다.
-♩ 그땐 알지 못했지 나의 마음을.
기타 반주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는 소리가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심사위원들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노래에 집중했다.
-♩ 그리움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다음으로 변태환의 굵은 목소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앞의 도웅과 견주기에 손색없는 실력.
역시 변태환은 실전에 강했다.
이후 두 사람이 점점 치열하게 노래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끝없는 어둠
-♪그 방황 속에
-♩더욱 깊은 곳으로
주고받는다기보다는 서로 받아치는 것에 가까운 날카로움과 치열함.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심사위원들도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기 시작했다.
막상막하인 두 사람의 경쟁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눈에 두 사람 사이에 튀는 불꽃이 보이는 듯하던 무렵.
-♩ 워우우- 잊을 수 없이 짙어진 그리움이.
후렴에서 도웅의 시원한 고음이 기타와 맛깔나게 맞아들어갔다.
‘완전히 자기 노래처럼 소화를 하네.’
양승혁은 도웅이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에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이어진 변태환의 거친 고음.
그런데.
‘···.!’
그 소리가 어딘가 미세하게 반주와 잘 섞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언뜻 듣기에는 알아챌 수 없는 미세한 차이였다.
순식간에 2절이 끝나고 마지막 후렴.
조금씩 덜커덕 거리던 차이가 이젠 꽤 티가 날 만큼 벌어졌다.
그 덕에 참가자, 심사위원, 스태프들까지.
그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도웅에게로만 쏠렸다.
초반에 비등하던 곡의 주도권이 완전히 남도웅에게로 넘어온 것이었다.
도웅이 일부러 페이스를 조절한 결과였다.
그때였다.
‘변태환 저거 고음 넣을 때 기타 안 치네?’
날카로운 양승혁의 눈이 멈춰있는 변태환의 손을 잡아냈다.
그는 퍼포먼스인 것처럼 마이크를 잡아채고 고음을 내는 데만 집중했다.
살갗에 와 닿는 위기감. 또는,
제 강점을 최대치로 발휘해 승부를 보기 위한 약삭빠른 행동이었다.
-♩ 이제 너를 보내야만 하는데.
반면에 남도웅은 쭉쭉 뻗어 나가는 두성으로 손쉽게 고음을 받아치면서도,
기타에 미세한 디테일을 넣고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이 곡의 주인이 남도웅이구나.’
-♩ 예이예에에!!
두 사람의 치열한 에드리브을 끝으로 노래가 끝이 났다.
아직도 무대 위에 치열했던 열기가 후끈했다.
채아가 흥에 겨웠는지 소리를 질렀다.
“워후우! 좋다!”
그녀의 시선은 도웅을 향한 채였다.
심사위원석에서 이 정도로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는 일은 드물었다.
잠시 후 분위기가 진정될 즈음, 사회자가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무대였는데요. 그럼 이제 심사평과 함께, 원하는 참가자가 있다면 캐스팅 카드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앞에 놓인 캐스팅 카드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번 판에 셋 다 카드를 사용할 작정인 듯싶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백히 한 사람이었기에.
그 와중 맨 먼저 마이크를 집어 든 것은 양승혁이었다.
“이 얘기는 꼭 해야겠습니다, 변태환씨.”
“넵!”
변태환이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양승혁을 바라봤다.
양승혁이 자신에게 캐스팅 카드를 건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그러나.
“정말 이번 시즌 최악의 무대였습니다.”
양승혁이 최악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어 진저리가 난다는 투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변태환의 얼굴에 떠있던 웃음기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양승혁의 혹평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양승혁.
그가 괜히 독승혁이라 불리우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