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44)
044. 네. 저도 질 생각 없어요.
도웅은 주소에 적힌 어느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톤의 나무가 많이 쓰인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어? 그런데 왜 두 사람이지?’
여러 대의 카메라가 양쪽을 분산해서 조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도웅도 예상치 못한 그림이었다.
한쪽에는 도웅이 바라던 대로 소녀이룸의 화연이,
다른 한쪽에는 그들의 라이벌 그룹인 레드퀸의 은홍이 앉아있었다.
‘설마 뭐가 바뀌었나?’
도웅은 제가 예상한 그림에서 미래가 벗어났을까 약간 식은땀이 흘렀다.
귀엽고 단정한 외모의 화연.
섹시한 매력의 은홍.
첨예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두 여자 앞에 도웅은 덜컥 멈춰섰다.
두 사람은 잠자코 당황한 도웅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웅 씨, 여기예요.”
이윽고 화연이 낮게 손을 들어 보였다.
도웅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화연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휴, 다행이다.’
도웅은 제 계획이 틀어지지 않은 것에 안심했다.
‘그런데 왜 바뀐 거지?’
도웅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장면이 연출된 데에 의문을 느꼈다.
딸랑.
그때 유리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그리고 들어온 이는.
‘심보라···.’
팀 미션에서 도웅에게 쓴 맛을 봤던 그 심보라였다.
도웅은 그녀의 등장 덕에 빠르게 상황을 파악 했다.
‘PD가 나한테 라이벌 붙이는 재미에 들린 모양이군.’
변태환과의 격전 이후 스페셜K스타의 시청률은 급격히 치솟았다.
PD 입장에서 시청률이 보장되는 방법을 하나 깨달은 셈.
심보라는 도웅을 슬쩍 흘기더니 레드퀸의 은홍 앞에 가 앉았다.
그때 도웅을 빤히 보고 있던 화연이 입을 뗐다.
“지난번 기획사 미션 때 되게 인상 깊게 봤어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도웅 씨랑 무대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러고는 밝게 웃어 보였다.
도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화제성이 높은 가수 세 명이,
같이 무대 하고 싶은 참가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도웅은 일부러 의도한 것이었다.
기획사 평가 때 화연이 월등한 자신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왜냐하면 나는 화연의 잠재력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혹여나 파트너가 바뀌었을까,
레드퀸의 은홍을 보고 식겁한 것이었다.
그때 긴장된 표정의 화연이 물었다.
“도웅 씨, 저랑 콜라보 미션을 하시겠습니까?”
어딘가 제작진이 시킨 듯한 딱딱한 말투.
당연히 최종 결정권은 생방송 무대의 주인인 도웅에게 있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매칭이 안된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야 하지.’
도웅은 좀 전에 뜸을 들여 자신을 당황하게 했던 것이 생각나,
잠시 텀을 두었다가 말했다.
“물론이죠.”
순간 화연의 얼굴에 기쁨이 화사하게 퍼졌다.
“그래, 그럼 이제 말 놔도 돼?”
어딘가 급전개였지만 상관은 없었다.
화연은 이제 갓 스물.
도웅의 나이는 열여덟이었으니 당장 말을 놓는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곧바로 테이블 위에 샐러드, 파스타 같은 음식들이 세팅됐고,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포크를 집어 들었다.
“도웅아, 너 혹시 어디 연습생이었던 적 있어?”
“아니요.”
“그럼 독학한 거야?”
“네.”
“세상에··· 그런데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잘해?”
그녀는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을 받아온 터라 혼자 이만큼 해온 도웅이 신기한 듯했다.
나중에 독보적인 솔로 가수가 될 인물이 저리 말하니 도웅은 약간 멋쩍어졌다.
그때 옆에서 레드퀸 은홍의 말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나는 팀 미션 때 너희 팀을 더 좋게 봤거든.”
“와 언니, 우리 잘 맞네요. 저도 언니랑 같이하는 게 훨씬 좋거든요.”
그에 맞장구치는 심보라.
어딘가 도웅의 테이블을 의식하는 듯한 말투였다.
화연도 그런 은홍이 신경에 거슬리는 듯했지만 거기에 말려들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유치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다시 식사와 대화에 집중했다.
끼익.
옆 테이블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식사를 마친 레드퀸의 은홍과 심보라가 일어나는 소리였다.
그들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듯싶더니 도웅의 테이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긴 머리에 붉은 립스틱이 도드라진 은홍이 말했다.
“도웅 씨, 힘들겠어요. 이번 미션 준비하려면.”
도웅을 위해주는 말 같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고양이 같은 시선은 화연에게 향해있는 채였다.
두 그룹의 라이벌 관계를 알고있는 도웅이 적당히 답했다.
“힘든 거 하나도 없어요.”
“아니, 하하 도웅 씨 말귀가 어둡네. 집으로 돌아갈 짐 싸야 될지도 모른다구요, 누구 때문에.”
두 사람 다 덤덤한 반응을 보이자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하는 도발.
“아마 도웅 씨 운은 여기까지가 될 것 같네요.”
은홍이 여우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쿵.
은홍이 도웅까지 건드리자,
얌전히 있던 화연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멘트.
“은홍 씨 점집 차리시려고요?”
“네? 뭐요?”
“점집. 그런 게 아니면 왜 남의 운이 여기까지니 저기까지니 하시는 거에요?”
“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멤버들과 떨어져있는 화연을 단독 어택 할 기회.
그래서 카메라가 꺼진 틈에 슬슬 신경이나 긁어보려했던 것이었는데,
얌전하던 화연이 세게 나오자 은홍은 당황했다.
“도웅 씨는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드릴 테니까, 걱정일랑 말고 본인들 운세나 보러 가세요.”
“하, 참나.”
소리가 커지는 것 같으니 한구석에서 식사하던 제작진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심보라와 은홍은 일이 커지기 전에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났다.
턱.
화연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도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 한 배 탔잖아. 절대 지면 안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저도 질 생각 없어요.”
도웅의 입 끝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
판타스타의 개인 연습실.
도웅과 화연은 본격적인 미션 얘기를 시작했다.
“어떤 곡 할지 혹시 벌써 떠오른 거 있어?”
곡에 대한 선택권은 당연히 도웅에게 있었다.
가수는 조언만 해줄 수 있는 포지션.
그것이 이번 콜라보 미션의 룰이었다.
가수는 화음이나 서브로 받쳐주는 등,
참가자들의 성공적인 생방송 무대를 돕는 헬퍼로서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수한테 묻힐 참가자는 묻히겠지만.’
그래서 선곡이 중요했고,
도웅은 미리 생각해온 노래를 화연에게 들려주었다.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자 화연이 말했다.
“조금 오래된 노래네?”
조금 의외라는 표정.
청춘의 지난 사랑을 이야기하는 90년대 노래였다.
“당연히 요즘 노래로 할 줄 알았어.”
“고등학생이랑 아이돌 멤버가 만나서 요즘 노래 부르는 건 조금 뻔할 것 같아서요.”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경연이니까, 예상하지 못한 걸 보여주고 싶어요.”
화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은 잘 나가는 걸그룹 메인 보컬 포지션이지만,
솔로로 활동하며 특유의 감성과 표현력을 개화하여 큰 사랑을 받게 된다.
‘특히 리메이크 앨범을 내면서 대박을 치게되지.’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누나, 지금 솔로 앨범 준비하고 있지 않아요?”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어디 기사에서 본 것 같아서요.”
이제 슬슬 화연의 숨겨진 능력이 개화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꼭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불안감에 입술을 슬쩍 씹었다.
“내가 딱 이 노래 나왔을 때 태어났네···”
“누나, 걱정 말아요.”
화연이 미션을 준비하는 동안 조금만 능력을 개화할 수 있다면,
도웅은 그런 화연을 데리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나, 일단 들어볼래요? 제가 한번 불러볼 테니까.”
“그래, 느낌을 보는 게 좋겠다.”
화연이 근심 어린 시선을 기타 위로 옮겼다.
곧이어 도웅이 준비해온 멜로디가 기타에서 흘러나왔다.
그 위에 올라가는 도웅의 감성 짙은 목소리.
‘···..!’
순간적으로 화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래가 끝난 후.
화연의 얼굴에 근심이 아닌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뭐야? 방금 옛날 노래라기보다 그냥 네 노래 같았어.”
“괜찮았아요?”
“괜찮다마다! 그러면서 옛날 그 감성은 그대로 살아있고.”
도웅이 만진 기타 반주.
내면에 있는 감성.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세련된 표현.
그 덕에 노래를 들은 화연의 얼굴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떠올랐다.
“이거면 되겠다 우리!”
“하하, 네.”
그 후로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화연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도웅은 유심히 그녀를 살폈다.
‘확실히 목소리 톤이 깡패야.’
심신을 안정시키는 목소리 톤과 훌륭한 가창력.
도웅은 이순간 화연을 고른 것이 뿌듯해졌다.
‘근데 아직 자기가 뭘 표현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것 같네.’
언뜻 듣기에는 훌륭한 노래 실력이었지만,
화려한 가창력 속에 알맹이가 감춰져있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기획사의 양산형 보컬 트레이닝에 익숙해져 있어,
듣기 좋게 부르는 데만 신경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연은 제 알맹이가 분명히 있는 가수야. 그걸 드러내는 방법만 알려주면 돼.’
그리고 그 방법은, 이번 기획사 미션을 통해 도웅이 깨달은 것이었다.
“누나, 꼭 잘 부르지 않아도 돼요.”
“그게 무슨 소리야? 무조건 잘 불러서 우리가 이겨야지.”
“잘 부르는 것보다는 전달하는 데 한번 집중을 해보세요.”
“전달?”
“네. 이 가삿말에 누나의 감정을 실어서요. 표현이 조금 담백해져도 괜찮아요.”
화연이 잠시 고민하더니 여러 기교들을 줄이고 얘기하듯 가삿말을 뱉어냈다.
“이렇게?”
“네. 제가 듣기에는 이 편이 훨씬 좋아요.”
“그런데 이러면 경연곡이라기에 조금 밋밋하지 않을까?”
항생 해오던 화려한 기교가 빠지니 화연은 조금 불안한 듯했다.
도웅은 그런 화연 앞에 같은 소절을 불러 보았다.
지금 트레이닝하고 있는 비브라토를 아주 잘 이용해서.
-♩ 비가 내리면 거리에 서성이다
담백하게 부르다가 끝에서 여리게 떨리는 소리.
화연은 거기서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아! 그렇게 짧게 쓰면서도 확 느낌을 줄 수 있구나. 한 번 해볼게.”
가삿말에 집중하는 미간, 그리고 그에 따라 예민하게 살짝 얹어지는 비브라토.
화연은 도웅이 알려준 대로 곧잘 따라 했다.
역시 높은 능력치만큼 캐치가 빨랐다.
“와! 방금 좀 괜찮았지.”
“네. 기교가 줄었는데도 훨씬 듣기 좋죠?”
화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웅의 귓가에는 노래 완성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판타스타의 녹음실.
오늘은 음원을 녹음하기 위해 두 사람이 다시 모였다.
생방송 미션을 앞두고 연습이 아닌 녹음에 시간을 쓰는 이유는,
‘이번 미션에서 상위권 세 팀에 한해 음원을 발매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도웅이 화연을 선택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화연은 발매하는 족족 차트인 시키는 음원 강자가 될 몸.
그 시기를 앞당겨 약간의 발판으로 삼아,
도웅은 자신의 음원을 차트인 시킬 계획이었다.
‘음악 차트 안에 내 노래가 들어갈 생각만으로 벌써 벅차네.’
음원.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나타냈다.
도웅은 대중교통 안에서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온몸에 짜릿함이 감돌았다.
도웅은 감정을 추스르고 곧바로 노래에 집중했다.
도웅이 녹음실에서 제 파트를 해내는 동안 화연은 그의 소리에 유심히 귀 기울였다.
“쟤는 고등학생이 벌써 표현력 무슨일이지.”
도웅의 노래를 듣던 화연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매번 무대위에서 맞붙던 레드퀸과의 승부는,
이번에도 도웅과 자신이 거머쥐게 되리란 예감이 들었다.
화연은 프로의 입장에서 도웅에게 이것 저것을 코칭 해주었다.
이번엔 화연의 차례였다.
“파이팅!!”
화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호기롭게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프로이다보니 금방 제 느낌대로 음악을 만들어냈다.
녹음된 도웅의 목소리에 쌓이는 화성.
그리고 도웅과 연습하며 발전시킨 자신의 파트.
화연의 파트를 도웅은 만족스레 듣고 있다가,
몇 가지 요구사항을 부스로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누나, ‘거리를 서성이다~’ 이 부분은 살짝 가성으로 떨어주세요.”
“응, 알겠어.”
“’같지 않은~’ 이 부분은 소리를 조금만 더 밀어주세요.”
“그래, 해 볼게.”
“누나, 이 부분 한 번만 더요.”
조금 빡빡할 수 있는 요구였지만,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도웅.
화연은 도웅의 요구를 곧잘 수용하여 느낌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괜히 아이돌의 메인 보컬인 것이 아니었다.
금상첨화로 레드퀸의 은홍이 불을 붙여준 덕분인지 화연은 지치지 않고 불타올랐다.
도웅은 그렇게 몇 번의 조율을 통해,
결국 원하는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스페셜K스타 시즌2! 그 대망의 첫 무대가 곧 시작될 공연장입니다.”
사회자의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울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단 열 명의 후보를 공개하겠습니다!”
동시에 관객석에서 터지는 우렁찬 함성.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 순간.
촤아악-!
사방에서 화려한 불꽃 효과가 솟아 나왔다.
지잉-
그와 함께 정면의 전광판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수많은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여러분! 탑 텐 영광의 얼굴들입니다!”
이윽고 등장한 열 명의 실루엣.
가운데 서 있던 도웅은 가장 먼저 그 무대 위로 당당한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