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46)
046. 기름 한 번 더 부어줘야겠네.
도웅의 눈앞에는 우리나라 최대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가 떠있었다.
드르륵.
탑 100까지 떠있는 페이지의 스크롤을 반절쯤 내렸을 때였다.
“있다··· 있어!”
도웅은 음악 차트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도웅은 그 장면을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두 눈을 세차게 비볐다.
52위 – 첫사랑(스페셜K스타 시즌2)
남도웅 (Feat. 화연)
음원이 공개된 지 단 한 시간 만에 일어난 결과.
“이렇게 바로 뜰 줄은 몰랐는데···.”
톱 100에 곧바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기성 가수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스페셜k스타라는 프로그램의 화제성,
그리고 걸그룹 소녀 이룸의 팬들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쟁쟁한 가수들의 이름 사이에 박혀있는 남도웅이라는 이름 세 글자.
그것은 도웅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하아…”
도웅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 환희 따위의 복잡한 감정이 섞인 한숨이었다.
가수라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꿈을 꾸던 자신의 지난날.
과거로 돌아와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왔던 시간들.
도웅은 과거의 여러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디 한번 들어볼까.”
딸칵.
도웅은 제 이름이 적힌 노래의 듣기 버튼을 눌렀다.
-♩ 아무도 모르게 뒤척이다 울었지
스피커에서 잔잔한 기타 반주와 함께 도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웅은 자신의 음악을 감상하며 아래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화연 첫 콜라보레이션 축☆.
-역시 소녀이룸 메인보컬!!
-화연이 꽃길만 걷자.
역시 초반에는 화연 팬들의 댓글이 수두룩했다.
팬덤의 화력이 차트인에 한몫한 것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화연 때문에 왔다가 남자분 목소리 들을수록 너무 좋아서 무한 반복 하고 있습니다.
-방송 보고 온 50대 아줌마입니다. 오랜만에 첫사랑이 떠오르는 노래였어요.
-남도웅 군이 기타 편곡까지 했던데 떡잎 보니 크게 될 듯하네요.
– ㅎㄷㄷ 나 고등학생 때는 게임 밖에 안 했는데.
-방송 잘 보고 있어요 ^^
-노래 좋아요.
-남도웅 우승 가즈아
점차 도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화연의 팬이었다가 노래에 빠져든 10대 팬들부터,
방송을 보고 찾아온 50대 중년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댓글들에 도웅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도웅의 이번 계획도 역시 성공적이었다.
지이잉-, 지잉-.
그때 도웅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강태진 대표였다.
“네, 대표님.”
-도웅 군 자고 있던 거 아니죠?
“아니에요. 음원 순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도웅 군, 정말 축하해요. 이 얘기 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도웅은 강태진의 따듯한 축하에 참고 있던 것이 속에서 울컥 올라왔다.
-도웅 군은 이제 가수로서 첫 발을 떼신 거예요. 우승까지 저희 판타스타가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하루는 푹 쉬시고 이틀 후에 봬요.
그날 밤, 도웅은 모처럼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
촬영 휴일.
도웅은 그저 남들과 같이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이제 도웅에게는 특별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와 남도웅, 축하해!”
“고마워.”
“나 스트리밍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
친구들의 환호를 받으며 평소처럼 학교에 등교를 했고,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썰을 풀어주며 노닥거렸고,
담임 선생님의 보호로 과도한 접근은 차단된 채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하굣길, 도웅은 형식에게 소녀 이룸의 사인 앨범을 건넸다.
“······남도웅.”
“왜.”
형식이의 얼굴에 감동이 가득 했다.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너를 친구로 뒀다는 사실이야, 자식아.”
그는 뜨거운 우정의 포옹으로 도웅에게 화답하려 했다.
도웅은 날렵하게 그런 형식을 피했다.
“정말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그런 불순한 행동은 하지 마.”
“그래, 아무튼 고맙다 남도웅!!!”
형식은 커다랗게 포효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오늘 회사 안 나가셨어요?”
집으로 돌아가니 평소와는 다르게 엄마가 도웅을 맞아주었다.
“반차 내고 왔지. 너 오랜만에 집에 있는 날인데 맛있는 거라도 해 먹이려고. 엄마 시장 갔다 올게.”
엄마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도웅의 등을 두드렸다.
그 덕에 도웅은 지금 자신이 아주 잘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엄마, 오랜만에 시장 같이 갈까?”
“엄마야 좋지!”
“그래, 짐 무거울 테니까 내가 들어줄게요.”
이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도웅은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꼈다.
그렇게 엄마 뒤에서 짐꾼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시장 골목의 치킨집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치킨집을 거쳐, 시장 거리를 지나 도웅의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흘러 다녔다.
그러자 지나가던 행인 몇이 반응했다.
“어! 이거 어제 스페셜k스타 1등 했던 노래다.”
“이 노래 너무 좋지 않냐?”
“맞아. 방송 보고 남도웅 영상 더 찾아봤는데 아직 영상이 많이 없어서 감질맛 나더라고.”
“빨리 데뷔해서 음원 팍팍 내줬으면 좋겠다.”
튼실한 고등어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엄마는,
흐뭇하게 미소 짓더니 그 행인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도웅에게 말했다.
“엄마가 우리 아들 너무 자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도웅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엄마.”
**
스페셜k스타의 숙소.
이제 남은 것은 일곱 명이었다.
“세 명 빠졌다고 휑해졌네.”
세 명이 빠진 숙소는 벌써부터 적적한 분위기를 풍겼다.
승리는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톱 7으로 살아남은 백설이 밝게 이야기했다.
“우리 점심 만들어 먹을까요?”
“워~! 좋은 생각.”
마이클이 업텐션으로 받아쳤다.
백설은 원래 떨어질 단계를 지나 용케도 잘 살아남고 있었다.
두부를 썰던 백설이 말했다.
“왠지 도웅 오빠랑 같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겨요.”
“그래? 뭐 때문에?”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도웅이 백설의 강점을 꼽아 부각시켜주고,
팀 전체가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전원 합격을 했던 경험.
그런 성공의 경험이 백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때 마이클이 끼어들었다.
“그건 또웅이 럭키 리더이기 때문이야.”
“제가 왜 아직도 리더에요?”
“너가 그때 우리 다 살려줬으니까 이제 영원히 리더지.”
그러다 된장찌개를 퍼먹던 마이클이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된장찌개 보니까 동생 쪼금 보고 싶네. 이거 좋아했는데.”
“경연 끝나고 따로 보면 되죠.”
기획사 미션에서 탈락한 꼬마 유정우를 얘기하는 거였다.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에 백설이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오빠 소시지 있는데 그것도 볶을까요?”
“와우! 좋지!”
마이클은 곧바로 기운을 회복했다.
도웅은 유정우가 숙소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형, 형 덕분에 좀 더 긴 여행을 한 것 같아요. 고마워요.’
‘마지막까지 애늙은이 같기는.’
도웅은 슬쩍 미소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함께 운동을 다녀온 문도겸과 제임스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도웅이 그들을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형들, 점심 안 드셨으면 이것 좀 같이 드실래요? 찌개 많이 해놨어요.”
“마침 배고팠는데, 그럼 한 숟갈만 먹어볼까?”
예전엔 그런 거 못 먹는다던 제임스는,
숙소 생활을 하며 많이 변화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도웅의 옆에 자리 잡았다.
벌컥.
하지만 문도겸은 도웅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마셨다.
“도겸이 형, 밥 안 먹어?”
제임스가 재차 묻자 그제서야 문도겸이 돌아봤다.
“아, 난 아침에 배부르게 먹고 와서. 가서 좀 쉴게.”
그는 정확히 제임스에게만 제 할말을 남기고 부엌을 벗어났다.
그러자 마이클이 속닥였다.
“첨엔 제임스가 재수 때기였는데, 알고 보니까 쟤가 재수가 조금 더 없어.”
그 얘기를 듣던 제임스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마이클, 저요? 제가 재수가 없어요?”
“괜찮아 지금부터 조금씩 고치면 되지. 원래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마이클은 충격받은 표정의 제임스 등을 토닥였다.
도웅의 시선은 거실에 앉아있는 문도겸에게로 향해있었다.
‘TV에서는 그렇게 제임스랑 우정 넘치는데. 앵글 밖에서는 영 분위기가 다르단 말이지.’
피자 배달부 문도겸.
도웅은 그가 힘든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한 것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라이벌 관계가 됐지만 과거부터 응원하던 인물.
하지만 가까이 보면 볼수록 자꾸 어딘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나.’
그렇게 생각하던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띵동, 띵동.
이석규 PD와 제작진들이었다.
그는 여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등장했다.
“여러분, 지금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에요.”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도웅에게 향했다.
음원 순위나 실시간 검색어에서 도웅이 가장 선두에 있었기 때문.
이석규 PD는 손뼉을 짝 쳤다.
“식사 마치고 바로 준비해 주세요. 여러분을 위한 깜짝 공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와, 깜짝 공연이요?”
“무슨 공연이에요?”
“그건 가보시면 알아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이석규 PD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말을 아꼈다.
출연자들은 간만에 다른 사람의 공연을 볼 생각에 신이 났다.
하지만 도웅은 무슨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우와-! 홍대다아.”
차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백설이 외쳤다.
출연자들을 실은 스타렉스는 인파 가득한 저녁의 홍대 거리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PD는 먼저 출연자들을 한 스포츠 의류 브랜드 매장으로 인솔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몸에 걸치는 의상을 모두 무료로 제공할 겁니다. 단, 오늘 하루 종일 그 의상을 입고 계셔야 합니다.”
“우와아!”
꽤 인기 있는 스포츠 브랜드여서 그런지 참가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이클은 무늬가 화려한 옷을 겹겹이 몸 위에 걸쳤고,
제임스는 딱 필요한 것 위주로 쇼핑에 몰두했다.
통풍이 잘 되는 민소매티를 뒤적거리던 제임스가 물었다.
“도웅아, 너는 왜 평범한 옷을 골라? 그건 여기 아니어도 살 수 있는 거잖아.”
“이게 따듯할 것 같아서요. 형도 좀 더 따듯한 옷을 고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 종일 입고 다녀야 하는데.”
“괜찮아. 지금 입고 있는 긴팔 위에 입으면 되지.”
그는 건치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후회할 텐데···..’
여기서 고르는 옷들은 당연히 협찬.
협찬은 공짜가 아니었다.
제작진이 마련했다는 깜짝 공연은,
‘이 협찬사가 마련해 놓은 무대. 그 위에서의 게릴라 공연이지.’
이들은 잠시 후 이 옷을 입고 홍대 거리의 임시 무대에 서야 했다.
그렇기에 도웅은 평이하면서 따듯한 옷, 그리고 편한 신발 하나를 선택했다.
쇼핑을 마친 차 안,
제임스가 터질 듯 여러 겹의 옷을 걸치고 있는 마이클에게 말했다.
“마이클, 굴리면 당장 굴러가겠는데요.”
온갖 잡동사니까지 합쳐져 마이클은 실제 몸집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마이클은 긴팔 위에 나시를 입은 제임스를 아래위로 훑더니 손사래를 쳤다.
“오 마이 아이즈. 제임스 패션 테러리스트야?”
“중요한 건 마이클이 나한테 할 소리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던 백설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 도웅이 오빠 또 실검에 올라갔어요!”
“와우, 역시 인기인 맨.”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생방송은 끝난 지 며칠이 지났고,
음원 순위는 조금씩 오르고 있긴 했지만 도웅이 갑자기 이슈 될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제 스마트폰을 꺼내 뒤적였다.
‘역시···.’
맨 위에 걸린 몇 개의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음악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순위는 외모순?」
「PD가 찍어놓은 내정자 위주로 편집되는 프로그램의 실태.」
「얼굴 픽? 피디 픽.」
당연히 기사의 타깃은 도웅이었다.
PD가 자꾸 후광 효과를 쓰거나,
다른 출연자들을 붙이는 식으로 도웅을 일부러 부각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기에 편승해 콩고물 좀 얻어먹어보려고···.’
프로그램의 높은 화제성.
거기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웅을 이용해 조회 수를 한몫 챙겨보려는 기자들의 수작이었다.
확실히 공신력 있는 매체보다는 주로 찌라시에 가까운 매체들에서 기사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도웅은 댓글을 확인했다.
-방송은 보고 기사 쓰냐? 노래 잘하니까 1등 한거다.
-아 솔직히 남도웅한테만 분량 몰아주는 건 ㅇㅈ이지.
ㄴ 나는 남도웅만 분량 많은거 잘 모르겠던데.
ㄴ 이번에 콜라보 파트너 선택때도 남도웅만 소녀이룸이랑 레드퀸 같이 붙여서 분량만듦. ㅇㅇ
ㄴㅁㅈㅁㅈ 이번에 1등 한 것도 솔까 화연 빨~~~
ㄴ 뭔 소리? 아까는 얼굴 빨이라더니. 노래는 들어 봤음?
댓글 창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도웅이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들이 있었기에 기자를 욕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기사에 동조하는 댓글들도 꽤 많아 보였다.
출연자들은 다 같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도웅의 눈치를 살폈다.
단 한 명. 휴대폰에 시선을 박고 있는 문도겸만이 기사에 동조하는 듯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차가 멈추고, 제작진이 출연진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도착했습니다.”
“도착이요? 여기 홍대 한복판인데요?”
놀란 출연진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여기서 깜짝 게릴라 공연을 하게 됩니다.”
“허억!!”
“뭐야, 공연 우리가 하는 거예요?”
“이러고요?”
출연진들이 각자의 꼴을 가리키며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단 한 사람.
도웅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기름 한 번 더 부어줘야겠네.’
이런 루머쯤이야 실력으로 증명하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