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48)
048. 걔 진짜 물건인 것 같아.
도웅은 심호흡을 하고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상 속에서는 음악방송 무대로 추정되는 곳에,
밴드 세션들이 악기를 체크하고 있었다.
사전 녹화를 준비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조금 예전 영상이네.”
신인 시절 보컬 배현의 앳된 얼굴.
대부분의 신인이 그렇듯,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긴장이 어려있었다.
그가 간단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BA 밴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돌판 음악방송에 밴드가 스케줄을 잡은 것만 해도 이례적인 일.
게다가 관객석을 채우고 있는 것은 그들의 팬들이 아니었다.
아직 신인인 그들을 위해 타 팬들이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보니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본 PD가 주문했다.
‘여러분, 조금씩이라도 호응 부탁드립니다.’
그에 팬들이 살짝씩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흔들었다.
그러자 감독이 시작 사인을 줬다.
‘스탠바이, 큐.’
그와 함께 울리는 드럼의 하이햇 소리.
동시에 보컬 배현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음악에 몰입한 눈빛이 좌중을 압도했다.
실력이야 말할 것 없이 훌륭했다.
거기에 더해지는 리듬을 타는 몸짓과 여유로운 손짓.
“리듬에 몸을 맡긴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배현의 움직임이 세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짓에서 음악에 한껏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인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리듬을 진짜 즐기고 있는 몸짓.
그 장면을 바라보던 관객들이 조금씩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배현은 관객들의 몰입도를 그렇게 끌어당긴 후,
클라이맥스에서 고음을 발사했다.
어느새 공연에 빠져든 관객들이 BA 밴드에 열광했다.
손에는 각자 아이돌을 응원하는 풍선을 든 채로.
그 순간만큼은 풍선의 색깔이 큰 의미가 없어지고 모두가 화합했다.
“가수가 먼저 음악에 몰입하면, 그걸 관객들이 느끼는구나.”
도웅은 중요 포인트를 캐치했다.
물론 노래 실력이 우선되어야겠지만, 도웅은 이제 어느 정도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게릴라 공연에서 관객들이 보여준 생생한 반응들이 도웅의 실력에 대한 증거였다.
“빨리 이 재능도 내 걸로 만들자.”
원래 잠들기 직전이었던 새벽녘,
도웅은 정신을 번뜩 차리고 다시 나만의 연습실로 입장했다.
[‘신인 보컬 B의 무대 장악력(C)’ 트레이닝 시스템 개방] [ 나만의 연습실에 ‘무대(C)’ 옵션이 추가되었습니다. ] [실행하시겠습니까?]“무대(C)? 이건 무슨 옵션이지.”
도웅은 눈앞의 실행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새하얗던 공간에 갑자기 영상에서 본 것 같은 음악방송의 무대가 세팅됐다.
게다가.
“우와··· 관객들까지 있네···?”
도웅은 시스템의 정교함에 깜짝 놀랐다.
가상의 관객들은 도웅이 어떻게 노래하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반응까지 보였다.
“이 관객들을 전부 내 노래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된다 이 말이지.”
비록 가상이지만 무대 적응력을 늘리기에도 제격인 트레이닝 방법이었다.
달성해야 할 목표가 생기니 곧장 도웅의 눈이 번뜩였다.
**
“변신 미션이요?”
출연자들이 다 함께 합창했다.
“네, 다음 미션은 여러분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변신 미션입니다.”
이번엔 숙소 거실에서 이석규 PD가 직접 미션을 발표했다.
“여러분이 얼마나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지, 숨겨왔던 잠재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 장르나 원하는 걸 선택하면 되나요?”
백설이 질문했다.
이석규 PD는 대답 대신 빨간 편지봉투를 출연자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이제 개봉해보셔도 됩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세 장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그 카드에 적힌 키워드는 시청자들이 여러분들에게 듣고 싶다고 투표한 장르를 선별한 것입니다.”
이석규 PD의 설명에 출연자들이 자신의 카드를 뒤적이며 놀라워했다.
마이클이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트로트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하하.”
그에 출연자들이 폭소했다.
마이클이 못 믿겠다는 듯 의문을 제기했다.
“이거 PD님이 웃기려고 넣은 거 아니에요?”
“하하, 정말 투표해서 나온 결과입니다.”
이 PD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반면 카드를 살펴본 도웅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도웅이 가진 세 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았다.
-댄스 / 록 / 인디
도웅은 본인의 두성 발성 느낌 때문이라도,
록 음악이 키워드에 끼워져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변화와 성장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미션에서는 록 음악이 유리했다.
지금 트레이닝하고 있는 무대 장악력을 백 프로 활용할 수 있을뿐더러,
도웅은 이미 두성 발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 이 PD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그 카드를 가지고 각 소속사의 트레이너들과 상의해서 자유곡을 선정하시면 됩니다.”
미션이 떨어졌으니 참가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속사로 갈 채비를 하던 중 마이클이 다가와 물었다.
“도웅, 넌 어떤 장르 받았어?”
솔직히 마이클에게는 말해줘도 상관없었지만,
문도겸이 아닌 척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과거엔 우승자였던 사람이 지금 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건가.’
도웅은 그 사실이 퍽 재미있어 피식 웃었다.
“그건 알려드릴 수 없죠.”
“오 또웅, 나 라이벌이라고 생각해 주는 거야? 와우 맨.”
마이클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듯했다.
판타스타에 도착한 도웅은 가장 먼저 트레이너들과 만났다.
오늘은 크게 바쁜 스케줄이 없는지 여명도 참여했다.
세 가지 키워드 카드를 펼쳐놓은 트레이너들은 고민에 빠졌다.
“뭘 고르는 게 경연에서 가장 유리할까?”
“아무래도 댄스는 짧은 기간안에 조금 무리수일 것 같고, 도웅이가 소화하기엔 인디가 무난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미션 주제가 변신이라, 심사위원들한테는 파격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높은 점수를 받을 텐데.”
“도웅이 네 의견은 어때?”
여명이 물었다.
“저는 록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뭐?”
도웅의 선택이 의외였는지 트레이너 둘과 여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트레이너 중 하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하긴, 도웅이 발성에 록 느낌이 좀 있어요. 특히 고음 지를 때.”
다른 트레이너 한 명도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마 그래서 시청자들이 골라주지 않았을까요?”
“그건 나도 동의하는데.”
여명이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냈다.
“도웅이 네가 요즘 무대 장악력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잖아. 록은 조금 더 쇼맨십이 필요한 장르라 관객들을 끌어당기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어.”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잘 할 자신도 있고요.”
그런 도웅의 생각이 기특한지 여명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하하, 그런 도전 정신은 좋은데. 그럼 어디 한번 불러봐. 그러고 나서 다 같이 논의해보자.”
도웅은 어제 영상 속 무대에서 연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노래에 집중했다.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몸짓, 몰입도를 높이는 눈빛.
그 모습을 본 여명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이런 느낌을 낸다고···?’
이미지 트레이닝 하는 법을 가르쳐준지 채 하루가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말 눈앞에 관객이 있는 듯 살아있는 표현력과 몰입도.
마치 무대 경험이 꽤 있는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고음에 시원하게 찔러들어가는 발성과 끝에 맺히는 완벽에 가까운 비브라토.
여명은 하루가 다른 도웅의 변화에 기가 찼다.
노래가 끝난 직후,
여명은 깔끔하게 결론 내렸다.
“이걸 보고도 널 말린다는 건 말이 안 되겠네. 그래, 해보자.”
그렇게 여명의 달라진 태도에,
도웅의 미소가 삐져나오려던 순간.
-차랑
[ ★ 여명 님이 당신의 재능에 감탄을 느낍니다. ] [ GREAT! 영상의 주인 특전 개방! ] [ 선물함에서 지금 바로 혜택을 확인해 보세요! ]여명의 머리 위로 빨간 별이 하나 튀어나왔다.
‘예쓰!!’
도웅은 남몰래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열정적으로 딸깍이는 마우스 소리 가득한 사장실.
강태진은 컴퓨터로 뭔가를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여명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형,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모니터에 빠져들어가겠다.”
“나야 뭐든 열심히 하지.”
“형.”
여명이 강태진을 불렀다.
그제야 강태진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왜.”
“남도웅 있잖아. 뭐 하나를 알려주면 곧바로 자기 걸로 만들어와.”
“은율이랑 똑같은 얘기하네.”
“은율이가 그래?”
“어, 아무튼 계속해봐.”
여명이 강태진의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걔 진짜 물건인 것 같아.”
“······”
그에 강태진이 여명을 빤히 쳐다봤다.
“그걸 이제 알았냐?”
“어휴, 그래 형 안목 더럽게 좋다, 더럽게 좋아.”
강태진은 뭘 뻔한 얘기를 하냐는 눈빛으로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여명은 강태진의 모니터가 보이도록 몸을 틀었다.
“도대체 뭐 하는데 그래?”
모니터에는 실시간 톱 100 음악 차트가 떠있었다.
강태진이 광대가 솟은 채로 말했다.
“야, 봐라. 도웅이 노래 지금 27위다. 따로 아무 홍보도 안 하고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냐?”
“안다 알아. 아무튼 팔불출….”
강태진은 여명의 타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번에 기자들이 얼굴빨이라고 음해한 것 때문인지 도웅이를 지켜야한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그런 싱글벙글한 강태진의 모습을 보니 여명은 조금 걱정이됐다.
“형, 그러다 도웅이가 오디션 끝나고 우리랑 계약 안 하면 어쩌려고. 지금 경연 기간 동안 임시로 케어해주고 있는 거잖아.”
그 얘기를 들은 강태진이 현실을 자각하고 눈에 띄게 시무룩 해졌다.
판타스타는 경험해 봤으니 다른 소속사를 선택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강태진이 말을 돌렸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이번 미션 장르는 어떤 걸로 하기로 했어?”
“도웅이가 록에 도전해보고 싶대.”
“록? 그건 조금 위험한 선택 아니야? 변신도 좋지만 잘 하던 걸 조금 틀어서 하는 게 유리할 텐데.”
그에 여명이 태평하게 답했다.
“걱정 마. 이번에도 잘 해낼 것 같으니까.”
“하긴, 그게 남도웅이지.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네.”
강태진은 다시 도웅에 대한 기사들을 뒤적거리며 즐거워했다.
자식의 칭찬을 듣고 흡족해하는 학부모의 얼굴을 하고선.
**
도웅은 보컬 레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를 본 백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빠, 오늘도 제일 늦게 왔네요.”
백설은 아직도 반말을 하는 게 어색한지 존대와 반말을 섞어 사용했다.
“응, 너는 연습 잘 했어?”
“네, 저는 아마 댄스에 도전할 것 같아요.”
“그래, 잘 할 것 같네.”
과거 백설이 아이돌로 활동했던 모습을 살짝 떠올린 도웅은 약간 미소 지었다.
“정말요? 오빠가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도웅은 씻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같이 방을 쓰는 마이클은 이미 곯아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톡톡.
도웅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메가 플레이 어플을 두들겼다.
“후··· 이번엔 뭐가 나오려나.”
빨간 별이 나올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기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호흡을 한 도웅은 선물함을 터치했다.
화면에서 두근두근 반짝이는 빨간 별.
그리고.
팡!
[ 영상 주인의 선물! ] [ WOW! 업그레이드 쿠폰이 나왔어요! ] [ 미완성한 C 레벨의 영상을 B 레벨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B레벨? 우와, B레벨 영상은 처음이잖아!”
어두운 이불 속 휴대폰의 불빛이,
한껏 상기된 도웅의 얼굴을 밝게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