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
005. 더 유리한 패를 잡으려면.
잔잔한 중저음이 교실에 깔렸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산만한 눈동자들이 모여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뭐야?’
그들은 입모양을 뻐끔거리며 놀란 눈빛을 교환했다.
‘마은율이 말한 게 진짜였어?’
윤정후 앞에 앉은 두 여고생도 서로 팔뚝을 찔러가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윤정후는 뭔가를 잘못 본 사람처럼 눈가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의 찌푸린 시선은 한시도 도웅을 떠날 줄을 몰랐다.
중간 어디쯤 앉은 마은율은,
역시. 하는 미소를 띤 채로 도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 안정감 있는 발성.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야.’
공기와 소리의 균형.
그것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재능의 영역.
‘심지어 지난번보다 훨씬 늘었어.’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은율이 봤을 때 도웅은 아주 훌륭한 바탕을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한참 동안 교실 전체에 적막이 감돌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관객 앞에 도웅은 살짝 불안함을 느꼈다.
‘별로였나.’
고작 절반 가까운 완료율에 너무 자신감이 붙었던 것도 같았다.
그렇게 불안이 실망으로 뒤바뀔 즈음,
-챠랑
[ ★ 김희영 님이 당신의 재능에 감탄을 표합니다. ]사회 선생님의 머리 위에 샛노란 별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시작 전보다 훨씬 우렁찬 소리가 산발적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와 함께.
“와아아.”
“대박!!”
“완전 소름 돋았어.”
“진짜 잘한다!”
아이들이 흥분에 겨운 감상을 쏟아냈다.
-챠라라라랑
25명의 학생 중에, 총 11개의 별.
그것들이 장관을 이루며 도웅에게 쏟아졌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 ★ ···님이 당신의 재능에 ‘놀라움’을 표합니다. ] [ ★ ···님이 당신의 재능에 ‘감탄’을 표합니다. ] [ ★ ···님이 당신의 재능에 ‘기쁨’을 표합니다. ] [ ★ ···님이 당신의 재능에 ‘흥미’를 표합니다. ]**
“자, 오늘은 약속대로 오분 일찍 끝내준다.”
“오예~~!!”
도웅 덕분에 사회 선생님이 일찍 교실을 나서자 마자,
몇몇 아이들이 도웅에게 말을 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도웅은 그런 시선들은 느끼지도 못한 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비공식 첫 무대.
도웅의 가슴에는 아직도 그 열기가 가시지 않은 채였다.
그때 책상에 막대사탕 하나가 톡 하고 올라왔다.
“미안 남도웅. 갑자기 노래하게 만들어서.”
한제고의 뮤즈,
마은율이었다.
사과를 건네는 마은율의 표정에 악의는 없어 보였다.
“그때 노래방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잘하길래.”
도웅은 그제야 지난번 노래방 앞에서 은율과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방심하고 있는 틈에,
마은율이 자신의 궁금증을 찔러 넣었다.
“근데 너 잘 하는데 왜 숨겨?”
“숨긴다고?”
“중학교 때부터 네가 나서서 노래 부르는 건 본 적이 없는데? 그 정도 실력이면 소문이라도 들어봤을 텐데.”
곧이 곧대로 말할 수 없는 도웅은 이 상황을 어떤 말로 넘기는 것이 좋을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은율의 인내심이 먼저 동이 났다.
“아님 너도 말 못 할 사연이 있나?”
일순간 마은율의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흥미가 어른거렸다.
이 질문이 아마도 본론임을 알아차린 도웅은 순간 멈칫했다.
재능이 넘치지만 그 길에 관심이 없는 마은율.
재능이 간절했던 도웅의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하의 마은율이 내 노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뭐지? ‘
노래방 앞에서 마은율의 머리 위에 별이 떠오른 것도,
방금의 수업시간에 노래를 잘부르는 애가 있다며 도웅을 추천한 것도.
어쨌든 한제고의 뮤즈 마은율이 도웅의 노래에 흥미가 있는것 만큼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
요 며칠간 거의 모든 수업에서 한 번씩 노래를 불렀다
결국 음악실에서까지 도웅은 앞으로 나갔다.
“얼마나 잘하길래 이 난리들인지 한 번 보겠어.”
미혼에 까칠하기로 소문난 음악 선생은 별명답게 까끌까끌하게 반응했다.
그녀의 별명은 왕사포. 하필 성씨가 왕 씨였다.
왕사포 선생은 팔짱을 끼고 도웅이 노래를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별로이기만 해봐라 이놈들. 수업을 끊어먹은 걸 아주 혼구녕을···!’
그때 도웅의 입에서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이번 노래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사랑 노래였다.
대단한 가창력은 아니었지만, 담백하고 안정적인 소리 덕에 오히려 가사 전달력이 좋았다.
어느새 음악 선생은 그 담백한 매력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녀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폭탄선언을 했다.
“남도웅? 왜 지금까지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내 결혼식에 축가로 부탁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노래였어.”
“하하하하하”
왕사포 선생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아이들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지 유난히 크게 웃어댔다.
“왜 웃어 이것들아!”
하지만 음악 선생님은 얼굴이 벌게져 역정을 냈다.
그녀가 진짜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미래에서 온 도웅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쉬는 시간.
남녀 가릴 것 없이 몇몇의 아이들이 도웅에게로 다가왔다.
도웅의 자리는 요즘 들어 부쩍 북적였다.
하지만 당사자만큼은 이런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웅이 너 노래할 때 목소리가 진짜 좋더라.”
“맞아. 왕사포도 완전 넋 놓고 듣던데?”
“난 개인적으로 오늘 부른 노래가 제일 좋았어.”
“나도 나도. 가사가 특히 잘 들려서 좋았어.”
고기도 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이런 칭찬 세례가 계속해서 쏟아지는데 아무리 서른에 가까운 도웅이어도 금방 적응이 될 리 만무했다.
존재감 없던 도웅이 교실 안의 인싸로 뒤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둘러싼 인원들과 화기애애하던 중.
삐딱한 실루엣 하나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남도웅? 아까 노래 잘 들었다?”
큰 키로 짝다리를 짚고 있는 윤정후였다.
드디어 윤정후가 남도웅 이름 세 글자를 제대로 말하는 순간이었지만,
도웅은 거기엔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도웅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노래를 잘 들었다니 인사치레를 하려는데,
“아 그래 고맙,”
“근데,”
윤정후가 말을 잘랐다.
“너무 심심하더라 노래가.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도 하나도 없고.”
그리고 명백히 훈수 두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약간의 비아냥이 베여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주변에 서있던 친구들은 그대로 굳어 두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아 내가 아이돌 오디션 준비 중이라. 기분 나쁜가? 그냥 친구끼리 조언 좀 해주려는 거지.”
아이돌이라니.
방금의 그 흥미로운 단어에 먼발치 있던 아이들이 쑥덕이기 시작했다.
‘아이돌이래, 아이돌.’
‘너 몰랐어? 쟤 보컬 트레이닝도 받는다던데?’
‘삼촌이 기획사 사장인데, 대형 기획사 들어가려고 오디션 보러 다닌다더라.’
‘오, 나름 노력하는 양아치구나.’
윤정후의 안면 근육이 꿈틀댔다.
‘양아치’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관심이 자신을 향해있다는 사실에 그 정도는 묻어주기로 했다.
그때 도웅의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조언 고마워. 나도 가수가 꿈이거든.”
심지가 단단한 말투. 거기다 어딘가에 여유마저 묻어났다.
지금의 도웅에게 이런 어린아이의 질투는 귀여운 것이었다.
동급생들이 보기에 본래 도웅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반투명한 색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도웅은, 누구보다 쨍한 자신만의 색을 내뿜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할 말을 잃은 윤정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흥분한 반응들이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우와, 너 가수가 꿈이야?”
“아 어쩐지!!”
“충분히 가능성 있을 것 같은데?”
“응원할게!”
도웅의 꿈이 가수라는 사실.
그 뜨거운 이슈 덕에 차갑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한 여학생은 방방 뛰며 도웅의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교실 전체가 웅성거렸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마은율은 옅게 미소 지었다.
도웅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꿈. 그것은 마은율에게 있어서 에덴동산의 선악과와도 같은 것이었다.
자신은 손에 쥐고도 베어 물지 않는 그 금단의 열매.
그런데 도웅은 그것을 꼭 먹고야 말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쿵 쿵 쿵 쿵
“야 남도웅!남도웅!남도웅!남도웅!”
익숙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바닥을 울리는 웅장한 소리와 함께.
형식이가 육중한 몸으로 도웅에게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아 왜.”
“야 새꺄. 너 왜 나한테 말 안 했냐?”
“뭘.”
“너 가수가 꿈이라고.”
어떻게 소문이 돌았는지 생각보다 꽤 멀리까지 소식이 퍼진 모양이었다.
상관은 없었지만 심증으로 마은율의 친구들이 의심됐다.
다른 반 친구들이 왔을 때 걔들이 도웅을 가리키며 속닥이는 것을 몇 번 본 일이 있었다.
형식이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그대로 말을 이었다.
“너 알지. 나 우리 반에서 투명 인간인 거.”
“잘 알지.”
“아니 요 며칠 몇 명이 와서는 너에 대해 자꾸만 묻는 거야. 친하냐고.”
“그래서?”
“당연히 안 친하다고 했지.”
이 나쁜 새끼. 도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잖아 너를 왜 찾아? 삥이라도 뜯으려는 거 아니면.”
피차 얼마 전까지 투명 인간이었던 도웅을 찾는 것이 형식은 수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 도웅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주 그럴만하고 합리적인 대처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헉헉거리는 형식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오디션 보러 다닐 거야?”
“아니. 실력 먼저 쌓으려고.”
“왜? 지난번 보니까 대충 아이돌에 끼어 들어가도 얼굴 빼고는 손색이 없겠던데.”
그럼 손색이 아주 큰 거 아닌가?
무튼 도웅은 메가 플레이로 트레이닝을 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기획사에 들어가 트레이닝을 병행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둘도 없는 도웅만의 이점이었고,
도웅은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더 유리한 패를 잡으려면 아직은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이제야 숨을 좀 고른 듯 안정된 형식이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잘 됐네. 그럼 일단은 내가 매니저 할게.”
“뭐? 네가 왜.”
“말했잖아 애들이 너에 대해서 나한테 묻는다고. 즉 내가 네 매니저를 할 운명이란 소리지.”
“아니 개소리 그만하고, 진짜 왜?”
도웅이 생각하기에 형식의 이러한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평생 연예계 쪽에 관심도 없던 녀석이,
이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형식은 무거운 입을 닫고 잠시간 대답을 망설였다.
도웅이 좀 더 추궁하자 그제야 진짜 속마음을 꺼냈다.
“너 정도면 어쨌든 데뷔는 할 테고 그럼 소녀이룸도 볼 수 있을 테니까.”
‘맙소사.’
소녀이룸은 이 시기 떠오르고 있는 여자 아이돌이었다.
주로 요정 같은 콘셉트로 활동하는.
제일 친한 형식이었지만 아이돌을 좋아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다들 남몰래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 하나씩은 있는 모양이었다.
“가수가 네 꿈이라고 했지? 그게 내 꿈이야. 소녀이룸 가까이서 보기.”
28년 만에 터놓은 서로의 꿈.
꿈에 크고 작음이 따로 있을까.
진지한 형식의 표정에서 도웅은 진심을 읽었다.
[소속사 목록]1. 2W 엔터테인먼트
2. TSP 엔터테인먼트
3. 미앤 엔터테인먼트
·········
집에 도착한 도웅은 소속사 목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디션에 떨어졌던 소속사 옆에 X 표를 그었다.
“와, 많이도 떨어졌네.”
무응답 한 기획사를 포함, 체크해 놓으니 X 표가 일렬로 빼곡했다.
도웅은 새삼 안되는 재능으로 부단히 노력해온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가수, 아이돌 직군 기획사는 백 개를 훌쩍 넘었다.
트레이닝 외에도 현실적인 케어나 서포트를 받으려면 언젠가는 소속사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소속사에는 급이라는 것이 있고,
연습생이라고 다 같은 연습생이 아니었다.
“기왕 들어갈 거면 급을 높여서, 확실히 밀어줄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자칫 발이 묶여 황금 같은 시간을 썩힐 수도 있는 일.
당분간은 메가 플레이의 트레이닝에 몰두하고,
몸값을 올린 후에 확실한 기획사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수준이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동급생 절반에게서 쏟아진 별,
그리고 그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토대로 약간 자신감이 차오른 상태였다.
백 위 언저리부터 마우스 포인트가 주욱 훑어 올라갔다.
그리고 중위권 즈음에서 커서가 서성였다.
“이러지 말고 한번 오디션을 봐봐?”
도웅은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을 체크할 겸,
중위권 소속사 몇 군데를 골라 오디션을 보기로 결정했다.
이전 같으면 꿈도 못 꿔볼 곳들이었다.
**
“나 이거 형한테 걸리면 진짜 죽는 거다.”
인적 드문 공터.
목에 고가의 DSLR을 걸고 있는 형식이 비장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죽음은 내가 감당할 테니까 포즈나 취해.”
형식이는 정말 도웅의 매니저를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연습 삼아 오디션을 보련다고 툭 던진 말에, 프로필 촬영을 돕겠다고 성화를 부린 것이다.
형식은 몰래 가지고 나온 형의 DSLR을 들고,
프로 사진사 마냥 현란한 자세로 도웅을 찍어댔다.
형식이 전보다 이상하리만치 텐션이 높아진 것은 목표가 생긴 까닭인 듯도 싶었다.
“다 보냈다.”
그렇게 형식의 도움을 받아 영상 촬영까지 마친 뒤,
중위권 소속사 열 군데에 이메일을 접수했다.
1차로 서류 심사가 통과되면 2차 실기를 볼 수 있었는데,
전에는 여기서 답변도 받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던 것이었는데, 새로운 메일을 확인하는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메일함을 열어 보았을 때.
“이거 뭐야···.”
예상 밖의 결과에 도웅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