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0)
050. 창창한 앞길에.
스페셜k스타에서 선정한 세 명의 작곡가 모두,
천재 범주에 드는 이들이었다.
‘하룻밤에 초히트곡을 쓴 전적들로 유명했지.’
그중에서도 작곡가 박병일은,
장르를 넘나드는 굵직한 히트곡을 가진 남자였다.
‘게다가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작곡가니까.’
그것이 도웅이 박병일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였다.
도웅이 회귀하기 직전까지도 박병일은 잘나가는 아이돌, 솔로 가수의 히트곡을 심심치 않게 작곡했었다.
그 말인즉슨, 그의 스타일이 한 시대에 먹혔을 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대중성과 트렌드 파악에 아주 능하다는 이야기.
‘나에게 딱 맞으면서도 대중들에게 먹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도웅은 꼭 박병일에게서 곡을 받고 싶었다.
문도겸과 남도웅.
두 남자가 박병일의 건너편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각자의 열망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채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자 박병일이 먼저 말을 꺼냈다.
“허허, 제가 듣기로 한 사람한테만 곡을 줄 수 있다고 하던데요.”
그는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작진이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네, 둘 중 한 사람을 선생님께서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허허, 거참···”
그는 슬쩍 도웅과 문도겸을 번갈아 봤다.
“방송으로 두 사람을 보긴 했지만, 갑자기 누군가를 선택하기엔 참 난감하네요. 제 선택에 따라 여러분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는 건데.”
박병일은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가 봤을 때 두 사람 다 파이널까지 살아남은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박병일은 문도겸에게 어울리는 곡도,
남도웅에게 어울리는 곡도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난 둘이 의견 합의를 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떨어진 한 사람은 억지로 다른 작곡가분을 찾아가야 하는 거니까. 얘기하고 보니까 이거 참 말이 이상하네. 그분도 참 훌륭하신 분인데.”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어쨌든 두 분이 먼저 얘기 나눠 보시고 그래도 해결이 안 난다 하면 제 기준으로 선택하도록 하죠.”
**
사무실 옆 작은 회의실.
문도겸과 도웅이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긴밀한 대화를 위해 제작진은 모두 빠지고 카메라 한 대만 남아 있는 상태.
문도겸은 예민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여기서 미래를 바꾸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도웅은 과거 그를 응원하던 입장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웅이라는 변수가 아니라면 문도겸은 박병일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우승을 하고,
그야말로 인생역전을 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남의 인생 챙기기 전에, 내 인생이 먼저니까.’
배달을 하며 힘들게 살아온 그의 얼굴에 도웅은 가끔 과거 자신의 얼굴이 겹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잘 됐으면 좋겠으면서도 그렇다고 양보할 수는 없는 복잡한 마음.
동시에 시청자 입장에서 동경하기만 했던 문도겸과 우승곡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묘했다.
그렇게 도웅이 잠깐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문도겸이 바싹 마른 입술을 뗐다.
“도웅이 너는 지금 얼마나 간절해?”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 중에 간절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도웅은 그 정도를 따지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질문인지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문도겸은 도웅의 대답을 기다리기 초조한지 자신의 얘기를 먼저 꺼냈다.
“나한테는 이게 인생 마지막 기회야.”
카메라 앞에 있는 것치고는 상당히 감정적인 발언이었다.
문도겸은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방송에는 잘 포장이 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아마도 시청률에 필요해서이겠지만,
이 장면도 아마 적당히 편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웅이야말로 수 없는 실패를 거쳐 과거로 돌아온 지금에서야 겨우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한 대답을 했다.
“형, 그건 저한테도 마찬가지예요.”
도웅에게서 전혀 주눅들거나 양보하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문도겸은 하는 수 없이 대화의 목적을 조금 바꿨다.
‘차라리 이 애를 더 자극하자.’
도웅은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고등학생.
게다가 도웅은 자신처럼 편집의 보호를 받고 있지 않았다.
‘잘만 해서 비호감으로 비추도록만 만들면···.’
사람들은 욕심 많은 어린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만 하면 무서운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도웅의 인기 투표 결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사한 계획이 문도겸의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문도겸이 한템포 쉬고 말했다.
“너한텐 아직 기회가 많잖아.”
그 말은 들은 도웅이 되물었다.
“기회가 많다고요? 제가 형보다 어려서요?”
“그래, 넌 어리고 재능도 뛰어나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이제 네 앞길은 창창하잖아.”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로군.’
도웅은 문도겸의 캐릭터를 파악했다.
그저 자신의 불쌍함을 내세워 눈앞의 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벼랑 끝에 몰린 이기적인 남자.
‘문도겸이 이런 사람이었다니.’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따듯하고,
출신을 뛰어넘는 제임스와의 우정 어린 경쟁으로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남자.
그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저 PD의 편집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뿐이었다.
‘문도겸을 볼 때마다 한 번씩 쎄하던 게 이것 때문이었군.’
도웅은 노선을 확실히 정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을 자극하는 문도겸의 앞에서는 입을 떼지 않았다.
그에 대해 파악 하고나니, 어떤 노림수가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얘기 다 끝나셨어요?”
제작진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도웅과 문도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아마 문도겸은 자신이 몰아붙인 것에 기가 눌려,
어린 도웅이 박병일 작곡가를 포기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나오자마자 도웅이 나지막이 말했다.
“도겸이 형, 저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어요.”
그 말에 놀란 문도겸의 얼굴이 보기싫게 일그러졌다.
도웅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제 창창한 앞길에 앞으로 놓일 기회들도 마찬가지고요.”
간절함을 두고 저울질하겠다면 더욱 양보 수 없는 일이었다.
**
“협상 결렬이로군요.”
박병일이 맞대고 있던 두 손바닥을 분리시켜 각각 두 사람을 가리켰다.
냉정하지만 결단이 필요한 시간.
박병일은 오래간 생각하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왜 제 노래로 결승을 치르고 싶으세요?”
주도권을 잡기위해 먼저 대답에 나선 것은 문도겸이었다.
“선생님이 만드신 곡 중 ‘그대의 기적’이란 노래가 제 어려웠던 지난날의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그는 구구절절 자신이 박병일의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신의 불행한 가정사와 섞어서 감동을 엮어냈다.
지금까지 방송에서 주요하게 먹혔던 방법을 다시 꺼내든 것이었다.
박병일은 그의 얘기를 신중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약간 반응을 하는 듯도 싶었다.
잠시 후 질문이 도웅에게로 넘어왔다.
“이번엔 도웅 군. 도웅 군은 왜 제 노래로 결승을 치르고 싶으세요?”
자신에게 곡을 받겠다고 찾아온 어린 도웅을 귀여워하는 감정이 박병일의 표정에 드러났다.
도웅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선생님의 곡들을 노래하고 연주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데뷔곡을 꼭 선생님의 곡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꼭 우승을 해서요.”
도웅은 진심을 눌러 담아 박병일을 바라봤다.
도웅의 진지하면서도 당찬 포부에 작곡가 박병일은 살짝 얼이 빠졌다.
데뷔와 우승.
도웅이 방금 한 말에는 미래가 담겨있었다.
박병일은 도웅을 그냥 어린애로 보고 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래, 얘도 여기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나와 있는 한 명의 동등한 후보자야.’
도웅은 진지하게 이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탁. 도웅이 책상 위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그건 뭐죠?”
박병일 작가는 도웅이 내민 작은 물체가 뭔지 알아챘다.
USB였다.
“제가 경연 때 불렀던 노래 영상들과 그동안 연습했던 곡들을 담아왔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박병일 작곡가의 곡도 들어있었다.
도웅은 생방송 무대에 오른 이후,
판타스타의 연습실에서 틈틈이 최종 미션에 오를 세 작곡가의 노래를 연습해왔다.
그럴수록 도웅은 확신했다.
꼭 박병일 작가에게 곡을 받아야겠노라고.
그때 녹화한 영상들을 출발 전 USB에 담아온 것이었다.
‘원래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싶다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준비해야지.’
자신이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니,
당연히 곡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안일해있던 문도겸의 허를 찌르는 묘책이었다.
그리고 이런 열정과 노력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병일이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준비를··· 도웅 군은 평소 연습할 때도 녹음을 해 놓는 편인가 봐요?”
“네. 그날의 느낌을 담아놓고 나중에 들어보면 잘하고 못한 점이 더 잘 보여서요.”
박병일은 도웅이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하게 이 자리에 임하고 있는지가 확 와닿는 듯했다.
도웅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가수가 되고 싶으면 노래로 선택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박병일 작가는 말문이 막히는 듯 그저 웃음을 흘렸다.
문도겸은 자신이 먼저 대답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분위기가 도웅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박병일 작곡가는 잠시 생각하더니 제작진들에게 물었다.
“제가 대충 방송으로 이 두 분의 무대를 봤지만, 이렇게 준비해 온 게 있으니 그래도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PD님 혹시 제가 결정을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
“오늘 저녁까지만 결정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아직 시간이 좀 있네요.”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두 참가자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저를 선택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듯, 저한테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오늘 저녁까지 결정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탁.
도웅과 문도겸은 같은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숙소로 돌아가 작곡가의 결정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문도겸은 줄곧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쪽 다리를 덜덜 떠는 것이 어딘가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여기서 선택받지 못하면 하루를 날리는 거니까.’
승자에게 보상이 있다면,
패자에게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불편한 침묵 속에 숙소에 도착했다.
먼저 숙소에 도착해있던 제임스가 물었다.
“어? 둘이 어떻게 같이 왔어?”
문도겸은 대답하지 않고 그를 스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쾅!
문이 세차게 닫히자,
제임스가 도웅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 둘 다 박병일 작곡가님을 선택해서, 아직 누가 곡을 받을지 결정이 안 났거든요.”
“아···”
제임스는 상황을 이해한 듯 안타까운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말없이 도웅의 어깨를 토닥였다.
“저 형이 예민해서 그렇지 나쁜 형은 아니야.”
‘이 형 진짜 바보네. 아니면 바보같이 착하다고 해야할까.’
도웅은 방송만으로 제임스를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
그 시각,
작업실에 홀로 남은 박병일 작곡가는 도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수가 되고 싶으면 노래로 선택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도웅의 패기 가득한 눈동자를 떠올리고는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그래, 실은 그게 기본이지.”
박병일 작곡가는 도웅이 주고 간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경연 영상들과 연습 영상들.
연습곡 중에는 자신의 곡들도 더러 있었다.
“정말 평소에 내 노래를 가지고 많이 연습했나 보네.”
박병일은 아까 도웅이 했던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딸깍딸깍.
다음으로는 방송 경연 영상을 처음부터 쭉 훑었다.
바쁜 일정 중에 대강 방송을 봤던 터라 이번엔 자세히 살펴보고싶었다.
-예선 3차.
첫 번째 클립에서는 도웅이 잔잔한 기타곡을 선보이고 있었다.
“노래는 좋은데 오디션 치고 되게 과감한 선택이네.”
박병일 작곡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두 번째 클립.
도웅이 이번엔 못 보던 편곡 실력을 뽐내며 팀을 전원 합격으로 이끌었다.
세 번째 클립에서는 나이에 맞지 않는 감성으로 옛날 노래를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곡까지 소화가 가능하단 말이야···?”
박병일 작곡가는 이때부터 속에서 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지막 영상.
그것은 도웅이 파격적으로 록을 선보였던 변신 미션 영상이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넓은 무대를 자신의 존재감으로 꽉 채우고 있는 도웅의 모습,
그리고 그에게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니터 너머의 작곡가,
박병일 마저도 영상이 끝나는 줄도 모르고 도웅의 무대에 몰입하고 있었다.
모든 영상이 끝나고.
“하··· 하하.”
박병일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내가 같이해달라고 매달려야 할 판인데?”
박병일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영감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그는 이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작곡가 박병일의 얼굴에 유례없는 흥분과 기대가 가득 어른거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조차도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