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2)
052. 탐스러운 결실.
관객석에서 응원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남도웅! 화이티잉!’
‘할 수 있다아!!’
‘남도웅 힘내!!!!’
관객의 규모, 함성.
여느 때보다 넓은 공연장이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단 사실이 도웅을 들뜨게 했다.
‘예전엔 나도 이 장면을 TV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과거의 도웅은 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무대 위에 서 있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도웅은 무대를 훑으며 관객들을 눈에 담았다.
그러자 발끝에서부터 어떤 전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저 누군가 우승하기만을 바라던 입장에서,
이젠 스스로 그 우승을 거머쥘 수가 있었다.
도웅은 다짐했다.
이 순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그를 찾아준 관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야.’
가장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야 말겠노라고.
**
파이널 무대인 만큼,
세 명의 출연자들은 각각 쾌적한 대기실을 하나씩 배정받았다.
도웅의 대기실에서는 강태진과 임명이 작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명이 작가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의문이었으나,
세 사람은 함께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화면을 모니터링했다.
「우승상금 3억! 자작곡을 포함한 앨범 제작비용 일체!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들과 계약할 수 있는 기회!」
화면에 우승자를 위한 혜택이 자료화면으로 지나갔다.
세 가지 모두 실로 엄청난 혜택들이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도웅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음반 발매. 이 노래를 이대로 썩힐 수는 없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을 해야 해.’
도웅을 위해 탄생한 첫 노래가 이대로 묻혀 버리는 것만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정을 떠나서, 절대 묻혀서는 안 될 그런 수준의 곡이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던 때, 임명이 작가가 말을 걸었다.
“도웅 씨는 3억 타면 뭐 하고 싶어요?”
“···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우승을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막상 저것들이 정말 주어진 이후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별다른 계획이 없다는 도웅의 답에 임명이 작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걸 생각을 안 해봤단 말이에요? 만약 나한테 3억이 주어진다면, 난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날 거예요.”
그러며 그녀는 홀로 상상의 나래에 빠졌다.
그때 곁에서 듣고만 있던 강태진이 한마디 거들었다.
“임 작가님, 3억이 평생 밥 먹여주는 거 아니잖아요. 일 해야죠, 일.”
“어머, 강 대표님은 직장인들 마음 몰라서 그래요. 3억이면 일단 떠나고 보는 거예요!”
사실 임명이 작가가 1억을 갖고 떠나든 3억을 갖고 떠나든 강태진은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태진이 나선 데는 도웅이 이 얘기를 듣고 훌쩍 떠나버릴까 싶은 걱정에서였다.
결국, 산통이 깨진 임명이 작가의 얼굴에,
강태진은 진지했나 싶어 멋쩍어졌다.
그때 임명이 작가의 시선이 도웅에게로 돌아갔다.
“하긴, 우승만 하면 도웅 씨 앞길에 고속도로가 깔릴 텐데, 지금 떠나면 아깝지. 그럼 도웅 씨, 혹시 결승 끝나고 갈 소속사는 생각해둔 데 있어요?”
“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생각해 둔 데는 있어요”.
“그 기획사는 좋겠네~. 이렇게 반짝이는 보석을 데려가면.”
임명이 작가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강태진을 슬쩍 쳐다봤고,
동시에 침을 꿀꺽 삼키는 강태진의 모습이 보였다.
“도웅 씨, 저 앞으로도 도웅 씨 계속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감사는요, 고마우면 나중에 제가 프로그램 기획할 때 출연 빼기 없기예요?”
도웅은 말없이 씩 웃었다.
임명이 작가는 동의의 뜻으로 알아듣고 얘기했다.
“혹시 방송국 사람이나 기자 중에 누가 괴롭히면 얘기하고요. 이 바닥에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거든요.”
약간의 허세 섞인 얘기겠지만, 도웅은 말만으로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강태진은 심사위원석으로 떠났고,
VCR 화면에서는 스페셜K스타가 지나온 과정들이 흘러나왔다.
1차 예선을 위해 각 지역의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그 과정에서 살아남고, 탈락하며 희비가 엇갈렸던 순간들.
마치 이곳에서 도웅이 겪은 시간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 간 것처럼 생생하게 모든 순간들이 화면 속에 담겨있었다.
임명이 작가가 말했다.
“우리 이 PD가 아주 편집은 끝내줘.”
그것은 도웅도 동의하는 바였다.
-당신의 특별한 꿈을 찾아서! 스페셜K스타! 시즌2
마지막으로 화면 위에 스페셜K스타의 슬로건이 확 박혔다.
도웅은 순간적으로 가슴에 뜨거운 것을 느꼈다.
예선에서 현수막에 걸린 저 슬로건을 보며 설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저 슬로건의 주인이 되기까지 단 한 발자국만이 남아있었다.
“나온다.”
임명이 작가가 집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화면에서는 최종 미션의 작곡가 선정 과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수가 되고 싶으면 노래로 선택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웅과 문도겸의 마찰 장면은 통째로 편집이 되었고,
시청자들에게 도웅이 선택받은 이유를 납득시킬만한 장면 정도가 전파를 탔을 뿐이었다.
「조금 아쉽지만, 열심히 해야죠.」
화면 안에서의 문도겸은,
조금 씁쓸하지만 괜찮다는 표정으로 가식을 떨었다.
문도겸이 새로 받은 노래는 과거 우승곡에 비교했을 때 나쁘지 않았다.
그는 도웅에게 보이던 예민하고 불안한 모습은 싹 감추고,
화면 안에서 희망의 가사를 노래하고 있었다.
도웅은 이제 실체를 알았기에 약간의 거북함이 느껴졌지만,
그의 훌륭한 노래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전에 괜히 우승자였던 게 아니야.’
도웅은 다시 약간의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문도겸의 연습 장면을 본 임명이도 부쩍 말수가 줄었다.
VCR이 끝나자, 그제야 임명이 작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가 있어야지.”
임명이는 혹시나 이석규 PD가 끝까지 편집으로 장난을 쳤을까 봐,
일부러 VCR을 끝까지 모니터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때 화면에 사회자의 얼굴이 비쳤다.
「문자투표 중간 집계 결과를 공개합니다!」
“이것 까지만 보고 가야겠다.”
탕! 탕! 탕!
각각의 이름 위에 집계 그래프가 치솟았다.
-제임스 29%, 문도겸 35%, 남도웅 36%.
“문도겸 씨랑 박빙이네요.”
임명이 작가가 긴장되는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래도 저는 믿어요, 도웅 씨가 우승 할 거라고. 끝까지 화이팅이에요!”
그녀는 응원의 한 마디를 남기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도웅은 계속해서 TV 화면을 응시했다.
그곳에선 막 문도겸의 결승 무대가 시작되던 참이었다.
**
-♩ 그렇게 늘 웃어요.
방금 막 희망을 노래하던 문도겸의 결승 무대가 끝이 났다.
꺄아아악.
관객들은 커다란 환호성을 내질렀다.
문도겸이 강력한 우승 후보이다 보니 관객석 내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역시 문도겸이야. 노래 너~무 잘해!”
“문도겸의 따듯한 인성이 노래에 다 들어가 있어서 좋았어.”
“그 힘듦을 딛고 이런 감동을 주다니.”
“이게 다 그 인생의 깊이가 담겨있는 거라고.”
“하긴, 저게 찐이지. 고등학생이 흉내 내는 느낌이랑은 차원이 달라.”
마지막에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문도겸의 팬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도웅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의 문자 투표는 아주 비등한 상황이라,
언제 누구에게 전세가 뒤집혀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들 옆에 서 있던 두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지난번 홍대 게릴라 무대에서 도웅의 팬이 되었던 찍덕들이었다.
그들은 오늘도 목에 커다란 카메라를 하나씩 걸고 있었다.
“막귀인가, 남도웅이 흉내 내는 느낌이라니. 내가 듣기에는 문도겸이 안 맞게 꾸며낸 느낌이 드는데.”
“어, 너두?”
“남도웅이 저 나이에 그런 감수성을 표현한다는 거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일인데.”
“맞아, 맞아.”
“두고 봐, 남도웅은 곧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수로 성장할 거니까.”
“그래, 네 음악적 안목은 인정이지. 나도 왠지 그럴 것 같아.”
옆에서 친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VCR 화면에서 도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꿈을 좇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이 곡에 담았습니다. 꿈을 가진 모든 분들이 이 곡에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결승 무대의 피날레.
남도웅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
무대의 커다란 전광판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차갑고 쓸쓸한 분위기.
무대 뒤에서 핑거스타일의 전자기타 선율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일렉트릭한 사운드가 차갑고 세련된 느낌을 주면서,
포크 음악의 어쿠스틱한 분위기가 결합된 포크 록 장르였다.
도웅의 어쿠스틱 커버 곡과 록 무대를 보고,
박병일 작곡가가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었다.
갖가지 악기가 어우러진 매혹적인 선율들.
그리고 마침내 그 선율에 도웅의 음색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 꿈꾸는 게 다예요 오늘도
여리고 섬세한 도웅의 목소리가,
꿈 하나만 가진 청춘의 막막함을 표현했다.
그 감정에 누구보다 공감할 마이클과 유정우, 백설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그들은 카메라가 자신들을 비추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도웅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전자기타 선율에 드럼 비트가 합쳐지며 분위기가 점차 고조됐다.
-♩ 아직 늦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가 볼까
도웅은 스탠딩 마이크를 쥐고 허공을 애절하게 훑었다.
끝에 불안하게 떨리는 비브라토와 함께 깊어진 고민의 감정.
곧이어 시작된 클라이맥스에서,
격렬해진 전자기타 소리와 함께 도웅이 날카로운 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정제되지 않은 고민과 혼란의 감정이 고스란히 그의 목소리와 몸짓에서 전해졌다.
“···.”
관객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웅의 노래에 완전히 사로잡혀, 경악하고, 전율하고, 감탄했다.
도웅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감정,
그리고 섬세한 표현력.
거기다 가만히 서서 관객들을 사로잡는 흡입력까지.
도웅이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여러 재능들이,
이 곡에서 뒤섞여 엄청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잔잔해진 피아노 선율 위에 도웅의 담담해진 목소리가 올라갔다.
-♩ 꿈이 있기에 걷고 있다는걸.
커다란 화면에 내리던 눈발이 꽃잎으로 뒤바뀌어 흩날렸다.
꿈을 꾸며 갈팡질팡하던 겨울이 끝나고,
봄을 암시하는 여운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너무 멋있어!!!!”
“남도웅 최고다!!!”
관객들의 반응이 일시에 폭발했다.
그제야 멍하니 도웅의 무대를 바라보던 심사위원들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관객석에 있던 찍덕 하나가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종료하고,
제 친구를 툭툭 쳤다.
“야, 쟤들 좀 봐.”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문도겸의 팬들이 자신들이 아까 내뱉은 말도 잊은 채, 그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친구는 예상한 결과라는 듯이 피식했다.
“항상 저런 사람들 보면,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얘기한다니까.”
**
탈락했던 참가자들이 꾸민 축하공연이 끝나고,
모든 경연을 마친 최종 3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여느 때보다 뜨거운 함성들이 그들을 맞았다.
-와아아아아!!
-꺄악! 남도웅!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도웅은 후련한 마음으로 함성을 내지르고 있는 관객들을 바라봤다.
좀 전에 저들의 머리 위에 떠올랐던 아름다운 별 무리만 떠올려도,
도웅은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때 사회자가 외쳤다.
“이제 세 사람의 경연이 끝났습니다. 최종 우승자만이 이 곡을 앨범에 실을 수 있습니다.”
도웅은 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배가 부르긴. 우승해서 이 곡, 발매해야지.’
이제 남은 것은,
길고 긴 장정의 끝에 걸릴 탐스러운 결실뿐이었다.
“과연 누가 그 영광을 누릴지! 심사평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심사위원 중, 가운데 앉은 남자가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판타스타의 대표 강태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