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3)
053. 단 한 명의 우승자.
밝은 조명 때문인지, 관객들의 시선들 때문인지.
무대 위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그 무대 위로.
제임스, 문도겸, 남도웅.
세 사람이 등간격으로 떨어진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들을 위해 강태진이 긴장을 풀어주고자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무대 잘 봤습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의 의도가 통했는지 제임스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럼 제임스 씨부터 평가하겠습니다.”
곧이어 냉정한 평가가 진행됐다.
무대 전체에 초시계 소리를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이 깔렸고,
제임스는 아까보다 더 굳은 얼굴로 심사위원석을 바라봤다.
“제임스 씨는 목소리 톤과 노래의 조화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제임스에 대한 평가는 도웅이 기억하는 대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곧 모든 심사위원이 평가를 마치자 사회자가 외쳤다.
“자, 제임스의 평균 점수는요!”
그 순간 빠르게 심사위원들의 전광판에 이목이 쏠렸다.
“네, 평균 점수 90점입니다!”
-와아아아아!
그를 응원하는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가 지금껏 받은 점수 중 가장 높은 점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3등을 할 것이라 직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도웅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2등을 했겠지.’
하지만 이미 바뀐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
전광판에 떠오른 제임스의 얼굴에 속 시원함, 그리고 아쉬운 마음이 비쳤다.
다음으로는 문도겸의 평가 차례였다.
그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에는 그를 트레이닝한 미앤 엔터텐인먼트의 이사,
채아가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중간에 박병일 작곡가한테 선택을 받지 못하는 고난이 있었는데, 그걸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요. 듣는 입장에서 굉장히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무난하고 긍정적인 평가였다.
평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포지션이기 때문이거나,
문도겸의 상태를 잘 파악하지 못한 심사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채아가 채점한 점수가 발표되었고-.
“네, 채아 심사위원의 점수는 94점이군요.”
사회자의 멘트 다음으로 양승혁이 천천히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예민한 그의 얼굴에 약간 찜찜한 기색이 비쳤다.
“저는 채아 씨랑 좀 반대 의견인데.”
반대라는 단어에 문도겸이 침을 꿀꺽 삼켰고,
양승혁은 문도겸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작곡가 선택을 처음에 못 받았던 게 경연에 부담에 많이 됐나? 저는 조금 노래가 부담스러웠어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역시 양승혁은 자신의 눈매만큼이나 날카로운 감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경연 무대치고 좀 아쉬웠습니다.”
양승혁은 전광판에 90점이라는 숫자를 남겼다. 혹평에 비해서는 높은 점수였다.
결승 무대인 만큼 만족하는 기준이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강태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저도 조금 감정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하고, 희망차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감정면에서 조금 아쉬운 무대였습니다.”
연속된 부정적 평가에 문도겸의 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귀에는 마냥 듣기 좋았으니까.
회귀 전 도웅이 기억하는 문도겸의 파이널 무대는,
칭찬 일색에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도웅이라는 변수가,
문도겸을 흔들어 버린 것이었다.
두 심사위원이 음악만으로 그의 내면 상태를 캐치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문도겸 씨의 평균 점수는!! 91점입니다!!”
문도겸의 점수는 제임스보다 1점 앞서는 점수였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지 그가 슬쩍 도웅을 바라봤다.
도웅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까 불안한 모양이었다.
“자, 마지막으로 남도웅 군.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나와주세요.”
마침내 도웅의 심사평이 다가왔다.
“남도웅 군은 판타스타에서 그동안 생방송 무대를 준비하셨었죠. 그렇다면 강태진 씨부터 심사평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강태진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생방송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도웅을 잠시 품었던 것이,
오늘로서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듯했다.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남도웅 씨는, 스페셜K스타를 하면서 본 참가자 중에 가장 많은 성장을 한 참가자에요. 아마 이 부분에는 다들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채아가 한쪽 손바닥을 살짝 들어 칼같이 대답했다.
그 장면을 본 좌중이 폭소했고,
강태진도 웃음을 터트렸다가 다시 심사평을 이었다.
“박병일 작곡가가 딱 도웅 씨한테 잘 맞는 곡을 써 주셔서, 한편의 잘 만들어진 성장 드라마를 본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스페셜K스타 이후로 펼쳐질 도웅 씨의 다음 스토리, 기대하겠습니다. 제 점수는요.”
팡!
그리고 드디어 전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순간 공연장을 꽉 채운 객석에서 탄성이 울려퍼졌다.
“최, 최고 점수입니다! 96점! 오늘 나온 점수 중 최고점입니다!”
사회자가 흥분해 소리쳤다.
유례없던 숫자 때문에 장내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대놓고 도웅을 아끼던 심사위원이다 보니 쑥덕이는 관객들도 몇 있었다.
“다음으론 제가 심사할게요.”
곧이어 채아가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여태까지 제가 본 도웅 군 무대 중에 최고였어요.”
강태진에 이어 브레이크 없는 극찬이었다.
그 덕분에 강태진의 높은 점수에 대해 쑥덕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더 놀라운 것은 도웅 군이 매 무대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와, 이렇게 다 보여주면 다음엔 어떻게 하려고 하지? 라는 제 걱정을 다음 무대에서 항상 깨부숴요.”
채아가 주먹을 날려 뭔가를 부수는 듯한 리액션을 취했다.
“물론 곡 자체에 특별함이 있었지만, 그 특별한 곡의 주인이 누군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점수는요.”
팡!
채아의 점수가 뜨자 좌중이 더 시끌벅적해졌다.
“97점! 강태진 씨보다 1점 더 높은 점수입니다!”
경쟁하듯 오르는 심사위원들의 점수에,
관객들은 다음에 몇 점이 나올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양승혁은 그런 대중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한결같이, 그리고 소신껏 평가를 내놓았다.
“도웅 군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아요.”
아리송한 첫마디었다.
양승혁의 평가는 항상 뒷얘기를 들어봐야 알았다.
“오늘도 딱 자기한테 들어맞는 진솔한 표현과 얘기로 가슴에 남는 여운을 줬어요. 감정, 표현, 몰입력, 다 좋았습니다. 제 점수는요.”
예상치 못한, 그리고 상당히 좋은 평가였다.
그의 긍정적인 평에 도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전광판에 뜬 양승혁의 점수는 96점.
강태진과 같은 점수였다.
심사위원 평가가 모두 끝나자 관객들이 기함을 토했다.
“와···. 남도웅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은데?”
“원래 심사위원 사이에서는 남도웅 평가가 제일 좋아.”
“그런데 문자투표가 어떻게 되려나?”
좌중의 분위기가 묘하게 도웅에게 쏠렸다.
‘하지만 문자투표는 매번 문도겸이 조금 더 높았으니까.’
도웅은 심사위원 점수에서는 항상 1등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대중들의 문자투표 점수가 어찌 될지를 몰랐다.
오늘 문자투표의 비율은 60%. 심사위원 점수 반영비율보다 높았다.
도웅은 문도겸이 전에도 문자투표에서 제임스와 큰 차이를 벌렸던 것을 기억했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문도겸의 선한 이미지는 많은 이들에게 막대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도웅은 오늘 무대에서 선보인 자신의 음악이,
PD가 만든 이미지의 힘을 넘어섰으리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문자투표가 마감되기 전,
각 후보자들을 응원하는 영상이 화면에서 흘러나왔다.
「도웅이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2대8 가르마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은색 양복.
그런 담임의 인터뷰에 살짝 당황하는 도웅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탔다.
「남도웅! 우승하자!」
「파이팅!!」
이후로 모든 VCR이 종료되고,
다시 세 명의 참가자가 아까처럼 무대 위에 섰다.
“스페셜K스타 시즌2. 방금 문자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총 200만 개의 문자. 이 문자들이 오늘의 우승자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사회자가 한 마디씩 곱씹으며 말했다.
심사위원 강태진이 최종 발표를 위해 무대로 내려왔다.
도웅은 너무 오래 긴장한 탓에 손발이 저리는 듯했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는 뜸 들이기에 한창,
“스페셜K스타 시즌2, 최후의 우승자는 누구인가요!”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드디어 강태진의 입술이 열렸다.
“스페셜K스타 시즌2. 단 한 명의 우승자는 바로···!”
삼 분할된 화면이 세 명의 참가자를 비췄다.
**
「단 한 명의 우승자는 바로···!」
발표의 텀이 길어지자,
함께 TV를 관람하던 여대생 하나가 신경질을 냈다.
“아오, 빨리빨리 얘기해 달라고오!”
“이러다 광고하면 나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아.”
“야, 발표한다!!”
오늘을 위해 자취방에 모인 여섯 명의 시선이 뜨겁게 TV의 화면을 달궜다.
「우승자는 바로···.!」
꿀꺽. 여대생들 사이에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남도웅 군입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미쳤어!!!!”
온 집안에 돌고래 초음파 같은 비명 소리가 가득 찼다.
옆집에 사람이 살았다면 오밤중에 당장 112 버튼을 눌렀을 만한 괴성이었다.
“우승은 도웅이다, 도웅이!!”
“내가 뭐랬어! 오예!!”
얼싸안고 방방 뛰고 있는 세 명은,
도웅의 우승에 내기를 걸었던 이들이었다.
「남도웅 군, 축하드립니다!」
화면 안의 도웅 역시 여러 사람들의 축하에 둘러싸여 있었다.
도웅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비쳤다.
도웅은 상금 3억이라 쓰인 팻말을 번쩍 들어 그런 어머니에게 안겼다.
그때 여대생 하나가 말했다.
“야, 진 사람들 빨리 치킨부터 시켜. 먹으면서 보게.”
“알았다고.”
“아까 전에 뭐? 문도겸은 착해서 꼭 이겼으면 좋겠어?”
“아우, 그래. 너네 남도웅이 실력으로 문도겸 발랐다, 발랐어. 이제 됐냐?”
도웅을 응원하던 여대생들은 통쾌한 표정을 지었고,
문도겸을 응원하던 세 여대생은 울상으로 배달 전단지를 뒤적였다.
그때 TV에서 도웅의 우승 소감이 흘러나왔다.
「먼저 강태진 대표님, 그리고 함께 고생한 우리 스페셜K스타 제작진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스페셜K스타는 제 길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멋진 가수로 성장해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도웅 씨 축하해요!”
“축하해, 도웅!”
우승의 기쁨은 실로 달콤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도웅을 축복하는 느낌이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전 출연자 모두 스페셜K스타 측에서 준비한 회식 자리로 향했다.
미성년자 우승자인 도웅을 배려해 모두가 첫 잔은 탄산음료로 잔을 채웠다.
당연히 첫 건배사는 도웅의 몫이었다.
“다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 해 나갈 생각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워후!!!
-멋있다!!!
-장하다!!
제작진들이 장난 어린 응원을 보냈다.
어느새 도웅의 곁에 앉아있던 유정우가 말했다.
“형, 솔직히 형 처음 봤을 때부터 우승할 줄 알았어요.”
“예선에서부터?”
“네, 그냥 처음 딱 눈 마주쳤을 때요.”
“하하, 고마워.”
오늘의 운세나 애늙은이 같은 묘한 분위기 때문에,
얘가 진짜 신기라도 있는 건가 약간 긴가민가 하려는 때,
마이클이 끼어들었다.
“에이~, 꼬맹이 거짓말하면 엉덩이에 털 나.”
“엉덩이에 털은 울다가 웃어야 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꼬맹이 아니라니까요!”
“워워, 알겠어, 동생. 침착해.”
두 사람의 투닥거림에 주변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하지만 문도겸 만큼은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했다.
그는 최종 무대에서 패배했고,
결국 고질적인 패배의식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도겸 씨, 2등 축하해.’
스태프들이 축하의 말을 걸어도,
전혀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엔 제임스가 문도겸하고 경쟁 구도였었지.’
도웅은 어쩌면 제임스도,
문도겸을 빛내주기 위한 편집의 희생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엔 그를 재수 없는 엘리트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겪어보니 착하고 순한 쪽에 가까웠으니까.
마침 제임스가 도웅에게 말을 걸었다.
“도웅아, 우승상금으로 뭐 할 거야?”
“글쎄요, 엄마랑 살 집을 살까 싶기도 하고.”
“집? 3억으로 집을 살 수 있어?”
‘물론 가끔 말투가 재수 없기는 하지만.’
벌써 취한 임명이 작가는 이석규 PD에게 헤드록을 걸고 있었다.
“꺄하하하, 어떻게 해. 우리 PD님 체면 어떻게 하냐고 오!”
“아이, 좀 놔요 임 작가님!!”
“PD님 봤죠? 제 감? 봤냐고요?”
“어휴, 이거 10년은 우려먹게 생겼네.”
그래도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마친 덕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그때 누군가 도웅 쪽으로 쓱 다가왔다.
미앤 엔터테인먼트의 채아였다.
“도웅 군 축하해요!”
그녀는 싱그럽게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도웅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항상 올려다보던 심사위원과 동등한 눈높이에 앉아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채아가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도웅 군,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채아가 엄지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열기에 달아올랐던 얼굴에 시원한 공기의 마찰이 느껴졌다.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간 채아가 입을 열었다.
“도웅 군 미앤으로 데려가고 싶어서요.”
“네?”
“이제 슬슬 앞길 정해야죠.”
도웅은 채아의 직진이 당황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