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5)
055.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직원들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도웅의 선택이 의외였던 모양이었다.
“도웅 씨, ‘허영준의 뮤직 토크’···. 이건 신생 프로인데요? 아직 기반도 안 잡혔고.”
혀영준의 뮤직 토크.
가수 겸 작곡가인 허영준이 MC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대중가요부터 인디 음악까지.
시청자들에게 다채롭게 선별한 음악과 가수를 소개하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자연스레 음악적 선호가 있는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있고,
MC 특유의 입담으로 머지않아 대중적 인기까지 높아질 프로그램.
‘유명 아티스트들이나 가수들도, 컴백할 때 꼭 거쳐 가는 곳이었지.’
도웅은 회귀 전의 정보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이 론칭한 지 얼마 안 된 지금이 기회였다.
여기서 한자리를 차지해 볼 수 있는.
‘허영준의 뮤직 토크’에는 ‘이달의 다시 듣기’라는 코너가 있었다.
MC와 제작진이 지정한 초대가수가 한 달간 출연하며 관객들에게 신청곡을 불러주는 코너.
도웅은 그 한 달간 출연할 수 있는 초대가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신인이라 노래가 아직 몇 개 없는 도웅이 편곡으로 음악적 어필하기에도 적격이었다.
그러나 그 뜻을 알 리 없는 직원 하나가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허영준의 뮤직 토크는 음악에 관해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반 교양 프로그램이에요. 그래서 시청률도 낮고···.”
기본적으로 지상파이기 때문에 3% 정도의 시청률은 깔고 갔지만,
섭외가 들어온 다른 쟁쟁한 프로그램에 비교해서는 낮은 시청률이었다.
도웅은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저는 이 프로그램에 첫 번째로 출연하고 싶어요. 그리고 단독으로요.”
도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태진을 포함한 직원들이 서류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단독이라면 이 프로그램만 하시겠다는 건가요?”
“이 방송이 나갈 때까지만요. 그래야 사람들이 이 방송을 찾아볼 테니까요.”
자신의 화제성과 희소성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얘기였다.
도웅은 계속해서 얘기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궁금해하는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서, 제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등학생이 떠올렸다기에는 상당히 깊이 있는 발상이었다.
그에게 놀란 직원들이 고요해졌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가수가 음악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하는데,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판타스타는 아티스트의 의견을 굉장히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침묵 속에 직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시청률이야 당장 도웅 씨에 대한 궁금증이 절정일 때라, 아마 도웅 씨가 8시 내 고향에 나온다 그래도 다들 찾아볼걸?”
“그건 맞아.”
다른 직원들도 동의했다.
쏟아지는 예능과 광고 섭외.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도웅이 그만한 화제성을 갖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 기간이 얼마나 갈까?
오디션 우승자로서의 화제성은 오디션이 끝난 직후 반짝이었다.
도웅은 지금 한창 치솟아 있는 그 화제성을 이용해 자신의 음악을 노출할 생각인 것이었다.
그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도웅의 수명을 늘리는 길이었다.
도웅의 의사를 확인한 강태진의 표정은 상당히 오묘했다.
‘오히려 이런 조언은 내가 먼저 해줬어야 했는데. 도웅 씨는 벌써 자기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있구나.’
그는 도웅의 계획이 확고한 만큼, 자신은 서포트에 힘을 쏟기로 했다.
강태진이 건너편에 앉은 직원에게 말했다.
“2팀장님, 도웅 씨 매니저 배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정남이가 지금 하던 일만 정리하고 따라붙기로 했습니다.”
“정남이면 믿을만하지. 잘 됐네요.”
이번엔 옆에 있는 직원에게 지시했다.
“홍보팀은 허영준의 뮤직토크 스케줄 확정되면 바로 기사 좀 내보내 주세요. 우승 후 첫 출연인 거 강조해서.”
“네,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 자리로 돌아온 홍보팀 직원 하나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도웅 씨 되게 앞길에 주관이 뚜렷하다. 난 저 나이 때 누가 시키는 대로만 살았는데.”
“나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다 출연하고 한탕 땡겼을 거야.”
“시청자들이 우승자 타이틀에 흥미 떨어지면, 하락세 걸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 그 전에 자기만의 음악적 커리어를 쌓는 데 집중하겠다는 얘기고.”
“확실히 도웅 씨는 뭔가 달라. 뭔가 대성할 느낌이 와.”
직원들이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
허영준의 뮤직토크 회의실.
가장 먼저 온 메인 작가가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이어폰으로 노래 하나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집중해서 회의 서류에 뭔가를 끄적였다.
그때 조용히 회의실 문이 열리고,
젠틀하지만 장난기 넘치는 남자.
프로그램의 MC 허영준이 등장했다.
혀영준이 인기척 없이 작가의 뒤에 가서 섰다.
“왁!”
“악! 깜짝이야!”
메인 작가가 스프링처럼 튕겨 오르더니 심장을 부여잡았다.
익살스러운 웃음을 띠는 허영준의 얼굴.
그에게 메인작가가 원망을 쏟아냈다.
“제발 인기척 좀 내고 다니세요!”
“나이 드니까 신선이 되어가는지 발소리가 안 나.”
“에휴··· 정말.”
“뭐 듣고 있었어?”
그는 작가가 떨어트린 이어폰 한쪽을 귀에 꽂았다.
“또 이 노래네? 넌 요즘 이 노래만 듣니?”
“너무 좋잖아요. 아련함이 가슴에 팍팍 꽂힌다구요. 고등학생이 어떻게 이런 느낌을 내나 몰라.”
“그래, 나도 들어봤는데 괜찮긴 하더라. 남도웅이랬나?”
“네, 며칠 전에 섭외 전화 넣었는데 제발 우리 프로에 나와줬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듯한 시늉을 했다.
허영준은 작가 앞의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걔가 지금 한창 뜨거울 땐데 여길 왜 오겠어. ‘해피 두개더’나 ‘래디오 스타’ 같은데 나가겠지.”
“그렇겠죠? 그래도 넣어봤으니 모르죠. 딱 지금 나와주면 시청률도 바짝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그때 책상 위에 놓인 작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휴대폰을 집어 든 작가의 눈이 이내 휘둥그레졌다.
“아, 네, 네! 정말이요? 네 감사합니다!!”
작가가 통화를 끝내자마자 궁금증이 동한 허영준이 물었다.
“무슨 전화인데 그래. 우리 프로에 남도웅이라도 나오겠대?”
“네!”
“뭐?”
“그것도 단독으로요!”
바라던 일이 성사돼 기쁨이 가득한 작가의 얼굴과 비교해,
허영준의 얼굴엔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왜 하필 우리 프로그램에 단독으로···?’
허영준은 남도웅이라는 인물이 조금 궁금해졌다.
**
도웅은 뮤직 토크 촬영을 위해 집을 나섰다.
‘···?’
그런데 바깥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거구의 남자 하나가 빌라의 현관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 빌라에 사채빚을 쓴 사람이 있나?’
도웅은 조폭을 연상시키는 남자의 모습에 최대한 조용히 그 곁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남자가 정확히 도웅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리고 쑤욱.
“안녕하십니까.”
그가 단번에 벽돌이라도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은 두터운 손을 내밀었다.
“인사드립니다. 오늘부로 남도웅 씨한테 배정된 매니저 심정남입니다.”
도웅은 얼결에 악수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진짜 매니저 맞겠지?’
아니라면 우승상금을 노린 납치범임이 분명했다.
다행히 차 안에는 생김새와 다르게 세심하게 챙겨놓은 물품들이 가득했다.
“가시는 길에 드실만한 음료수랑 김밥 아래에 넣어놨습니다.”
상당히 듬직한 이 남자는 진짜 판타스타의 매니저가 맞았다.
딱딱한 말투에서 약간 과거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저 진짜 스페설K스타 재미있게 봤지 말입니다. 문자투표도 꼬박꼬박했고요. 노래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아, 그 문도겸은 처음부터 느낌이 쎄한게···..”
그는 생각보다는 수다스럽고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도웅은 자신의 듬직한 매니저가 마음에 들었다.
매니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도웅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방송국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방법이 먹혀들어 가야 할 텐데.’
도웅은 ‘허영준의 뮤직토크’에 한 달간 출연할 수 있는,
‘이달의 다시 듣기’ 초대가수 자리를 꿰찰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네 번은 출연해서 그만큼 내 음악을 사람들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거니까.’
순간적인 화제성이 짙은 도웅 같은 연예인에게는 장기적인 섭외 문의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해서 그 자리를 따내야 했다.
보여줄 무대만 만들어 놓으면 시청률은 도웅을 어느 정도 따라오게 되어있으니까.
그러나 그 자리는 특히나 일반 게스트 섭외 방식과는 다르게,
MC 허영준과 제작진을 음악적으로 만족시켜야만 제안받을 수 있는 자리였고,
그들의 음악적 기준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
오늘 준비해온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까.
진짜 문제는,
‘스케줄이 어디까지 꽉 차 있느냐지.’
그 코너의 출연자 스케줄이 어디까지 차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도웅은 부디 자신의 화제성이 떨어지기 전에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
‘허영준의 뮤직 토크’ 촬영이 시작됐다.
도웅은 관객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자신의 우승곡 ‘When I dream’으로 프로그램의 포문을 열었다.
무대 뒤에서 도웅의 라이브를 확인한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승자는 우승자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라이브 무대도 굉장히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도웅의 노래가 끝나고, 허영준이 청중에게 그를 소개했다.
“여러분, 이 분 누구인지 다 아시죠?”
“네에-!”
관객들이 입을 모아 답했다.
“지금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스페셜k스타 시즌2의 우승자, 남도웅 군입니다!”
무대 위 열기만큼 후끈한 박수소리가 물결쳤다.
도웅은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 가운데 마련된 바 체어에 앉았다.
허영준이 씨익 웃으며 눈빛이 초롱초롱한 관객들을 둘러봤다.
“오늘따라 방청권 신청이 치열했대요, 도웅 씨 때문에, 아니 덕분에.”
“하하하.”
허영준 특유의 너스레에 도웅과 청중이 웃음 지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도웅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승하고 나니까 기분이 어때요? 막 신나고 세상 최고가 된 것 같고 그래요?”
그의 익살스러운 몸짓에 또다시 좌중이 폭소했다.
도웅은 그런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다 답했다.
“첫날 빼고는 거의 학교, 회사, 집이어서 생각보다는 실감이 잘 안 났어요. 애들도 처음에만 축하해 주고 이제 다시 평소랑 똑같아요.”
“오, 약간 모범생 스타일인데? 친구들한테 맛있는 거 사줬어요?”
“네. 아이스크림이요.”
“이야-. 통 크네.”
관객들이 다시 폭소했다.
그는 연신 흥미롭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도웅의 뒤편에 놓인 기타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 기타는 뭐예요?”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었지만 허영준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도웅은 그 덕에 자연스럽게 기타를 들어 올렸다.
“아, 제 장기가 노래하고 기타 치는 것밖에 없어서.”
“우와, 그런데 그 장기로 오디션 프로그램 1등 했어.”
“그래서 제가 기타 편곡을 조금 준비해 왔어요.”
-우와아~!
도웅의 기타 연주를 기대하던 관객들이 기대감을 반짝였다.
도웅은 기타를 꺼내 다리 위에 살포시 올렸다.
“‘그대로 아름다운지’ 들려드리겠습니다.”
제목을 들은 관객들이 술렁였다.
그 반응을 본 허영준이 물었다.
“도웅 씨, 괜찮겠어요?”
“네. 괜찮아요.”
“오디션 이후 방송 첫 출연이라고 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요.”
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허영준 본인이 작곡한 ‘그대로 아름다운지’.
항상 가수가 소화할 수 있는 최대의 고음을 넣어 작곡을 하는 그의 스타일에,
원곡자도 힘겨웠다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을 만큼 극한의 고음을 자랑하는 노래였다.
씨익.
도웅은 자신 있게 웃어 보이고, 기타에 손을 올렸다.
‘이거 괜찮을까?’
허영준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도웅과 관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오디션 우승자라고 사람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려다 되레 실망만 안겨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라이브 무대라 실수는 되돌릴 수도 없었다.
잠시 후 도웅의 손가락이 기타 위에서 호선을 긋고,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 도웅의 안정적인 보컬이 올라갔다.
도웅의 노래를 듣는 허영준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심상치 않게 변했다.
특히 고음 부분에서는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노래가 끝난 후, 허영준이 아직도 놀람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잠깐, 이 노래를 이렇게 쉽게 소화한다고?”
도웅을 반짝하는 오디션 우승자로 대하던 허영준의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