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6)
056.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화제성 높은 유명인.
그게 남도웅이라는 게스트에 대한 허영준의 분류였다.
하지만 방금의 무대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도웅에게서 명백한 가수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느낀 것이었다.
허영준이 도웅에게 재차 물었다.
“아니, 이 노래를 이렇게 쉽게 불러요? 안 힘들었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가시지 않은 흥분이 어려있었다.
도웅은 숨을 고르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괜찮았어요.”
-오오오.
관객들의 놀라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솔직히 도웅도 무지 힘들었다. 내색을 안 했을 뿐.
이제 웬만한 고음은 어렵지 않게 내는 편인데도,
이번 곡은 도웅에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죽도록 열심히 연습했지.’
도웅은 뮤직 토크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
줄곧 판타스타 연습실과, 나만의 연습실에서 이 곡을 연습하는 데 몰두했다.
고음 변태.
허영준이 가까운 미래에 하사받을 별명이었다.
도웅은 회귀 전 봤었던 그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저는 가수가 한계치로 고음을 소화할 때 느끼는 짜릿한 맛에 작곡을 해요.’
진짜 변태 같은 인터뷰라서 기억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인터뷰 덕분에 도웅이 이 노래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충격받은 것이 명백해 보이는 허영준은,
방금의 무대로 한 가지 더 느낀 것이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 다 제치고 우리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가 이거였어.’
바로 도웅의 음악적 욕심.
허영준은 도웅이 이렇게 어려운 곡을 준비해왔다는 데서 대중들에게 음악을 보여주고자 하는 날카로운 욕심을 읽었다.
‘얘는 진짜배기구나.’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웅 씨 진짜 가수 맞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네,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인정할게요.”
그의 반응에 관객석이 살짝 술렁였다.
허영준은 음악계에서는 꽤 정평이 나있는 싱어송라이터.
그런 그가 인정한다는 의미는 조금 남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웅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 예감했다.
**
녹화를 끝낸 MC 허영준, 그리고 PD와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날 촬영분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단연 오늘 가장 인상 깊었던 참가자가 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PD가 싱글벙글한 낯으로 얘기했다.
“영준이 형, 오늘 관객석의 뜨거운 열기 보셨어요?”
“응, 도웅 씨 오디션 끝나고 첫 출연이라 그런지 다들 눈에서 레이저 나올 듯이 집중하더라고.”
“레이저는 형 눈에서 나오는 것 같던데요?”
이 세 사람은 프로그램을 론칭하기 전부터 안면이 있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
작가는 허영준이 레이저 쏘는 표정을 떠올렸는지 킥킥 웃었다.
그녀는 도웅이 뮤직 토크에 출연해 준 것에 한을 풀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분위기 보니까 시청률도 진짜 잘 나올 것 같아요.”
“맞아, 방청권 신청 때 게시판 폭주했던 것만 봐도 확실해.”
작가의 말에 PD가 맞장구쳤다.
“···.”
허영준은 한동안 오묘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PD가 그의 표정을 발견하고 물었다.
“형, 눈을 왜 그렇게 떠요?”
허영준은 PD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상체를 테이블로 바짝 끌어당겼다.
“내가 보니까 남도웅 군이 음악에 대한 열정이 상당해.”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른 프로그램 제치고 저희 프로에 출연했겠죠.”
작가가 동의를 표했다.
허영준은 잠시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그들 앞에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우리, 도웅 씨한테 ‘이달의 다시 듣기’. 초대가수를 제안해보는 거 어때.”
“한 달짜리를요? 우리야 좋지만 네 번씩이나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줄까요? 한창 바쁠 텐데.”
“내가 봤을 땐 할 거야.”
허영준은 도웅의 승낙을 확신하고는 작가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달의 다시 듣기 스케줄이 어떻게 돼?”
작가가 재빨리 제 앞에 펼쳐져 있던 스케줄표를 훑었다.
“음···. 다음 달은 유목현 씨, 그 다음 달은 한지혜 씨. 이렇게 두 분 예정되어 있네요.”
“아, 그래? 그럼 꼬박 두 달은 기다려야 되네.”
허영준은 생각보다 텀이 긴 것을 확인하고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그때 PD가 나섰다.
“아이, 그런데 도웅 씨가 출연한다면 당연히 다 미뤄야죠. 지금이 도웅 씨 화제성 절정일 땐데 그게 우리 한테 훨씬 좋지.”
PD가 확실히 결정을 마친 듯, 작가를 재촉했다.
“최 작가님, 도웅 씨한테 지금 빨리 연락해 줘요. 다른 스케줄 잡기 전에.”
“네, 네!”
작가는 헐레벌떡 전화를 집어 들었다.
**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매니저 심정남이 한창 들뜬 모습으로 오늘 녹화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고 있었다.
“와···. 진짜 저 고음 부분에서 소름 돋았지 말입니다. 제가 관객들 반응도 살펴보고 제작진 반응들도 살펴봤는데 다들 저만큼은 놀란 눈치였다니까요. 저는 그 노래가 그렇게 부르기 어려운 곡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중에서도 허영준 씨가 제일 깜짝 놀라더만요.”
그는 다소 수다스러웠지만,
매니저가 가수에게 현장 반응을 알려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대부분 좋았던 반응들이라 도웅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의 기나긴 감상이 끝나고, 도웅이 말했다.
“형, 저한테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제가 나이도 훨씬 어린데요.”
하지만 심정남은 되려 손사래를 쳤다.
“저는 그럴수록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형, 동생 사이가 아니라 아티스트와 매니저 관계니까요. 나중에 사이가 편해지면 차차 바꿔가겠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나이 상관없이 아티스트를 존중해 주겠다는 태도가 좀 멋지네.’
도웅도 거기서 더 강요하지 않고 본인의 직업관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때 거치대에 걸려있는 그의 휴대폰이 요란한 벨 소리를 냈다.
-♩이세상은 요오지경~우르이히!
심정남은 방금의 진중한 모습과는 상반되게 방정맞은 노래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심정남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아, 네. 작가님. 오늘 촬영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이달의 다시 듣기요? 네, 압니다.”
도웅은 ‘이달의 다시 듣기’라는 단어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아, 정말입니까. 그런데 그게 4주 동안···. 그건 저희 아티스트랑 조금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연락드리겠습니다.”
심정남이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도웅에게 말을 전했다.
“지금 뮤직토크에서 벌써 새로운 제안이 왔지 말입니다. 역시 도웅 씨 노래에 어지간히 반한 것 같더라니.”
그는 이 상황이 뿌듯한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도웅이 내용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
“아까 들어보니까 ‘이달의 다시 듣기’ 얘기를 하시던데.”
“네, 그 코너의 초대가수 자리에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그 스케줄로 4주를 잡아먹기에는···.”
심정남이 조금 아깝지 않냐는 의미로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도웅은 생각할 것 없이 쐐기를 박았다.
“정남이 형, 그거 우선으로 스케줄 잡아주세요.”
“예?”
왜냐하면 그게 도웅이 원하던 결과였으니까.
**
강태진의 결재가 떨어졌고,
제작진과 스케줄 조율이 끝난 뒤에 홍보팀은 곧바로 기사를 내보냈다.
「남도웅 초고속 ‘이달의 다시 듣기’ MC 행. 현장 반응 얼마나 뜨거웠길래?」
「’이달의 다시 듣기’ 이달의 MC로 남도웅 합류.」
「4주간 허영준의 뮤직토크의 식구가 됐어요. 남도웅, 스페셜K스타 우승자의 예측불허 행보.」
‘이렇게 곧바로 출연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도웅은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에 만족을 느꼈다.
그렇게 기세를 이어 곧바로 도웅이 프로그램에 투입된 이후,
2주 만에 뮤직 토크의 시청률이 6%로 껑충 뛰었다.
도웅에 대한 뜨거운 화제성을 타고
원래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예정이었던 프로그램이 더 빠르게 상승 궤도에 오른 것이었다.
-요새 남도웅 보는 맛으로 ‘이달의 다시듣기’ 본방 사수한다.
-다른 프로그램도 나왔으면 좋겠기는 한데, 편곡한 노래 듣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노래하는 모습이 제일 멋있긴 함.
-난 그래도 다른 프로그램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ㅜ 감질나.
-근데 다들 허영준 이렇게 웃긴 사람인 줄 알았음?
-아니요 ㅋㅋㅋㅋ. 허영준 씨 입담 하찮고 좋아요. 남도웅이랑 케미도 꿀잼.
도웅은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들을 훑으며 오늘도 방송국으로 향했다.
역시 음악 프로에 출연하다 보니 댓글에 도웅의 음악에 대한 얘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웅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한 주 밖에 안 남았네.’
벌써 약속한 4주의 시간이 다 되어갔다.
지금은 오늘 3주 차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도웅은 묵묵히 생각했다.
‘다음 프로그램은 뭘 하면 좋을까.’
그러고 보니 메가 플레이 어플에 새로운 영상이 안 나온 지도 꽤 오래된 상황이었다.
레벨업 이후로 새로운 영상이 나오는 주기가 확실히 불규칙 해졌다.
도웅은 조용히 메가 플레이 어플을 뒤적이다가 불현듯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그냥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한 번 빨간 별을 모아볼까?’
빨간 별은 동영상의 주인에게서 나오는 특수한 별이었다.
미리 새 영상을 개방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하는데 쓸 수 있는.
그렇기에 빨간 별을 모으면 다음 영상이 더 빨리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현재 모을 수 있는 빨간 별은 두 개.’
신인 아이돌 L의 기타 편곡법(C)의 리엘
베테랑 보컬 B의 무대 장악력(B)의 배현.
이 두 사람에게서는 아직 빨간 별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면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다짜고짜 찾아가서 노래를 들려주기도 이상하고.’
아마 그런 짓을 벌였다간 이상한 후배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았다.
‘뮤직 토크 방청권을 보내볼까?’
하지만 당장 친분도 없는 데다,
오늘을 제외하면 촬영이 한 주밖에 안 남은 상태라 현실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낮았다.
도웅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마주칠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저는 도웅 씨 노래 홍보 좀 하고 오겠습니다.”
매니저 심정남은 도웅을 대기실에 데려다주고 나서,
도웅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싱글 앨범 한 박스를 가지고 자리를 떠났다.
‘조금 시간이 남는데 돌아다녀 볼까.’
도웅은 조금 일찍 도착한 김에 방송국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구경하기에 한참.
라디오 스튜디오 앞을 지나가다가,
열린 문 틈새로 우연히 대화 내용을 엿들었다.
“가수 쪽 DJ로는 블루파워 시환이 아무래도 제일 낫겠죠?”
“낫기야 제일 낫지. 노래도 잘 하고 인기도 많으니까. 그런데 몸값이 좀 비싸야 말이지.”
“그것도 그런데, 저는 말을 잘 할까 걱정이 돼요. 아무래도 라디오다 보니까.”
새로운 라디오 편성을 앞두고 캐스팅 회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블루파워 시환 얘기하는 거 보니 ‘뮤직 커넥션’ 기획 회의인가 본데.’
뮤직 커넥션.
가수와 래퍼, 두 명의 DJ가 노래를 소개하거나 때로는 직접 불러주기도 하는,
라디오 청취자와 소통하는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블루파워의 시환은 미래에 이곳에서 DJ로 활약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에게 음악적 인지도를 쌓아 올리고,
여기서 확장된 음악성과 팬층으로 솔로 가수로서도 성공을 거둔다.
‘고정적으로 음악을 노출하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메인 DJ자리.’
도웅은 그런 면에서 뮤직 커넥션의 DJ 자리가 조금 탐이 났다.
그때 이어서 라디오국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게스트는 누구누구 생각 중이에요?”
“BA밴드의 배현이 후보에 있어요.”
“아, 그 친구 요새 분위기 좋지.”
도웅이 꼭 이 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