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59)
059. 한 번 보여줘.
SBN 방송국 앞의 주차장.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가득한 가운데,
가수 여명이 유유히 포토라인에 등장해 손을 흔들었다.
“우와, 여명!”
“오빠! 이번 노래 좋아요!”
“여명 씨, 여기 카메라 한 번만 봐주세요!”
급 높은 가수의 등장에 기자, 팬 할 것 없이 여명을 향해 소리쳤다.
그와 한 번 눈을 맞추고,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여유가 흘러넘치던 여명이 갑자기 뭔가를 발견한 듯,
몸을 틀어 한 차량 쪽으로 바짝 다가갔다.
덕분에 여명을 향한 시선들과 카메라 세례가 그 차량으로 쏠렸다.
“저 차 안에 누구야?”
“누군데 여명이 가서 손짓하는 거지?”
모두의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 올랐을 때 즈음,
차량에서 내리는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 사람!”
“남도웅이다, 남도웅!”
찰칵찰칵.
그를 알아본 기자들이 미친 듯 플래시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도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뜨거운 데 반해,
그가 음악과 관련된 방송 외엔 두문불출이었던 터라 그에 대한 기사에 더 목이 말라 있던 기자들이었다.
“아~, 남도웅이 여명이랑 같은 소속사지?”
“맞아, 이 투샷만 해도 오늘은 조회 수 좀 나오겠다.”
“그러니까 빨리 잘 찍으라고.”
“와··· 비주얼 봐라. 인생 불공평하다 정말.”
도웅은 선배 가수 여명과 함께 얼떨떨해 보이는 얼굴로 포토라인에 섰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플래시 터지는 소리.
-팡! 팡!
“남도웅 씨! 여기 좀 봐주세요!”
“도웅 씨 여기에도 손 한 번만 흔들어주세요!”
“여명 씨 이쪽도요!”
여명은 옆에 서서 한껏 여유롭게 손을 흔드는 반면,
남도웅은 플래시들 때문에 눈이 시려운지 자꾸 눈을 꿈뻑거렸다.
“아 뭐야 귀여워~!”
“으악, 방금 거 찍었어?”
가이드라인 뒤에 서 있던 도웅의 팬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타 팬덤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오디션 때부터 하나씩 모여 똘똘 뭉친 이들이었다.
“음악 뱅크에서 도웅이 보니까 완전 감회가 새로워.”
“하··· 도웅이 예선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어엿한 가수가 된 느낌이야.”
“오늘 또 무대 볼 생각하니까 설렌다.”
도웅의 첫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출격에 팬들도 들뜬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거슬린 누군가 거기다 초를 쳤다.
“음악 뱅크 한 번 나왔다고 어엿한 가수는 무슨···.”
“우리 오빠들은 음방 오십 번은 뛰었는데 그럼 대가수인가?”
“킥킥.”
도웅이 라디오 DJ에서 밀어낸 멤버가 소속된 그룹.
블루파워의 팬들이었다.
원래 남자 팬덤 사이의 기싸움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도웅의 팬들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첫 출연부터 큰 마찰을 만들어 도웅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쟤네 멤버가 도웅이한테 DJ 밀려난 거 배 아파서 그래. 그냥 무시해.’
‘도웅이가 경쟁에서 이긴 걸 어쩌라고, 쯧.’
그렇게 싸움은 커지지 않고 조용히 일단락되었다.
도웅은 잠깐의 인사를 끝으로 매니저의 인솔하에 방송국 안으로 이동했다.
대기실로 향하는 음악뱅크의 복도는 신인, 기성 가수들과 스태프들로 상당히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최고 선배 가수인 여명이 등장하자 그를 발견한 아이돌들이 벽으로 바짝 붙어 섰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가요계는 기강이 잘 잡혀있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허리 숙여 여명에게 인사한 뒤, 그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도웅을 바라봤다.
‘어! 그 사람이다. 스페셜K스타.’
‘좋겠다, 저 사람은 여명 선배랑 같이 다녀서.’
‘선배 가수들한테 치여서 서러울 일도 없겠지?’
특히 신인들이 도웅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도웅은 거기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대기실로 향했다.
-남도웅.
도웅의 이름이 적힌 문 앞에서 여명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제 모두 너의 동료이자, 적이 될 사람들이야. 조금 힘들겠지만 돌아다니면서 인사 잘하고.”
“네, 선배님.”
여명은 판타스타의 오디션에서 처음 봤던 도웅이,
함께 음악뱅크까지 입성할 만큼 큰 것이 기특했는지 등을 툭툭 두들겼다.
**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니 처음 보는 걸그룹 하나가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야, 그 과자 내 거라고!”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어제 인터뷰에서 우리는 하나라며?”
“어···.?”
티격태격하던 그들은 도웅을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렬로 서서 시그니처 인사법을 선보였다.
“하나, 둘. 안녕하세요, 하트엔젤입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신인 가수 남도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웅도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중 센터에 선 멤버가 의아한 듯 말했다.
“선배님이요? 저희가 선배인가요?”
“저희보다 TV에 먼저 나오신 것 같은데···.?”
아마 이들은 갓 데뷔한 신인인 것 같았다.
그때 옆에 있던 매니저가 상황을 정리해 줬다.
“정식 데뷔일로 따지면 너희가 선배는 맞아.”
“아아.···”
그들은 선배라는 호칭이 어색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키가 작은 멤버가 불쑥 말했다.
“저희 스페셜K스타 완전 재미있게 봤어요.”
“네, 숙소에서 매주 본방 사수!”
“’When I dream’도 잘 듣고 있습니다!”
곧이어 우수수 쏟아지는 감상들.
그들은 호칭 정리를 하고도 도웅에게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대했다.
인기, 음원 순위, 방송활동 등.
같은 신인이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도웅의 위치는 멀게 느껴졌으니까.
그때 뒤에 서 있던 매니저 심정남이 도웅에게 단출한 쇼핑백 몇 개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아, 아까 팬분들이 주신 거예요.”
“팬분들이요?”
도웅은 이곳에 팬들이 와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쇼핑백 안을 살펴보았다.
“쿠키랑 음료수, 목베개···.”
“도웅 씨 대기하는 동안 쓰라고 엄청 알차게 준비해 주셨네요.”
정말 세심하게 신경 쓴 듯한 물품들이 그 안에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 안에는 작은 편지도 들어있었다.
-음악캠프 첫 방송 축하해요! 도웅이 꽃길만 걷자!! By 도레미.
도레미는 도웅의 팬클럽 이름이었다.
도웅은 감사함에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노래를 좋아해 주는 걸 넘어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도웅은 앞으로 자신이 승승장구하여 이 애정에 보답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때 옆에 있던 하트엔젤에게서 부러움의 눈빛이 느껴졌다.
“우와··· 팬 선물···.”
“우리도 언젠간 팬이 생기겠지?”
신인에게 팬덤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대형 기획사의 신인이거나,
도웅처럼 데뷔 전에 방송을 거쳤거나.
도웅은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쇼핑백 안에 있던 쿠키 몇 개를 건넸다.
“이거··· 좀 드실래요?”
“그래도 돼요?”
하는 말과는 달리, 키가 작은 멤버는 벌써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
도웅은 중간에 팬들 없이 하는 리허설을 한번 다녀온 후,
선배 가수들의 대기실을 돌며 인사를 다녔다.
“안녕하세요, 남도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남도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조금 있다가 무대에서 봬요.”
‘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도웅은 특히 갓 데뷔한 신인 축에 속하는지라 인사하러 다닐 데가 많았다.
대부분은 도웅을 알아보고는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여기서는 그래도 한숨 돌리겠구만.’
도웅은 아는 이름이 적힌 방의 문을 두들겼다.
-화연.
생방송 콜라보 미션 때 함께 노래했던 소녀 이룸의 화연이 있는 방이었다.
그녀는 요근래 솔로 활동을 막 시작했다.
살짝 열린 문으로 얼굴을 들이미니 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화연이 펄쩍 뛰어올랐다.
“와아! 남도웅!!”
그녀가 도웅의 이름을 부르며 하이힐을 신은 채로 뛰쳐나왔다.
매니저 심정남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도웅만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웅이 웃으며 인사했다.
“누나, 잘 지내셨어요?”
“응 그럼!! 너는 그동안 잘 있었고?”
“하하, 네.”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다아!”
솔로 활동이라 메이크업에 힘을 준 화연은 오늘따라 더 빛나 보였다.
화연의 대기실을 둘러보니,
역시 소녀 이룸의 명성에 맞게 넓은 대기실과 한편에 잔뜩 쌓여있는 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이게 다 오늘 받은 것들이에요?”
“그럼~. 나 소녀 이룸이야.”
그녀는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뭘요?”
그녀는 은밀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도웅에게 바짝 붙어 섰다.
“원래 새로운 팬 만드는 것보다 남의 팬 뺏는 게 더 쉬운 거.”
“그래요?”
“응. 여러 팬 다 모이니까 기싸움이 되게 심하지만, 여기서 탈덕이나 입덕이 엄청 많이 일어나. 무대나 팬 사랑이나 이런 게 바로 비교되니까.”
그녀는 도웅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너 그때 레드퀸 은홍이 나한테 왜 그렇게 시비걸지 못해 안달이었는 줄 알아?”
은홍은 콜라보 미션 때,
심보라와 팀을 이뤘던 소녀이룸의 라이벌 그룹. 레드퀸의 멤버였다.
도웅과 화연에게 결과적으로 참패를 했었던.
“설마···. 소녀이룸이 레드퀸 팬들을 뺏었어요?”
“흐흐흐···. 맞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아무튼 코어 팬이 탄탄해야 가수는 오래 노래할 수 있대. 그러니까 너도 오늘 잘 해봐. 물론 내 팬 뺏는 건 안 된다.”
“하하, 그럼요.”
화연은 팬들이 준 물품 중에 몇 가지 먹을 것들을 챙겨 도웅의 손에 쥐여주었다.
“노래 부르려면 든든히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누나, 저 또 인사 돌아야 해서 가볼게요.”
“그래. 고생이 많다. 나중에 또 봐!”
화연이 화사한 웃음으로 도웅을 배웅했다.
확실히 이 전쟁터 같은 곳에 아군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도웅은 그런 화연의 방에 쌓인 선물들을 보면서 그녀가 해줬던 말을 되새겼다.
‘남의 팬을 뺏는다···.’
그렇게 여러 군데의 대기실을 돌아다니고,
마지막 한 군데만이 남아있었다.
“도웅 씨, 여기가 마지막 방이에요. 저는 잠깐 사전녹화 관련해서 제작진들이랑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매니저 심정남은 이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블루파워.
도웅이 뮤직 커넥션의 DJ로 합류하며 밀어낸, 시환이라는 멤버가 속해 있는 그룹이었다.
도웅은 똑똑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세요.’
남자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던 방은,
도웅의 들어가자마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신인 가수 남도웅입니다.”
도웅이 꾸벅 인사하자,
정적 속에서 멤버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아··· 너구나?”
블루파워의 리더 주노.
그는 뭔가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듯한 말을 꺼냈다.
**
도웅은 방금 떨떠름하게 인사를 마치고 블루파워의 방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방금 그 분위기 뭐지?’
뭔가 도웅을 배척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
아마도 멤버 하나가 DJ에서 밀려난 일 때문인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때 캐스팅된 것처럼 기사도 나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확정된 것도 아니었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정정당당히 잡은 걸 도웅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이 바닥에서는.
그때, 방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멤버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도웅에게 자리를 빼앗긴 당사자 시환이었다.
‘쟤 잖아. 지금 나 대신 뮤직 커넥션 DJ 하는 게.’
‘풉, 너 쟤한테 밀린 거냐?’
‘아, 형.’
멤버들이 짓궂게 시환을 놀렸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쟤도 가수야? 자기소개 할 때 신인 가수라고 하던데.’
‘에이, 노래대회 1등 했다고 가수는 아니지.’
‘하긴. 전국노래사랑 1등했다고 가수면 우리 할머니도 가수겠네, 큭큭큭.’
그들은 스페셜K스타를 아마추어 노래 자랑 프로그램과 비교해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근데 쟤 음원 순위가 지금 11위인 거 알아?’
‘그거 다 잠깐이야. 노래 대회 빨.’
‘그럼 나도 내년에 그 노래 대회나 한번 나가볼까?’
‘큭큭큭큭, 그것도 웃기겠다. 진짜 나가봐. 어차피 우승은 따놓은 당상일 테니까.’
아마도 도웅이 DJ 자리를 빼앗은 것을 넘어,
음원 성적이 자신들과 비등한 것을 견제하는 듯했다.
블루파워의 현재 음원 성적은 10위, 도웅이 11위였으니까.
곧 역전도 가능한 차이였다.
‘너희가 그런다고 음원 순위가 지켜지지는 않는단다.’
그렇기에 도웅은 어린애들의 텃세를 가소롭게 비웃고 그 길로 지나가려던 참이었다.
화악.
갑자기 누군가 도웅을 제치고 문 안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노래대회?”
그는 조금 화가 나 보이는 듯한 여명이었다.
겉으로 감정이 많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웅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도웅이 얼마나 치열한 과정을 거쳐 우승을 차지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여명의 등장에 블루파워 멤버들이 당황하며 허리를 숙였다.
여명은 목소리가 조금 특이했던 멤버인 주노를 콕 집어 얘기했다.
“그쪽이죠? 노래대회 운운한 게.”
“아니, 저는···.”
“난 그쪽이 ‘그 노래 대회’ 나가면 예선 탈락한다에 한 표를 걸게요.”
여명은 굳이 후배라는 단어를 쓰기도 싫은 듯 보였다.
그의 뼈 있는 말에 주노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복도 밖에서 블루파워의 매니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여명 씨, 무슨 일이십니까?”
여명은 문에서 손을 떼고 정중히 얘기했다.
“매니저님, 애들 관리 좀 잘해주세요.”
“예?”
“이 친구들 아직 2년밖에 안된 걸로 알고 있는데, 후배한테 텃세가 너무 심하네요.”
“아···예.”
매니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멤버들을 바라봤고, 멤버들은 여명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때 조연출 하나가 그들 사이에 급하게 끼어들었다.
“마침 둘 다 여기 계시네요. 블루파워랑 남도웅 씨, 스탠바이 해주세요.”
그는 할 말만을 전하고 바쁜 일이 있는지 헐레벌떡 어딘가로 다시 뛰어갔다.
그때 복도로 걸어 나온 여명이 도웅의 등을 두들겼다.
“가서 한번 보여줘. 가수가 뭔지.”
도웅도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동시에 화연이 해줬던 얘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 그거 알아? 원래 새로운 팬 만드는 것보다 남의 팬 뺏는 게 더 쉬운 거.’
한번 그 실험을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