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61)
061. 천운이라고 느껴졌다.
디지털 언론사 스포뉴스의 사무실.
안대영 기자는 며칠 전 올렸던 기사의 조회 수를 체크하고 있었다.
“이야, 지난번에 음악캠프 앞에서 남도웅 찍어서 올린 기사가 웬만한 아이돌 기사 조회 수보다 높네.”
이들은 자극적인 연예 뉴스의 조회 수나 홍보기사로 먹고사는,
전형적인 지라시 수준의 언론사였다.
그의 감탄을 들은 사수 황허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바로 희소성이라는 거야. 걔에 대한 관심은 뜨거운데 얼굴 비추는 데가 잘 없으니까.”
“남도웅은 왜 방송을 이렇게 조금 할까요? 지금 쏟아져 들어올 때 바짝 벌어야 할 텐데.”
안 기자는 입술을 움직거리며 그 이유를 추측해보려 애썼다.
“그러게. 이렇게 한창 잘나가는데 라디오랑 음악 방송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 아무래도 수상한데···.”
황허재는 골똘히 생각을 마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도웅의 오늘 스케줄을 입수했다.
그는 통화를 끊고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더니 의자에 걸어놓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
“가자.”
“네?”
“오늘 남도웅 아무 스케줄도 없대.”
“그런데요?”
“기삿거리 잡아내기 딱 좋은 날이라 이거야!”
안 기자는 썩 내키지 않는 듯 보였지만 황 기자는 벌써 특종이라도 잡은 듯 두 눈을 빛냈다.
“켕기는 게 있으면 확인하면 되지. 우리가 누구야.”
“···기자요.”
“알았으면 빨리 카메라 챙겨.”
그렇게 두 사람은 급작스럽게 도웅의 집 앞으로 향했다.
황 기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남도웅, 얘 분명히 뭔가가 있어.”
그의 5년 기자 생활의 촉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
도웅은 오랜만에 보는 마이클이 반가우면서도,
그가 갑자기 집 앞에 있는 상황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형, 여기서 뭐 해요?”
지-잉.
그때 뒷좌석의 창문도 곧이어 내려갔다.
거기서 유정우가 상체를 내밀었다.
“형!”
“오빠, 보고 싶었어요.”
그 뒤에는 토끼처럼 뽀얗게 웃고 있는 백설의 모습도 보였다.
“또웅! 너 하루도 안 쉬고 연습만 하는 것 같다고 강태진 대표님한테 연락 왔어.”
“강 대표님한테요?”
“그래, 그래서 우리가 같이 놀아주려고 달려왔지! 하하!”
마이클이 핸들을 팡팡 치면서 말했다.
“갑자기 찾아온 건 미안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네가 절대 쉴 것 같지 않았거든.”
“그건···.”
도웅도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마이클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늘 너의 휴가, 내가 책임져줄게.”
피식.
도웅은 자신을 위해 한달음에 와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탁.
도웅이 뒷자석에 몸을 싣자,
“오케이! 출발!”
곧장 마이클이 힘차게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뒷골목.
“야, 야야. 출발하잖아!”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포뉴스의 황 기자가,
당황해 부사수의 팔뚝을 팍팍 밀쳤다.
“아, 그만 때리세요. 지금 출발할게요.”
부웅-
그들은 도웅의 차에서 조금 떨어진 채로 따라붙었다.
흥분한 모습의 황 기자가 말했다.
“내가 뭐랬어. 스케줄도 없는 날 누가 데리러 왔다. 이거 냄새가 나지 않냐?”
“그러고 보니 젊은 여자 뒤통수가 보이는 것도 같아요.”
안 기자는 짙게 선팅이 되어있는 뒷유리를 투시하듯 쳐다보았다.
“쓰읍, 애도 하나 있는 것 같고···.”
“뭐?! 확실해?”
“언뜻 작은 실루엣이 비쳤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거 생각보다 특종일 수도 있겠는데요?”
“야, 빨리 밟아! 절대 놓치면 안돼!”
부아앙-.
두 기자는 막장스러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을 열심히 뒤쫓았다.
**
도웅이 탄 차량은 경기도 외곽 쪽으로 빠져,
비포장도로의 오솔길로 진입했다.
덜컹덜컹.
승합차가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지나고 나자.
“우와아.”
탁 트인 잔디밭,
숨겨져 있던 멋스러운 2층짜리 가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풍경을 본 백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기가 강태진 대표님이 알려준 그 고깃집이에요?”
“예스! 풍경 엄청 좋다. 사람도 얼마 없어서 슈퍼스타랑 밥 먹기에 딱이야.”
“네! 힐링하기에도 좋겠어요.”
파란 하늘에 금빛으로 물든 잔디밭.
유정우와 백설은 창문에 달라붙어 풍경을 감상했다.
도웅도 오래간만에 머릿속에 맑은 바람이 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사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확실히 사람이 적어 마음 편히 식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글지글.
불판 위에 고기가 달아올랐다.
탄탄한 근육을 이용해 고기를 굽기 시작하는 마이클.
그동안 근황 토크가 시작됐다.
유정우가 먼저 입을 뗐다.
“형, 저 형 노래 스트리밍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도요! 오빠 정말 대단해요. 벌써 음원 순위 8위 던데요?”
“저녁마다 라디오도 열심히 듣고 있고요.”
“우리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 같이 노래 연습하고 그랬었는데 오빠는 벌써 많은 것을 이뤄냈네요.”
백설이 부러움과 동경을 담은 눈빛으로 도웅을 바라봤다.
도웅은 쑥스러움에 화제를 그들에게로 돌렸다.
“하하, 고마워. 요즘 너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먼저 유정우가 답했다.
“저는 조금 더 커서 다시 가수에 도전해보려고요. 형처럼 열일곱 살쯤 됐을 때요.”
“열일곱이면 아직 한참 남았네? 그래 그동안 노래연습 열심히 하면 분명 멋진 가수가 될 수 있을 거야.”
“형 처럼요?”
“하하하, 내가 멋진 가수야?”
“제 눈에는요.”
“그래, 고맙다. 그럼 설이는 요즘 어때?”
도웅이 묻자 백설의 얼굴에 잠시 고민이 스쳤다.
“실은 소속사 몇 군데에서 연습생 제안을 받았는데요.”
“어디인데?”
“’링크미’를 일단 고민하고 있어요.”
링크미 라는 단어를 들은 도웅은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올랐다.
‘링크미는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 문제가 크게 불거지는 곳이야.’
도웅은 미래 정보를 참고하여 백설에게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백설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음···. 그럼 역시 판타스타에 들어가는 게 제일 낫겠네요. 오빠도 있고.”
“뭐? 판타스타?”
“네. 판타스타에서도 연습생 제안받았거든요.”
도웅은 회귀 전 백설이 들어갔던 기획사가 아닌 판타스타의 이름이 나온 데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요, 오빠?”
백설이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말했다.
“아니, 그냥 너무 반가워서.”
“그렇죠? 저도 같이 다닐 생각하니 조금 기대되네요.”
백설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도웅이 스페셜K스타에 참가한 후로 미래가 여러모로 걷잡을 수 없이 바뀐 것 같았다.
그때 마이클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도웅. 오늘 넌 뭘 하고 싶어? 우리가 다 들어줄게.”
**
도웅이 앉은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
모자를 푹 눌러쓴 두 남자가 수상하게 소곤거렸다.
“야, 네가 봤다는 여자랑 어린애가 쟤네냐? 마이클까지 껴서 다문화 가족이야?”
도대체 어디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지,
황 기자가 멀쩡한(?) 네 남녀를 확인하고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아~, 이거 특종인 줄 알고 설렜더니.”
황 기자는 제가 먼저 도웅을 쫓자고 끌고 와 놓고는 괜스레 안 기자를 탓했다.
안 기자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다.
“선배님,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뭘 어떻게.”
“백설이랑 남도웅만 교묘히 찍어서···.”
“스캔들 기사 내자고?”
안 기자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쿡쿡··· 안 그래도 지금 시도하고 있는데.”
그리고 조심스레 카메라 줌인을 최대한 당겼다.
“아···! 마이클 근육이 또 걸렸네. 저 근육이 쉬지 않고 움직여서 앵글을 잡을 수가 없어.”
안 기자는 툴툴대며 방금 찍은 사진을 지워버렸다.
마이클의 근육질 팔은 고기를 굽는 족족 친구들에게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황 기자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안 기자를 바라봤다.
“어이구, 이 자식아.”
“왜요, 지금까지 날조 잘만 해왔는데···.”
안 기자는 지금까지 지라시 같은 기사를 잘만 써오던 선배가,
갑자기 자신을 한심하게 보는 이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날조를 해도 증거가 있는 거는 고소 각 때문에 안된다고. 그걸 아직도 몰라?”
예전처럼 연예인들이 억울해도 묻고 넘어가는 풍조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였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은 점차 많아지고, 그 역풍이 자칫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스캔들 기사 내고 쟤네가 셀카 하나만 올려봐. 철퇴 맞겠냐 안 맞겠냐.”
황 기자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쫓아다니면서 근황 기사나 내자. 특종은 아니어도 조회 수 쏠쏠할 거다.”
“넵, 선배님.”
안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몰래 사진을 한 장 찍어 곧바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 마이클. 고마워요.”
“강태진 사장님한테도 땡큐, 이거 사장님이 준 카드야.”
네 사람은 고기로 실컷 배를 채운 후에 차량에 탑승했다.
그때 휴대폰을 뒤적이던 유정우가 말했다.
“어···! 형! 저희 여기서 밥 먹은 거 벌써 기사로 났는데요?”
“진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모두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쏠렸다.
그리고 정말로 네 사람이 옹기종기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사진이 커다랗게 기사 상단에 박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도웅, 스페셜K스타 팀원들과 여전히 특별한 우정 과시.]기사를 본 마이클이 이마를 탁 쳤다.
“오 마이 갓. 슈퍼스타의 삶이란 게 이런 거야, 도웅?”
마이클은 평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아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도웅도 방금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정도는 아닌데 오늘따라 기자가 따라붙었네요.”
선글라스를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하는 마이클.
도웅은 그사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묘책을 내놨다.
“우리 다 같이, 차라리 사람 많은 데로 숨어들어 갈까요?”
도웅은 기자들 때문에 모처럼의 휴가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사람 많은 데로? 어떻게?”
모두가 도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홍대의 한 중고 빈티지 숍.
도웅과 마이클, 백설과 유정우는 그곳에서 각자 변신한 채로 걸어 나왔다.
벙거지 모자에 커다란 선글라스.
빈티지 스타일의 상하의.
전체적으로 어색하긴 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가기에는 무리 없는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큭큭, 마이클. 마이클은 진짜 할아버지 같은데요?”
“이 파란색 조끼 정말 멋지지 않아?”
건장한 할아버지처럼 꾸민 마이클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포뉴스의 두 기자는 하염없이 빈티지 숍 앞에서 그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누구 나오는데요?”
“···에이, 할아버지랑 손주인 것 같은데?”
황 기자는 그들이 마이클과 유정우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의자에 다시 노곤한 몸을 파묻었다.
네 사람은 둘둘씩 짝을 지어서 나온 뒤, 그대로 홍대 거리로 스며들어 갔다.
그 덕에 기자들을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청춘의 꿈과 낭만이 흘러넘치는 홍대 거리.
여기저기서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청춘들은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도 홍대에서 이렇게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는데.’
회귀 전에는 곧바로 삶의 현장 속으로 뛰어드느라,
그리고 과거로 돌아온 후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이런 여유를 가질 틈이 없었다.
도웅은 이제야 그 한이 풀린 것 같아 행복감을 느끼던 와중이었다.
그때,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독특한 목소리가 스쳤다.
‘···설마?’
그 소리를 듣자마자 도웅의 머릿속에 어떤 섬광이 스쳤다.
“잠깐만요, 우리 저기 가서 노래 조금만 듣고 가요.”
도웅은 무리를 이끌고 그 소리를 쫓아 홍대 놀이터로 입성했다.
그러자 자유분방하게 악기를 펼쳐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버스커들이 눈에 띄었다.
도웅은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는 쪽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저기다···!’
한 구석 벤치 주변.
몇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버스킹을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웅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 진짜 임지문이잖아?’
낡은 후드티에 둘둘 멘 목도리.
기타를 메고 쓸쓸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저 남자는,
지금 부르고 있는 본인의 자작곡을 비롯해,
특유의 젊은 감각으로 유수한 곡들을 만들어내는 미래의 싱어송라이터.
임지문은 정말 자기 곡을 잘 살릴 수 있는 가수가 나타났을 때만 작업을 해서,
드러난 작업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 희소성만큼 결과는 항상 대박을 쳤었다.
‘일이 이렇게 풀린다고?’
마침 앨범 준비를 앞두고 있는 시점.
도웅은 여기서 그를 만난 것이 천운이라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