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64)
064. 계시임이 분명했다.
도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명백한 멸시가 담겨있었다.
갓 데뷔한 풋내기 도웅이 그의 DJ 자리를 뺏은 일은,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쁜 정도로 그쳤었다.
하지만 그 일로 좌절된 솔로 데뷔.
그리고 언제까지나 견고히 블루파워를 쫓을 줄 알았던 팬들의 이탈.
그때마다 어디선가 남도웅의 이름이 비교 대상으로 튀어나왔다.
‘남도웅은 벌써 음원 순위가 8위인데! 메인보컬이라는 놈이 삑사리를···!’
‘이번 일로 깨달은 게 많아서 블루파워 탈덕합니다.’
‘남도웅, 블루파워 시환 대신 DJ 맡은 게 신의 한 수. 청취율 고공행진’
대표, 팬들, 기사할 것 없이 그 풋내기의 이름이 자꾸 자신과 비교해 붙을 때마다,
도웅이 거슬리던 마음은 미움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저 녀석이랑 내가 비교되는 것 자체가 넌센스지. 그놈의 DJ 자리만 뺏기지 않았어도···.’
시환이 증오를 거두고 고개를 돌려 손규성을 바라봤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저한테도 연습할 시간을 주세요.”
“음···. 알다시피 우리한테 지금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아요.”
“딱 이틀. 이틀이면 됩니다.”
손규성이 묵직한 시선으로 김 과장을 바라봤다.
김 과장은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짚더니, 나가서 감독과 통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녹음 이틀 미루는 것으로 협의했습니다. 대신 더 이상 녹음 일정이 엎어지면 안 됩니다. 기간이 정말 촉박해요.”
“알겠습니다. 정 기간이 부족하면 믹싱 작업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면 되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작곡가 손규성이 김 과장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양쪽의 도웅과 시환에게 번갈아 말했다.
“그럼 이틀 후에 다시 뵙는 걸로 하죠.”
매니저 심정남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도웅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의 근육에서는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채였다.
그가 건물을 나오면서 물었다.
“도웅 씨 괜찮으십니까?”
심정남은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매니저로서 분노와 책임감을 느끼던 와중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상황을 막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오히려 도웅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비췄다.
“차라리 잘 됐어요.”
“···!”
심정남이 예상치 못한 도웅의 반응에 놀라서 말했다.
“잘 되다니요? 다 된 밥에 저놈들이 재를 뿌려놓았는데.”
“정확하게 우열을 가려놓지 않으면, 아마 인정하지 못하고 탓하는 마음만 계속 커질 거예요. 이번에도 이렇게 훼방을 놓았는데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고요.”
도웅이 덤덤한 투로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확실히 정리를 해놓는 게 낫죠.”
블루파워의 시환은 그룹에 속해있기 때문에 1:1로 맞붙기가 어려운 상황.
그 안에 숨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둘 바에야,
잔불이 붙은 심지가 더 타오르기 전에 밟아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심정남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도웅에게 감탄했다.
“저보다 도웅 씨가 더 어른스럽네요. 저는 화가 나서 그 매니저 놈을 엎어칠까 메칠까만 가지고 고민했는데.”
“잘 참으셨어요.”
“하하, 그럼요. 이제는 사람답게 살아야죠.”
“사람이요? 형 대체 전에는 어땠길래.”
“아니 그러니까 그게 그···.”
심정남이 당황해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차에 올라타려던 때, 독기를 품은 시환의 목소리가 도웅을 불러냈다.
“남도웅,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지.”
심정남이 나서려 했지만, 도웅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도웅과 시환은 건물의 뒤편에 마주보고 섰다.
치익. 탁.
시환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노래 대회 1등 한 걸로 자신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네?”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도웅은 침착하게 반응했다.
“근거도 없는 자만심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시환이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한 쪽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하늘 같은 선배랑 맞짱을 떠보겠다?”
“선배님 그러려고 여기 오신 거 아닙니까?”
“하.”
시환이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가요계 기강이 이게 무슨 일이지. 선배 밥그릇 뺏는 것도 모자라서 한판 붙어보자니.”
도웅은 거기에 지지 않고 말했다.
“관계자들한테는 기강보다는 실력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뮤직 커넥션도, 이 드라마 관계자분들도 다 저를 선택한 거고요.”
“결과적으로 다 실력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요?”
도웅이 두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시환이 매캐한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조금 솔직해지자. 네가 업계에 무슨 경력이 있다고 너 같은 풋내기를 덜컥 쓰겠어. 소속사랑 매니저 뒷공작 능력이 좋은 거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뭐?”
“그러니까 빙빙 둘러 가지 말고 여기서 결판내죠. 실력이었는지 뒷공작이었는지.”
자신의 밥그릇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억울함과 분노.
도웅이 예상했듯 핀트 어긋난 감정이 계속 시환을 좀먹고 있었다.
시환이 담뱃불을 바닥에 탁 던져 발로 비볐다.
“좋아. 만약 이번에 네가 이기면 깨끗하게 네 실력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대신 내가 이기면, 앞으로 내 밥그릇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누가 이기든, 결과에 승복하고 다신 이런 소란은 일으키지 않는 겁니다.”
“그래, 이후로 마주칠 일 없게 하자고.”
시환이 매니저에게 돌아가려는 듯 벽에 기댔던 몸을 세웠다.
“아, 그리고 이번 건은 우리 선에서 끝냈으면 좋겠어. 판 벌리지 말고.”
시환은 도웅과 비교되는 상황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했다.
도웅은 어차피 별로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겠으나, 자신은 상황이 달랐으니까.
그래서 이 상황이 기사화되는 상황만큼은 막고 싶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도웅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그 소란을 본 눈이 몇 개인데 과연 기사가 안 날까.’
시환이란 애는 참으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스포뉴스의 사무실.
황 기자는 지난번 홍대에서 도웅의 일행을 놓친 일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었다.
“아, 남도웅이 이렇게 분장을 하고 도망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까요. 이거 따라잡아서 길거리 공연하는 거 기사 냈으면 완전 조회 수 보장됐을 텐데.”
“아무튼 남도웅 이거 하는 짓 보면 보통내기는 아니야.”
황 기자가 까끌까끌한 턱을 쓸어내렸다.
그때 황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니, 이 형이 웬일로 전화를 다···?”
그는 당장에 수첩을 펴고 전화를 받아들었다.
“아이고~, 김 과장님.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야, 인사는 됐고. 지금 우리 회사가 제작 진행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사랑’말이야.
“아~, 그거 홍보 기사요? 근데 형이 그런 공식적인 일로 나한테 직접 전화했을 리는 없고.”
황 기자가 펜으로 턱 밑을 긁적였다.
-아니, 끝까지 들어봐. 거기에 들어갈 OST를 손규성 작곡가가 만들고 있단 말이야.
“크, 또 명곡 하나 나오겠네. 그런데요?”
-그 곡을 서로 부르겠다고, 지금 남도웅이랑 블루파워 시환이 맞붙었어.
“나, 남도웅이랑 블루파워 시환이요?”
남도웅이라는 월척에 블루파워까지.
황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옆에 있던 안 기자까지 덩달아 휴대폰 가까이에 귀를 갖다 댔다.
-그래! 그러니까 누가 제보했는지는 티 안 나게, 그걸로 우리 드라마 이슈 좀 띄워줘.
“아이고 형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오.”
-이틀 뒤가 녹음 날이니까, 그때 또 결과 나오면 알려줄게.
“아, 형님! 혀···!”
툭.
몇 가지 더 물을 틈도 없이 김 과장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몰래 기삿거리를 흘리는 판에 꼬리가 길면 안 되니까.
녹음 일정을 또 미루게 만든 시환을,
이렇게라도 이용해 먹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에 넣은 제보전화였다.
하지만 황 기자는 베테랑이기에 짧은 정보만으로도 수만 가지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황 기자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흐흐흐, 완전 특종이 굴러 들어왔는데?”
“이번 거는 확실히 벌어질 일이니까 안심하고 마음껏 써도 되겠네요.”
통화를 엿듣던 안 기자가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황 기자가 뭔가를 떠올리고 말했다.
“안 기자. 네가 어릴 때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했지?”
“네. 판타지 소설이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너의 창작 욕구를 마음껏 발휘해보려무나.”
“옙! 알겠습니다.”
안 기자는 모처럼 스포뉴스에 입사한 보람을 느끼며,
키보드 위에 신명 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
모처럼 남는 시간에 도웅을 코칭 해주던 여명이 볼멘소리를 했다.
“그 녀석 생각할수록 아주 기가 막히네. 지가 선배면 얼마나 선배라고 그렇게 분해서 안달이야.”
“제가 자기 밥그릇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나 봐요.”
“참나, 연예계에 정해진 밥그릇이 어디 있다고. 어떻게 내가 가서 좀 혼내 줘?”
“아니에요. 그러면 똑같은 사람 되는 거죠.”
“쩝···. 너는 가만 보면 선비 같은 소리만 골라 한다.”
여명이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더니 자세를 바로 했다.
“그래, 그럼 노래로 밟아주자.”
“네.”
“손규성 작곡가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매번 어떻게 느낌을 전달할지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여명이 열의를 다해 도웅을 코칭 해주고 있을 때였다.
다른 일로 미팅을 갔다 돌아온 강태진이 연습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도웅 씨, 그게 사실이에요? 시환이라는 놈이 오늘 녹음을 훼방 놨다는 게?”
“네, 그렇게 됐어요.”
“블루파워 기획사가 어디지? 비쓰리 엔터? 이거 정식으로 항의해야지 안 되겠어.”
강태진이 흥분해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아, 대표님.”
도웅이 그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판타스타가 자기 밥그릇 뺏는데 뒷공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식으로 자기 혼자 무작정 밀어붙인 것 같아요. 이번 일은 시환이 직접 납득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저를 믿어주세요.”
“그래, 도웅이가 실력으로 밟아준다니까 일단 맡겨 보자.”
“아니, 그···.”
여명이 거들어주자 이를 갈던 강태진이 금방 수그러들었다.
“도웅 씨가 그렇다면야···. 그럼 도웅 씨, 필요한 거 있으면 다 얘기해요.”
“아직은 필요한 거 없어요.”
“그러지 말고 얘기해요. 도웅 씨가 원하면 보컬 트레이너도 저런 날라리 말고 제대로 붙여줄 테니까.”
“뭐? 날라리? 여기 나보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있어?”
“잘 부르는거랑 잘 가르치는 거랑 같냐 자식아?”
여명과 강태진이 어느새 불이 붙어 티격태격거렸다.
강태진이 생각했을 때 도웅이 질 일은 없었다.
안 해도 될 수고를 도웅이 하게 된 것이 신경이 쓰일 뿐.
하지만 도웅은 생각했다.
‘시환의 실력도 만만치는 않아.’
도웅은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솔로 곡을 부른 장면들을 이미 모두 찾아봤다.
요즘은 확실히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지만,
메인보컬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오랫동안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아서인지, 테크닉적인 면에서 꽤 화려한 편이었다.
시환은 도웅이 아니었다면 라디오를 통해 팬을 끌어모으고 솔로 음반까지 냈을 몸.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였다.
‘손규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정. 그러니까 감정 전달에 집중해서 연습해야해.’
다행히 도웅은 표면적인 나이에 비해 깊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 덕분에 조금 더 호평을 받고있기도 했고.
하지만 프로와 영재가 넘쳐나는 곳인 연예계.
그 곳에서 나이를 떠나 한 사람의 가수로서 인정받을 만큼 월등한 실력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
도웅은 여느 때처럼 집에 돌아와서도 트레이닝에 몰두했다.
오후 내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테크닉을 보완해서 연습하고,
집에서는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음색 조절 능력을 트레이닝하고 있을 때였다.
-빰빠바밤! 빰빠바밤! 빠 빰!
사방에서 익숙한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은 소리.
[Congratulation!] [‘신인 가수 S의 음색 조절능력(C)’ 완료율을 100% 달성했어요!]“아! 드디어 완성이다.”
도웅이 묵은 탄식을 터트렸다.
소리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순간 속도에 탄력이 붙더니 결국 이뤄내고 만 것이었다.
‘곳간이 가득 차 있으니까···.’
음악방송을 돌며 차곡차곡 쌓아둔 별을 사용해 곧바로 다운로드까지 일사 천리로 진행했다.
도웅은 재능을 하나씩 쌓아갈 때 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든든한 기분이 드는 와중이었다.
‘분명 음색 조절법을 완성한 게 녹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오늘은 조금 일찍 침대에 누워,
평소보다 고된 하루에 노곤하게 잠자리에 들려던 때였다.
띠링.
익숙한 알림음 하나가 귓가에 맴돌았다.
도웅은 몸을 벌떡 일으키고 스마트폰의 화면을 두드렸다.
“설마?”
[맞춤형 영상 탐색 완료.]참으로 반가운 문구.
기간에 대중없이 뜨던 영상이 이번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흐흐흐, 흐흐흐흐.”
그 아래 새로운 영상의 제목을 확인한 도웅은 저도 모르게 낮은 웃음을 흘렸다.
“이 타이밍에 감정 전달법이라니.”
[Lv.2 루키 추천 동영상 : 얼굴 없는 가수 K의 감정 전달법(C).]이것은 필시 시환을 더욱 크게 혼쭐 내주라는 메가 플레이의 계시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