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65)
065. 전례 없던 좋은 신호였다.
메인보컬은 그룹에서 노래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
누가 메인을 맡느냐에 따라 그룹의 음악적 색깔이 크게 좌지우지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메인보컬이란 그룹의 뼈대에 가까웠다.
어릴 때부터 싹이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룹을 이끌어 갈 음악적 뼈대로 만드는 것.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경쟁과 냉혹한 평가가 수반되었고,
그중에서 살아남은 것이 시환이었다.
도웅 또한 음악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시환을 아이돌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뜻했다.
‘블루파워가 여기까지 성장하는데 시환의 음악적 능력이 한몫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
그렇게 도웅은 자신의 강점 중 하나인 감정 표현에 힘을 실어,
손규성을 공략할 방법에 집중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도웅의 눈앞에, 거의 손규성 공략 치트키나 다름없는 영상이 떠올랐다.
[Lv.2 루키 추천 동영상 : 얼굴 없는 가수 K의 감정 전달법(C).]도웅은 입가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녹음실처럼 보이는 곳에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화면이 어깨 부근에서 잘려 보이지 않는 채였다.
‘얼굴 없는 가수라 이건가.’
이번엔 누구인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남자가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그 위에 오버랩되는 드라마의 한 장면.
꽤 인기가 있어 도웅도 주연배우와 제목 정도는 아는 드라마였다.
‘아무래도 OST 인가 본데?’
도웅은 그 장면들과 함께 남자의 노래를 유심히 귀담아들었다.
노래의 도입부에서 순탄치 않은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이 비쳤다.
남자를 달가워하지 않는 여자의 비즈니스적 첫 만남.
그에 맞게 조심스러운 감정의 흐름이 남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이후 여자가 남자에게 서류를 던지고, 손을 뿌리치고.
그 과정에서 남자가 여자를 붙잡아주며 감정을 키워나가는 장면이 연결됐다.
그 장면들에 맞게 노래에는 더욱 감정이 실려 올라갔다.
그리고 절정으로 치닫는 클라이맥스.
두 남녀가 사랑을 확인하기 직전, 남자가 병에 걸리는 크나큰 시련이 닥쳐왔다.
그렇기에 더 커져만 가는 사랑의 감정.
가수가 지르는 고음에 애절함과 간절함이 뒤섞여 나왔다.
장면과 함께 보니 더욱 감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다 못해,
본 적 없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두 남녀의 감정에 가슴이 아려왔다.
도웅은 거기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래, 드라마처럼 노래에도 기승전결이 필요해.”
한 번에 감정을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다 한방의 임팩트를 날리는 것.
그것이 듣는 이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감정을 남기는 방법이었다.
알고는 있던 사실이었지만 드라마의 감정선과 함께 노래를 듣고 나니,
그 흐름이 더욱 세밀하고 확연히 와닿았다.
노래가 끝나고, 다시 예의 그 녹음실이 화면에 비췄다.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는 채로 남자가 악보대에서 악보를 집어 드는 모습이 보였다.
“···!”
도웅은 그 장면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악보 위에 빽빽이 분석한 감정의 흐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소절 단위로 어떻게 감정을 치고 빠질지를 분석해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역시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해당 영상 속 재능을 ‘남도웅’ 님의 플레이리스트로 전송하시겠습니까?]도웅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YES 버튼을 꾹 눌렀다.
지금부터는 도웅이 이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었다.
**
도웅은 로비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악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지나다니며 그런 도웅을 본 직원들이 작게 수군거렸다.
‘형광펜까지 쳐가면서 열심히 공부 중이네? 시험 기간인가?’
‘그렇진 않을걸?’
‘그럼 뭘 저렇게 열심히 분석하는 거야?’
직원 하나가 목을 길게 빼고 도웅의 손 아래 놓인 종이를 확인했다.
‘악보 같은데?’
‘와···.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데 분석까지 저렇게 열심히 한다고?’
‘노력하는 천재는 이길수가 없다던데. 이번 OST는 안 봐도 도웅 씨 차지가 되겠다.’
그렇게 직원들은 암묵적으로 도웅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쿵.
그때 거대한 덩치의 매니저 심정남이 두꺼운 제본 책 몇 권을 도웅의 앞에 내려놨다.
“도웅 씨, 부탁한 것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웅은 대본으로 보이는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사라락 넘겨보기 시작했다.
심정남은 그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다 다시 일을 보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도웅은 중요 장면을 체크하며 주인공 남녀의 감정선을 이해하려 애썼다.
‘아, 근데 글만 봐서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여주인공의 감정선이 그랬다.
도웅은 이마를 긁적이며 여주인공의 감정을 상상해보려 애썼다.
그때 아래층에서 올라온 백설이 도웅의 옆자리에 풀썩 몸을 뉘었다.
춤 연습을 마치고 왔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한 채였다.
백설은 판타스타에서 걸그룹 데뷔를 목표로 연습생 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그녀가 도웅이 몰두하고 있는 대본을 보더니 물었다.
“오빠, 연기도 해요?”
그리고는 관심이 가는 듯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얘 주특기가 연기잖아?’
도웅은 백설이 미래에 연기로 크게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막히는 부분의 대본을 들이밀었다.
“설아, 이 대사 한 번만 읽어봐줄래? 감정을 실어서.”
“음··· 잠깐만요.”
백설은 잠시 앞뒤 내용을 뒤적이더니 순간적으로 표정을 뒤바꿨다.
“너 때문에 내 미래가 다 엉망이 되어버렸잖아.”
움찔.
도웅은 순간적으로 백설이 자신에게 하는 얘기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연기임을 자각하고 백설이 표현해낸 감정을 읽으려 애쎴다.
원망. 그리고 두려움.
그 속에 감춰져있는 새로운 앞날에 대한 대한 흥분.
‘아,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한테 느끼는 게 이런 감정이구나.’
도웅은 그렇게 백설의 도움을 받아 가며 극 중 캐릭터 분석을 완료했다.
**
「월화 드라마 ’비밀스러운 사랑’. 벌써부터 뜨거운 OST 쟁탈전.」
「남도웅과 시환의 OST 러브콜. 과연 누가 부르게 될까?」
「’OST 서로 부르겠다고 난리예요.’ 도대체 ‘비밀스러운 사랑’이 뭐길래?」
갑자기 산발적으로 도웅과 시환의 일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남도웅 이 치사한 새끼.”
기사를 본 시환은 단순히 도웅이 약속을 어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알아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에 도웅은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중이었다.
밥그릇을 뺏긴 이후 나날이 꼬이는 일상들.
그 때문에 바닥으로 처박히는 더러운 기분을 갚아주고 싶을 뿐이었는데.
‘일이 생각보다 커졌어.’
그 덕에 시환은 비쓰리의 수장 최 대표에게 소환됐다.
시환은 긴장된 마음으로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풍스러운 나무냄새가 물씬 풍겼다.
온갖 비싼 목재가 둘러져 있는 방 안에 나이 든 남자 하나가 시환을 바라봤다.
그는 말없이 한참을 있다가 한마디를 꺼냈다.
“왜 혼자 일을 이렇게 벌려?”
“죄송합니다.”
“네가 가서 떼쓴다고 뭐가 달라지디?”
블루파워의 머리가 큰 이후로 잘 건드리는 일이 없던 대표가,
오늘만큼은 크게 화가 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는 전부 네 입에 떠먹여줬으니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겠지.”
“아닙니다. 저는···.”
이제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된 시환.
그는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 후 순탄히 꽃길만 걷느라 아직 속은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것도 철없고 감정적인.
그러니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이었다.
“그래, 이제 기사까지 난 마당에 어쩔 셈이야?”
“무조건 이겨야죠.”
“자신할 수 있어?”
시환이 눈에 독기를 품었다.
“네. 당연하죠.”
“너 요새 무대 컨디션 안 좋아서 여기저기서 말 나오는 건 알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겠습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요.”
“어리긴.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거 아니다.”
대표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그 싸움의 승리에 네 솔로 활동을 걸지.”
“솔로요?! 솔로 활동 시켜주시는 겁니까?”
팬덤의 이탈, 갈수록 떨어지는 음원 순위.
연이은 악재로 시환의 솔로 음반은 거의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한 앙심이 남도웅에게 향했던 차에, 다시 솔로를 제안받은 것이었다.
대표가 책상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하지만 성인이면 이제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해.”
“그 말씀은···.”
“네가 지면, 앞으로 입다물고 회사에서 시키는 건 뭐든 하는 거다.”
“그럼 솔로 활동은요?”
“당연히 없던 얘기가 되는 거지.”
회사 입장에서는 현재로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시환의 솔로 활동을 미는 것보단 이미 알려진 그룹 활동으로 수익을 뽑아내는 게 이익이었다.
‘이기면 언론플레이로 관심을 틈타서 솔로 음반을 내 보는 거고, 지면 그때부터는 최대한 뽕만 뽑아내는 거야.’
“어때, 하겠나?”
시환이 솔로 활동을 하려면 지금 이후로는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몰랐다.
계약 기간도 아직 5년이 넘게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꼼짝없이 5년 간은 그룹으로 발이 묶여야 했다.
시환은 늘 그랬듯 오래 생각하지 않고 불구덩이로 뛰어들었다.
“네. 하겠습니다.”
대표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책상 위의 내선 전화를 집어 들었다.
“응, 이 팀장, 그 기사 판 키워서 내보내. 그리고 내가 불러주는 대로 계약서 하나만 더 써서 가지고 올라와.”
시환이 남도웅에게 진다면 이미지는 잠깐 주춤하겠지만,
어차피 망나니처럼 굴던 시환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면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만약 지더라도 기사는 적당한 선에서 막아버리면 되니까.’
그것도 모른 채 시환은 목숨을 걸고 이 전투에 임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
녹음 당일 아침.
손규성의 녹음실에 꽤 여러 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드라마 감독과 제작사 김 과장.
도웅과 시환, 그리고 각각의 매니저까지.
“누가 먼저 녹음실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손규성의 말에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초반 상황을 살피고 뒤에 하는 게 유리할 테니까.
“선배님께서, 먼저 보여주시죠.”
정적을 깬 것은 도웅이었다.
“그래요, 시환 씨가 먼저 하는 걸로 하죠.”
손규성이 시환을 바라보자 그가 하는 수없이 먼저 일어났다.
시환은 녹음실에 들어서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애썼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손규성은 쉴 틈도 없이 녹음 사인을 줬다.
헤드셋에서 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왔다.
안정적으로 마이크를 울리는 시환의 목소리.
그의 타고난 음색과 어릴 때부터 체득한 테크닉이 어우러져 녹음실을 아련하게 울렸다.
관계자들이 생각 외의 선전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시환이가 다시 폼을 회복했는데?’
특히 이번 일에 목숨이 간당간당한 시환의 매니저가 가장 기뻐했다.
‘시환이가 아주 칼을 갈아서 왔구나. 그래, 이러면 해볼 만하겠어.’
그는 슬며시 작곡가 손규성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 미동도 없이 노래를 듣고 있는 손규성.
그의 표정에서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집중하고 있느라 그런 거겠지.’
매니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약간 놀란듯한 감독, 그리고 김 과장과 긴장한듯한 도웅의 매니저.
그렇게 만족스러운 반응들을 확인하는 와중 시환의 노래가 끝이 났다.
모두가 숨죽이고 손규성의 사인을 기다리는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나오세요.”
“한 번도 안 끊으시고 원 테이크로요?”
김 과장이 놀라서 물었다.
“여기서 힘 뺄 필요 없지 않습니까. 한 번씩만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도웅 씨 준비해 주시죠.”
도웅은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악보를 본 시환의 매니저가 깜짝 놀랐다.
‘뭘 저렇게 많이 적어왔어? 노래가 공부한다고 되는 건 아닐 텐데.’
손규성도 도웅의 악보를 슬쩍 보고는 도웅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자세는 마음에 드는 군.’
곧이어 도웅이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헤드셋의 길이를 조절하고, 이미 달달 외운 악보를 악보대 위에 올렸다.
도웅은 노래 안의 세밀한 감정의 흐름을 되새기고는, 마이크 앞에 눈을 감았다.
“시작하겠습니다.”
헤드셋에서 수백 번도 더 들었던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에 맞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도웅의 감정.
극의 장면을 떠올리며 감정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첫 소절을 들은 손규성이 눈을 번쩍떴다.
‘이건···!’
그가 악보를 바짝 끌어당겨 곡의 흐름을 눈으로 쫓기 시작했다.
김 과장이 봤을 때, 그것은 전례 없던 좋은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