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67)
067.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앨범 제작에 가장 먼저 필요한 순서는 콘셉트의 확정.
그리고 오늘은 그 러프 콘셉트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이었다.
“오늘의 회의 자료입니다.”
제작 팀의 막내가 출력해온 진행 개요를 먼저 도착한 이들에게 건넸다.
동시에 각 팀의 직원들이 그 안에 확정된 작곡가 리스트를 보며 감탄했다.
“우와···. 어떻게 이만한 작곡가들이 한 앨범에 담겼지?”
“이 정도면 우리 회사 제작팀 섭외력이 국내 톱급인 건데?”
“이 사실만으로 충분히 이슈 만들 수 있겠어요.”
그때 먼저 자리에 앉아있던 제작 팀 대리 하나가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실상 이 작곡가들 전부 도웅 씨가 물어왔다는 게 충격적인 팩트죠.”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리의 말에 일순 모두 놀라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제작 팀에서 엄청난 영업력을 발휘했다기보단,
작곡가들이 거의 발 벗고 도웅의 앨범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수준이었다.
그때, 이미 소문을 들어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누군가 고개를 쭉 뺐다.
“저도 어디서 대충 듣기는 들었어요. 남도웅 이름 세 글자만 꺼내도 작곡가분들 목소리가 달라진다면서요?”
“그 정도라고?”
“에이, 설마요.”
“도웅 씨 아무리 그래도 아직 신인인데···.”
후속 정보에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조금 오버가 아니냐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제작팀 대리가 다시 나섰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제가 손규성 작곡가한테 연락할 때 직접 겪었거든요.”
“네? 그 까다롭기로 소문난 손규성이요?”
그 순간 업계에서 손규성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누군가가 기함을 토했다.
그렇게 서로 남도웅의 정보 공유에 열을 올리던 그때,
덜컥. 문이 열리고 이 회의의 주인공인 도웅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도웅 씨.”
직원들이 일제히 도웅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응? 기분 탓인가?’
작곡가 리스트를 확인한 직원들의 태도에 어쩐지 조금 더 각이 잡혀 있었다.
사실 이번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자체로 도웅에게 경외심이 들었기 때문이었지만, 영문을 모르는 도웅으로서는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도웅 씨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제작팀 이나래 대리는 얼마 전부터 급작스레 도웅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도웅이 보여주고 있는 결과들은 아무리 잔뼈가 굵은 가수라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어제는 도웅에 대해 꼬리를 물고 찾아보다가,
하마터면 팬클럽 가입 신청서를 작성할 뻔했다.
‘같은 회사 아티스트한테 입덕이라니. 그건 안 될 일이지.’
이나래 대리는 애써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시선만은 본능적으로 도웅을 쫓았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곧이어 강태진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회의 인원이 조금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도웅은 주변을 주욱 둘러보다가 동그란 안경을 쓴 단발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이나래 대리는 순간 뜨끔하여 시선을 푹 내리깔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내가 왜 이러는 거지.’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입덕을 부정하며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그때 스크린 앞에 서있던 제작팀의 팀장이 일정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다.
“일단 예상보다 기획 스케일이 커져서, 신곡 발표 일정은 내년 봄 정도가 될 것 같아요.”
“그때 컴백하는 다른 가수들은 누가 있죠?”
“일단 톱시크릿이랑, 에디션식스가 비슷한 시기에 컴백을 하고요.”
톱시크릿이랑, 에디션식스는 각각 남녀 아이돌 그룹으로,
10위권 내에서 음원 순위가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의 인지도 상급 아이돌.
그 때문에 질문을 했던 강태진의 표정에 살짝 걱정이 어렸다.
“음···. 그리고요?”
“아직 정확한 건 아니지만 소식통에 의하면 트윙클팝 유닛도 그때쯤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도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트윙클팝 유닛은 나오자마자 대박을 칠 텐데.’
트윙클팝은 대형 기획사 소속으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음원만 냈다 하면 당연히 1위를 기록하는 그런.
“쉽지는 않겠네요.”
강태진이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만만치 않은 대세 아이돌 그룹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아무래도 근래 음악판이 아이돌 강세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침체된 이들 속에서도 정작 남도웅만큼은 여유로웠다.
‘가창력이 되는 멤버들만 모아서 퍼포먼스까지 빠지는 것 없는 댄스곡이었지.’
그들과 맞붙게 될 이 상황에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도웅은 이미 트윙클팝이 어떤 노래를 발매할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살짝 무거워진 공기를 읽은 강태진이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아이돌판 사이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의 고개가 도웅에게로 돌아갔다.
“우리 도웅 씨 외모도 아이돌한테 지지는 않잖아요.”
“하하하하.”
“맞습니다.”
곧이어 직원들의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그 중에서도 이나래 대리가 고개를 가장 세차게 흔들었다.
‘아차.’
그녀는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이가 없었는지 눈치를 살피고 서류에 고개를 떨궜다.
유머 덕에 훨씬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 강태진이 본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작곡가 리스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도웅 씨의 미니 앨범은 판타스타에게도 중대한 기회입니다.”
직원 중 몇몇이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작곡가들이 모였다는 건 그만한 아웃풋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사실이 그랬다.
분명 이만한 작곡가들의 곡으로 앨범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기회.
“그만큼 콘셉트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강태진이 조금 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기획을 잘못해서 안 맞는 옷을 만들었다가는,
최상의 재료들을 가져다가 죽을 쑬 수도 있는 일.
그렇게 제작팀 신유나 팀장은 부담을 안고 발표를 이어갔다.
“도웅 씨의 데뷔곡인 ‘When I dream’은 꿈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의 아픔과 성장에 관한 노래입니다.”
회의실의 모든 인원이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노래의 말미에서 추운 겨울이 끝나고 꿈을 이루는 봄이 올 거라는 암시를 주는데요, 그 스토리의 연장선 상에서 이번 앨범에 그 봄을 담고자 합니다.”
“앨범 발표가 딱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니까 계절이랑은 분위기가 잘 맞겠네요.”
강태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저희 제작팀에서는 꿈을 이루기 시작한 설레고 따듯한 감정을 담아, ‘Dream.ing’을 도웅씨의 첫 번째 앨범 컨셉으로 제안 드립니다.”
‘when I dream’은 도웅을 우승에 올려준 곡인 동시에,
도웅의 상황에 딱 맞으면서도 공감 가는 가삿말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런 대중의 반응을 헤아려 안전하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무난한 콘셉트.
직원들이 대부분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수긍의 뜻을 비쳤다.
이후로 제작팀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계속해서 넘어갔다.
모든 발표가 끝난 후,
강태진이 말했다.
“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제작팀장이 안심하며 이번엔 도웅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웅 씨는 어떤 것 같으세요?”
판타스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티스트의 의견.
콘셉트 결정부터가 음악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랬다.
제작팀장이 약간 긴장이 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아티스트의 문턱을 넘어야 비로소 콘셉트가 통과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눈동자들이 도웅을 향했다.
이윽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 도웅이 입을 열었다.
“저도 첫 출발의 설렘을 담고 있으면서 내용 자체도 저와 잘 맞아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도웅의 긍정적인 반응에 제작팀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조금 걸리는 게 있어요.”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도웅 씨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도웅이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면, 수록곡 안에서 비슷한 얘기가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팀장은 말문이 막혔고 직원들이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곧이어 도웅의 말을 곱씹어 보던 이들이 하나씩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스타일은 작곡가들 성향 따라가겠지만, 특히 메시지들이 겹칠 확률이 높죠.”
“긍정, 희망, 기쁨 그런 코드들이요.”
“어쩌면 데뷔곡이랑 비슷한 ‘꿈’이 키워드라서 대중의 입장에서 신선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요.”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되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우려되는 사항들.
약간 소란스러워진 분위기 속.
도웅이 원하는 방향을 얘기했다.
“하나의 컨셉 안에서 각 작곡가들의 색깔을 최대한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량이 뛰어난 네 명의 작곡가.
그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아우를 수 있는 콘셉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도웅 역시 정확히 그 콘셉트가 무어라 당장 얘기해 줄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 고민하고, 찾아야할 숙제였으니까.
그 흐름을 읽은 강태진이 상황을 정리했다.
“도웅 씨 말에 일리가 있어요. 이 작곡가들 데리고 나쁘지 않은 정도의 앨범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말에 제작팀 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도 작곡가의 색깔을 살리면서도 도웅 씨와 어울리는 콘셉트를 다시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콘셉트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
라디오 스케줄을 위해서 이동하는 차 안.
도웅은 며칠째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었다.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 찾아내지 못하면 회의만 무기한으로 연장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생각해 내야 해.’
제작팀의 콘셉트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은 도웅 본인.
그런데 그들이 도웅의 생각에 꼭 맞는 뭔가를 찾아오기를 바라며 손을 놓고 있는다면,
제작 기간이 그만큼 연장되거나,
시간에 쫓겨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시작, 봄, 나에게 맞으면서도 작곡가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넓게 남겨줄 수 있는 콘셉트.’
도웅은 어제 회의에서 오갔던 중요 키워드들을 되새기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이윽고 어슴푸레한 저녁노을과 함께 방송국의 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때,
심정남이 처음으로 정적을 깼다.
“도웅 씨, 그래도 오늘 친구분들이 게스트로 나와서 마음이 조금 편하시겠네요.”
방송국에 다다랐음을 우회적으로 알리려는 의도였다.
도웅도 의자에 묻었던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방송 텐션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어요.”
“특히 마이클 씨가 있어서 더 그렇겠네요.”
“네, 대신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조금 걱정이 되긴 하죠.”
“하하, 그런 점이 또 마이클 씨의 매력이니까요.”
심정남이 소탈하게 웃었다.
오늘 도웅의 라디오를 방문할 게스트는 마이클, 백설, 유정우.
지난번 만남 홍대에서 괴상한 복장으로 함께 있었던 것이,
약간 인터넷상에 화제가 되어 이렇게 모이게 되었다.
라디오 스튜디오에 도착한 도웅은 방송 전 회의에 참여했다.
“도웅 씨 덕에 화제의 인물들도 이렇게 금방 섭외하고,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이 친구들 평소에도 여기 되게 나오고 싶어 했었거든요.”
“그래요? 저도 방송으로만 봐서 실물들이 궁금했었는데.”
처음에 도웅이 신인이라 쓰기 망설였던 신 PD는,
이제는 도웅에 대한 프로그램의 의존도가 높아져서 매우 살갑게 굴었다.
그렇게 회의를 끝내고 대본을 체크하던 도중이었다.
마이클이 가장 먼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가 먼저 작감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도웅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헤이 또웅! 와썹! 와, 나 여기 정말 와보고 싶었는데.”
마이클의 업텐션에 공간이 에너지로 넘쳐 흘렀다.
약간 흥분한 행동거지에서 설렘이 가득 느껴졌다.
다음으로 도착한 것은 오늘의 트레이닝을 끝내고 온 백설이었다.
“피디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백설 씨.”
“네, 오늘 열심히 하겠습니다.”
백설은 연습생답게 몸에 긴장이 바짝 든 채로 인사했다.
그 안에서 엿보이는 방송을 잘 해내겠다는 굳은 다짐.
마지막으로 키가 그 사이 키가 조금 큰 듯한 유정우가 문을 예의 바르게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라디오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오늘 게스트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인사였다.
‘아무튼 캐릭터들이 확실 하다니까.’
개성대로 제각각인 인사 스타일에 도웅은 피식 웃음지었다.
그때였다.
‘···! 그래, 이거야!’
도웅은 문득 세 사람을 바라보다 머릿속에 섬광이 스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도웅은 곧바로 종이 위에 뭔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Greeting? 인사라는 뜻 아니에요?”
유정우가 다가와 물었다.
“응, 맞아.”
작곡가들의 색깔을 살리면서도 도웅과 꼭 맞는 콘셉트.
‘이거라면 작곡가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지.’
도웅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그의 매니저 심정남에게 말했다.
“형, 빠른 시일 내에 콘셉트 회의 다시 잡아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도웅은 자신의 앨범 콘셉트를 직원들 앞에 직접 발표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