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68)
068. 타고난 감.
제작팀의 사무실.
팀장이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내일 다시 콘셉트 회의가 잡혔어요.”
“벌써요? 다시 회의를 하기엔 아직 내용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아티스트 측의 요청입니다. 오늘 하루 모든 업무 손 놓으시고 회의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 주세요.”
직원들이 촉박해진 일정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직 그렇다 할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사 일이라는 게 항상 정해놓은 일정대로 흘러갈 수 없는 일.
이런 상황에서도 최고의 결과를 뽑아내는 게 이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누군가 불만 섞인 소리를 냈다.
어떤 일이든 항상 불만을 가진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도웅 씨 마음 급한 건 알겠지만 조금 그렇네.”
“뭐가요?”
“콘셉트라는 게 생각처럼 뚝딱 나오는 게 아니잖아. 아직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런가.”
꽤 큰 회사에서 최근에 이직해온 최 과장이었다.
그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옆에 있던 이나래 대리가 약간 욱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5일이면 적은 시간도 아니었죠. 뾰족한 게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너무 급작스러운데.”
“이렇게 급하게 잡은 걸 보면 도웅 씨가 따로 떠올린 콘셉트가 있을 수도 있고요.”
무작정 도웅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지금까지 도웅이 보여준 모습대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헀다.
하지만 최 과장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이렇게 달라붙어도 안 나오는 걸 도웅 씨가 어떻게 해.”
“저는 가능성 있다고 봐요.”
“에이, 생각나 봤자 학생 수준의 뜬구름 같은 아이디어나 몇 개 가져오겠지. 콘셉트 기획이 그렇게 쉽나. 나 같이 석사 나온 전문가한테도 어려운걸.”
최 과장이 자신의 학력에 대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도웅을 깎아내리는 것 같은 발언에 어딘가 기분은 찜찜했지만,
이나래 대리가 생각했을 때 최 과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아, 앨범 콘셉트를 잡는 일은 전문가한테도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그 와중, 내일 회의에서 도웅이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어렴풋이 들었다.
**
그렇게 다시 소집된 콘셉트 회의.
먼저 제작팀이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발표했다.
“그래서 저희는 직관적으로 봄이라는 주제를 통해 도웅 씨의 프레시한 느낌을 살리고···.”
도웅은 일단 전문가들이 그간 고심한 내용들을 차분히 귀담아들었다.
‘내가 생각해온 것보다 더 나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끝까지 들어봐도 꽂히는 내용은 없었다.
강태진이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음, 지난번이랑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끼겠어요. 봄이라서 봄을 주제로 하겠다는 게 직관적이기는 하지만 진부하기도 하고요.”
강태진은 전보다 더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도웅이 지적했던 작곡가들의 개성을 살리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대표인 자신이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는 데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었다.
재차 회의를 진행했음에도 진척이 없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강태진이 지지부진한 결과에 실망한 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당장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음···. 이렇게 계속 늦춰지기만 해서는 시기를 넘어갈 수도 있는데.”
강태진이 대표로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도웅은 그런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자신이 나서면 전문가들 앞에 건방지게 보일 수가 있으니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대표님, 혹시 제가 의견을 내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자유롭게 얘기해 주세요.”
강태진은 그가 발표에 대한 의견정도를 내겠거니 했다.
하지만 스르륵 일어나 앞으로 나가는 도웅.
도웅이 준비된 노트북에 세팅을 하는 동안 제작팀 이나래 대리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 봐. 역시 뭔가 준비해 온 게 있다니까.’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맞아들어간데에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 본 도웅은 조바심에 떼를 쓰는 보통의 어린애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한테 대안이 있으니까 오늘 회의를 급하게 소집한 거야.’
도웅에 대한 궁금한 마음,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들.
그렇게 경외심으로 도웅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는 이나래 대리는,
왠지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그럴 리가 없다던 최 과장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최 과장은 조금 당황했는지 눈을 느리게 꿈뻑이고 있었다.
‘진짜 도웅 씨가 뭘 준비해 왔다고?’
하지만 이내 지레짐작으로 생각을 마무리했다.
‘에이, 아직 고등학생이 얼마나 제대로 된 콘셉트를 가져왔겠어. 아무튼 실무에 안 맞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거든 냉정하게 잘라내야지.’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윽고 도웅의 발표가 시작됐다.
“지난번 회의에서 나왔던 중요 키워드는 첫 앨범, 시작, 봄이었습니다.”
좌중이 듣고 있는 가운데 도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원했던 것은 ‘하나의 컨셉 안에 각 작곡가들의 색깔을 최대한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도웅이 손에 쥔 리모컨을 누르자 스크린 위에 화면이 넘어갔다.
화면에 두꺼운 글씨체로 떠오른 영문자와 뜻풀이.
‘Greeting : 인사, 안부.’
순간 직원들의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도웅이 화면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보탰다.
“인사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인사 한마디에 그 사람의 성격, 기분이 다 묻어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중들에게 정식으로 보내는 첫인사로써, ‘Greeting’을 콘셉트로 잡으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작곡가들의 개성을 빌어 다채로운 모습으로 인사하겠다는 의도로요.”
도웅의 설명을 들은 직원들이 생각보다 제대로 된 발표에,
표정들이 심각해졌다.
그중 최 과장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이거 꽤 그럴 듯하잖아?’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도웅은 그럴듯한 키워드를 대충 던지는 것이 아니라,
단어에 담긴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활용이 가능한지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고등학생이 생각해올 수 있는 수준이야.’
게다가 정확하고 깔끔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발표 능력까지.
‘사무 계약직으로 잠깐 일하면서 보고 배웠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도웅은 시시각각 변하는 직원들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중 특히 이나래 대리는 진심으로 경탄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도웅의 발상에 감탄하고 있던 때 강태진이 먼저 반응했다.
“첫인사라.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에 계절감도 잘 맞고 작곡가들 개성을 살리기에도 좋은 키워드인 것 같네요.”
“네. 그리고 인사라는 것이 뉘앙스에 따라 속 뜻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고 생각합니다.”
곧이어 직원들이 긍정적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한 가지 컨셉 안에서 표현의 여지가 넓다는 게 이점인 것 같습니다. 각 작곡가의 개성을 살린 곡으로 신인으로서 다양한 역량을 대중에 선보일 수 있으니까요.”
“네. 아이돌들한테 맞서기도 유연한 방식인 것 같고요.”
“맞아요. 잔잔한 발라드로만 맞서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러면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볼 수도 있겠네요.”
네 명의 작곡가가 최대한 기량을 발휘하도록 하면서 자신의 상황에 꼭 맞는 콘셉트.
진심으로 도웅의 기획안은 훌륭했다.
강태진은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도웅 씨는 가수 그 이상의 것을 이루게 될 수도.’
강태진은 오늘의 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콘셉트 기획은 음악의 시작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경력이 오래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가수는 드물었다.
그런데 여기 앉은 실무자들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남고생.
‘그냥 타고난 눈과 감을 갖추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어.’
기획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이를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고,
보통 기획할 줄 아는 가수들이 자기 회사를 차리는 법이었다.
강태진은 도웅이 판타스타의 미래에 어쩌면 아주 깊숙이 관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이 나오기 힘들겠다는 구성원들의 지지 아래,
도웅의 발표대로 콘셉트가 결정이 났다.
“곧바로 작곡가들한테 자료 만들어서 발송해 주시고, 각 부서들은 콘셉트에 따른 업무 진행 계획 작성해서 보고 부탁드립니다.”
강태진이 곧바로 업무를 지시했다.
구성원들은 키워드로부터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 활력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작팀의 이나래 대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을 하고있는 최 과장을 바라봤다.
‘결국 석사보다 도웅 씨가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왔네···. 정말 치인다 저 남고생.’
**
좋은 콘셉트와 네 명의 작곡가들.
회사 내에 긍정적인 기류가 흘렀다.
“대체 어떤 노래들이 나올지 너무 기대된다.”
“나는 특히 손규성 작곡가의 곡이 제일 궁금해.”
“난 누가 됐든 노래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
워낙 내로라 하는 작곡가들이 모였다 보니,
곡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도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드르륵.
그때 자동문이 열리고 바깥의 찬 바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목도리를 둘둘 맨 남자 하나가 기타를 멘 채로 1층에 어색하게 들어섰다.
직원이 그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저 사람 누구지? 요 며칠 작업실에 왔다 갔다 하던데.”
“임지문이잖아. 홍대 버스킹하다가 도웅 씨가 발굴했다는 그 작곡가. 장비 때문에 판타스타에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하기로 했다나?”
“아~, 그렇구나.”
직원은 호기심이 해결된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임지문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 상태.
그저 거물들 사이에 낀 무명의 작곡가가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다른 직원이 손에 든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저 사람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그렇지. 엄청난 기회이긴 한데 반대로 그 사이에서 너무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무튼 잘 이겨냈으면 좋겠네요.”
직원들은 그렇게 안쓰러움의 눈빛을 보내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임지문은 따듯하고 쾌적한 작업실에 들어가 꽁꽁 언 손을 녹였다.
그리고 도웅의 배려로 쓸 수 있게 된 좋은 장비들을 내려다보며,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막상 좋은 거 써봐라. 탓하는 마음 든다.”
임지문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마스터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부드러운 키감과 선명한 사운드.
무엇보다 따듯한 온도로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유리문을 두들겼다.
“아, 도웅 씨.”
“작업 잘 되고 있으세요?”
“네, 콘셉트만 들었는데 벌써 영감이 솟아오르더라고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네, 좋죠.”
임지문이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작업한 곡을 선보였다.
‘어떤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을까.’
자신을 위한 임지문의 노래.
도웅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멜로디를 경청했다.
도입부터 귀를 사로잡는 독특한 멜로디 라인이 튀어 올랐다.
‘역시 감각이 정말 뛰어나.’
도웅은 다른 유수한 작곡가들 보다도 임지문의 곡에 가장 기대가 컸다.
그의 감각적인 음악 스타일과 그가 지닌 막대한 음원 파워를 알고 있었기에.
‘이 곡을 내가 부를 수 있다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오늘 들려준 멜로디에서도 벌써 대박의 조짐이 풍겼다.
도웅은 운이 좋게 임지문과 함께 작업하게 된 것이 정말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임지문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했어요.”
“멜로디가 너무 좋은데요?”
“그래요? 저는 조금 사운드가 비는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에요.”
그 점은 도웅도 느꼈지만, 아직 미완성이라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것 때문에 막혀서 진도가 안나가고 있거든요.”
그 얘기를 들은 도웅의 시선이 임지문이 가져온 기타로 향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한데.’
“형, 저 잠깐 기타 좀 써도 돼요?”
“네 당연하죠. 제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싼 거지만 도웅 씨가 원한다면 드릴 수도 있어요.”
“하하.”
임지문이 본인의 기타를 집어 선뜻 도웅에게 건넸다.
“그런데 갑자기 기타는 왜요?”
“형, 아까 그 멜로디 다시 한 번만 틀어주세요.”
도웅이 웃으며 말했다.
‘임지문은 자기 음악에 손 대는 것에 민감하니까. 일단 한번 들려줘보자.’
도웅은 연주 자세를 잡았고,
임지문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재생 키를 눌렀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
“형, 이건 참고로만 들어주세요.”
도웅이 기타 위의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임지문이 만든 피아노 멜로디와 베이스 리듬.
거기에 맞춰 맛깔나는 기타 소리가 사운드가 비는 곳을 메꿔나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임지문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진짜 좋은데요?”
그는 동시에 뭔가 영감이 떠오르는지 마스터 키보드 앞으로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람의 영감이 뒤섞인 노래가 완성되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