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70)
070. 판타스타의 기대주.
허영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곡의 리듬이 두드러지고 박자가 잘게 쪼개지니까 신이 나잖아요. 그러니까 정적으로 부르는 것보다 퍼포먼스가 약간 들어가주면 노래가 더 살아날 것 같은 거죠.”
그 말을 들은 박병일이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뜨끔한 얼굴을 했다.
“너 진짜 귀신이다.”
“왜요?”
“처음에 콘셉트를 딱 듣고 고민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댄스곡을 쓰고싶은 거야.”
박병일이 도웅을 슬쩍 바라봤다.
“그런데 도웅 씨가 춤 쪽은 아니잖아. 그래서 합의를 본 결과가 이거거든.”
“제가 봤을 때는 그게 제일 본능적인 형님의 감 같은데요?”
박병일은 발라드, 댄스 상관없이 다양한 장르를 두루 다루는 작곡가.
그런 그가 도웅을 보고 댄스곡을 떠올렸다는 것은,
그것이 대중들에게 가장 잘 먹힐만한 이상적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했다.
박병일 작곡가가 고심하다가 도웅에게 물었다.
“도웅 씨 혹시 춤 좀 춰요?”
“춤은 제대로 춰본 적이 없어요.”
“그것 봐.”
반전 없는 결과를 확인한 박병일의 아쉬운 고개가 허영준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도웅의 입에서 또 다른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시도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될지 안될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니까요.”
도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박병일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모습을 본 허영준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요, 형님. 이 노래에 도웅 씨 팝핀 시킬 거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한 번 시도는 해 봐요. 안되면 그때 가서 서서 노래하면 되니까요.”
잠자코 듣고있던 박병일이 솔깃해하는 것이 보였다.
결정적으로 이 곡의 주인인 도웅이 말을 보탰다.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도웅은 춤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은 다해보고 싶었다.
지레 못한다고 빼는 것은 도웅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두 작곡가의 감이 그렇다는데 한번 시도해 볼 만은 하지. 일단 부딪혀보자.’
**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있는 퍼포먼스팀의 추도진 안무가는,
의외의 연락을 전달받고 안무 연습실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도웅 씨가 갑자기 춤을···?’
도웅의 기본기를 체크해달라는 연락.
그리고 소화할 수 있는 난이도에 따라 수록곡의 안무를 제작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뭐, 약간 율동 수준으로 집어넣는 거겠지.’
판타스타는 발라드 가수의 비율이 높았다.
그래서 추도진 안무가는 최근 아이돌 그룹을 기획하기 시작하면서 새로 투입된 인력이었다.
연습생들은 이제 기초를 떼기 시작해서 아직까지는 이곳에서 안무가로써 기량을 펼쳐 보일 일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추도진은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니 도웅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까 진짜 웬만한 아이돌보다 외모가 낫네. 판타스타에서 기대주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어.’
그는 이미 강태진으로부터 귀에 박히도록 도웅에 대한 칭찬을 전해들은 후였다.
추도진이 도웅의 외모에 감탄하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안무가 추도진입니다.”
“안녕하세요, 남도웅입니다.”
“수록곡에 댄스를 넣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그러면 일단 도웅 씨 기본기가 되는지를 먼저 체크해 볼게요.”
두 사람은 간단한 통성명만 마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본기가 먼저 되어야 춤을 출 수 있어요. 이게 안되는 상태에서 동작만 외우면 응용이 어렵거든요.”
추도진 안무가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럼 박자에 맞춰서 이렇게 리듬을 한번 타볼게요.”
박자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펴는 간단한 동작.
보기엔 쉬워 보여도 막상 이 구간에서 박치와 몸치가 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안 되면 솔직하게 춤은 힘들겠다고 얘기해야지.’
아무리 간단한 율동이어도 타고난 몸치라고 한다면 시간 낭비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주시하고 있는 동안 도웅이 동작을 시작했다.
“원앤, 투앤, 쓰리앤, 포앤. 오, 도웅 씨 리듬감이 있는데요?”
다행히도 도웅은 추도진의 구령에 맞춰 곧잘 따라 했다.
“괜찮은가요?”
“네, 바로 다음 응용 동작으로 넘어가 볼게요.”
안무가 추도진은 진도를 바로 뺐다.
“이번엔 어깨를 좌우로 한 번씩 번갈아서 틀어줄게요. 원, 투, 쓰리, 포.”
점진적으로 복잡한 동작들이 추가되었다.
추도진 안무가는 도웅이 소화를 못할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빨리 단념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게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진행하던 중 역시나 익히는 속도가 더뎌지는 구간이 생겼다.
“이건 조금 어려운가요?”
“다시 한번 해볼게요.”
하지만 도웅은 오히려 그런 구간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더욱 열의를 불태웠다.
‘이것 봐라.’
추도진이 그런 도웅의 태도를 눈여겨보며 반복해서 동작을 알려주었다.
“앞으로 나가면서도 무릎이 이렇게 같이 구부러져야 돼요.”
“네, 다시 해볼게요.”
처음에는 버벅거리더니, 도웅이 금세 느낌을 따라 잡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도를 뺀 추도진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다행히 몸치는 아니라서 간단한 춤은 시도해 볼 수 있겠네.’
“연습 기간이 3개월 정도라고 했나요? 그럼 기간이랑 도웅 씨 수준 감안해서 한 번 짜볼게요.”
일단은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는 있는 셈.
도웅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난이도 신경쓰지 마시고 노래에 가장 적합하게 안무를 짜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도웅 씨가 조금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오히려 결과가 엉성해질 수도 있고요.”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추도진은 자신의 일에 열정을 뿜어내는 도웅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음, 알겠어요. 정 안되면 최대한 짜놓고 덜어내는 수순으로 가도 되는 거니까.”
“감사합니다.”
도웅이 꾸벅 인사했다.
도웅이 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데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맞서야 할 상대는 트윙클팝의 유닛인 트윙클S.’
가창력이 되는 멤버들만 뽑아 만든 데다 외모, 퍼포먼스까지 훌륭한 그룹.
그들을 상대로 승부를 보려면 퍼포먼스가 있는 게 유리하겠다는 게 도웅의 판단이었다.
‘시각적으로 대중들에게 주는 만족감까지도 음악의 일부니까.’
아이돌들이 주는 시각적 만족은 그들이 대중의 인기를 끄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
그렇기에 춤은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이라는 게 있다면 일단은 파고들어봐야 했다.
**
트윙클S의 기획사 2W.
대한민국의 3대 기획사 중의 한 곳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2W의 회의실에서는 트윙클S의 기획회의가 한창이었다.
“톱시크릿이랑 에디션식스가 비슷한 시기에 컴백을 하고요.”
“그렇게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네요.”
“네. 그리고 판타스타의 남도웅도 그때 미니 앨범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도웅의 이름을 들은 몇몇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대형 기획사인데다가 이미 트윙클팝의 인기는 절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유닛인 트윙클S 조차도 당연히 1위를 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남도웅이 저희 상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소식통에 의하면 이번 앨범에 투입되는 작곡가들이 무시무시하대요.”
“판타스타에서 그렇게 남도웅 영입에 열을 올리더니 사활을 걸었나 보네.”
직원 중 하나가 펜 끝으로 서류를 툭툭 쳤다.
“우리 타이틀곡은 해외 작곡가한테서 공수해오는데요 뭐. 그리고 아무리 작곡가들이 대단해도 지금 음원시장에서 남자 솔로로는 힘들어요.”
“맞아요. 남도웅 데뷔곡도 무려 박병일 작곡가 곡인데 음원 순위 8위 정도가 한계였을걸요?”
“그렇긴 해요. 그래봤자 이번에도 발라드 들고 나올 텐데.”
분위기가 조금 부정적으로 돌아가면서 노골적인 의견들도 튀어나왔다.
“데뷔곡 음원 순위는 솔직히 스페셜K스타 빨이 컸지.”
“아마 이번 음원 성적이 남도웅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를 거예요.”
남도웅이 트윙클S가 견제해야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회의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
늦은 밤의 판타스타.
오늘도 연습실의 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라디오 스케줄을 다녀온 도웅이 안무가 나오기 전까지 기본기를 떼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밖에서 지나가던 연습생들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문 틈새로 들러붙었다.
“남도웅 선배님이다!”
“우와, 나 처음 봐. 나 라디오 엄청 열심히 듣고 있는데.”
“이번 남도웅 선배님 앨범에 작곡가 라인업 장난 아니래.”
“우왕 나도 들어보고 싶다.”
연습생들의 호들갑에,
근처에 있던 백설까지 그쪽으로 다가왔다.
“뭔데 그래?”
“저기 남도웅 선배님이 있어서.”
“어? 선배님이 왜 춤을 추고 계시지?”
“그렇네, 저거 우리 처음에 춤출 때 배웠던 거다.”
문 틈새로 보니 남도웅은 모든 연습생들이 처음에 배우는 기본 안무 동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호기심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시선을 느낀 도웅이 고개를 돌렸다.
“야, 어떡해.”
“뭐야, 같이 가!”
눈이 마주친 연습생들이 당황해 계단을 후다닥 뛰어올라갔다.
남은 것은 백설뿐이었다.
도웅이 백설을 발견하고 물었다.
“거기서 뭐해?”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런데 선배 춤 연습해요?”
백설이 민망함에 빠르게 주제를 전환했다.
도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수록곡 중에 댄스가 필요한 게 있어서.”
“우와, 진짜요?”
백설의 눈에서 기대감이 반짝였다.
“근데 보다시피 내가 이제 막 춤을 시작해서 열심히 하는 중이야.”
“그렇구나아.”
“그러고 보니 너는 춤 춘지 얼마 정도 됐어?”
“야매로 시작한 게 한 일 년은 됐어요. 학교에서 댄스 동아리 했었거든요.”
‘얘가 생각보다 만능 캐라니까.’
도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이 동작 맞는지 한 번만 봐줄래?”
“아, 네. 한번 보여주세요.”
그렇게 도웅은 백설의 도움을 받아 잘못하고 있던 자세를 교정하고,
새벽녘 즈음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나만의 연습실에서 조금만 더 연습하고 잘까?”
나만의 연습실에서는 뭘 하든 현실의 몸은 대미지를 받지 않기 때문에 피로도도 확연히 적을 것이 분명했다.
도웅은 그렇게 고민하며,
잠시간 메가플레이 화면을 바라봤다.
“···.”
꼭 필요한 순간에 떠오르던 메가플레이의 영상들.
그러니 춤에 대한 영상이 나오지는 않을까 약간의 기대감이 든 탓이었다.
하지만 도웅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딱 나와주면야 좋겠지만. 영상이 아니더라도 내 힘으로 해내야지.”
그렇게 도웅은 나만의 연습실의 새하얀 공터 안으로 들어가 땀 흘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
추도진 안무가는 한창 도웅의 곡에 들어갈 안무를 고심하는 중이었다.
‘노래 들어보니까 떠오르는 안무가 있기는 한데. 이걸 진짜 욕심대로 다 짜도 되려나.’
도웅이 최대한 음악에 맞춰 안무를 짜달라고는 했지만,
난이도에 대한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안무가 어렵게 들어갈 곡이 아니긴 하지만 지금 기본 안무 외우기도 쉽지가 않을 텐데 말이야.’
초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안무를 외우는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들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지하 연습실에 도착했다.
도웅은 벌써 땀 흘려 연습을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도웅 씨, 열심히 하고 있네요? 그럼 한번 연습한 거 확인해 볼게요.”
추도진은 별 기대 없이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원앤, 투앤, 쓰리앤, 포앤.”
그렇게 추도진의 구령에 맞춰 도웅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도웅의 몸.
‘그래도 연습을 꽤 했나 본데?’
도웅의 동작들은 계속해서 꽤 무난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1분, 그리고 2분이 지났다.
그동안 안무를 한 번도 틀리지 않는 도웅을 보면서,
추도진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쓰리앤, 포앤···.”
‘···뭐지? 어떻게 이틀 만에···.’
그리고 결국 마지막 동작을 해내고 있는 도웅의 몸짓.
추도진이 멍한 얼굴을 했다.
‘아무리 기본 안무여도 4분짜리를 단 이틀 만에 이렇게 만들어왔다고?’
연습생으로 합류하게 되면 첫번째 거치는 관문이 기본기 안무를 익히는 것.
‘그땐 누구나 다 열심히 해도 이렇게까지 빨리 익히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어.’
이것이 뜻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도웅이 지금까지 드러난 적 없던 춤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도록 엄청나게 노력을 했거나.
‘재능만 가지고는 이렇게 안되지.’
재능이 있는 연습생들이 자만하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경우에는 오히려 더 실수가 잦았다.
추도진은 도웅이 지금까지 본 그 어느 연습생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연습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이 뜨겁게 와닿는 것 같은 기분에 추도진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판타스타의 기대주라고 하는 게, 이런 것 때문이었구나.’
그는 비로소 강태진이 도웅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정도 열정이면···.’
추도진은 욕심대로 안무를 짜보겠노라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