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74)
074. 더 미쳤다.
쇼케이스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뒤늦게 도착한 기자들도 대부분 자리를 잡아갔고,
늘어난 인원만큼 기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황 기자가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앞자리는 만석이었다.
“아, 이거 차가 너무 밀리는 바람에.”
그는 괜히 교통상황 탓하며 어디 끼어들어 갈 틈이 없을지 주위를 둘러봤다.
“아~, 진짜 거참 다닥다닥들 붙어있네. 인간미 없게.”
황 기자가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대중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쇼케이스에 참여하는 기자의 수가 달라졌다.
연예부 기자란 모름지기 조회 수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하이에나 들이니까.
이렇게 뻔히 조회 수가 보장되어있는데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을 수는 없었다.
황 기자는 무슨 수가 없을지 고민하다가 낯익은 뒷통수를 발견했다.
“아니! 저게 누구야. 어이! 윤 기자!”
그는 마침 잘됐다 싶어, 안면이 있는 기자에게 아는 척을 하며 기자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에게 치인 몇몇의 기자들이 짜증섞인 탄성을 내뱉었지만 황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 기자라는 파마머리가 풍성한 남자가 황 기자를 발견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 황 기자. 오랜만이야.”
“그래, 이직하고 나니까 살만해?”
“뭐, 그냥 똑같지.”
황 기자는 말 붙이기에 성공한 후,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팔짱을 끼고 섰다.
주변에 서 있던 다른 기자들이 불편한 티를 냈지만,
눈치 없는 척 잠깐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황 기자는 일부러 무대 쪽을 바라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방금 남도웅 음원 나왔던데, 들어봤어?”
“응, 들어봤지. 음원 자체는 괜찮던데?”
“박병일이 작곡한 거니까 그럴 만하지.”
윤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도웅 노래 실력이야 뭐, 저 나이대 가수 중에서는 출중하니까.”
황 기자는 윤 기자의 말에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난 춤이 어떨까가 궁금하네. 티저는 괜찮던데.”
“이 사람들 다 그래서 여기 와있는 거잖아. 남도웅의 그 춤이 편집빨이냐 아니냐를 두고 뜨거우니까.”
그때 황 기자가 코를 훌쩍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나는 편집빨이라고 봐.”
“왜?”
“춤까지 잘 추면 너무 불공평하잖아. 사람이 모자란 부분도 좀 있고 해야지.”
결국 황 기자는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카메라 세팅을 마쳤다.
지금까지 안 기자가 담당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안 쓰던 근육을 쓰는 느낌이 들어 어색했다.
찰칵.
황 기자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 테스트 겸 빈 무대를 한번 찍었다.
그리고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걸고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들리고,
트윙클S의 쇼케이스 현장에 가 있는 안 기자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넘어왔다.
-네, 선배님. 자리는 잘 잡으셨어요?
“그럼, 인마. 내가 이거 원데이 투데이 하냐?
-오~, 솔직히 선배 지각해서 맨 뒤에 서서 툴툴거리고 계실 줄 알았는데.
반은 맞는 말이어서 뜨끔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좋은 자리를 잡은 황 기자가 쓸데없는 소리는 제치고 본론을 캐물었다.
“트윙클S 쇼케이스 현장은 지금 분위기 어때?”
-방금 공개된 음원도 좋아서 여기 지금 엄청 뜨겁죠. 이번 곡 성적도 잘 나올 것 같은데요? 거긴 어때요?
“여기도 마찬가지야. 남도웅 곡도 음원은 괜찮더라고.”
황 기자가 다른 기자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음원 진입은 트윙클S가 유리하지 싶어요. 일단 팬덤 규모에서 차이가 있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보고 있기는 한데, 그 유닛에 들어간 세 명이 트윙클팝 내에서도 인기 많은 애들이냐?”
황 기자가 여자 아이돌을 잘 아는 안 기자에게 물었다.
-센터가 인기는 제일 많은데, 걔는 노래가 안 돼서 빠졌죠.
“음···. 그럼 두고 봐야지. 유닛 활동은 멤버를 많이 탄다.”
그렇게 황 기자가 경험담을 담아 얘기하며 코 주변을 긁적이고 있던 때,
쇼케이스 무대에 사회자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 이제 시작한다.”
툭.
황 기자는 황급히 통화를 종료하고 카메라 앵글 위치를 확인했다.
**
“그럼, 남도웅 씨의 첫 번째 타이틀곡 ‘안녕, 봄’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도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와 함께 미친 듯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들.
기자들만을 모아놓고 하는 무대이다 보니 환호가 아닌 셔트음 만으로 공간이 가득 찼다.
도웅은 무대 중앙의 스탠드 마이크 앞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어깨에 걸린 통기타를 살짝 들어 자세를 잡았다.
도웅이 만든 기타 리프를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하며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것이 날것 같은 임지문의 곡과도 분위기가 잘 맞는 연출이었다.
음향 스태프들이 재빨리 몇 가지 세팅을 돕고 사라지자,
그때서야 도웅을 에워싼 수십 대의 카메라들이 일제히 같은 장면을 다 각도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도웅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윽고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집중했다.
-♬♪♩
도웅의 손이 호선을 그리자 섞여들어가기 시작하는 기타 리프.
그 기타 리프가 감각적인 소리를 더욱 살아나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담백하고 재미있는 가삿말들이 반주와 어우러졌다.
‘전에 없던 감각적인 스타일인데도, 상당히 소화를 잘 하네.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곡인 것 같은데.’
‘맞아, 노래의 맛을 아주 잘 살려서 표현하네.’
‘음색도 더 좋아진 게 한몫하는 것 같은데?’
기자들은 영상에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그렇게 도웅의 첫 타이틀곡이 끝나고,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웅 씨, 노래 잘 들었습니다. 여기 계신 기자분들께 인사 한번 해주시죠.”
“안녕하세요, 첫 미니앨범을 준비한 남도웅입니다. 기자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찰칵, 찰칵, 찰칵.
관객석에서는 대답 대신 셔터의 버튼음들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도웅이 인사를 마치고 마련된 자리에 자리를 잡자, 사회자가 진행을 이어갔다.
“이 곡의 작곡에 도웅 씨가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본격적으로 참여를 했다기보다는 우연히 쳐본 기타 리프를 작곡가분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 그대로 사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요?”
“네.”
“그거 지금 도웅 씨가 천재라고 돌려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하하, 아닙니다.”
사회자의 가벼운 농담으로 장내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리고 그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기자들.
그렇게 도웅은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의 에피소드 몇 가지와 근황을 전하며 30분 남짓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번에 들려드릴 곡은 리듬감이 살아있는 R&B 장르로, 도웅 씨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타이틀곡, ‘Meet you’입니다.”
이윽고 사회자가 두 번째 타이틀 곡이 올라올 순서가 왔음을 알리자,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캐주얼하면서도 본새가 나는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 위에 올라온 도웅.
그를 가운데 두고 무대에 조명이 잦아들었다.
오늘 쇼케이스의 하이라이트이자,
기자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시작되기 직전인 것이었다.
‘과연 남도웅이 얼마나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줄까?’
만약 어그로성으로 티저에 퍼포먼스 장면을 넣은 것이라면,
이들은 실망한 만큼 펜끝을 세워 거품을 터트리는 기사를 쓸 것이고,
도웅이 기대 이상의 무대를 보여준다면 그만큼 신곡 홍보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이 순간,
모든 것이 도웅에게 달려있었다.
암전됐던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고.
기자들이 도웅에게 다시 포커스를 맞췄다.
어느새 도웅의 뒤에는 네 명의 댄서들이 V자로 대형을 맞춰 서 있었다.
세련된 신디사이저 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정확한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도웅과 댄서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듯한 동작이 딱딱 맞아들어가자,
기자들이 눈을 번쩍 떴다.
‘어···?’
‘저건 대충 외워서 추는 춤이 아닌데?’
이미 수많은 아이돌, 가수의 쇼케이스를 다녀본 기자들이 봤을 때,
도웅의 춤 실력은 그럴 듯하게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루브가 달라붙어 있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리듬을 타고 흐르는 춤선.
기자들은 조금씩 본분을 잊고 무대에 정신이 팔리기 시작했다.
좋은 노래와 잘 맞아들어가는 산뜻하고 상쾌한 동작들.
그렇게 도웅은 무대 위에서 두 배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윽고 가볍게 스텝을 밟던 도웅의 발이 무대의 가운데 멈춰 섰다.
기자 군단은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노래가 끝났음을 알아채고 서둘러 녹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도웅이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마자,
장내가 뜨겁게 웅성이기 시작했다.
쇼케이스 전보다 더욱 뜨겁게 달구어진 공간의 온도.
기자들 중 절반은 아직도 도웅이 춤을 추던 그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고,
절반은 뜨거운 대중의 반응을 예상하고 만족스럽게 짐을 쌌다.
“티저에서 보여준 춤 실력이 진짜였네.”
“어그로가 아니라 제대로였어요.”
“저는 진짜로 까보면 별거 없을 줄 알았거든요. 벌써 희대의 무리수라고 기사 타이틀까지 적어놨었는데.”
“어휴, 기자님도 참. 그래도 최소한 헛걸음은 아니잖아요.”
“네. 이거대로 조회 수는 잘 나올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아무튼 아이돌들 앞으로 긴장 좀 타야겠어요. 장르 다르다고 지금까지는 적수로도 안 봤을 텐데.”
가만히 그 대화를 들으며 장비를 정리하고 있던 황 기자가,
도웅이 사라진 빈 무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쟤는 춤까지 저렇게 잘 추네, 불공평하게.”
그때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방금 트윙클S 쇼케이스 촬영을 마친 안 기자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자에는 트윙클S의 쇼케이스에 대한 간단한 감상이 담겨있었다.
-선배님, 트윙클S 이번 노래 미쳤습니다.
-남도웅은 더 미쳤다.
황 기자는 짧은 답문을 남기고 장비를 마저 정리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기자들보다 빨리 나가 이 기사를 사람들에게 뿌려야 했다.
**
도웅은 뜨거운 숨을 고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자신의 앨범 쇼케이스를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찬데,
거기에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룬 퍼포먼스 무대까지 마치고 내려오니 이제야 그 현실감이 피부에 와 닿는 것 같았다.
댄서 중의 하나가 도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생했어, 도웅아.”
“형, 누나도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래, 무대 잘 해내줘서 너무 고맙다.”
그들은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이 남고생이 너무 기특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이 노래가 얼마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마음.
잠시 후 도웅에게 강태진과 심정남, 나머지 직원들이 몰려들었다.
“도웅 씨, 고생했어요.”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기자들이 엄청 놀라는 눈치더라고요.”
“도웅 씨가 진짜 춤을 잘 추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봐요, 큭큭.”
도웅이 결과적으로 기자들에게 반전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즐거운지,
몇몇 직원들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강태진은 스페셜k스타라는 틀을 뛰어넘어,
완전한 솔로 가수로서 자신의 영역을 세워가고 있는 도웅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판타스타와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강태진이 감동이 가득 들어찬 눈으로 말했다.
“도웅 씨를 스카우트한 건, 내가 판타스타 세운 이후로 가장 잘한 일이에요.”
“대표님, 그 말씀만 지금 백 번째예요.”
“아, 그랬나?”
직원 하나가 진담반 농담반으로 얘기했다.
그제야 멋쩍은 표정을 짓는 강태진.
다른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큰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 있는이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쏟아 준비한 도웅의 무대가 만족스럽던 참이었다.
그렇게 대기실로 향하던 중, 앞에 걷던 제작팀의 이나래 대리가 우뚝 멈춰 섰다.
그 때문에 부딪힐 뻔했던 심정남이 가까스로 몸을 세웠다.
“대리님, 왜 그러십니까?”
심정남이 묻자 이나래 대리가 바들거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음악 차트가 떠있는 화면에는 도웅과 트윙클S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NEW 11. Meet you _ 남도웅
NEW 12. 어쩌면 _ 트윙클S
이나래 대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요, 2W를.”
“진짜로요?”
“대박!!!.”
그 화면 앞에 달라붙은 직원들이 몇 번이고 순위를 확인하고는,
깊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네.”
“···진짜로 이길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정남아, 이거 꿈 아니지? 빨리 나 좀 꼬집어봐.”
멍해있던 심정남이 곧이곧대로 강태진의 팔뚝살을 비틀었다.
“으악! 따가워.”
“대표님,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저 화면부터 캡쳐해놔요.!”
“그래, 그래 알겠어.”
비록 음원 진입 순위이기는 하지만,
중형 기획사인 판타스타가 3대 기획사 2W를 처음으로 앞지른 순간.
아이돌판에 치여 기세를 펴지 못하고 있던 판타스타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