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77)
077. 당연히 이정도는 해내야지.
도웅이 합주실 안으로 들어갔다.
임명이 작가가 어색하게 앉아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음···. 요 앞에 차가 밀려서 피아노 반주자가 조금 늦는다네요?”
팔짱을 끼고 있는 임명이 작가가 반주자의 문자를 보고는 혀를 쯧 찼다.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그동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두 사람은 무거운 가면 때문에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두 남녀는 가면 속에서 조용한 시선으로 서로를 탐색했다.
‘눈 돌아가는 게 안 보일 테니 이런 점에서는 편하네.’
여리여리한 체형의 여인은 두 눈에 불 모양이 그려져있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머리 위에 올라가있는 짬뽕 모형의 빨간 국물은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현실감이 있었다.
도웅의 시선이 가면 아래로 내려갔다.
가면 아래로 삐져나와있는 긴 생머리,
그리고 가면과는 대비되는 하늘하늘한 쉬폰 소재의 상의에 검정 바지.
스타일만 봐서는 여자에게서 청초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역시 이렇게만 봐서는 전혀 누군지 감이 안 잡히네. 아마 저쪽도 나를 열심히 탐색하고 있겠지.’
그렇게 서로 한마디 말없이 눈동자만 굴리고 있던 때,
합주실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피아노 반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한 남자 하나가 허리를 연신 꾸벅이며 사과했다.
임명이 작가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출연자들을 기다리게 만들고.”
“그, 그게, 실은 배탈이 나서 중간에 화장실에 가느라···. 정말 죄송해요.”
“아, 배탈? 배탈은 인정이죠.”
반주자가 이실직고하니 임명이 작가가 쿨하게 넘겼다.
그녀가 출연자들에게 양 손바닥을 펼치고 말했다.
“짜장 군, 짬뽕 양. 그럼 이제 노래해볼까요?”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통성명도 없이 노래로 서로를 대면하게 되었다.
도웅은 조금 긴장되는 마음으로,
차가운 금속의 기운이 느껴지는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반주자가 호흡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고요함 속에 차분한 멜로디가 반주자의 손끝을 타고 울렸다.
첫 소절을 맡은 것은 여자 쪽이었다.
여자가 입가로 마이크를 가져다 댔고,
이윽고 합주실의 스피커를 타고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마디에서부터 도웅은 딱 느낌이 왔다.
‘역시 잘하네.’
부드러우면서도 여린 소리.
하지만 잘 짜인 비단결 같은 그런 목소리가 도웅을 휘감았다.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그녀의 호흡에는 보통의 가수들에게서 보기 힘든 내공이 담겨있었다.
‘1라운드부터 쉽진 않겠구나.’
이윽고 여자의 파트가 끝나고 도웅의 차례가 왔다.
마이크를 들어 올린 도웅이 입을 떼자,
“···!”
위기감을 느낀 것은 여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
그렇게 짧은 합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웅은 벌써 어둠이 내려앉은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생각했다.
‘그 목소리···.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상대의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방금의 합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특정한 누군가가 확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긴, 나도 음색을 조금 변조해서 불렀으니까.’
기왕 가면을 쓰고 있는데 정체가 빨리 들통이 나는 것보다는 아리송하게 만드는 편이 유리했다.
대결을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시청자들의 재미를 고려했을 때도.
‘20대 중반의 여자 가수에, 그 정도 가창력인 사람이 누가 있지···.’
도웅이 그렇게 천천히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지직, 지직.
심정남이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지 귓가에 잡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노랫소리.
2000년대 중반쯤에 나왔던 히트곡이었다.
도웅도 머리를 비우고 잠시 노래를 감상했다.
멜로디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심정남이 말했다.
“크-. 이거 예전에 제가 진짜 좋아했던 노래지 말입니다.”
“저도요.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노래에요.”
“도웅 씨도요? 하긴, 이때 이 노래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는 좌회전 신호에 맞게 핸들을 꺾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이 히트곡 이후로 보이지를 않는 걸까요?”
“그러게요.”
원 히트 원더.
하나의 히트곡만을 반짝 빛내고 사라지는 스타를 일컫는 말.
‘그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지.’
도웅은 그렇게 다시 생각에 잠기려던 참이었다.
‘···! 잠깐, 원 히트 원더?’
아주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20대 중반의 여자 가수.
하지만 당장 도웅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
‘왜 지금 활동하는 가수들 안에서만 생각했었지?’
도웅은 추측할 수 있는 인물의 범위를 과거에 사라진 가수들까지 확장했다.
그러자 어렴풋이 누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시아구나.’
이시아.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뛰어난 가창력으로,
6년 전쯤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던 여성 가수.
노래, 춤, 외모 빠지는 것 없이 솔로로 종횡무진했던 그녀를 두고,
한창 루키가 탄생했다고 언론이 떠들썩했었지만,
막상 그녀는 히트친 그 앨범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었다.
‘무슨 일로 잠적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 같네.’
도웅은 상대가 누군지 알겠으니 비로소 속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데에 변함은 없지만.’
그렇기에 이제 그에 맞춰 연습을 해야 했다.
**
‘킹 오브 마스크’의 촬영 날.
임명이 작가가 심각한 얼굴로 대진표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녀가 이석규 PD에게 말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뭘?”
“아무래도 도웅 씨한테 첫판부터 너무 센 상대를 붙인 거 아닌가?”
임명이 작가는 합주실에서 들었던 이시아의 노래를 떠올리며 말했다.
도웅과 이시아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정말 듣기 좋았지만,
대결을 하기엔 썩 쉽지 않은 상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시아도 과거에 한 끗발 날렸던 인물이니까.
“1라운드에서부터 이렇게 세게 갈 필요가 있겠어?”
“생각해봐. 과거의 루키와 현재 루키의 대결. 얼마나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할지.”
“뭐, 그건 그렇지.”
“임 작가님, 우리 도웅 씨 못 믿어요? 도웅 씨가 누군데 당연히 이정도는 해내야지.”
이석규 PD가 씨익 웃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어딘가 얄밉다.
임명이 작가가 의구심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이 PD, 설마 도웅 씨 빨리 떨어트릴 생각으로 이렇게 붙인 거는 아니겠지?”
“남도웅이 떨어지든, 올라가든 어쨌든 우린 이슈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이석규 PD가 덤덤하게 말하자,
임명이 작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웅 씨는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의 우승자인데, 어쩜 너는 애정이 1도 없니?”
“나 밥 먹여주는 거는 시청률이지 도웅 씨 아니니까.”
“어휴, 이 정나미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임명이 작가가 진저리를 치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 뒤통수에 대고 말하는 이석규 PD.
“아니, 임 작가님이 도웅 씨 화제성 띄워달라면서요. 시키는 대로 다 했구만.”
진심으로 억울한 이 PD의 표정을 보던 김미진 작가는 생각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걸 보니, 진짜 맞네. 소시오패스.’
**
도웅은 대기실에서 준비된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것을 보니,
제작진 측에서 보안을 철저하게 준비한 듯싶었다.
대기하는 동안 화면을 통해 첫 팀의 대결을 모니터링했다.
옆에 서있던 심정남은 본능적으로 가면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쓰읍··· 목소리가 배우 임형주 씨 비슷하지 않습니까?”
“네, 아무래도 가수는 아닌 것 같아요.”
“상대도 약간 배우 느낌입니다.”
잠시 후 1라운드에서 탈락한 남자가 가면을 벗었고.
-이분은 바로! 배우 임형주 씨입니다!
사회자가 남자의 정체를 밝혔다.
그러자 펄쩍 뛰는 심정남.
“와, 보셨죠! 제가 맞췄지 말입니다.”
가면을 쓰고 나오는 프로가 어떨지 걱정이라던 심정남은,
어느새 프로그램에 누구보다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도웅은 그렇게 이어서 나오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가수가 아닌 사람이랑 붙었으면 1라운드는 쉬웠겠지.’
그러더니 이내 씨익 웃는다.
‘그래도 아슬아슬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법이니까.’
도웅은 오랜만에 서바이벌 프로에서 느끼는 이 긴장감이 즐거운 듯 보였다.
그렇게 잠시간 대기하고 있던 때, 조연출이 도웅의 대기실을 두들겼다.
제작진들은 보완을 위해서 가면의 생김새로 출연자들을 호명하는 중이었다.
“짜장 씨, 다음 순서 대기해 주세요.”
도웅의 순서는 꽤 초반.
그래서인지 무대 너머로 아직까지 호기심 가득한 관객들의 활력이 느껴졌다.
이 천막만 걷고 나가면 바로 무대로 통하는 길.
‘다른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라는 게 꽤 기분이 이상하네.’
도웅은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면과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곧이어 사회자가 두 사람의 닉네임을 호명했다.
“웃기는 짜장과 불타는 짬뽕! 앞으로 나와주세요!
치익.
무대의 양옆에서 스모그 효과가 솟아오르고,
각각 가면을 쓴 남녀가 그 속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이 무대 가운데 서자 사회자가 말했다.
“짜장과 짬뽕! 거의 엄마냐 아빠냐의 수준으로 어려운 대결입니다.”
그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자,
청중들이 가볍게 웃었다.
“과연 ‘킹 오브 마스크’에서는 누가 승리를 거둘지, 둘 중 노래 실력이 더 뛰어난 참가자를, 손에 들고 계신 리모컨으로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청중들이 투표를 해서 승자를 가르는 방식이었다.
패널들까지 이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100명.
그중 과반의 선택을 받아야만 했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조명 효과가 집중됐다.
무대 주변을 빙 둘러싼 관객들, 그리고 정면에 앉아있는 패널들의 호기심이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맑은 피아노 멜로디가 아련하게 두 사람을 맴돌았다.
먼저 이시아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첫 마디에 관객들이 술렁거렸다.
누군지 알아챘다기보다는 뛰어난 가창력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 가운데,
이시아가 여린 목소리를 호흡으로 단단하게 밀어냈다.
그 안에 서려있는 한과 슬픔.
감정이 고조되면서 소리가 깨끗하게 쭉 올라갔다.
이번엔 도웅의 차례였다.
이시아의 바통을 어떻게 이어받을지, 도웅의 첫 마디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깊이감있는 목소리가 공간을 은은하게 울렸다.
바로 옆에서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전체를 울리는 소리.
도웅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의 온몸을 감쌌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도웅의 음악을 함께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렇게 노래의 안갯속에 푹 빠져 있던 때,
두 사람의 목소리가 스며들 듯 만나면서 화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이때까지 비등하게 느껴지던 차이는,
두 사람의 소리가 섞이자 확연하게 드러났다.
도웅의 목소리가 공간 전체를 꽉 채운 안개라고 한다면,
이시아의 목소리는 그 아래 물먹은 안개처럼 짙게 깔리고 있었다.
소리를 몸 안에서 울려 내보내는 힘의 차이가 주요한 이유였다.
공간 전체를 스피커처럼 짱짱하게 울리는 도웅의 목소리가,
이시아의 소리를 상대적으로 답답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여린 이시아의 목소리.
그녀는 여린 목소리를 호흡과 표현력으로 커버하는 편이었는데,
도웅이 그 틈새를 노린 것이었다.
다른 데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 무대.
그리고 가까이 모여있는 적은 수의 청중들.
그렇기에 도웅이 울림에 포커스를 맞춰 연습한 효과가 더욱 크게 드러났다.
마침내 두 사람의 노래가 끝나고, 바이올린 소리가 잦아들었다.
소리의 안개가 걷히고 나서야 청중들이 서둘러 손에 쥔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와···. 노래 진짜 잘한다.’
‘순전히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더 좋았어.’
‘완전히 바로 옆에서 노래 부르는 느낌이야’
그리고 감탄 뒤에 곧바로 사람들이 궁금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짜장 가면 쓴 사람이 누구지?’
‘왠지 알듯말듯한데.’
그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그 혼란을 잠재웠다.
“웃기는 짜장과 불타는 짬뽕. 한치의 양보 없던 그 대결의 승자는···.!”
청중의 시선이 일제히 전광판 위로 몰렸다.
그리고 곧이어 쾅.
전광판에 커다란 점수가 떠올랐다.
점수를 확인한 관객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일시에 웅성였다.
전광판이 머리 뒤에 위치해서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웅과 이시아는 온몸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사회자의 입이 열렸다.
“34 대 66! 웃기는 짜장의 승리입니다!”
도웅은 웃는 얼굴이 그려진 가면 속에서 똑같이 미소 지었고,
이시아는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