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79)
079. 눈이 번쩍 뜨였다.
스튜디오 촬영 현장.
무대 위에서는 차현재가 어느새 3라운드를 치르고 있었고,
그런 차현재를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내고 있었다.
그 현장의 가운데 서 있는 이석규 PD.
그가 여러 앵글 중 아쉬운 것은 없는지 화면을 모니터링하던 중이었다.
이석규 PD가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리액션 따기가 이렇게 쉬울 수가 없네.”
그때 지나가던 임명이 작가가 옆에서 불쑥 끼어들었다.
“왜?”
“···어차피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임명이 작가가 모니터 위로 시선을 올렸다.
하나같이 넋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모니터 속의 관객들.
임명이 작가가 씨익 웃으면서 팔짱을 끼고 섰다.
“그래, 진짜 고생해서 캐스팅한 보람이 있다.”
차현재는 제작진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히든카드였다.
그는 예능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희소성 있는 인물.
게다가 가창력으로 손에 꼽히는 그 인물이 서바이벌 무대에 섰으니 큰 화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임명이 작가는 삼고초려 끝에 차현재를 섭외하고는 기뻐서 소리까지 질렀었다.
그때 이석규 PD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 탕수육 씨가 당연히 올라갈 테니까···.”
“결승전에서 짜장 씨랑 붙겠네. 역시 내가 이렇게 잘 해낼 줄 알았다니까.”
임명이 작가가 도웅을 떠올리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이석규 PD의 표정은 썩 탐탁지 않았다.
“뭣보다 결승이면 긴장감이 있어야 할 텐데.”
“그 말은 짜장 씨가 긴장감 없는 상대라는 뜻?”
“솔직히 그렇잖아. 탕수육이랑 짜장이 상대가 돼? 급이 다른데.”
“묘하게 말 되는 게 기분 나쁘네.”
임명이 작가가 주머니에 한쪽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2라운드 통과도 사실 대단한 거잖아.”
“그건 그렇지. 다만 상대가 너무 강력할 뿐.”
무대 위의 차현재는 방금 막 2절의 후렴에서 고음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황홀한 표정으로 그런 차현재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
그들은 가면 속의 사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순전히 그의 노래에 빠져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독보적이긴 해.’
차현재는 매 무대마다 명성답게 소름 끼치는 가창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사실 임명이 작가 또한 처음 차현재를 캐스팅한 순간부터 그가 우승자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도웅 씨는 항상 기대 이상의 것을 보여주니까.’
그것이 임명이가 스페셜k스타를 진행하면서 몸소 겪었던 사실이었다.
도웅은 매 라운드를 거듭할 때마다 놀라운 무대를 선보였고,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아직 어린 맹수라 해도 발톱을 세우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법.
“뭐, 어떻게. 또 내기할까? 짜장 씨가 탕수육 씨를 대적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임명이 작가가 장난조로 이석규 PD를 건드렸다.
그러자 이 PD가 쩝 하고 쓴 입맛을 다셨다.
“앞으로 작가님이랑 때려죽여도 내기는 안 할 겁니다.”
“확실히 우리 이 PD님 학습이 빨라.”
임명이 작가가 씨익.
만족의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
도웅의 대기실.
심정남은 결승을 앞두고 잠깐 제작진을 만나러 갔고,
도웅은 홀로 차현재의 무대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차현재의 노래를 들어본 이 라면 누구든 한 번씩은 감탄사를 내뱉어 봤을 법했다.
모든 노래를 장인처럼 뽑아내는 그 실력.
전생의 도웅 또한 먼 발치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감탄하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현재랑 맞붙게 되다니···.”
그 사실 자체로 도웅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당장 차현재를 이기기는 힘들지.”
그것이 도웅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차현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만들어온 사람이었고,
도웅은 이제 갓 이 판에 발을 들인 샛별.
그를 단번에 뛰어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크나큰 욕심이었다.
그렇다고 다음 무대를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도웅은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이기는 게 안된다면 그럴듯한 대결 구도라도 만들어야 해.”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음원 순위를 높이려는 것이 도웅의 목적.
그런데 괜히 시시하게 졌다가는, 도웅이 애써 2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이 오히려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꽤 쟁쟁한 상대들을 제치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하더라도,
결승 상대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 사실만 남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끈질기게 덤벼야지.”
아무리 체급 차이가 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맹렬하게 달려든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흥미가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차현재에게 쏠릴 커다란 관심들을,
자신에게 돌려보겠다는 그런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로 차현재랑 붙는 것이 도웅에게 득일까 실일까를 따진다면?
그것은 도웅이 하기에 달려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결승으로 100% 터트릴 수 있는 곡을 준비했으니까.”
서바이벌에서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처음부터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모든 것을 꺼내 놓는 것.
하지만 이미 서바이벌 프로에 이골이 나있는 도웅은,
뒤로 갈수록 더해질 임팩트를 계산해 단계적으로 음악을 준비해온 상태였다.
특히 마지막 곡은 경연에 유리하면서도,
도웅의 포텐을 터트릴 수 있을 만한 그런 곡이었다.
벌컥.
그렇게 도웅이 결승 곡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때,
대기실의 문이 예고 없이 열렸다.
문을 연 당사자는 제작진을 만나고 돌아온 심정남이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형, 무슨 일인데 그래요? 뛰어오셨어요?”
“아니, 그게···.”
그는 고개를 바깥으로 내밀어 양옆을 살피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굳게 닫았다.
그러고 나서 숨을 고르고 말했다.
“도웅 씨. 제가 엄청난 걸 알아낸 것 같습니다.”
“뭔데요?”
그는 가문의 비밀이라도 얘기하려는 듯,
비장한 얼굴로 입을 뗐다.
“이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도웅 씨 결승 상대가···.!”
“차현재 선배님이요?”
“어, 어떻게 알았습니까?”
도웅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자 심정남이 놀란 표정을 했다.
그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제가 오는 길에 화장실에 들렀지 말입니다. 그런데 차현재 씨랑 그 매니저가 제가 있는 거는 까마득히 모르고선 대화를···”
뒤에 이어지는 심정남의 말을 들으며,
도웅은 생각했다.
‘그분은 화장실을 참 자주 가네.’
**
결승을 앞두고 잠시 녹화가 중단됐다.
“10분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이 PD의 외침에 무대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앉아있던 패널들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꽤 긴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있던 탓에 좀이 쑤셨기 때문이었다.
인지도 높은 개그맨인 윤동재가 관객석과의 거리를 눈으로 재보고는,
자신들의 말이 들릴 리는 없겠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입을 열었다.
“처음에 탈락자들이 가면 벗을 때는 진짜 놀랐는데, 이제 계속하다 보니까 리액션 하기도 힘들다.”
“그쵸, 출연진 라인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옆에 있던 후배 개그우먼이 맞장구를 쳤다.
“사실 이제 누가 나와도 놀랄 것 같지 않아요. 차현재 씨 나왔잖아요. 게임 끝이죠.”
“뭐, 이제 결승이니까. 우승자는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지.”
이들은 차현재의 존재는 1라운드부터 알아채고 있었다.
턱을 어루만지던 개그맨 윤동재가 후배에게 물었다.
“그런데 차현재 씨 상대가 누구인 것 같아? 그 짜장 가면 쓴 사람. 아무래도 아이돌인거 같지?”
“아뇨, 제가 봤을 때는··· 선배님 혹시 남도웅이라고 아세요? 얼마 전에 쇼케이스로 떠들썩 했었는데.”
“응,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 안 그래도 노래를 꽤 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개그맨 윤동재는 여기저기 밟이 넓은 편이었다.
그는 작곡가들, 그리고 관계자들을 통해 간간이 도웅의 이름을 들었다.
후배 개그우먼이 말했다.
“제 생각엔 짜장이 그 친구인 것 같아요.”
“그래? 듣던 대로 노래를 좀 하네?”
윤동재가 흥미가 돋는지 눈썹을 위로 움직였다.
“그런데 조금 안 됐네. 하필이면 차현재랑 붙어서.”
“그러게요. 그냥 묻히기는 아까운 실력이던데.”
“어쩌겠냐~, 세상이 1등만 기억하는 게 현실인걸.”
그는 목을 축이기 위해 바닥에 놨던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그때 임명이 작가가 패널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얼굴에 비즈니스적인 웃음을 살갑게 띠웠다.
“녹화가 조금 길어져서 힘드시죠?”
“아니에요, 이게 저희 일인데요.”
후배 개그우먼이 자세를 바로하고 말했다.
임명이 작가가 지친 기색의 패널들을 다독였다.
리액션의 퀄리티를 뽑아내기 위해서.
“그래도 이제 마지막이니까 리액션 크게 크게 부탁드려요.”
하지만 개그맨 윤동재는,
후배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딘가 툴툴대는 그의 말투.
“리액션도 너무 억지로 짜내면 시청자들이 반감을 가진다고.”
그가 먼저 은근슬쩍 말을 놓자 임명이도 반말로 응수했다.
“어머~, 윤동재 씨. 제 말은 억지로 짜내라는 얘기가 아닌데?”
서로 감정 상하도록 선은 넘지 않되 할 말은 하는,
패널과 제작진 사이의 기싸움.
갓 편성된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계속 촬영을 함에 있어서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리액션을 상황에 맞게 하되 조금만 크게 해달라는 얘기에요.”
“아, 그러니까 결승 무대가 볼만해야 우리도 리액션에 영혼이 실리는 거지.”
“어머~, 결승 무대가 볼만하지 않을 것 같으세요?”
임명이 작가가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걸었다.
개그맨 윤동재가 분위기를 저울질하다 한마디를 보탰다.
“탕수육 씨 무대야 저절로 리액션이 튀어나오겠지만···.”
그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바로 그 뒤에 이어질 무대에서 너무 체급 차이가 나지 않냐는 거예요, 내 말은.”
“그거는 윤동재 씨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출연자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텐데요.”
임명이 작가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잘 느껴지는 날선 아우라.
‘뭐 하는데 이렇게 오래 얘기해?’
패널들 격려하겠다고 나선 임명이 작가의 말이 길어지는 것 같자,
이석규 PD가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잘랐다.
별로 좋지 않은 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
사회자가 좌중의 집중력을 불러일으키는 톤으로 말했다.
“이번이 우승자를 가르는 마지막 결승 무대입니다. 과연 ‘킹 오브 마스크’ 초대 영광의 우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웃기는 짜장, 그리고 놀라운 탕수육 두 분 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사회자의 멘트에 맞춰 두 사람이 스모그 효과를 뚫고 걸어 나왔다.
마침내 도웅이 차현재와 한무대에 서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가운데 선 사회자가 도웅에게 물었다.
“결승까지 올라온 기분이 어떠십니까?”
“노래만으로 제가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만족하시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죠.”
차현재를 상대로 도웅이 주눅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변조한 도웅의 목소리에서 오히려 패기가 묻어 나왔다.
사회자가 이번엔 차현재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웃기는 짜장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저도 짜장님 노래 듣는 동안 화장실에 2번 정도 다녀왔습니다.”
“하하하.”
차현재가 장갑 낀 손가락을 두 개 들어 올리고는 오들오들 떠는 척을 하며 잔망을 떨었다.
무대 뒤의 매니저는 한숨을 푹 쉬었지만, 어쨌든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사회자가 차현재에게 물었다.
“그럼 다음 무대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짜장면보다는 탕수육이죠. 제가 그 클래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차현재가 카메라 앞에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그렇게 첫 무대는 차현재가 먼저 장식하게 되었다.
도웅은 무대 뒤쪽으로 걸어나갔고,
이윽고 차현재의 머리 위에 있는 조명들이 색을 바꿨다.
세션들이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차현재는 본래의 산만한 성격을 벗어던지고 음악 속으로 깊숙이 다이빙했다.
순식간에 그의 음악에 잠겨버리는 관객들.
이게 바로 대가수 차현재의 클래스였다.
오늘만 해도 그가 네 번째 선보이는 무대였지만,
그는 하던 대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었다.
차현재의 음악에 집중하는 패널들의 눈가,
점점 벌어지는 입.
의도하지 않아도 응당 그의 노래에 반응하는 몸짓들.
이 PD는 그런 반응들을 면밀히 카메라 안에 담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3분이 흐르고, 차현재가 마지막 음을 흘리자 관객과 패널들이 일시에 큰 박수를 보냈다.
벌써 오늘의 우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듯한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기나긴 박수 소리가 채 끊기기도 전에 사회자가 도웅을 호명했다.
“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순서! 웃기는 짜장의 무대입니다. 모두 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가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패널들도 여기서부터는 리액션을 신경 써서 해야겠다는 강박을 가졌다.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두 무대에 대한 리액션의 차이가 너무 티 나면 안 되니까.
도웅이 무대의 가운데 서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두구두구 둥.
강한 비트의 드럼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동시에 현란한 사이클을 그리는 조명들.
드럼의 하이햇 소리에 맞춰 일시에 전자 기타와 베이스가 강렬한 사운드를 발산했다.
도웅은 웅장한 악기들의 합주 위에 샤우팅을 얹었다.
‘이건 록···?’
날카로운 고음의 일격에 일순간 패널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