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8)
008. 어딘가 들어본 듯한 이름
[사용해 보니 어떠셨나요? 해당 재능을 다운로드하고 싶다면 ‘홈’탭에서 트레이닝을 완료하세요.]“와···. 진짜 끝장난다.”
‘무명 보컬 H의 두성 창법(D)’을 방금 스트리밍 해본 도웅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기본 발성 재능에 고음이 단단하게 보강되니 노래를 부르는 자신조차도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
하마터면 고음을 지르는 중간에 음을 놓쳐버릴 뻔했다.
지금까지 기본 발성을 트레이닝 한 덕에 노래를 좀 하는 사람으로 비쳤다면,
두터우면서 높이 뻗어나가는 두성은, 누가 듣더라도 노래 실력을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진성으로 맘껏 소리를 내지른 덕에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덤이었다.
“이번 생은 진짜 축복받았나 봐.”
한때 즐겨들었던 보컬의 두성 창법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을 하니 도웅은 행복감이 차올랐다.
너무도 갖고 싶었던 재능들이 하나씩 손아귀에 쥐어지는 느낌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웅은 홈탭을 터치해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 현재 ‘아마추어 K의 발성법(D)’의 완료율은 96% 입니다. ] [ 조금만 더 힘내서 자신의 재능으로 만들어보세요! ]“아차, 기본 발성법부터 완료하는 게 좋겠네.”
도웅은 잠시 잊고 있던 발성법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중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발성법을 트레이닝 하던 중이었다.
-빰빠바밤! 빰빠바밤! 빠 빰!
[Congratulation!] [완료율을 100% 달성했어요!]나만의 연습실 사방에서 갑자기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쓰!!! 연속으로 잭팟이 터지는구나!“
도웅은 공중에 연속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트레이닝 완료율 100%.
이제 도웅은 온전히 스트리밍으로 느끼던 그 감각대로 노래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K의 발성법(D)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필요한 ★ : 30개]“강태진 대표님! 재능 잘 쓰겠습니다! 선물도 감사드립니다!”
도웅은 기쁜 마음에 넙죽 절을 했다.
재능이 부족해 암울했던 지난날.
그것을 완전히 벗어던지게 해줄 자신의 첫 번째 재능이었다.
“그런데··· 30개? 별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
기뻐하던 것도 잠시, 도웅은 다운로드에 필요한 별의 수량을 확인하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트레이닝과 새로운 영상의 스트리밍으로 거의 모든 별을 소진한 상태였다.
[*다운로드하지 않을 시 재능은 차츰 소멸됩니다.]더군다나 아래 적힌 경고 문구는 심각한 것이었다.
“소멸? 이걸 어떻게 완성시켰는데. 절대 안 되지.”
애써 완성시킨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다운로드를 서둘러야 했다.
“별을 모을 방법이 필요해.”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던 와중,
기회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
-♩삐 비빅 비빅
높은 음의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음악실.
다 같이 리코더 합주를 하는 중.
-피비 빅!
“누구야! 너희 똑바로 안 할래?”
누군가 실수로 크게 삑사리를 냈고 왕사포 선생은 그게 듣기 싫은지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어찌어찌 불협화음 속에 모두가 노래 한 곡을 완곡했다.
“자, 그만그만.”
그녀는 지휘봉으로 탁자를 탁탁 치면서 말했다.
“이번 2학기 수행평가는 자유 악기 연주야. 선곡도 자유롭게 해서 숨겨왔던 실력들을 보여주면 된다.”
“쌤, 그럼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으면요?”
누군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거. 리코더를 연주하면 된다. 어떤 악기를 쓰느냐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악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열심히 준비했는지를 평가할 거야. 일부러 준비 기간을 여유롭게 주는 거니까 완벽히 연습해오도록.”
아이들은 벌써부터 어떤 악기를 연주할지를 얘기하느라 시끌벅적해졌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던 도웅에게는 리코더 외엔 선택권이 없었다.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달려간 형식 덕에 도웅은 홀로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기타줄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
‘밴드부에서 나는 소리네.’
호기심이 든 도웅은 슬쩍 가까이 다가가 문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어? 마은율? 쟤는 밴드부가 아닐 텐데.’
한쪽 다리에 제 몸통만 한 통기타를 걸친 마은율.
그녀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코드를 잡고 있었다.
유명해서 한 번쯤은 들어본 80년대의 민중가요 멜로디.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아르페지오 주법의 감칠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렇게 오래된 노래를? 저 때 우린 태어나지도 않았을 땐데.’
마은율이 가진 의외의 감성에 도웅은 약간 놀랐다.
은율의 여린 목소리가 멜로디 위에 툭툭 얹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에서 고등학생답지 않은 아련함이 묻어 나왔다.
‘제법 올드 한 감성을 완전히 자기 느낌으로 풀어내네.’
도웅은 기타 실력과 더불어 뛰어난 마은율의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
‘나도 언젠가 꼭 기타를 배울 거야.’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뮤지션들의 모습.
그것은 도웅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연주에 빠져 한창 감상을 하던 중, 눈썹이 짙은 남자 하나가 도웅의 어깨를 툭 쳤다.
“너 누구냐?”
“1학년 남도웅입니다.”
2학년 선배로 보이는 그는 도웅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신경을 끄고 밴드부 연습실로 들어갔다.
동시에 기타의 감미로운 멜로디도 멈췄다.
“여- 마은율. 이제 우리 동아리 들어오기로 한 거야?”
“아뇨, 아무 때나 놀러 오라면서요. 지나가다가 수행평가 연습도 할 겸.”
마은율이 들고 있던 기타를 톡톡 두드렸다.
“음악 수행평가? 그래, 언제든지 와.”
“네, 선배. 저 이만 가볼게요. 잘 썼어요.”
마은율은 기타를 건네고는 문밖으로 나왔다.
어색하게 마주친 도웅은 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응, 안녕.”
마은율은 옅은 미소를 띠고는 사라졌다.
지난번 노래방 앞에서 마은율이 왜 대뜸 인사를 건넸는지 알 것 같았다.
**
그날 저녁, 한제 고등학교의 밴드 ‘데이콘’ 동아리 연습실.
그 안에서 아까의 그 눈썹 진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뭐? 갑자기 전학을 간다고?”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버지 회사 발령으로 어쩔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럼 연습하던 노래는 어떡하고?”
“죄송합니다.”
“하 씨발···. 당장 축제가 코앞인데.”
진한 인상으로 마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밴드부의 리더,
조한성이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1학년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남학생은 중죄를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혈질인 조한성이 또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옆에 긴 머리에 꺼실한 피부,
뮤트로 기타줄을 튕기던 유지필이 끼어들었다.
“왜 그러냐. 걔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닥쳐 이 도움 안 되는 낙천주의자 새끼야.”
그 화가 절친한 유지필에게로 터졌다.
유지필은 욕지거리를 들은 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코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나 같으면 그럴 시간에 대체할 애를 알아보겠다~.”
저런 태평한 성격이 조한성의 속을 한 번씩 뒤집어놓았다.
-♬♪♩
심각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동아리실에 뚱땅거리는 기타 소리가 BGM으로 깔렸다.
리더 조한성은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 숙이고 있는 1학년에게 물었다.
“일학년에 쓸만한 애들 있나?”
“7반에 마은율이랑···.”
“야! 걔는 동아리방을 그렇게 들락거려도 지금까지 꿈쩍도 안 하는 거 보면 몰라?”
조한성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1학년은 움찔, 하더니 얼마 전에 주워들은 소문이라도 꺼내보았다.
“아니면··· 요새 남도웅이란 애도 꽤 한다는 소리가 들려요.”
“남도웅?”
어딘가 들어본 듯한 이름에 조한성의 두꺼운 눈썹이 움찔거렸다.
**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학교들은 저마다 축제를 준비 중이었다.
축제에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공연.
예산이 넉넉한 학교들은 진짜 연예인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제 고등학교는 밴드부와 노래 좀 한다는 학생들로 무대를 구성해 왔다.
게시판에 붙은 축제 포스터를 보며 여럿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에이, 동성고는 피치핑크 부른다던데.”
“걔네 몸값이 얼만데. 그거 다 등록금에서 나가는 거야.”
“하긴. 마은율 정도면 거의 가수지 뭐.”
“거기다 데이콘도 어디 가서 꿀리진 않으니까.”
당연히 학생들의 주 관심은 공연의 라인업이었다.
다른 학교의 축하공연까지 합세해서 검증된 실력자들만 오르는 무대였으니,
올해는 누가 대표로 나가는지가 학교 간, 학년 간의 자존심 싸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남도웅 이름은 없네? 이번에 나올 줄 알았는데.”
라인업을 찬찬히 살펴보던 한 학생이 의문을 제기했다.
도웅과 같은 반인 여학생이었다.
그때 주변에서 그 이름을 주워들은 몇몇이 수군거렸다.
‘남도웅 걔가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며?’
‘나도 들어보고 싶은데.’
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은 그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점심,
함께 급식실에서 나온 형식과 도웅은 각자 손에 요구르트를 쥐고 있었다.
“이야, 네 덕에 이런 것도 얻어먹어보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쪽쪽 빨던 형식이 감탄했다.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종종 간식을 나눠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방금 전에도 급식실을 나오는 데 같은 반 여학생이 건네준 것이었다.
“근데 굳이 뭘 네 것까지.”
장난끼가 돈 도웅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형식이 더럽고 치사하단 얼굴을 해보였다.
“그럼 이제부턴 어쩔 생각이야?”
“뭘?”
“당장은 기획사에 안 들어가겠다며. 실력을 어떻게 쌓겠다는 건데?”
형식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음··· 일단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경험을 쌓을 거야.”
사실은 별을 모으기 위한 변명이었지만 형식은 고개를 잘게 끄덕이더니 복도 게시판을 가리켰다.
“그럼 저건 어때?”
그 두꺼운 손가락 끝에는 축제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축제 무대에 서면 별을 왕창 모을 수 있잖아!’
이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꿔볼 자리였지만, 지금이라면 도전해 볼만했다.
게다가 이제 갓 트레이닝을 시작한 두성 창법을 사용해 보기에도 딱 좋은 무대였다.
도웅은 당장 실행에 옮기기 위해 담임 선생을 찾아갔다.
그러나 모든 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내가 먼저 담당 선생한테 얘기를 해 봤는데, 이미 스케줄이 다 정해져서 안된다네? 신청 기간이 한참 전에 지났다고.”
“아···그렇구나.”
“선생님도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자.”
도웅은 약간의 실망스러움을 안고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뭐래?”
“모집 기간이 끝났대.”
“에이 아깝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 내가 다른데 찾아볼 테니까.”
형식이는 언제 가져왔는지 손바닥만 한 수첩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무슨 다른 수가 없을까?’
역시 도웅이 한번 마음먹은 일을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잠겨 교실로 돌아가던 중, 머리가 덥수룩한 남자가 둘을 지나쳤다.
왼팔엔 종이 몇 장, 오른팔에 청테이프를 끼운 채로.
‘어? 기타리스트 유지필?’
도웅은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오 년 후쯤 언더 밴드에서 이름을 날리는 프로 기타리스트.
회귀하기 전에 그의 연주 영상을 보고 깊게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저 사람 우리학교 출신이었어?’
놀란 도웅의 뒤로 그를 알아본 다른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야 데이콘 유지필 선배다.’
‘그 기타로 유명한 선배?’
‘응. 저 선배가 웬일이지? 여긴 일학년 게시판인데.’
유지필은 아랑곳 않고 벽면에 종이 한 장을 자유분방하게 붙였다.
매직으로 대충 휘갈긴 글씨가 누가 봐도 유지필의 솜씨였다.
[긴급]데이콘 1학년 보컬 모집!!
이번 축제 때 바로 노래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좋았어, 이거다.’
회심의 미소를 띠운 도웅은 성큼 유지필의 앞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