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82)
082. 다다익선.
또 민감한 질문이 튀어나올지 모를 민감한 분위기 속에 심정남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다행히 도웅에게는 무례한 질문이 쏟아지지 않았다.
도웅은 짧게 깎은 심정남의 뒤통수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인상을 보고도 덤비면 그건 정말 강심장인 거지.’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아우라가 기자들이 보기엔 꽤 위협적이었으니까.
아마 도웅에게 주어진 질문이 순한 맛이었던 데는 심정남이 한몫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심정남은 여러모로 매니저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우와···. 쾌적하네요.”
대기실의 문을 열면서 도웅이 감탄했다.
도웅에게 단독 대기실이 주어진 것은 데뷔하고 근 일 년 만이었다.
“1위 후보 가수한테 이 정도 대우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도웅이 민망함에 웃었다.
뿐만 아니라 도웅을 마주친 사람들의 태도도 전과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야, 빨리 인사 준비하자!’
‘왜 그래?’
‘이번 주 1위 후보잖아, 남도웅 선배님.’
‘엇!’
이제 도웅에게 스페셜K스타의 우승자라는 수식어는 사라지고, 1위 후보라는 사실만 따라붙었다.
음원 1위를 찍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도웅은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인사를 주고받으러 돌아다니고 있던 때,
심정남이 말했다.
“이제 얼추 다 돌았습니다.”
“벌써요?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여기만 들르면 되지 말입니다.”
갓 데뷔를 했을 때보다는 인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새 알게 모르게 사라진 그룹들도 있었고, 신인들은 밀려 올라왔으니까.
도웅은 마지막 문 앞에 적힌 이름을 보고 살짝 긴장했다.
-트윙클S
오늘 도웅의 1위 후보 상대였다.
똑똑.
심정남이 두터운 주먹을 이용해 살포시 문을 두들겼다.
“누구···.”
문 틈새로 보이는 트윙클S 매니저가 도웅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미안하지만 오늘 인사는 안 받습니다. 애들이 1위 앞두고 예민해서요.”
“그렇습니까.”
“네, 그럼.”
탁.
그가 심정남과 간단한 대화를 끝내고 문을 닫았다.
화려함의 절정, 아이돌의 아이돌.
회귀하기 전 한 번쯤은 선망해본 아이돌이었던 트윙클팝.
소속사가 도웅의 영상을 빼돌리려는 못난 짓을 했어도,
그들의 유닛인 트윙클S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에게 갈수록 실망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도웅이 미디어를 통해 갖고 있었던 트윙클팝의 밝고 선한 이미지가 실제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모습이 다가 아니니까.’
그 점은 도웅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그렇게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가 잠시 쉬고 있던 때였다.
똑똑.
누군가 도웅의 방문을 두들겼다.
곧이어 심정남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남자는 다름 아닌.
“제임스 형!”
“도웅아, 오래간만이야. 반갑다!”
동그란 눈에 순박한 미소를 띠우고 있는 제임스 박이었다.
산뜻한 하늘색 정장을 입고 메이크업도 해놓았지만,
미국 나이로 갓 스무 살인 그는 오히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제임스와 도웅은 잠시 소파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나저나 벌써 스페셜k스타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네. 지금 시즌 3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
“네, 대충은요.”
“PD님이랑 작가님은 바뀌었어도 꽤 인기가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참가자들 실력은 우리만 못해.”
“에이, 형 꼰대처럼 왜 이래요? 이제 한국인 패치 다 됐네.”
“진짜라니까? 특히 너만큼 하는 애는 절대로 없어.”
바쁘게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 있었다.
이제 스페셜K스타는 새로운 스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와중이었다.
대화에 열을 올리던 제임스는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쩝, 근데 오디션 끝나고 1년 다 되어가니까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 이번 노래도···.”
“형, 안 그래도 형 타이틀곡 들어봤어요. 노래 좋던데요?”
“고마워. 그런데 이제 겨우 70위 권이라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해.”
그가 1위 후보인 도웅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네가 1년 동안 예능 출연도 안 하고 음악에만 매진할 때는 조금 미련해 보였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까 역시 너는 그때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거야, 그치? 나도 예능 활동보다는 음반 준비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도웅은 제임스의 물음에 대답 없이 그저 빙긋 웃었다.
그때 도웅의 대기실 문이 열리고 조연출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남도웅 씨, 이제 1위 후보 인터뷰 리허설하러 가셔야 됩니다.”
1위 후보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부러움을 쏟아내는 제임스의 눈빛.
이전엔 오디션 프로그램 안에서 1위 후보를 두고 경쟁했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
트윙클S의 나혜, 유라, 민정이 있는 대기실 안.
이 셋은 지금 상당히 예민한 상태였다.
음원에서 남도웅에게 밀린 것도 속상한데, 기자들이 그걸 자꾸 쑤셔대고 있었으니까.
“매니저 오빠, 오빠가 그런 기자들 좀 사전에 못 막아?”
“안 그래도 그 언론사에 정식으로 항의할 거야.”
“어휴, 몰라. 진짜 짜증 나.”
예쁘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짜증이 많은 민정이 툴툴거렸다.
다른 멤버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짜증 섞인 몇 마디를 내뱉었다.
“킹 오브 마스크인지 뭔지, 그런 거 우리가 나갔으면 좋았잖아.”
“맞아. 그럼 음원 순위 역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우리 회사는 규모도 큰데 그런 정보력이 없는 거야?”
매니저는 점점 열이 받았지만, 생방송을 앞둔 만큼 입을 꾹 다물었다.
곧이어 1위 후보 인터뷰 리허설을 위해 MC석으로 향한 트윙클S.
현재 관객석은 비워있는 채였다.
보는 이가 없으니 그녀들의 표정은 그대로 뚱했다.
트윙클팝은 인기가 많아진 이후로 애써 방긋방긋 웃거나 살갑게 굴지 않았다.
너무 많은 스케줄 때문에 지쳐서이기도 했지만,
팬들이나 카메라 앞에서가 아니라면 굳이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인 때는 인사도 잘하고 그러더니.’
‘원래 인기 많아지면 변하는 게 수순이지. 하루 이틀 겪어봐?’
‘에이, 다 그런 건 아니야.’
제작진들이 수군거리던 와중, 도웅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면서 등장했다.
‘쟤는 오디션 우승자로 시작해서 어디 가든 대우받았을 텐데 처음부터 예의 바르잖아.’
‘하긴. 음원 1위까지 했는데도 인사하는 각도가 똑같네.’
‘그러니까. 순위 올라갈수록 원래 인사 각도가 1도씩 펴지는데.’
‘90위 하면 90도고 1위 하면 1도야? 그거 말 되네, 크크’
그렇게 제작진들이 수군거리고 있던 때, 도웅은 트윙클S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보고도 못 본 척 딴청을 피우는 멤버들.
‘얘들 봐라.’
일반적인 후배였다면 선배의 무시에 기가 죽을 법도 했지만,
인생 2회차인 도웅은 그들의 기 싸움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트윙클S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모두 벗겨졌다.
그때 멤버 민정이 살짝 손을 들었다.
“저희 이분이랑 인터뷰 위치 바꾸면 안 돼요?”
“뭐 불편하세요?”
“아니요, 저쪽 앵글이 더 잘 나올 것 같아서.”
“도웅 씨, 괜찮으시겠어요?”
스태프가 도웅에게 물었다.
“네, 상관없습니다.”
쓸데없는 까탈이었지만, 별것 아니니 도웅은 응해주었다.
하지만 민정은 움직이면서도 구시렁거렸다.
“그냥 바꿔주면 되지 그걸 또 물어보고 바꿔주네.”
스태프들에게 은근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도웅의 기를 눌러주려던 민정.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리허설이 끝나고,
MC석에서 내려오던 민정은 시원치 않은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러 도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매니저 오빠, 오늘 우리 팬들한테 문자투표 지원사격 좀 해달라고 해 줘.
“알아서 얘기해놨지.”
“그리고 우리 트윙클팝 언니들한테 SNS 홍보도 해달라고 얘기해 주고.”
“그래, 알겠어.”
도웅에게 부족한 것은 팬덤.
그리고 오늘의 결과를 가를 수 있는 민정이 가진 유리한 패였다.
트윙클팝 언니들까지 공세 해주면 당연히 팬덤 화력이 세질 테니까.
‘팬덤은 네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겠지. 이게 바로 인기 아이돌의 바이브야.’
민정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민정은 데뷔 이후로 승승장구만 하다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밀리고 있는 이 위기감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음방 1위만큼은 사수해야지. 그리고 음원 순위도 역전하고 말 거야.’
그때 도웅의 옆에 따라붙은 심정남이 도웅의 기가 죽을까 싶어 조용히 위로했다.
“도웅 씨 신경 쓰지 마세요, 자기들만 언니 있답니까? 저도 제 형님들한테 문자 투표해달라고 싹 다 얘기해놨습니다.”
“그래요? 형제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아 거, 친형님이 아니고 함께 고난을 겪으며 이렇게 알고 저렇게 알던 피보다도 진한 형님들이죠, 허허.”
심정남이 얼버무리며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그 순간.
갑자기 앞서 걸어가던 트윙클S의 허리가 90도로 접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 뻣뻣하던 목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짙은 회색 수트에 한쪽으로 넘긴 긴 머리.
대선배 가수 채아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트 때문인지 오늘따라 더욱 미앤 엔터테인먼트의 이사님답게 보였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도웅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쓰윽 올라가는 채아의 한쪽 입꼬리.
그때 도웅 앞에서 친한 척을 하고 싶던 트윙클S의 민정이,
반색하며 채아 쪽으로 뽈뽈 달려 나갔다.
“선배니임~! 저희 이번 새로운 앨범···.”
그러나 리허설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트윙클S은 투명인간 취급하고 도웅에게 손을 내뻗었다.
“도웅 씨! 잘 지냈어요?”
채아의 초롱초롱한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그녀는 도웅과 따듯하게 악수를 나누며 말했다.
“방송국 미팅하러 나왔다가, 도웅 씨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하하, 감사합니다.”
비록 도웅이 미앤 엔터테인먼트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지만,
채아는 도웅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판타스타와의 계약이 끝난 후에 또 인연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도웅과 살갑게 몇 마디 나누다가, 벙쪄있는 트윙클S를 슬쩍 바라봤다.
채아는 트윙클S의 목이 뻣뻣하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그런 행동들을 실제로 목격한 적은 처음이었다.
제작진들에게 퉁명스러운 태도와 도웅에 대한 무시.
채아는 약간 울컥한 마음이 올라왔다.
‘저런 애들은 꼭 직접 겪어봐야 그 기분을 알지. 아주 우리 회사 애들 같았으면···.’
당장 현장에는 트윙클S에게 쓴소리를 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2W와 미앤이 근래 사이가 틀어진 김에,
채아는 후배 참교육에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도웅 씨. 오늘 문자투표 홍보는 많이 했어요?”
“아, 저희 팬들이랑 라디오 청취자분들이 힘을 조금 보태주실 것 같아요.”
“음, 홍보는 다다익선이지.”
채아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 지인찬스로 도웅 씨 지원사격 해줄게요.”
‘채아가 지원 사격을?’
뒤에서 둘의 대화를 들은 트윙클S는 급속도로 초조해졌다.
채아는 미앤 엔터의 이사.
거기다 영향력 있는 솔로 가수로서 채아의 인맥은 말 안 해도 어느 정도인지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곧이어 채아가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응, 유현아. 너 남도웅이라고 알아? 그치, 노래 좋지? 그럼 SNS에 오늘 방송 문자 투표 독려 글 하나만 올려줘. 그래, 고마워.”
“어, 예지야. 너 혹시 남도웅 씨 알아?….”
채아가 전화를 돌릴수록 트윙클S는 점점 심장이 쪼여 드는 느낌이 들었다.
유일한 강점이었던 문자투표에서 점수 차를 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채아는 몇 군데 통화를 끝내고는 여유 있게 미소 지었다.
“도웅 씨, 만약 이번에 1위 하면 내 덕 잊지 않는 거에요?”
“네, 물론이죠.”
그렇게 인기가수들의 SNS에 남도웅의 투표를 독려하는 글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음? 우리 오빠가 왜 남도웅을 응원해주지?’
‘친한 후배인가보지. 오빠가 해달라는데 한번 응원해 주자!’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
게시물들은 급속도로 좋아요를 받으면서 넓게 퍼져나갔다.
‘이제 진짜 결과는 까봐야 알 수 있겠네.’
그렇게 도웅을 독려하는 글들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동안,
드디어 생방송 시작시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