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83)
083. 기적.
생방송이라고는 하나 대부분의 무대는 사전 녹화로 송출이 됐다.
무대를 다양하게 연출하고 돌발 상황을 컨트롤하기가 그쪽이 수월했으니까.
녹화 장면이 송출되는 동안 1절을 부르고 도웅이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다음은 트윙클S의 순서.
아까와는 다르게 밝은 미소를 띤 그녀들이 무대에 오르자,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남달랐다.
“와아아악! 나혜야아!”
“꺄아악!”
“민정아아!!”
1군 여자 아이돌의 힘이기도 했지만,
트윙클S의 팬들끼리도 오늘 방송에서 1위를 꼭 사수해야 한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었다.
그렇게 화려한 트윙클S의 무대가 끝나고, 마지막 엔딩 무대에 모든 가수가 올라왔다.
1위 후보인 트윙클S와 도웅이 MC의 양옆에 서자, 조금씩 긴장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트윙클S의 팬들이 웅성거렸다.
“오늘 현장 안 온 사람들도 다 문자 총공 하고 있겠지?”
“진짜 꼭 해줘야 되는데. 오늘이 엄청 중요하단 말이야.”
트윙클S의 음원 순위는 꾸준히 올라갔고 1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거슬리는 것 딱 하나.
음원이 공개된 직후부터 트윙클S의 앞길을 막고 있는 도웅이었다.
“어휴, 저 얄미운 남도웅. 결국 음원 1위를 차지하다니. 저걸 어떻게 밀어내지?”
“걱정 마, 우리가 음방 1위만 지키고 있으면 쟤 순위는 금방 내려갈 거야.”
“맞아, 그러니까 여기서 딱 1등 해줘야지.”
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다졌다.
음악 방송에서는 팬들이 문자 투표로 자신의 영향력을 조금 더 행사할 수 있었으니,
오늘이야말로 정말 힘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었다.
한번 정점을 찍은 이후에, 당연하게 1등을 차지해왔던 트윙클팝.
그렇기에 이번에도 꼭 1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비장함이 감도는 트윙클S의 팬클럽과는 달리,
도웅의 팬클럽은 어딘가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난 요즘 하루하루가 꿈꾸는 것 같아.”
“왜?
“음원 차트 켜면 거기 1위에 도웅이 노래가 딱 걸려있으니까.”
“맞아, 그래서 음방 올 때 괜히 내 어깨가 펴지는 거 있지? 큭큭.”
“난 지금도 그런데? 도웅이 1위 후보 자리에 서 있는 거 너무 자랑스러워.”
도웅을 향한 팬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도웅은 매일같이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내는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지키려는 자와 새로이 정복하려는 자.
첨예한 두 그룹의 대립 속, 무대 위 전광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명의 후보 중 과연 1위는 누가 될지, 점수 보여주세요.”
MC의 멘트 직후 도웅과 트윙클S의 얼굴 아래, 항목별 점수들이 차올랐다.
초반에 비등한 숫자들이 떠오르고 아래에 연속해서 쾅쾅 박히는 숫자들.
팬들의 눈이 양쪽을 오가며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던 때,
“마지막으로 문자투표를 합산한 최종 점수 보여주세요.”
동시에 문자투표와 최종 합산 점수가 올라갔다.
먼저 도웅의 문자투표 점수가 고정되고, 트윙클S의 문자투표 점수가 근소한 차이를 보인 이후에 멈췄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합계.
긴장감을 위해 두 팀의 숫자가 같은 데서 멈췄다.
그때였다.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는 도웅의 최종 점수.
“축하드립니다. 남도웅!”
피융!
반짝이는 꽃가루가 무대 위에서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어떻게 해!”
도웅의 팬클럽은 기쁨에 발을 동동 굴렀고,
트윙클S의 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탄식을 흘렸다.
더군다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안절부절못하는 트윙클S의 표정.
“어떻게 해, 우리 애들···.”
때문에 팬들은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시선은 전부 승자를 향해있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음에도 얼떨떨한 도웅의 얼굴,
정신이 없는 와중 옆에서 건네주는 트로피, 그리고 도웅을 축하해주는 선 후배들.
가까이 있던 제임스는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도웅을 얼싸안았다.
“1위 소감 한말씀 해주시죠.”
MC의 제지에 제임스가 상기된 얼굴로 물러섰고,
도웅은 MC가 건네는 핸드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먼저 우리 도레미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판타스타 식구들, 강태진 대표님, 정남이 형, 그리고 또 응원해준 학교 친구들···.”
미리 외워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담아두었던 감사의 말들.
그 마음들이 알아서 술술 흘러나왔다.
곧이어 앵콜 공연이 시작되고, 동료 가수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꽃가루가 흥건한 바닥 위. 홀로 남은 도웅은 그제야 1위를 했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도웅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아래에서 그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심정남, 댄스팀, 그리고 팬들.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그 마음들 속에, 도웅은 애써 눈물을 꾹 참고 무대를 이었다.
그 순간 도웅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한 가지였다.
‘이렇게 오래도록, 내 사람들과 기쁘게 노래하고 싶다.’
**
도웅은 노래를 마치고 팬들에게 양껏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다시 대기실 복도로 들어갔다.
“도웅 후배 축하해요!”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복도에 쭈욱 서 있는 선후배 가수들이 그에게 축하의 인사말을 건넸다.
연차가 오래된 가수들부터 갓 신인들까지.
거의 스무 개 정도 되는 팀들.
이들 중 1위 근처도 가보지 못한 그룹이 태반이었기에 부러움의 시선들이,
도웅이 들고 있는 트로피에 날아와 꽂혔다.
‘우리도 1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다음에는 나도 꼭.’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는 이들 모두 복도에 줄지어 있는 이유는,
음악 뱅크의 PD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이맘때는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방송사에 따라 폐지되기도 하는 그런 관습이었다.
“도웅 씨, 여기 서면 돼요.”
조연출의 안내에 도웅은 맨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보통은 연차 순서대로 인사를 하지만 특이하게 음악 뱅크는 그 주의 1, 2위까지는 먼저 인사하고 갈 수 있는 특권을 쥐여주었다.
그렇게 모두 일렬로 줄을 서 PD의 등장을 기다리던 때였다.
“조금만 비켜주세요.”
성이 난 듯한 트윙클S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뒤를 무대 의상에 옷가지를 걸친 트윙클S가 줄줄이 따라나섰다.
굳은 얼굴, 아래로 내리깐 눈.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는 트윙클S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
특히 멤버 민정은 울었는지,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앞쪽에 줄을 서러 가는 것인 줄 알았지만, PD의 방을 지나쳐가는 그들.
조연출이 서둘러 바깥으로 따라붙었다.
“저 실장님, 트윙클S 자리는 저기 도웅 씨 뒤에···.”
“지금 인사 못 합니다.”
“네?”
“애들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조연출이 트윙클S의 상태를 살짝 살피던 와중이었다.
“가자.”
매니저가 곧바로 거친 걸음을 옮긴 통에 조연출은 더 이상 그를 잡지 못했다.
그 모습에 놀란 다른 제작진 하나가 작은 소리로 조연출에게 물었다.
“PD님한테 인사 안 하고 저렇게 가는 거예요?”
“하···. 네. 그런 거 같은데요. 기분 상하면 이런 일이 왕왕 있어요. 너희가 어쩔 건데 식이죠.”
“PD님이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실까요?”
“글쎄요. 안 그래도 2W가 갑질한다고 꽤 염증 나 있으시던데.”
이윽고 PD가 준비된 방에 도착했고, 도웅이 가장 먼저 그에게 인사를 했다.
사적인 관계는 없던 그가 어쩐지 도웅을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다.
“도웅 씨, 1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이번에 도웅 씨 1위 했으면 하고 바랐거든요. 너무 열심히 하니까. 보기 좋아요.”
실은 점점 심해지는 2W의 갑질에 한번 코가 눌렸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속이 시원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도웅에게 악수를 마친 그가 조연출에게 말했다.
“다음이 트윙클S 인가요? 꼭 그 실장도 같이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어느 윗선에서 지시를 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방송 순서를 맨 끝으로 해주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 으름장을 놓은 것도 그 실장이었다.
PD는 결국 음방에서도 1위를 사수하지 못한 실장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아, 저기 그게···.”
그러나 난감한 표정을 짓는 조연출.
“오늘 트윙클S 컨디션이 안 좋다면서 먼저 갔습니다.”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고요? 방금까지 무대 멀쩡히 하다가?”
PD가 황당하다는 제스처를 하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
“자기들 기분 나쁘다고 대놓고 표출하는 거네요, 그쵸?”
“···.”
난감해진 스태프들이 침묵했고, 방에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거 이러면···.’
도웅은 회귀 전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의 기싸움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기획사는 출연을 거절하고 방송국은 출연 기회를 막아버리는 싸움이 암암리에 있다는 그런 기사.
이런 상황이라면 PD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하나뿐이었다.
도웅은 잠자코 PD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앞에 선 도웅과 입구에 서 있는 다른 가수들을 쭉 둘러보는 PD.
‘보는 눈이 많으니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어.’
PD는 마음을 굳게 먹고는 무거운 입을 뗐다.
“트윙클S 이번 달 스케줄에서는 전부 제외하세요.”
“네?”
“아무리 그래도 이거는 저희 프로를 무시하는 처사예요. 이후 벌어지는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다른 가수들은 PD의 권력에 오들오들 떨었지만,
도웅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이번 앨범이 트윙클S에게 역전당할 일은 없겠네.’
중요한 시기에 음악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수에게는 타격이 큰일이었다.
그들은 역전할 기회조차 제 발로 걷어찬 셈이었다.
**
내내 싱글벙글한 심정남과 함께, 도웅은 한 고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시에 쏟아지는 함성.
“워우! 1위 가수 등장이요!”
“주인공 왔다!”
“축하해요, 도웅 씨!”
미리 와있던 판타스타 식구들이었다.
직원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도웅에 대한 환호를 쏟아냈다.
도웅은 강태진의 앞자리에 앉았다.
감동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강태진이 입을 뗐다.
“도웅 씨, 정말 고마워요.”
“제가 감사하죠, 대표님.”
“판타스타에 이런 기적을 만들어줘서.”
그의 기름진 멘트에 옆에 있던 여명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우웩, 형. 무슨 드라마 찍으려고? 왜 이렇게 안 하던 주접을 자꾸 떨어.”
“우리 도웅 씨를 봐라. 그런 얘기가 안 나오게 생겼나.”
“참 나. 내가 1위 했을 때는 한 번도 그런 얘기한 적 없으면서.”
“부러우면 지금이라도 해주랴?”
“형, 맛있는 음식 앞에 두고 밥맛 떨어지는 소리 그만해.”
“그럼 좋지. 회식비도 아끼고.”
그렇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던 때,
근처에 앉아있던 이나래 대리와 심정남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나래 대리가 도웅이 들고 있는 음료 잔에 자신의 소주잔을 부딪쳤다.
“도웅 씨 꽃길은 이제 시작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네, 잘 부탁드려요. 대리님.”
두 사람은 잔에 들어 있는 액체를 들이켰다.
습관대로 고개를 꺾고 음료를 마시던 도웅의 눈에 마침 벽면에 걸려있던 TV가 눈에 들어왔다.
그 화면에 떠 있는 익숙한 슬로건.
-당신의 특별한 꿈을 찾아서! 스페셜K스타 시즌 3.
도웅의 시선이 멈칫하자, 이나래 대리의 고개도 자연스레 TV 쪽으로 돌아갔다.
“아, 그러고 보니 스페셜K스타 시즌3도 거의 막바지더라고요.”
그녀는 원샷한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강 대표님. 이번에는 왜 심사 참여 안 하셨어요?”
“아, 이번엔 도웅 씨한테 인력 집중하려고 안 했죠.”
“오오-, 역시 우리 대표님! 탁월한 선택이셨네요.“
약간 취기가 오른 이 대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나저나 1년 만에 이만한 성과라니. 역시 도웅 씨 대단해요.”
“그러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심정남이 옆에서 거들었다.
벌써 도웅이 가요계에 발을 디딘 지도 1년.
그 1년 만에 기념비적으로 1위를 달성한 것이었다.
도웅은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유지하고 나아갈지를 고민해야겠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동안 고생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그때 심정남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얘기했다.
“아 참, 오늘 방송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얘기할 타이밍을 놓쳤는데.”
그는 입에 있던 고기를 꿀꺽 넘기고는 이어 말했다.
“도웅 씨 스페셜K스타 시즌3 마지막 방송에 축하 공연 와 줄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었어요.”
“좋죠, 저는.”
이 자리까지 도약할 수 있게 해준 스페셜K스타.
도웅은 기분 좋게 성공한 모습으로,
고향 같은 그 곳에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