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85)
085. 누가 살아남을지.
“도웅 씨, 안녕하세요!”
스페셜k스타의 새로운 작가가 도웅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와야죠. 스페셜K스타 덕분에 제가 있는 건데요.”
“어머, 어쩜···. 임명이 작가님이 도웅 씨라면 꼭 올 거라고, 만약 안 오겠다면 자기가 짜장 가면 쓰고라도 대신 무대에 서주겠다고 했었는데.”
“네? 하하하.”
“저 진짜 너무 걱정했거든요. 임명이 작가님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도웅이 흔쾌히 축하 공연을 수락한 덕에,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기실은 여기 쓰시면 돼요.”
“와, 넓네요.”
최소 두, 세 팀은 같이 써도 될 만큼 널찍한 대기실이 도웅에게 배정되었다.
소파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정성스러운 도시락, 간식···.
함께 온 댄스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웅 씨 대접 똑바로 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네?”
“아, 이번에도 임명이 작가님이요.”
임명이 작가가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준 듯했다.
그래서인지 거의 같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도웅은 그녀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어떻게, 탑 3 얼굴 한번 보시겠어요?”
“아니요, 지금 파이널이라 다들 예민할 텐데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 어쩜. 그럼 편하게 쉬시다가 리허설 시작할 때 알려드릴게요.”
왠지 임명이의 분신 같은 작가가 제 할 일을 하러 돌아가고,
도웅의 댄스팀이 베이지색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하며 감탄했다.
“와, 대기실 넓어서 여기서 안무 연습을 해도 되겠어요.”
“그럼 말 나온 김에 한 번만 맞춰 볼까요?”
“앗, 네. 좋아요.”
연습벌레 도웅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팀원들도 오늘 더욱이 도웅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고서는 연습에 몰두했다.
**
드디어 본방송이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다.
댄스팀은 그대로 대기실에,
도웅은 일반석과 조금 떨어진 VIP석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지난 시즌의 탑10과 함께 파이널 무대를 관람하는 것으로 스케줄이 짜여있었다.
마침 그때 뒤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워! 또웅~! 1위 가수라서 1등으로 와있네, 맨.”
“도웅이 형, 오랜만이에요.”
에너지 넘치는 마이클과 여전히 차분한 유정우였다.
도웅은 키가 한 뼘은 커진 유정우에게 말했다.
“와, 정우 너는 그새 키가 많이 컸다. 못 본 지 몇 달 안 된 것 같은데.”
“그럼요, 성장판이 열려있으니까요. 그리고 저 이제 내년에 중학생이에요.”
유정우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우리 정우 이제 꼬마 아니고 형아네. 그치, 또웅”
“원래부터 꼬마는 아니었어요, 형.”
신기해하는 마이클에게 유정우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 뒤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토끼같이 웃고 있는 백설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도웅의 시선을 느끼고는 말했다.
“오빠, 요즘 많이 바쁘죠? 회사 안에서도 얼굴 보기 힘드네요.”
이제 관리를 받고 살이 빠지면서 연예인 태가 나기 시작하는 백설.
오늘 회사에서 의상과 화장까지 서포트를 해주었는지 도웅이 알던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냥 조금. 너도 연습하느라 바쁘지?”
“네. 이제 데뷔 조가 확정되어서 그런지 트레이닝이 조금 더 빡세졌어요.”
“와우, 백설 이제 곧 데뷔? 나 너무 기대하고 있을게.”
마이클이 옆에서 손을 크게 휘두르며 미국식 리액션을 해 보였다.
그때 멀리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맨 앞쪽에 눈에 띄는 하늘색 정장을 입고 걸어오는 제임스.
파격적으로 머리를 탈색한 여자, 아니 심보라.
원래 관자놀이까지 뾰족하던 아이라이너는 없어지고, 대신 펄을 발랐는지 눈두덩이가 번쩍거렸다.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네.’
그리고 그 옆엔···.
더욱 바싹 마른 문도겸의 퀭한 눈동자가 도웅을 훑는다.
그의 얼굴을 보자 도웅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원래대로 문도겸이 우승했으면 한창 방송 활동을 하고 있었겠지. 비록 지금쯤이면 하락세에 접어들었을지언정.’
하지만 도웅은, TV에서 통 그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패배의식,
그리고 술에 취해 그 패배의식을 자신의 팬에게 화풀이하듯 드러낸 것이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때 찍힌 영상이 퍼져나갔었으니까.’
그렇게 두 남자의 불편한 시선이 맞닿는 동안,
노란 머리의 심보라가 도웅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와~. 남도웅~, 이게 얼마 만이야.”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네요.”
“아~, 이제 데뷔 준비해야 하니까. 어때? 잘 어울려?”
도웅은 심보라의 친한 척에 살짝 당황했다.
오디션을 하는 동안 이렇게 그녀가 살갑게 군 적이 있던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독기를 쏘아대면 쏘아댔지, 살가웠던 기억은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들뜬 듯한 제임스가 옆에서 말했다.
“보라도 아이돌 목표로 연습생 하고 있대.”
“목표라기보다는 거의 확정이야. 호호.”
도웅은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에 약간 소름마저 돋았다.
“도웅아, 나 방송 시작하면 많이 알려줘야 한다? 1위 하는 노하우 같은 것도.”
‘내가 왜?’
도웅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억지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들 근황을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화기애애한데,
단 한 사람이 주변에서 겉돌고 있었다.
도웅의 시선이 문도겸에게 닿자 제임스가 말했다.
“도겸이 형도 얼마 전에 음반 냈대.”
“그래요?”
싫지만 어딘가 짠한 문도겸이 그래도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니.
도웅은 어찌 됐든 그가 제 몫대로 잘 살았으면 하고 바랐다.
왜냐하면 아직도 고단한 그의 얼굴에는 도웅이 느껴봤던 삶의 무게가 실려있었으니까.
“노래는 좋아. 지금 음악 차트 밖에 있기는 하지만. 나도 그렇고 도겸이 형도 그렇고 이제 다시 시작이지.”
제임스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여러분,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제 자리에 착석해주세요. 조금 있으면 뒤쪽에 일반 관객들이 입장할 예정입니다.”
마이크를 통해 울려 나오는 스태프의 안내멘트에, 다들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도웅의 옆쪽에 앉은 마이클과 유정우, 백설.
그리고 아득바득 도웅의 뒤쪽에 자리를 잡은 심보라.
“와, 도웅아. 이제 시작하려나 봐. 감회가 새롭다 그치?”
그녀는 오늘 도웅과 친해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자꾸 도웅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도웅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옆에 있던 백설이 심보라의 질문에 대신 대답했다.
“네, 정말 감회가 정말 새로워요. 그쵸, 오빠?”
“···?”
심보라가 당황해 인상을 찌푸렸다.
“도웅아, 그런데 너 이번 타이틀곡 안무는 누가 짜준거야? 너무 내 스타일···.”
“추도진 선생님이요. 저랑 같은 트레이너 선생님이에요.”
“도웅아, 그 머리는 어디.”
“저랑 같은 샵인데 회사 근처에요.”
그렇게 심보라가 무슨 질문을 던질 때 마다 대신 답해주는 백설.
웃으며 친절히 말해주는 덕에 화를 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심보라가 입을 다물어서 도웅은 좀 더 편해졌다.
그러던 와중 본방송이 시작됐다.
긴박감 넘치는 사회자의 진행,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톱3 후보자들.
그들에게 향하는 관중의 함성들.
도웅의 동료들은 모두 그들의 무대를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도웅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무대에 서고 나서 정말 딱 1년 만이구나.’
도웅은 그간 자신이 정말 열심히 살았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작년엔 도웅과 동료들을 향하던 대중들의 시선과 카메라 앵글이,
모두 다른 이들을 비추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가끔씩 도웅을 비추는 카메라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시즌 2의 탑10들은 거의 단편적인 리액션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빨리 옮겨붙는지 알 수 있지.’
도웅은 그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한 덕에,
더 빠르게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욱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은 매년 발굴되고, 쏟아져 나온다는 거야.’
도웅과 같은 인재는 언제고 튀어나올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 가운데서 살아남을 방법.
그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도웅은 오래도록 노래하고 싶었으니까.
**
이윽고 참가자들의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누가 우승을 할지를 쑥덕이고 누군가에게 함께 투표해 주기를 종용했다.
‘아마 작년의 관객석도 이런 분위기였겠지?’
도웅은 잠시 그런 상상을 하며 미소 지었다.
광고가 흘러나오는 틈을 타 다시 도웅의 동료들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또웅, 그래서 1위 트로피 딱! 받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그냥 머릿속이 하얘지고 고마웠던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럼 트로피는 누가 가져요?”
“그건 정하기 나름인데···. 우리 회사는 내가 보관하라고 했어.”
“우와아···.”
옆에서 백설이 부러운 듯 입을 벌렸다.
역시나 화제의 중심은 도웅이었다.
그가 1위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 무대 순서인데.’
안 그래도 도웅에게 쏠린 관심 속에,
대대적으로 공연을 하려 가겠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딘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자연스레 일어나려고 했는데 동료들의 얘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도웅이 슬쩍 말을 끊었다.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빨리 와, 또웅. 늦게 들어오다가 카메라에 찍혀서 국민 똥쟁이 되면 어떻게 해?”
“아, 형. 그런 거 아니라고요.”
“괜찮아 또웅, 그거 챙피한 거 아냐.”
마이클이 되려 진지하게 손을 흔들자 옆에서 백설이 쿡쿡 웃었다.
그렇게 연예인 관객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 길.
기나긴 복도에서 도웅은 퀭한 얼굴과 마주쳤다.
좀 더 해골 같아진 문도겸이 도웅에게 말을 걸었다.
“너 요즘 TV에 많이 나오더라.”
“형도 음반 냈다면서요.”
“뭐, 다들 그렇듯이.”
건조 미묘한 두 사내의 대화.
그때 문도겸이 풉 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근데 오늘 좀 웃기다.”
“뭐가요?”
“우리 중에 결국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는 모르는 건데.”
그가 연신 내리깔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다들 네가 뭐라도 되는 양 그렇게 달라붙는 게.”
불안, 질투, 증오, 열등감.
어떻게든 도웅을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
도웅은 그의 눈 속에 검게 일렁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단숨에 파악했다.
“그러게요.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피식 웃어버리는 도웅.
그러자 문도겸의 눈동자가 오히려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두 남자의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고,
도웅이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화사한 얼굴 하나가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머! 저, 같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마찬가지로 오늘 스페셜K스타의 관객으로 와있었던 배우 한다솜이었다.
아름다운 미모 뒤에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 숨어있는 그녀는, 총총거리며 두 사람에게 직진했다.
그러자 부담을 느낀 문도겸이 지레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아, 지금은 좀···.”
“그러지 말고 한 장만 찍어주세요. 정만 팬이라서 그래요.”
그녀가 자신의 휴대폰을 문도겸에게 쓱 내밀더니,
도웅의 옆에 착 하고 달라붙었다.
“매니저님, 저 얼굴 더 작아 보이게. 아시죠?”
그녀는 문도겸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매니저라고 칭하며 윙크를 찡긋해 보였다.
순간 확 구겨지는 문도겸의 표정.
“뭐 하세요, 이제 방송 다시 시작하겠어요. 빨리 찍어주세요.”
그녀가 다시 한번 재촉하자 문도겸은 얼떨결에 스마트폰 위의 버튼을 터치했다.
찰칵.
“도웅 씨, 저 이거 SNS에 올려도 괜찮죠?”
그녀가 휴대폰을 탁 잡아채 사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다시 땅으로 쳐지는 문도겸의 시선.
그때 멀리서 우렁찬 심정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복도를 쿵쿵 울리면서 다가온다.
“도웅 씨, 여기 있었네요. 이제 무대 오를 준비하셔야죠.”
“네, 안 그래도 대기실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 얘기를 들은 한다솜이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뭐야. 도웅 씨 오늘 공연해요?”
“네, 파이널 축하 공연이요.”
“우왁! 계 탔네. 이번 타이틀곡 ‘Meet you’ 불러주시는 거죠?”
“네. 약간 편곡해서요.”
“어머, 어머! 저 그 노래 완전 좋아하는데! 그럼 저 맨 앞에서 열심히 보고 있을게요!”
그녀는 파이팅 제스처를 해 보이고는 총총총 문 쪽으로 사라졌다.
“하하하, 상당히 발랄하시네.”
심정남은 그녀의 발랄함에 혼이 쏙 빠졌는지,
그녀가 사라진 쪽을 보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도웅 씨, 이제 이동하시죠.”
“네.”
이윽고 도웅이 심정남을 따라 움직이며 슬쩍 뒤를 돌았다.
눈에 비치는 한껏 굽은 문도겸의 초라한 뒷모습.
‘아직도 저런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질 못했구나.’
도웅은 이제 그가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