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88)
088. 근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쿵착착착, 쿵착착착
도웅은 가장 기본적인 4비트 연주를 시도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하이햇을 왼손으로는 스네어를,
오른발로는 베이스 드럼의 킥을.
‘사지가 따로 노느라 정신이 없네.’
양손과 양발을 따로 움직여 박자를 맞추는 것은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손발이 맞지 않아 듣기 괴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던 와중,
밖에 있던 합주실의 사장이 슬쩍 들어왔다.
엉성한 비트 소리가 들려오는 데 가만히 있기에는 좀이 쑤신 모양이었다.
“어때, 잘 돼가? 한 시간 넘었는데 좀 더 칠 생각인가 보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임지문이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형님, 이 친구가 좀 더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그런데, 저희 한 시간만 연장할게요.”
“그래, 그래.”
그는 드럼에 욕심을 내는 수강생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드럼 스틱 잡으니까 두들기고 싶어지지? 그게 바로 사나이를 자극하는 드럼의 매력이지.”
그가 두터운 가슴팍을 치니 북 가죽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그렇게 합주실 사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웅이 연주를 계속했다.
삐그덕 거리는 박자와 둔탁하게 퍼지는 스네어 소리.
합주실 사장이 조금 오지랖을 발휘했다.
“보니까 스틱을 잘못 잡았네.”
“그래요? 제가 잘못 가르쳐줬네요. 저도 야매로 배워가지고.”
옆에 있던 임지문이 멋쩍은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봐봐, 이렇게 엄지하고 검지로 잡고 나머지 손가락은 받쳐주는 역할만 해야 둔탁한 소리가 안 나.”
“이렇게요?”
“그래, 다시 한번 쳐봐. 손목에 힘은 빼고.”
그가 얘기한 대로 손목에 힘을 빼니, 스네어를 치는 소리가 확실히 명쾌해졌다.
그렇게 잠시간의 연습 후, 합주실 사장이 임지문을 보며 말했다.
“인기 작곡가 안 바빠?”
“그렇게 바쁘지는 않은데···.”
그의 얘기에 슬쩍 시간을 확인하는 임지문.
“도웅아, 너 얼마나 더 칠 거야?”
“저 조금 더 하고 싶어요.”
도웅은 한창 드럼에 재미를 붙여가는 와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이 얘기했다.
“이 뒤로는 내가 잠깐씩 봐줄 테니까 지문이 너는 일하러 가봐.”
“음···.”
임지문이 고민했다.
지금 도웅은 사지를 따로 쓰는 법을 스스로 익히는 중이라,
그는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게 다이기는 했으니까.
그때 도웅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형, 그렇게 하세요. 저 실컷 치고 나서 작업실로 찾아갈게요.”
“그럴래? 그럼 형님, 잘 좀 부탁할게요. 저한테 귀한 손님이라.”
“그래, 대신에 나중에 같이 한잔하자고, 인기 작곡가.”
합주실 사장이 손목을 꺾어 술 마시는 리액션을 해 보인다.
“알겠습니다, 형님. 다음에 또 뵐게요.”
임지문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잠시 후 합주실 사장이 카운터에서 뭔가를 뒤적이더니,
다시 도웅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메트로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박자를 맞출 때 쓰는 기계였다.
그가 메트로놈을 만지작대며 도웅에게 물었다.
“드럼 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박자요.”
“맞아. 초보들이 드럼을 빨리, 현란하게 치고 싶어서 스킬에만 몰두하려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는 BPM을 120으로 맞춰 악보 대 위에 턱 올려놓았다.
“제일 중요한 건 기본이야. 메트로놈 꺼 놓고도 4비트를 제대로 치면, 8비트로 넘어간다. 이상.”
그렇게 합주실 사장이 미션만 남겨놓고 합주실 밖으로 나갔다.
실제로 그가 수강생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딱, 딱, 딱, 딱.
합주실 안에 메트로놈의 건조한 기계음만이 울려 퍼졌다.
도웅은 사장이 알려줬던 대로 스틱을 다잡고,
박자를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챙, 챙, 챙, 챙.
‘이렇게 하니까 조금 리듬 게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바뀌었다.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가도 메트로놈을 끄고 나면 들쑥날쑥해지는 연주속도.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려니 도 닦는 거 같네.’
어느새 시간도 혼자 연습한 지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도닦듯 연습하는 거야 나한테는 일상이지.’
지금까지 매번 도닦듯 메가플레이 수련을 해왔던 도웅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저녁이 되기 전엔 손님이 얼마 없던 터라,
합주실 사장은 깜빡 잠이 들었었다.
쿵착착착, 쿵착착착.
잠이 덜 깬 귓가를 맴도는 정박의 드럼 비트.
“흐아아암.”
사장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합주실에서는 바깥이 보이질 않아 시간 가늠이 어려웠다.
사장은 벽에 붙어있는 디지털시계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사장은 도웅이 있는 A룸으로 다가가 유리문 안을 들여다봤다.
아직도 착실하게 하이햇을 내려치고 있는 도웅의 손목.
“오늘만 못해도 다섯 시간은 쳤을 텐데. 이걸 무식하다고 해야 하나, 근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처음엔 화려하게 박자를 쪼개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드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장은 수강생들이 기초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절대 진도를 빼주지 않았다.
특히나 밴드를 하겠다는 녀석들은 장차 세션들의 박자를 이끌어야 했으니,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웬만해선 견디는 놈들이 없지.’
그래서 기초를 떼지도 못하고 질려서 나가는 수강생들이 허다했다.
“그래도 내리 다섯시간 저 짓을 하라면 나도 못 하겠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멈추는 드럼의 타격음.
“엄청 열심히 하네?”
“네, 벌써 시간이··· 너무 오래 쳤나요?”
“지금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쳤단 말이야?”
“오히려 생각을 비우고 연습하니까 잘 되는 것 같아요.”
“허허허.”
벙거지 모자 때문에 얼굴의 절반은 보이지 않았지만,
합주실 사장은 이렇게 열의를 보이는 앳된 수강생이 귀여웠다.
사장이 도웅의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팔은 안 아파? 그렇게 내리치면 내일 알 배길지도 몰라.”
“그건 내일 가서 생각하죠, 뭐.”
‘이 녀석 보게···’
순간 사장은 그저 귀엽게 봤던 수강생의 태도에서 남다름을 느꼈다.
‘그냥 무식하게 시간만 때웠거나, 아니면 제대로 뭔가를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는 수강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을지 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얼마나 했는지 한번 볼까?”
“네.”
도웅이 메트로놈을 끄고, 드럼 스틱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만큼 들었던 메트로놈 소리를 마음속으로 상기하며, 그에 맞춰 스냅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쿵착착착, 쿵착착착.
‘제법인데?’
합주실 사장은 오래 드럼을 쳤기 때문에 온몸에 박자감이 내재되어 있었는데,
그가 듣기에 첫 두 마디는 박자가 아주 정확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이 박자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조금이라도 잡생각이 들면 삐끗하거나 속도가 달라지기 일쑤인 게 드럼이었으니까.
그런데 비트 소리가 지속될수록,
사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1분이 지났는데도 박자가 전혀 흐트러지질 않잖아?’
그리고 3분께가 되었을 때 사장은 팔뚝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눈앞의 수강생은 무식한 게 아니라 무서운 의지를 가진 인물임이 분명했으니까.
오늘 단 하루 만에 제가 목표한 바를 이뤄낼 때까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은 것이었다.
“그만, 박자가 아주 정확해. 근성 한번 대단하네, 이 친구.”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도웅을 응시하더니,
바로 다음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박자를 좀 더 쪼개서 8비트로 연주하는 걸 알려줄게.”
그는 도웅이 앉았던 자리에 제가 앉아서 시범을 보여주고는.
“그리고 킥을 박자마다 이렇게 넣을 수도 있는데···.”
저도 모르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왠지 이 정도도 금방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
심정남이 운전하는 차 안.
오늘은 잠깐 회사에 들렀다 합주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탁, 탁, 탁, 탁.
두 개의 나무막대기가 원형의 고무판을 정박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이건 고무 패드인데, 초보들이 박자감 연습할 때 쓰는 거야. 빌려줄 테니까 나중에 돌려줘.’
합주실 사장은 도웅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제일 저렴한 스틱도 한 쌍 손에 쥐여주었다.
그래서 도웅은 집에서나 이동할 때나 스틱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연습하는 중.
요즘은 무슨 노래를 들어도 드럼 비트 소리만 귀에 들어오고,
그 박자에 맞춰 저도모르게 손발을 움직이게 됐다.
도웅은 그렇게 도닦듯 고무패드를 두들기다가 문득 심정남에게 물었다.
“정남이 형, 이 소리 시끄러우세요?”
“아닙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했나 해서요.”
“시골 할머니 방망이질하는 소리 같아서 정겹고 좋습니다. 마음도 차분해지고.”
“하하, 다행이에요.”
심정남이 백미러를 통해 도웅을 흘끗 본다.
“그나저나 휴식기에 취미로 드럼 배우시는 거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도 팍팍 풀릴 것 같고요.”
“네, 재미있어요. 형도 같이 배우실래요?”
“제가 하면 드럼에 금방 구멍 날 것 같지 말입니다.”
그렇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홍대의 합주실에 도착했다.
도웅은 가져온 벙거지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쓰고,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여, 수강생 또 왔는가.”
도웅은 한 번씩 합주실에 드나들며 연습을 계속해나가고 있었다.
합주실 사장은 나중에 임지문하게 거하게 얻어먹겠다는 명목으로 틈날 때마다 도웅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있었고.
그렇게 도웅이 합주실 안으로 들어가 늘 하던 것처럼 박자에 맞춰 기본 비트를 연습하고 있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대학에서 밴드 동아리를 하는 남학생 하나가 합주실로 들어왔다.
“오늘도 혼자 연습하다가 밴드 멤버들 오는 거지?”
“네.”
“그럼 저기 B룸으로 들어가.”
대학생은 그렇게 방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다가, 도웅의 단순한 비트 소리를 듣고는 피식 웃었다.
“완전 쌩 초보네.”
그는 도웅의 옆방으로 들어가 의기양양하게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쪼개지는 비트와 화려한 필인.
‘이거 듣고 부러워하고 있겠지? 내가 이거 연마하느라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방음이 되어있더라도 약간의 소리는 벽을 관통하기 마련.
그는 이렇게 옆방의 초보에게 한 수 보여줄 때 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한편 그의 연주 소리를 들은 도웅은 미간을 찌푸렸다.
‘옆방에서 치는 사람은 박자가 하나도 안 맞네···.’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자신의 연주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랜 연습 후, 도웅이 합주실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이 안 계시네. 잠시 어디 가셨나.”
그때, 잠시 휴식하러 로비로 나온 대학생이 도웅을 흘끗 본다.
그는 정수기에서 물을 꼴꼴 받으며 입을 뗐다.
“지금은 그냥 목탁 두들기는 것처럼 아무 재미가 없지?”
‘···? 나한테 하는 얘긴가?’
도웅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로비에 도웅과 그 대학생뿐이었다.
“스킬을 배워야 그때부터 진짜 드럼이라고 할 수 있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가 이번엔 정확히 도웅 쪽으로 몸을 돌려 말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도웅은 어이없는 표정을 했지만, 그 표정이 대학생에게 보일 리가 없었다.
‘왜 갑자기 나한테 훈수야?
남대생은 물을 입안에 툭 털어 넣으며 말했다.
“보니까 아직 고등학생 같은데, 열심히 하면 금방 형처럼 할 수 있어. 대학 가서 밴드도 들어갈 수 있고. 그럼 형은 또 연습하러 간다!”
그는 그렇게 훈수를 남기고선 쏙 합주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화장실에 다녀온 사장이 열쇠를 짤랑이며 들어왔다.
“여, 연습 끝났나?”
도웅이 멍하니 반응이 없자, 그가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
**
“이제 기본 박자들은 칠 수 있게 됐으니까, 다양하게 스킬만 익혀두면 곡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도웅은 언젠가 제대로 드럼을 연주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
-띠링.
이불 속에서 반가운 알림음이 들렸다.
도웅은 부리나케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두들겼다.
[ 레벨업 자격이 승인되었습니다. ] [ ‘Lv.3 베테랑’으로 레벨업이 가능합니다. ] [ 필요한 ★ 1000개 ]‘예쓰! 승인이다!’
지난번 레벨업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별이 필요했지만,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별이 넉넉한 상태.
도웅은 곧바로 YES 버튼을 누르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 Lv.2 루키 > Lv.3 베테랑 ] [ 레벨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순간 도웅은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왜냐하면 곧바로 떠오른 추천 동영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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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치트키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