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
009. 직접 보시면 알겠죠.
도웅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음··· 누구?”
“선배님을 존경하는 후배 남도웅입니다.”
‘이런 거물이 코앞에 있었다니. 어쩌면 이게 더 좋은 기회야.’
이번 축제부터 당장 설 수 있는 무대.
그리고 미래의 유명 기타리스트와 친분을 만들어둘 기회.
더욱이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
종례를 마치고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아이들.
마은율도 하교를 위해 한쪽 어깨에 가방을 둘러멨다.
그리고 홀로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마은율!”
데이콘의 리더 조한성이었다.
“선배, 안녕하세요.”
마은율은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달려온 조한성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마은율. 우리가 지금 아주 곤란한 상황인데,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
“안 해요.”
은율은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말투로 잘라 답했다.
빤히 전해 들어 데이콘의 상황을 알고 있었으니까.
은율은 생각을 확실히 전달했다.
“밴드 하면 저한테 뭐가 남는데요? 어차피 전 가수할 것도 아닌데.”
“그럼 축제는 왜 나가냐?”
“그냥 연례행사처럼 학교에 협조하는 거죠. 혹시 알아요? 선생님들 눈도장 찍어놓으면 수행평가 점수라도 잘 줄지.”
마은율은 씨익 하고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한성은 또 한 번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 재능 왜 썩히냐, 난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저도 이해가 안 가요. 왜 선배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지. 아무튼 나중에 또 동방이나 놀러 갈게요.”
마은율이 싱긋 웃으며 가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멈칫.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선배. 남도웅이라고 걔한테 한번 알아봐요. 노래도 잘하고 꿈이 가수인 애가 있는데.”
“남도웅? 대체 걔가 누군데 다들 난리야?”
“직접 보시면 알겠죠.”
은율은 조한성을 남겨두고 제 갈 길을 떠났다.
**
도웅은 아직도 NEW가 떠있는 홈탭을 터치해 나만의 연습실에 입장했다.
[‘무명 보컬 H의 두성 창법(D)’ 트레이닝 시스템 개방] [나만의 연습실에서는 ‘무명 보컬 H의 두성 창법(D)’을 무한대로 스트리밍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연습하여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세요!]남은 별이 얼마 없어 하루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했고,
그 결과 단 며칠 만에 달성한 22%.
“원래 같았으면 이렇게 성대를 혹사시키는 건 말도 안 되지.”
영상의 주인은 날것 그대로의 소리를 이용해 강한 두성을 쓰는 것이 주 특기였다.
반대로 얘기하면 강한 음압으로 성대에 무리가 가는 방식이라는 얘기.
현실 세계에서 아무리 빨리 노래가 늘고 싶어도 이런 식으로 매일같이 트레이닝 했다가는 자칫 성대가 망가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몇 시간을 트레이닝 하더라도 현실에 대미지가 반영되지 않는 덕에,
당장에 쉴 것 같은 목 상태가 연습실 밖으로만 나오면 깨끗이 리셋이 되었다.
“현실에서 쓸 때는 익혀둔 발성법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노래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게 발성의 정석이라 불리는 강태진의 발성법이 먼저 나온 이유라고 생각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커다란 스크린 위에 스트리밍 버튼을 누르니 그 위에 가삿말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 그 순간이 나를 살게 해.
이번 트레이닝은 두성 창법에 초점이 맞춰있던 터라,
표시된 구간에서만 두성 창법이 가동됐다.
도웅은 자신의 몸으로 영상을 스트리밍 하는 동안 느껴지는 감각을 기억하려 애썼다.
‘확실히 두성을 쓸 땐 소리가 머리에서 울리는 느낌이 나.’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구간,
그리고 소리를 끌어올리는 방식에 집중했다.
스트리밍이 끝난 후에는 감각을 떠올리며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이 느낌이 아니었는데. 다시 해보자.”
도웅은 또다시 스트리밍 버튼을 눌렀다.
**
“내가 탈락이라고?”
방금 휴대폰으로 3대 기획사,
2W, TSP, 미앤 엔터테인먼트.
세 군데의 서류 결과를 확인한 윤정후가 이를 까득 씹었다.
보컬 선생에게 재능 있단 소리를 들어가며 연습해왔고,
본인은 외모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연예계에 잔뼈가 굵은 삼촌도 가능성을 점 쳐주었었는데 세 군데 전부 가차 없이 탈락을 했다.
얼마 전 남도웅이 어딘가 합격했단 소식을 들었던 것이 생각나 윤정후는 더욱 기분이 불쾌해졌다.
“자꾸 거슬리네 그 자식.”
윤정후의 부모님은 언제나 바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윤정후는 언제나 관심이 고팠다.
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학교를 빠지고 엇나간 행동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반반한 외모와 길쭉한 키를 가진 윤정후.
그는 또래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깨우쳤다.
관심을 꼭 부모에게서 채울 필요는 없다는 것.
마침 그의 삼촌은 기획사의 사장이었고,
그곳을 드나들던 그는 자연스레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방법을 깨달았다.
“난 아이돌이 될 거야.”
중소 기획사인 삼촌네 들어가는 것보다,
3대 기획사에서의 데뷔가 성공에 가까운 것은 당연한 일.
그곳에선 연습생만 되어도 팬덤이 생기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이것 때문에 일부러 축제 참가신청도 안 했는데 짜증 나네. 내가 꼭 유명해져서 복수한다.”
맘에 안 들면 복수를 한다.
오랜 윤정후의 사고방식이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게임 버튼을 누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저거라도 해봐.”
그곳에는 개발새발 쓰인 긴급 공지가 있었다.
“이거 뭐야, 데이콘에서 이번 축제에 나갈 보컬 구하네?”
공지를 발견한 윤정후가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종이를 거칠게 뜯어냈다.
그리고 눈앞의 악필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 순간 윤정후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무대 위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쇼맨십으로 빨간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
한 몸에 집중된 시선과 관심을 갈망하는 여학생들.
‘꺄아아아아~~! 윤정후!’
‘너무 멋있어어~~’
그리고···
그 앞에서 월등한 차이를 느끼고 소외되는 남도웅의 모습.
상상력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갑자기 윤정후의 눈에 불꽃이 번뜩였다.
“그래, 이거라도 해야겠어. 팬도 더 만들어놓고.”
게다가 밴드 활동으로 유명세라도 치르면, 자신을 떨어 트린 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면 그때 다시 생각해 주지.’
금세 윤정후는 자신의 엄청난 계획에 도취되고 말았다.
방금 게임 한 판을 끝낸 친구 녀석이 그에게 물었다.
“그럼 오디션은 이제 안 볼 거?”
“연락 오면 탈퇴하지 뭐. 안 오면 삼촌네 기획사 들어가는 거고.”
그렇게 단순히 생각을 마친 윤정후는 종이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
“네가 남도웅이냐?”
진한 눈썹으로 강한 인상을 풍기는 조한성이 도웅의 자리로 찾아왔다.
‘이 선배 저번에 밴드부 앞에서 봤던 선배인데.’
도웅은 일단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다른 아이들도 작은 소리로 온갖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배가 후배를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네가 노래를 좀 한다며.”
그제야 몇몇 아이들은 조한성이 찾아온 이유를 알아챘다.
뒤이어 유지필이 슬리퍼를 직직 끌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도웅도 그를 발견하고 이들이 데이콘의 핵심 멤버들임을 알아차렸다.
“관심 있어?”
조한성은 앞뒤 말은 다 잘라먹고 다짜고짜 관심을 물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다만 도웅은 이 강압적인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시간 침묵이 감돌자 유지필이 쩍 하고 하품을 했다.
“얘가 인상이 더러워서 그런데, 그냥 네 의사를 얘기해 주면 돼.”
유지필의 느긋한 말투가 분위기를 중화시켰다.
그 덕에 긴장하고 있던 주변의 아이들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웅은 한 가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들어가면 기타도 배울 수 있어요?”
“기타에 관심이 있나 보네? 원한다면.”
유지필은 의외라는 듯이 게슴츠레한 눈을 제대로 떠 도웅의 얼굴을 확인했다.
확실히 도웅의 얼굴에는 얕게 흥미가 감돌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한성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우린 아직 네 실력을 모르니 오디션을 보러 왔으면 하는데.”
직접적으로 오디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이들이 일부 쑥덕였다.
그리고 먼발치 서있던 윤정후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콰득 구겼다.
근래 남도웅만 보면 기분이 더러웠던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의 관심을 야금야금 빼앗아가는 버러지 같은 존재.
그것이 윤정후의 내면을 불쾌히 건드리고 있던 것이었다.
‘저걸 그냥 놔둘 수는 없지.’
모든 관심이 남도웅에게 쏠리는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계획대로 3대 기획사에만 붙었다면 직접 상대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탈락이란 변수 때문에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윤정후는 구십 도로 인사했다.
조한성은 그의 얼굴을 알아봤다.
튀는 외모와 삐딱한 행색으로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인물이었다.
“무슨 일로? 미안하지만 내가 잠깐 볼일이 있는데.”
“저 데이콘 오디션 보고 싶습니다.”
윤정후는 다짜고짜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남도웅보다 훨씬 잘할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직구를 날렸다.
아이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고,
“그래?”
조한성은 얕게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이럴수록 오디션이 필요한 법이지.”
그리고 도웅을 향해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 덕에 모든 시선들이 한꺼번에 도웅을 향해 날았다.
한 번에 움직이는 검은 눈동자들이 마치 파리 떼와도 같았다.
‘축제 무대만 해도 밑질 것 없는 시도지.’
어차피 더 고민할 것 없는 도웅은 계산을 마치고 답했다.
“저도 갈게요. 오디션.”
‘그래, 데이콘 들어오려면 이 정도 깡은 있어야지.”
도웅의 대답으로 조한성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반 아이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대박대박.’
‘가수 준비생 VS 아이돌 준비생!! 이거 빅 매치다.’
‘재미있겠는데?’
연신 그들의 눈동자가 윤정후와 도웅에게 번갈아 붙었다 떨어졌다.
그 둘이 모두의 흥미를 끌어당길만한 달콤한 냄새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
데이콘 보컬 오디션 당일.
모든 수업이 끝나고 여학생 둘이 데이콘 동아리방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오늘 벌어질 빅 매치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헉헉. 아 빨리 가서 남도웅 노래하는 거 봐야 하는데.”
“난 것보다 윤정후 노래가 더 기대돼.”
“알겠으니까 좀 빨리 뛰자. 가서 잘 보이는 데 자리 잡아야 돼.”
“컥··· 근데.”
“왜?”
“한발 늦은 것 같은데?”
여학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동아리방 앞의 복도는 이미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까치발을 든 학생 몇은 높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뒤쪽에 있는 학생들은 옆 교실의 의자까지 대동해서 자리를 잡아둔 상태였다.
“뭐야.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언뜻 봐도 오십 명은 되어 보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인원이었다.
“저 바깥 창문 쪽으로 돌아가자.”
자신들이 설 곳이 없음을 확인한 여학생 둘은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