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1)
091. 음악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장세호가 속한 밴드 뮤타.
그리고 뮤타를 라이벌이라 생각하고 있는 밴드 피콘.
피콘 멤버들은 리허설을 끝내고, 공연 전에 요기를 때우러 바깥으로 나왔다.
“우리 해장국 먹으러 가자.”
“시간 없어, 대충 먹어야 돼.”
“아··· 속 쓰린 데.”
“그러니 술 좀 작작 처먹으라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뮤타 드러머 내가 보내버렸잖냐. 크크크.”
피콘의 보컬이 음흉하게 키득거렸다.
다른 멤버 하나도 씨익 입꼬리를 당기더니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냐? 자세히 좀 말해봐.”
“술이나 진탕 먹여서 연주에 지장이나 좀 주려고 했는데, 그 무식한 놈이 펀칭머신 앞에서 그렇게 열을 낼 줄은 몰랐지.”
보컬의 자초지종을 들은 밴드 멤버들이 키득키득거리며 즐거워했다.
“아무튼 잘했어. 그 녀석들이 피날레 맡은 것 부터가 마음에 안들었는데.”
“그러니까. 걔들이 우리보다 뭐가 잘났다고.”
근래 인디 음악 시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명 밴드들이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중요한 무대.
그래서 라이벌인 뮤타를 견제해 저열한 방해 공작을 펼친 것이었다.
“크크, 딱 보니까 어디서 초짜 드러머 하나 땜빵으로 데리고 왔던데.”
“걔네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애를 데려온 거지? 드럼이 박자 잘못 타면 거기서 끝이잖아.”
“곧 죽어도 우리한테 피날레는 못 넘기겠다 이거지, 쯧.”
보컬이 혀를 쯧쯧 차더니 다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초짜가 확 박자 놓쳐버려서 우스운 꼴이나 당했으면 좋겠다.”
**
늦은 저녁, 공연이 오픈되고.
이 공연을 위해 홍대를 찾은 사람들,
혹은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 티켓을 사기 위해 공연장 앞에 모여들었다.
입구에서 티켓을 파는 알바생이 기계적으로 말했다.
“티켓이랑 맥주 한잔 무료로 교환하실 수 있습니다.”
그때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자신의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웅의 매니저인 심정남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알바생은 움찔했다.
‘어디 조직에서 왔나? 여긴 무슨 일이지?’
괜한 시비가 걸릴까 오만가지 상상을 하고 있던 와중,
남자가 두꺼운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티켓 두 장 주십시오.”
그렇게 쫄아든 심장으로 티켓 두 장을 건네주고 있던 때,
뒤에서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저 이런데 처음 와봐요.”
여자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녀는 심정남의 통화내용을 듣고 따라온 이나래 대리였다.
‘도웅 씨 휴식기라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잘됐다. 헤헤.’
어쩌다 도웅이 여기서 드럼을 치게 된 것인지는 몰랐지만,
도웅이 드럼을 치는 장면을 상상하자 이나래 대리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티켓을 받은 두 사람은 곧장 맥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해봤자 수용인원 100명이 되지 않는 소규모의 극장이었지만,
어둠에 비치는 실루엣으로 어림잡아 오십은 되는 인원이 모여 있었다.
이나래 대리가 일단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말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좀 있네요? 아마추어 밴드 공연인데도.”
“여러 팀이 같이 공연하는 거기도 하고···. 그게 찾아보니 아마추어 밴드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알려지지 않은 무명일 뿐이죠.”
심정남의 이야기를 들은 이나래 대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정남에게 가까이 붙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프로 밴드에서 도웅 씨가 드럼을 연주한다는 말이에요?’
‘네, 저도 믿기지가 않아서 직접 봐야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습니다.’
도웅이 취미로 드럼을 시작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벌써 프로 밴드에 섞여서 연주한다니.
두 사람 다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도웅의 도전 정신을 높게 사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런 무대에 서는 것은 조금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후우!”
그때 무대 앞쪽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무대가 더 잘 보이는 앞쪽으로 가서 섰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첫 공연을 맡은 보컬이 멘트를 쳤다.
따로 사회자라고 할 것이 없었기에 진행도 각 밴드의 몫이었다.
잡힐 듯 가까운 무대와 생생하게 라이브로 즐기는 현장감.
함께 그 순간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들.
곧이어 무대 위에 다양한 색깔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들뜬 분위기 속에 한 여성이 무대 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인디 씬의 떠오르는 스타를 찾고 있는 록 페스티벌의 캐스팅 담당자 윤주옥이었다.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가진 가수들을 모아 한강 둔치에서 펼치는 대규모의 음악 공연.
근래 20대 사이에서 가장 핫하다고 평가받는 록 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팀은 너무 곡이 마이너하네.’
‘이 팀은 세션들이 완전히 따로 놀고.’
그녀는 차분히 순서대로 밴드들의 실력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음지의 아티스트를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서.
그녀는 캐스팅 보충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한창 최종 라인업을 짜고 있었기 때문에.
윤 담당자는 방금 들어간 밴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꼭 현장에서 실력을 확인해 봐야 한다니까.’
음악적인 퀄리티,
현장에서 주는 느낌,
그리고 그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반응.
윤 담당자는 여러 요소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이들이 없어서 지금까지는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켜고 있었다.
‘뒤쪽으로 가면 더 볼만한 팀이 나오겠지.’
그렇게 윤 담당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두 팀을 더 거치고 나서야 그녀가 이름을 알고 있는 밴드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피콘입니다. 오늘 같이 빡세게 달려봅시다!”
윤 담당자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마지막 두 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피콘과 뮤타.
이곳에 오기 전에 출연하는 밴드들의 음악을 모두 찾아 들어보았는데,
그 두 팀의 노래가 가장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둘 다 라인업에 포함할 생각이었지만,
피콘의 노래를 듣고 있는 그녀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보컬이 너무 과하게 방방 드는데. 노래가 듣던 것만큼 좋지도 않고.”
피콘의 보컬은 어제 뮤타의 드러머에게 술을 먹이느라,
본인도 꽤 과음한 상태였다.
그래서 목 상태가 좋지 않아 쇼맨십으로 무대를 커버치는 중이었는데,
그게 어딘가 거슬리는 지점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운 피콘의 무대가 지나가고 마지막 밴드의 순서가 돌아왔다.
**
“안녕하세요! 오늘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뮤타의 보컬, 장세호입니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취기 어린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 잔씩 걸친 술과 좁은 공연장 안에 안개처럼 깔린 흥분.
마지막 무대에 대한 사람들이 기대가 무대 앞으로 쏠렸다.
앞서 공연을 했던 다른 팀들도 관객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무대를 관람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지. 이런 상황에서도 피날레 무대에 욕심을 부린 그 무게를 견뎌야 할 거다.’
피코의 보컬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곧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펼쳐지길 바랐다.
특히 그는 뮤타에게 실망하는 반응을 확인하고 싶어서 관객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 뮤타를 도와주러 온 구세주, 드럼을 맡아줄 DW입니다!”
벙거지와 검정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도웅.
장세호가 마지막으로 그를 가명으로 소개하자, 사람들이 매너 있게 호응했다.
쉬익-
곧이어 잔잔하게 스모그가 깔리고,
맨 뒤에 있는 드럼이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실루엣만을 드러냈다.
챙, 챙, 챙, 챙.
스모그를 뚫고 묵직한 타격음이 공연장을 울렸다.
그 박자에 맞춰 몸을 내던지는 세션들.
각 파트들이 곧장 조화롭게 맞물려 짜릿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저 드러머 대체 뭐야?’
그래서 피코의 보컬은 상당히 당황했다.
초짜라고 생각했던 도웅이 뮤타의 리듬을 능숙하게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도웅의 비트는 명백하게 각 세션이 기량을 내뿜도록 음악을 아우르고 있었다.
‘박충현보다 더 잘 치는 것 같은데···?’
스냅의 찰진 느낌이나 박자를 쪼개는 솜씨.
게다가 원래 뮤타의 드러머보다 풍부한 울림을 보여주고 있는 도웅을 보면서,
피코의 보컬은 술맛이 뚝 떨어졌다.
‘낭패다···.’
뮤타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 공작을 펼쳤던 것이,
오히려 더 완성도 있는 음악을 선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잔잔하게 사람들의 발치에 흙먼지 같이 깔려있던 흥분이,
스피커에서 빵빵하게 터져 나오는 드럼의 타격음에 맞춰 장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이거지! 인디 밴드 찾는 맛이!”
“캬, 사운드 짜릿하게 맞아 들어간다.”
“아까 이 밴드 이름이 뭐라고 했지?”
사람들은 쿵쾅거리는 베이스 킥을 마치 자신의 심장 소리처럼 느끼며 노래와 호흡하고 있었다.
음악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모를 이나래 대리는,
발그스레한 두 뺨을 어루만지며 드럼을 연주하는 도웅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모그 때문에 확연히 보이지는 않지만, 곡선을 그리는 그의 몸짓만 봐도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도웅 씨는 어쩜 드럼까지···.’
그녀는 이 장면을 도레미 회원들과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모를 희열 같은 것도 느꼈다.
시크하게 드럼을 치고 있는 저 남자가 남도웅이라는 사실은 자신만 알고 있는 거니까.
‘아, 정남 씨도 있었지.’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심정남은 어색하게 몸을 뒤뚱거리며 비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이나래 대리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보였다.
그 손가락에는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 곳에서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록 페스티벌의 캐스팅 담당자 윤주옥.
그녀는 이 작은 공연장에서 비로소 괜찮은 음악을 찾아낸 데 희열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런 보석 같은 팀이 어디 숨어있었지.’
신선한 음악 스타일,
조화롭게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세션과 보컬,
뜨거운 현장 분위기까지.
특히 드럼의 풍부한 역량이 말초신경의 흥분을 짜릿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들의 노래를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리면,
분명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지-징.
그렇게 세션들이 마지막 음을 발산하고.
구두구두구두구둥, 둥.
드럼의 비트가 노래를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비트가 심장을 울리고 나서야.
-워후우우우!!!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흥분한 그들의 음성이 좁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야.’
도웅은 자신이 드럼으로 저들을 저만큼 달구었다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
가까운 거리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흥분의 감정들.
도웅은 그 날 것 같은 느낌으로부터,
음악적 영감이 달궈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
“정말 고마웠어요!!”
“그럼 나중에 꼭 뒤풀이해요!!”
뮤타 멤버들은 속 시원하게 공연을 마치고 한껏 들떠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으로부터 자신들의 음악이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도웅은 그렇게 흥분한 뮤타 멤버들의 감사를 받으며,
심정남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심정남과 이 대리가 있으니, 뒤풀이는 나중에 하기로 한 것이었다.
도웅은 옆자리에 앉은 이 대리의 시선을 느끼고 말했다.
“이 대리님도 오셨네요.”
“네, 이런 공연장에 저도 한번 와 보고 싶었어요.”
이 대리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수줍게 얘기했다.
“도웅 씨는 참 다재다능한 것 같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요.”
“그, 나중에 팬 미팅 같은 거 할 때 드럼 연주하는 거 보여주면 팬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아요.”
그녀는 제작팀의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으로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회했다.
집으로 돌아온 도웅.
그는 곧장 노트북부터 켰다.
지금 떠오르는 이 음악적 영감들을 빨리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했었나.”
도웅은 임지문의 도움으로 노트북에 깔아놓은 작곡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진회색의 템플릿 화면.
트랙의 악기 목록.
도웅은 기억을 더듬어 하나씩 바탕을 세팅했다.
쿵, 탁, 둥둥.
도웅은 키트 안에서 소리를 하나씩 찍어보았다.
이제 드럼의 파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사용성을 파악하는 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래, 좋았어.”
이내 프로그램의 구조를 파악한 도웅의 손길이,
트랙 위에 자유롭게 헤엄쳤다.
도웅의 머릿속에 있는 음악적 영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